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다가 '성학십도' 병풍을 비치해 놓고 있다. 율곡학파는 '고산구곡도(高山九曲圖)' 병풍이었지만, 퇴계학파는 '성학십도' 병풍을 지니는 것이 전통이었다. 내가 지니고 있는 성학십도 병풍은 서예가의 손으로 쓴 붓글씨가 아니고 도산서원에 보관되어 있었던 성학십도 목판본에다가 먹물을 발라서 찍어낸 것이다.

퇴계학파는 아니지만 이 병풍을 거실에 쭉 펼쳐 놓고 있으면 문자의 향기가 서서히 집 안에 퍼지는 것 같다. 그 병풍 앞에 방석을 놓고 앉아 있으면 퇴계 선생의 '철학 그림'인 십도(十圖)가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혼자서 차를 한잔 끓여 마시면서 눈을 감고 있으면 머릿속으로 들어온 그림들이 다시 아랫배로 내려가는 듯한 착각을 한다. 그러면 만족감이 온다. '아! 나는 조선 유학의 전통을 아직 잊지 않고 있다'는 보수적 자존심이다.

이번에 한형조(60) 교수가 '성학십도' 해설서를 내놓았다. 퇴계가 평생 공부한 내용을 참기름 짜듯이 압축한 결과물이 성학십도라서, 일반인들은 그 내용과 맥락(context)을 깊이 있게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수재라고 소문난 한 교수가 성학십도를 떡갈비 만들 듯이 잘게 씹어서 책을 낸 것이다. '해묵은 사상이 현대의 우리에게 아무런 자양도 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이다.

'외래의 관점들이 본격 검증도 거치지 않은 채 그저 밀려왔다가 유행처럼 다시 썰물로 빠져나간다. 우리는 무엇에 기초하여 문화적 이상을 세우고 문법을 만들어 갈 것인가!'는 탄식에 나도 아주 공감한다. 성학십도의 핵심은 9장 '경재잠(敬齋箴)'이다. 선비 정신의 핵심은 존중과 배려에 있다는 내용이다. 나와 타인, 자연에 대한 존중과 배려 말이다.

그게 경(敬)이다. 지금도 88세 된 퇴계 종손은 종택을 찾아오는 10대 후반의 학생들과 이야기를 할 때에도 항상 무릎을 꿇은 자세이다. 상대방에게는 편히 앉으라고 권한다.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무릎 꿇는 자세가 평생 습관이 되어 익숙하다고 한다. 경재잠의 정신이 400년 넘게 그 후손에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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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神 계보는 줄줄 외면서… 삼국유사는 왜 안 읽나요"
문화 유석재 기자
입력 2018.08.07 03:01
삼국유사ㅡ스크랩
문체부 장관 지낸 최광식 교수 '삼국유사의 신화 이야기' 펴내

최광식(64)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맡고 있던 2010년, '그리스의 신(神)과 인간' 특별전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그리스 신 계보를 줄줄 외우는 거예요. 아~ 이것 참, 답답하더라고요. 우리나라에도 신화가 있는데 그건 통 모르고 말이죠…."

그가 말하는 '한국 신화의 보고(寶庫)'는 바로 '삼국유사(三國遺事)'다. "서양문화의 뿌리가 그리스·로마 신화라면, 우리 민족문화는 그것을 '삼국유사'에 실린 건국 신화와 시조 신화에서 찾아야 합니다." 최 교수는 최근 단행본 '삼국유사의 신화 이야기'(세창출판사)를 냈다. 고려대출판부에서 박대재 교수와 '점교 삼국유사'(2009), 역주본 '삼국유사'(전 3권·2014)를 내고 '읽기 쉬운 삼국유사'(2015)를 쓴 데 이어 네 번째 '삼국유사' 작업이다.

최광식 교수가 도깨비 문양 고구려 와당의 복제품을 들고 활짝 웃었다. '삼국유사'는 우리 토착 신앙이 불교와 어떻게 융합됐는지 잘 보여주는 사료다.
/장련성 객원기자

왜 '삼국유사'인가? "흔히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고 '삼국유사'는 야사(野史)로 봅니다. 하지만 이 구도는 잘못됐습니다." 일연 스님은 고대의 역사와 불교, 신화와 설화·향가를 비롯한 민족의 문화유산을 남기고자 '삼국유사'를 썼다는 것이다. "무미건조한 '사기'에 비해 '유사'는 생동감이 넘치는 인간의 모습과 감칠맛 나는 정서가 담겨 있지요."

이를 깨달은 것은 고려대 사학과 학생 시절 '두 책을 비교하라'는 과제를 수행하면서였다. 그는 '삼국유사'를 평생 공부하겠노라 마음먹고 석사 논문을 썼는데, 당시 그의 논문을 둘러싸고 '이걸 과연 역사학 영역으로 봐야 하느냐'를 논의하는 학과 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이번 책 '삼국유사의 신화 이야기'에서 최 교수는 "신화란 단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상징적으로 반영하고, 문화의 원형을 보여준다"고 했다. 신화에 나타난 '코드(code)'를 잘 들여다보면 실제 역사가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단군신화는 사실상 그 아버지 환웅이 중심이 된 '환웅 신화'인데, 신단수에서 세상을 연 일종의 천지창조 신화 속에서 곡식과 쑥·마늘을 가진 '농경 세력'의 등장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토착 세력인 호랑이는 수렵 종족, 곰은 수렵에서 농경으로 전환하는 단계의 종족을 상징하고 있다.

