얼마 전 나의 글과 자료가 많이 담긴 USB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마 묶어 둔 2개가 동시에 없어진 걸 보면 내가 소중히 잘 보관한다는 게 너무 깊이 두었나 봅니다. 열흘째 찾아 헤매며 뒤집니다. 서서히 불안하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디 잘 있겠지, 분명 내 가까이에 있을 거야.' 스스로 위로하고 자기 최면도 걸어봅니다. ‘부디 빈다. 멀리가지 말고, 어서 돌아와 다오.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고’ 부모가 자식 걱정하듯 기도도 합니다.
나를 지켜보던 우리 철학 선생님이 ‘바로우어즈(borrowers)’라는 꼬마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바로우어즈란 ‘빌려 가는 사람들’이란 뜻이랍니다.
"손가락만한 바로우어즈가 아마 선생님의 USB를 빌려갔나 봐요. 얘들은 주인한테 말도 않고 그냥 빌려갔다가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데요. 나는 잃어버렸다고 속상해하며 찾고 있는데, 이 아이들은 아무런 미안함도 없이 그저 빌려 갔을 뿐이래요."
내 손가락만한 이 아이들을 상상해봅니다. '그게 뭐 어땠어?' 이 친구들, 아무렇지도 않다며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고약한 놈들이죠. 그러면서도 그 꼬마친구들의 장난기가 귀엽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떻게 생긴 놈들인지 보고 싶어지네요.
“선생님의 USB안에 재미있는 글이 많아서 그거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나 봐요. 곧 제자리에 다시 갖다 놓을 겁니다.”
참 곱고 고마운 말씀이죠? 철학 선생님이라서 그런 걸까요, 어린 아이 같아서 그런 걸까요?
‘아니, 혹시 이 친구들이 빌려 갔다가 엉뚱한 곳에 둔 것은 아닐까?' 라며 나도 어린아이와 같이 바로우어즈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이런 유쾌하고 따뜻한 위로에 힘을 얻어 내 삶의 주변을 차근차근 정리하면서 USB를 다시 찾아봐야겠어요. 그러다가 바로우어즈 꼬맹이들을 만날 수 있으면 더 좋겠어요. 만나면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그동안 이 모든 것들이 너희들 짓이었단 말이지?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결국 너희들이 빌려갔다는 그지? 아무튼 반가워. 돌려주면 더 고맙고. 그래도 다음엔 나한테 말하고 빌려갔으면 좋겠어."
그렇게 상상하니 나를 덜 원망하고 지나 간 것을 조금씩 지울 수 있게 됩니다.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니 쉽게 잊혀 지고 쉽게 용서가 됩니다.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
이렇게 쉽게 이해됩니다.
우리 친구들, 내일의 행복을 위하여 오늘을 저당잡거나 헛되이 버리지 마셔요.
지금 여기서, 행복하기 위하여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고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아, 성현의 이런 말씀도 새겨두면 좋겠구요.
○“큰 사람은 어린 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
[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 - 맹자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 예수, [마태 18. 3-4]
사랑하는 친구들, 늘 감사하고 지금 행복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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