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다. 처녀출전이다.
42.195킬로미터를 달린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래서 두렵기도하고 설레이기도하다.
그동안 연습을 한다고 했지만, 30킬로미터 이상 달려본 적없다.
아니, 하프코스(21.0975킬로미터)를 4번 정도 달려본 것이 고작이다.
그리고 성연환선생님을 따라 백두대간 38킬로미터를 12시간이나 걸리면서 산행한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
을유년 올해 최고의 나의 목표이다.
평소 내 나이 50전에 풀코스를 뛰어보겠다했는데 드디어 오늘이다.
영화 [말아톤]의 초원이에게서 용기를 얻었다.
2005년 10월 23일 조선일보 주최 춘천마라톤대회!
춘천 운동장은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로 가득찼다.
트랙을 따라서는 나보다 잘 달리는 사람들이 시간대별로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등록 프로선수 20여명이 출발선상에 대기 중이고, 그다음 A그룹, B그룹, C,D,E,F,G,H,I,J그룹은 트랙을 따라 순서를 기다리고 운동장 잔디밭 안에는5시간 이후와지난대회 기록이 없는풀코스 처녀출전자들이 K,L,M,N,O그룹이 대기중이다. 나는 제일 마지막 O그룹이다.
드디어 10월 23일 11시 00분 출발이다.
순서를 기다리며 출발선을 나간 시각은 11시 30분이 지나서다.
의암호 호반과 가을 산 단풍. 끝없는 줄을 만들며 달리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함께 달리는 발소리와 후덕한 가을 정취에 취하여 숨가푼 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내며 그분들과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기도를 하며 달렸다.나의 마라톤은 기도이다.
10킬로에 58분. 그래, 페이스 조절은 잘되고 있다.5킬로에 6분. 평소 연습한대로다.
20킬로에 1시간 58분. 아니 시간이 조금 줄었다. 오버 페이스인가?
성연환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마찬가지다. 힘있을 때 달려놓자. 힘빠지면 쉬더라도...."
30킬로에 3시간 2분 조금 늦었다. 지금까지 잘왔다.
내가 언제 여기까지 달려 본 적 있는가?
아마 아내는 놀랬을 꺼다. 목표 5시간인데, 30킬로를 3시간만에 뛰었으니....
아내 손에 들려진 휴대폰으로 20킬로(통과시간 13:30:12) 30킬로 통과시간(통과시간 14:34:58)이 문자메시지로 전송되고 있었다. 찹쌀초코파이 두개를 들고 음료수를 마시며 걸으면서 먹었다.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칭을 하고 근육마사지를 하고 수지침을 맞고 잠시 쉬기도 한다.
먹으면서 달릴 수 없어 잠시 쉬면서 걸었다.
그것이 화근인가?
32킬로미터 지점에 와서 오른쪽 허벅지에 쥐가 났다. 뛸 수가 없다. 근육이 뭉친다.
성선생님께말씀드리고 주저앉았다. 선생님이 발바닥을 쥐를 제끼면서뭉친 근육을 풀어주신다. 다행이 쥐가 풀렸다. 함께 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거리 곳곳에 피 묻은 장갑이 굴러다닌다. 이피의 주인공들도 쥐가 나서 수지침을 맞고 피를 짜냈을것 같다.적지 않은 사람들이 털레 털레 걸어서 간다. 앉아 쉬기도 한다.
어깨가 무겁다. 다리가 무겁다. 이제 아무 생각없다. 그저 고통이다.
누가 35킬로지점 쯤 가면 몰아경에 빠진다나? 그걸 느끼고 싶다. 그러나 내겐 어림없다.
가슴이 무겁다. 아프다. 아~어떤 사람들 마라톤하다 심장마비로 죽었다는데..
교감선생님, 동료교사 농담삼아 하신 말씀"살아서 돌아오라"했는데, 지금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가슴을 만져보았다. 오른쪽 왼쪽 위 아래 할 것이 없다. 다 아프다. 심장이 아픈 것이 아니라갈비뼈모든 근육이 아프다. 근육통인가보다. 가슴 꼭지에는 밴드를 붙였지.
어깨가 아파 양손 깍지를 끼고뒷통수에 걸치고 달린다. 양팔을 휘휘 돌리며 달려본다.
주저앉진 말자. 걷지는 말자. 그래도 끌고 달릴 수 있는 다리가 있다.
언제부턴가 내 옆 앞쪽에는 쩌걱 쩌걱 소리를 내며 달리는 사람이 있다. 두다리의 굵기가 다르다. 오른쪽다리 무릎아래부터는 유난히 굵다. 붉게 멍든 색깔이다. 압박붕대를 감았다. 가까이 가 소리로 듣지 못했더라면 다른 사람과 다름없다. 아마 인공무릎관절을 했거나 의족인가보다.
어쩌다이렇게 되었으며, 무슨 사연으로 마라톤을 하고 있는지 풀코스를 몇번 뛰어보셨는지이것 저것 여쭈고 싶다. 아이들에게 그 사연을 전하며 감동의 훈화를 전하고 싶었지만 여쭈기를 참았다. 그저 존경스러웠다. 차마 그분을 추월할 수 없었다. 아니 추월할 힘도 능력도솔직히 없었다.
드디어 40킬로미터. 시간은 많이 까먹었다. 30킬로에서 10킬로 더하는데 1시간 20여분 정도 지났다. 목표 5시간 내는 충분하겠지만 욕심내었다.4시간 30분은 어림없다. 그래도 40분 안에는 들어가자. 이제 2킬로 조금 남짓. 1킬로6분을 평소 뛰는데 그까짓것20분에 남은 거리를 못달리랴.아~ 그런데 왜 이리도 먼지........
드디어 운동장에 들어섰다. 수많은 사람들. 모두 날 위해 기다리고 있는듯하다.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래. 40분 안에는 들어가야 한다. "부장님, 조금만 더 힘 냅시다. 그래도 40분안에는 들어가야죠. " 마지막 남은 힘을 모두 쏟으며 달려들어간다. 골인 지점 앞에 아내와 사모님이 기다리고 있다. 제일먼저 아내의 품에 안겨야지.......
아~ 드디어 골인. 4시간 39분 27초 (.87도). 제일 먼저 안은 사람은 아내가 아니라 함께 달려온 성연환 선생님이었다. 완주만 목표했는데 그것도마지막 까지 질주하여 4시간 39분 27초라니.
스스로 대견하고 자랑스런 일을 해냈다.
기다려준 아내에게 참 고맙다.
항시 마라톤하는 나를 걱정하면서도 한 번도 따라 와 주질 않았는데 이곳 멀리까지 처음으로 따라와 함께 기뻐해주는 아내가 너무 사랑스럽다.
괜찮다면 키스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깨동무해주었다. 그리고 정말 고맙다고 했다.
또 풀코스를 달릴 수 있을까?
전날 아내는 마라톤 하지 말라며, 백화점에 함께가서 등산복을 사주었다. 그렇지만 함께하고 돌아온 다음 딸아이에게 하는 말, "내년엔 쇼니도 같이 가자."한다.
그렇다. 다시 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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