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킬로미터, 25분, 아주 잘 달리고 있다. 컨디션은 좋다.
같이 달려주는 김선생님이 고맙다. 숨이 차지만 가끔 얘기도 나누고 페이스 조절도 도와준다. 평소 호수공원 한바퀴 4.7킬로미터, 27,8분인 것에 비하면 지금 아주 잘 달리고 있다. 분위기에 취했나보다.함께 달리는 만여명의 사람에 취하고, 잘 익은 황금들녁과 도로변 코스모스, 더 없이 높고 푸른 가을에 취하고, 조국 통일 염원에 취했나 보다. 난 지금 제6회 문화일보,파주시 통일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달리고 있다.
21킬로미터 하프코스, 목표는 2시간이다.1킬로에 5분, 이 상태로 달리면 110분 정도,목표 달성은 충분하다. 그런데 이게 뭐야?오줌이 마렵다. 이미 늦었다. 코스에서 잠시 벗어나가로변에 실례하는주자도 있지만 차마 따라하지 못하겠다.시간도 아깝다. '그렇다고 이 무거운 방광을 안고 앞으로 1시간 30분이나....젠장,미리 누고 올걸....'
호수공원 달릴 땐이 생각도 하고 저 생각도 하고 아무 생각 않기도 하고한 생각만 골똘이 하기도하여마라톤은 좋은 운동이라고 여기며 여유있게 달렸다. 그런데오늘은 오직달리는 일에만 전념한다.'밥 먹을 땐 밥 먹는 일에 전념하고, 잠 잘때에는 잠자는 일에 전념하라' 했지 않는가! 잘 달리는 김선생님에 떨어지지 않으려 가푼 숨을 고르며 잘 따라가고 있다. 물 한모금 마시고 다리에 스프레이 파스를 뿌리고....
10킬로미터를 지나친다.54분. 이크, 조금씩 쳐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실수하겠다.좀 더 힘내야지. 그러나 김선생님과는 조금씩떨어진다.14킬로미터 쯤부터는김선생님이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지금의 페이스를 놓쳐선 안된다. 아직은목표 달성이 충분하다.
무릎이 걱정이다. 평소 하프코스 연습을한 적 없다.지난 겨울 한강변을 따라 하프코스를 달린 적말고는 한 번도 없다. 나흘 전 호수공원 세바퀴 달린 것이 고작이다.든든히 믿을 만한 무릎이 아니기에인라인 패트롤의 스프레이 서비스를 너댓번 받았다. 마라톤하다 죽었다는 소리도 적지 않게 들었다. 탈수 되지 않기 위해 물도 서너번 마신다.머리위에 스폰지 물을 짜서 뿌리고 또 모자에도 담아 덮어쓰고 달린다. 앞으로 2킬로 정도 남았다. 남은 시간 15분 정도. 충분하다. 누구에게 자랑할 일도 아니지만,스스로에겐 자랑스런 일이다. 21킬로미터 하프코스 2시간 목표달성, 가슴벅찬 일이다.숨은 그다지 가파진 않다. 다만 다리가 무거울 뿐이다.
어떻게 된거야?내가 거리를 잘못 알았나? 예상치도 않게 2킬로미터가 무척 길었다. 돌아올때는 '통일의 관문'으로 다시 올라 가지 않는데 어찌 된 일이냐? 다시 '통일의 관문'을 향하여 달리고 있다. 조국 통일만 된다면 언제든 다시 달려도 좋지만, 지금은 아닌데.......이제 저 멀리 Finish 지점이 보인다. 그런데 왜 이렇게 멀어? 아니, 멀어도 좋다. 아직 달릴 힘은 남아 있다. 그런데 시간이 부족하다. 이대로 가다간 2시간 안에 들어가기 힘들다. 남은 시간 2분. 최선을 다해야 돼.
'소헌이에게 이렇게 말했지. "역주해, 역주!", 그래 내가 그렇게 해야 돼. "역주!"'
남은 힘을 다해 달린다. 뒤에서싸이렌이 울리며구급차가 추월해간다. 웬일일까? 저 앞에 멈추었다. 골인지점 다 가서 한 사람이 쓰러졌다. 순간다리에 힘이 풀린다.
'이게 무슨 짓이람, 내가 왜 이 고틍을 감내하며 달리지? 무슨 영광있다고...게다가 2시간 안에 들어오면 누가 상이라도 주남?'
'아니야. 그래도 스스로에게 약속했잖아. 안 죽어. 아니, '공부하다 죽어라' 했잖아. 그렇다고,달리다 죽어라고? 그래도 죽지않아. 얼마 남지 않았어. 그냥 끝까지 달리는 거야'
2시간을 넘겼다. 도저히 불가능하다. 죽어도 2시간 안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그렇게 골인. 기록은 2시간 1분 23초. 풀이 꺾였다. 만약 목표를 달성했으면 더 달릴 힘도 있을 것 같지만,힘이 빠지고 기가 빠진다. '페이스 조절이 잘못됐나?오줌이 마려워서 그랬나? 물을 좀 덜 마실껄, 다리에 스프레이를 좀 덜 뿌릴껄....' 후회된다. 준비가 부족했음을 반성한다.
그래도 난 참 잘했다. 무리한 목표였지만, 목표를 높게 잡고 최선을 다했기에 그 목표에 아주 근접했다. 영광과 포상은 없어도 스스로 정한 약속을 거의 지킬 뻔 했다. 건강을 위해 달린다지만 그래도목표가 있다는 것은 나로 하여금 도전케하고 전의를 다지게 한다.그냥 그런대로사는 것이 이상적이지만,목표를 정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삶도 아름답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상을 높게 가져라. 비록 불가능하다 조롱해도 목표를 크게 가져라. 그리고 최선을 다해라. 비록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그 가까이에갈 수 있다. 그렇다면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이상도 실현될 것이고, 불가능은 깨어질것이다. 도전하라."
다시 도전이다. 다시 달린다. 2시간을 향해. 그리고 언젠가는 풀코스에 도전한다.
위스콘신 대학의 기숙사에서 학교까지 20분 거리가, 걷는데 익숙치 않은 내게는 무척이나 길고 힘들게 느껴졌었는데, 마라톤 거리를 달려낸 황보선생님 글을 읽고나니 그만 무색해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이 곳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다 우연히 황보님의 홈피에 들어오길 잘 했단 생각을 하면서, 소식을 전합니다. 이 곳은 할로윈 축제로 대학생들이 온갖 이상야릇한 의상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답니다. 황보님이 봤어야 하는데..... 언제나 열심히 생활하는 황보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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