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같이 시험 감독을 하고 있을 때 였습니다.
지금은 학부모 도우미교사랑 함께 이지만 그 때는 혼자서도 충분했습니다. 그언 7-8년전 쯤 가을 중간고사 영어 시험시간인가 봅니다.
아이들은 조용히 시험을 치고 있고 나는 두리번 두리번 살피는데 아! 복도로 참새한마리가 후루룩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잠시 머리를 내밀고 내다 보았지요. 그런데 그만 복도 끝 창문에 '꽁' 머리를 박고선 '똑' 떨어져 버렸어요. 복도 왼쪽 열린 창으로 들어왔다가 오른 쪽 창으로 날아가던 참새가 미처 유리창을 분간 못하고선 아뿔사 유리창문을 들이박아버렸지 뭡니까? 그 머리에 유리창이 깨지기야 하겠습니까?
때마침 영어선생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시험문항에 질문이 있는지 돌아다니는 중입니다. 영어선생님을 교실에 잠시 붙잡아놓고선 찬 복도 바닥에 떨어진 참새쪽으로 얼른 다가갔습니다. 불쌍한 참새! 기절했는가 봅니다.
이 일을 어떡하나? 119구급차를 부르기도 그렇고 병원에 데려가기도 그렇고 어디 가까운데 동물병원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렇게 하겠건만................
가까이 분필털이 통이 있고 세면대가 있었습니다. 세면대 물을 살짝 털어 새끼 손가락에 묻히고선 참새의 부리를 살짝 벌여 물방울을 떨어 뜨렸습니다. 한 두 방울이면 충분하겠지만 이건 먹었는지 말았는지 알 길이 없고.............
행여 '심장마비? 아님 호흡중지? ' 이런 걱정으로 인공호흡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우스 투 마우스하기에는 내 입이 너무 컸습니다. 참새가 한 입에 다 들어갈 지경이니깐. 하는 수 없이 참새를 손바닥에 쥐고선 쪼물락 쪼물락 만지니 아!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예쁜 눈은 처음 보았습니다. 빤짝거리며 까만 눈동자를 뜨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아직 제정신이 아닌가 봅니다. 새끼 손가락으로 또 한두방울의 물을 먹였습니다. 그제서야 부리를 오물오물거리며 물을 받아 먹었습니다.
저 멀리 교실 문앞에서 "선생님 거기서 뭐하세요?" 라며 영어 선생님이 부르십니다. 그래요, 난 지금 중요한 일도 까먹고 있었습니다. 정신없는 참새를 하는 수 없이 창틀 위에 놓아두고 돌아가야만 합니다. '조금 정신이 돌아오면 날아가겠지. 그렇게 할 수 있을 꺼야.' 라고 속으로 말하면서.....
시험감독을 하면서도 마음은 참새에게 가 있어 자꾸만 내다봐졌습니다.
꼭 시험 때면 아주 자유롭게 수면을 즐기는 부류들이 있습니다. OMR카드의 답 마킹은 마치 가을철 날아 오는 기러기 떼 모양으로 그려 놓고서는 10분이면 염치없고 해서 한 15분쯤 지나 잠을 자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마침 제일 뒷자리에 잠을 자는 농땡이 한놈이 있길래, "너 이리 나와." 잠자다가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그때 아이들은 참 순진했습니다. 공손하고요. 뒷머리 긁적거리며 겸연쩍게 나오는 친구에게 시험 다 치고 할 일 없으면 저기 복도 끝에 가서 아까 내가 한 것처럼 참새에게 한 두방울 물을 더 먹이고 인공호흡을 시키도록 했습니다.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이해 못하겠다며 친구는 참새에게 갔습니다.
한 10분쯤 흘렀는가 봅니다. 어떻게 하나 싶어 복도 끝으로 또 눈만 빼 내다보았습니다. 할일 없고 심심하던 친구가 뭔가 할 일이 생긴 듯 열심히 수도꼭지 털어 오른손 새끼손가락으로 물을 묻히고선 왼손바닥위에 떨어뜨리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심심친구에게 할 일이 생긴 것이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조용히 시험을 치루는데 이 심심친구 경황없이 기뻐 날뛰며 교실로 뛰어 들어오며 소리칩니다. "날아갔어요. 날아갔어요." 아이들은 이 사태에 정신없어 휘둥거리며 나와 그친구를 번갈아 살폈습니다. 조용히 시험치루는 다른 친구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얼른 사태를 진정시켰습니다. "그래. 그래. 알았어. 수고했다. 제 자리로 돌아가거라." 심심친구는 연신 히죽거리며 제가 한 일이 기특한지 기뻐합니다.
시험 다 끝나고 답지 거둔 다음, 반아이들은 나와 참새와 심심친구 사이에 일어난 사건의 전말을 다 듣고서 기뻐했습니다. 물론 짓궂은 놈들이야 장난삼아 "히야, 그놈 내 한테 걸렸으면... 오늘 도시락 반찬인데....아깝다." "우하핫"
시험 한 번 즐겁게 잘 치루었습니다.
'살리는 일'(호생지덕)이 이렇게 기쁜 일인 줄이야 말로 가르쳐 무슨 소용있겠습니까? 나에게도 그러하지만 심심친구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참새는 박씨를 물어오지 않는가 봅니다.
2000. 10. 10 중간고사 둘째 날이었습니다. 황보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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