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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이야기

봉숭아 학당(5) - 빈 배가 되라.

by 문촌수기 2013. 1. 2.

봉숭아 학당(5) - 빈 배가 되라.

순 우리한글로 고치면 '꽃분이'가 되는 예쁜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졸업해서 아름다운 아가씨가 되었을 겁니다.
공부는 뒷전이지만 착하고 밝았습니다.
친구 좋아하고 아침마다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지각에 안 걸리려구.
그런 꽃분이는 어디에 그 많은 밥이 들어가는지 궁금할 만큼 밥을 많이 먹었습니다. 급식시간이면 부끄러워 뱅그레 웃으면서밥을 많이 퍼 담습니다.
그런 모습에 예쁘면서도 짓궂게 장난치며 말을 건넵니다.

"히야~꽃분이,그렇게 많이 먹어 예뻐졌나봐."

그래도 얼굴 살짝 붉히며 웃기만 합니다.

동양윤리 사상 수업시간입니다.
장자(莊子)를 배우고 있습니다.


"장자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이리저리 노니다가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깨어나 생각하니, 장자가 꿈속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속에 장자가 된 것인지, 장자 자신도 몰라 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장자의 꿈이야기 들려주는 이 시간 또한 꿈 속의 장면인지도 모릅니다.꿈에서 깨어나 봐야 알겠지요?"


그리고는 장자의 조삼모사(朝三暮四, 아침에 셋 저녁에 넷), 정중지와(井中之蛙, 우물안의 개구리)이야기,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없는 것이 오히려 쓸모있다)을 얘기하였으며, '빈배가 되라'는 가르침도들려 주었습니다.

"배를 몰고 물을 건너는데 다른 배가 와서 부딪치면 화가 날 것입니다. 그런데 와서 부딪친 배에 아무도 없다면 어디에 시비걸어 화를 낼 것입니까? 화를 내는 사람이 이상해집니다. 그대들이인생을 살아갈 적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시비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을빈 배(虛舟)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그대를벗하여 지낼 것입니다. '빈 배가 되라'는 것은 자기를 비우란 말입니다. 나라는자만심, 남을 얕잡아보는 건방, 그런아집을 버리란 말입니다."

꽃분이는 점심 밥을 많이 먹었는지 장자의 나비 꿈 이야기 할 적부터 잠이 들었나 봅니다. 꿈 같은 세상 속에서 꿈만 같은 잠을 자니 어찌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꽃분이 옆에 가서 큰 소리로 깨워 부릅니다.


"꽃분아! 너, 내가 뭐라 하더냐? '빈 배가 되라' 했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

꽃분이 부끄러워하며 말합니다.

"'밥 적게 먹어라'는 뜻입니다."


아이들은 책상을 두드리며 교실이 떠나갈 듯 웃습니다.
꽃분이도 부끄러워하며 덩달아 웃습니다.나도 정말 유쾌하게 웃습니다.
정말 사랑스런 아가씨 아닙니까? 정말 고마운 아가씨 아닙니까?
우리 꽃분이 밥 많이 먹고 건강하며
항시 밝고 착하게 살아가길 기원합니다.
졸업한지도 몇해되었네요. 보고싶네요.

 

 

莊子 外篇 <山木>中 虛舟 (장자 외편 산목 중 허주)


方舟而濟於河 할새 有虛船 來觸舟 이어든 雖有偏心之人不怒 어니와

방주이제어하      유허선 래촉주        수유편심지인불노


배로 강을 건널 때 빈 배가 떠내려 와서 자기 배에 부딪치면

비록 성급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


有一人在其上 이면 則呼張歙之 호대 一呼而不聞 하며 再呼而不聞 커든

유일인재기상      즉호장흡지      일호이불문      재호이불문


그러나 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비키라고 소리친다.

한 번 소리쳐 듣지 못하면 두 번 소리치고 두 번 소리쳐서 듣지 못하면 세 번 소리친다.


於是三呼邪 면 則必以惡聲隨之 하리니

어시삼호사    즉필아악성수지


세 번째는 욕설이 나오게 마련이다.


向也不怒而今也怒 는  向也虛而今也實 일새니라

향야불노이금야노     향야허이금야실


아까는 화내지 않고 지금은 화내는 까닭은

아까는 빈 배였고 지금은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이다.


人能虛己以遊世 하면 其孰能害之 리오

인능허기이유세      기숙능해지


사람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는가?


(신영복 교수님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를 공부하다가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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