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인문학 산책길을 걷다, 세마리의 소를 만난다. 방우, 견우, 심우이다.
억지로 얽었다라고 할지라도 소(牛)와 연결하여 세 사람의 문인(文人)을 이야기 해 보는 것은 재미가 있다.
첫번째 만난 사람은 조지훈이다.
성북동 길에 그의 집터를 기념하여, '방우산장' 파빌리온 조형물을 세웠다.
방우(放牛)란 '소를 놓아주다. 소를 풀어주다'라는 의미이다. 시인은 "마음 속에 소를 키우면 굳이 소를 잡아 둘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고삐 풀린 소는 누구이며, 어디로 갔을까?
시대의 흐름(시류)에 맹종하지 않고 거스르고 가로지르며 횡보(橫步)한 염상섭의 집터를 찾았다.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자기 집을 가져 본 적이 없이 가난하게 살았던 그가 마지막에 살았던 전셋집을 찾았다. 그러나 흔적도 쉽게 찾을 수 없어 포기했다. 집 같은 것은 남기지 않아도 그의 문학은 불멸한다.
그의 문학 작품명, 견우화(牽牛花)에서 나타난 견우는 무슨 의미일까?
잡아 길들이고자 꼬투레를 뚫고 끌고 오는 소한마리, 견우(牽牛)는 누구일까? 소를 길들이는 이일까? 그의 견우화는 또 누구이며 무엇일까?
곤드레 만드레 술에 취한 그를 소가 끌고 오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소도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며 게 걸음질을 한다.
그의 호, 횡보는 횡행천하(橫行天下)에서 따온 이름이다. '게가 비틀거리며 위태롭게 걷지만 결국 천하를 간다'는 말처럼, 평온하고 정상적인 삶을 허락하지 않은 시대가 만들어 낸 그의 이름이다.
그는 수주 변영로, 공초 오상순와 함께 당대 문단의 ‘주선(酒仙)’으로 통할 만큼 술을 좋아했다. 죽기 전에 그가 마지막으로 한 일도 아내가 숟가락에 떠준 소주를 받아 마신 것이었다고 한다.
의자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광화문 교보빌딩 뒤에서 만날 수 있다.
이제, 소를 찾는다. 만해 한용운은 자신이 거처하는 집을 심우장(尋牛莊)이라 불렀다. 그렇다면 소를 찾는 그가 심우이며, 그의 삶 또한 심우라 할 것이다. 그가 찾는 소는 곧 그 자신일 것이라.
그는 심우장을 노래했다.
잃은 소 없건마는
찾을 손 우습도다.
만일 잃을 시 분명타 하면
찾은 들 지닐소냐.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ㅡ<심우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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