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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과 인문학 산책

성북동 입구 한중 소녀상

by 문촌수기 2018. 4. 14.
봄비 오는 성북동 나들이.
한성대역 5번 출구의 나폴레옹 제과점에서 만나 시작한다. 예전에는 2층에서 한양도성 낙산성곽이 훤하게 보였는데 이제 낯선 건물이 눈길을 가로 막았다. 그림책인가, 어디서 본듯 한 건물 형태이다. 마술사 같은 화가인 에셔의 그림에서인가? 바벨탑 축소판인가?

나폴레옹 제과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버스 정류장에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특별하다. 한복을 입은 한국의 소녀상 옆에 친구가 앉아 있다. 치바오 바지를 입은 중국의 소녀상이다. 이 소녀상은 2015년 10월에 건립되었다한다.
마음 착한 이가 소녀들에게 모자를 씌우고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한국의 소녀상 뒤로는 할머니 그림자가, 중국의 소녀상 뒤로는 지나온 발자욱이 찍혀있다. 두주먹은 단단한 각오로 움켜쥐고 있으나, 맨발의 두 발은 불안한 듯 땅을 딛지 못하고 있다. 오른쪽의 빈의자는 누구의 자리일까? 동남아의 위안부 소녀의 자리이기도 하며, 곁에서 늘 위로가 되어 줘야할 나의 자리이기도 하다.

흔히 인문(人文)의 어원을 '사람의 무늬'이라 할 적에 무늬란 곧, 소녀상 뒤로 난 할머니 그림자, 그림자 속의 하얀 나비와 같은 문양이며, 그리고 두 주먹, 두 발, 어깨 위의 저 새와 같은 상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인문학은 바로 그 사람이 만들어 낸 무늬ᆞ문양ᆞ상징에 문사철의 의미를 부여하고 찾아가는 것이다.
소녀상의 상징과 의미를 이야기한다. 그 순간 소녀상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삶이 되고 사람이 된다.
한편 괜한 시비를 삼아본다. 공감이라는 착한 동기에서 비롯되었지만 소녀상에 모자와 목도리를 씌운 행위는 과연 잘한 일일까? 위안부 소녀의 고통을 상징하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가렸으니 결과적으로 소녀상을 왜곡한 것은 아닐까? 오늘따라 비가 오니 차라리 젖은 모자와 목도리를 벗기고 우산을 함께 서야하는 것은 아닐까?

봄비는 가시나무도 이렇게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게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