"신라의 석탈해와 가야의 허황옥 신화는 해양 세력의 유입을 보여주는 단서이지요. 김알지 신화는 발달한 철기와 제련 기술을 지닌 북방 세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주인공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천강(天降) 신화를 북방계,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卵生) 신화를 남방계로 나눠 '한국 신화는 대부분 남방계'로 본 과거 일본인 학자들의 견해를 반박했다. 부여·고구려·신라·가야 모두 '천강'과 '난생'의 요소가 혼합돼 있다는 것이다. 중세에 이르러 신화는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리는데, 왕건 신화에는 '용'이 등장하는 반면 견훤 신화의 주인공은 '지렁이'로 격하된다.

문화재청장과 문체부 장관을 지낸 최 교수는 장관 시절 만난 작가들이 '우리나라엔 스토리텔링의 원천이 없다'고 푸념하면 정색을 했다고 한다. "'삼국유사'는 좀 읽어 보고 말씀하시죠!"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던 시절엔 "'삼국유사'가 없었더라면 무엇을 가지고 고조선·부여·발해가 우리 역사라고 할 수 있었을지 아찔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삼국유사'의 다섯 번째 작업으로 오는 가을 제자들이 쓴 다양한 분야의 논문집을 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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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경지 ㅡ스크랩

인문학과스토리텔링 2018.08.13 09:00 Posted by 文 寸 문촌
ㅡ이내옥 미술사학자·'안목의 성장' 저자.

조선시대 서화의 역사를 보면 궁극에는 추사 김정희로 수렴한다. 추사는 당시 동아시아 최고 지성으로서 모든 것을 갖춘 인물이었다. 55세에 뜻하지 않은 제주 유배를 겪는데, 쓰라림으로 점철된 그때부터가 진정한 추사 예술과 정신의 시기였다.
추사는 자부심이 대단해 오만에 가까웠다. 거기에 원한과 분노의 불길이 끼얹어졌다. 그러나 유배가 길어지면서 그것도 서서히 녹아내렸다. 여기에서 문인의 지조와 절개를 표현한 '세한도'가 나왔다. 그림 속 나무는 나무가 아니고, 집은 집이 아니다. 그것은 오만과 분노의 껍데기를 뚫고 들어가 마주친 자아의 처절한 고독이고, 그 강력한 주장이다. 동양 회화는 문인화의 두 거장 황공망과 예찬이 출현해 그 극점을 찍었다. 그로부터 500여 년이 지난 뒤 추사가 그들에게 필적하는 작품을 낸 것이다.
추사는 제주 유배에서 9년 만에 풀려났다. 다시 북청으로 유배돼 2년여를 보내고 돌아와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북청 유배 어간에 그린 '불이선란도'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쓴 '판전' 글씨는 '세한도' 단계에서 더 깊은 경지로 나아갔다. '불이선란도'는 '세한도'에서 보이던 강력한 자기주장이 사라지고, 평생 추구했던 서예 정신 '괴(怪)'의 완성이었다. 일부 자부심의 찌꺼기가 남아 있긴 하지만, 자비의 눈으로 자신을 관조하고 있다. '판전' 글씨에 이르러서는 죽음을 예감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해탈의 경지를 보여준다. 지금껏 추구해온 예술을 부정하고 초월하여 진정한 자유를 실현했다.
추사는 숨을 거두기 사흘 전까지도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불교 수행의 높은 경지였다. 당시 추사는 간화선(看話禪·화두를 사용해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선)을 격렬히 비판했다. 간화선으로는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추사의 주장에 대해, 한국 현대불교는 답을 해야 할 처지이다.
http://m.chosun.com/news/article.amp.html?sname=news&contid=2018080700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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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유력 일간지 신문 지면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산사를 소개하면서 '한국산사의 구조' 를 소개하였다. 그림을 보는 순간, 눈을 비볐다.
 "어, 이거 내 그림 아닌가?"
너무 비슷하고 닮았다.
이 정도면 표절이 아닌가?
그 문제는 차치하고 반갑고 자랑스러웠다.
분명 내 홈페이지를 보고 참조해서 그렸을거다. 안 그러면 이렇게 비슷할 수 없다.

http://m.chosun.com/news/article.amp.html?sname=news&contid=2018080901928에서

산사로가는길(2002) 홈페이지
나의 산사로 가는 길 홈페이지,
첫페이지의 <가상사찰탐방> 플래시 배너 창 그림이다.

어린이로 살아가기.

인문학과스토리텔링 2018.08.10 14:05 Posted by 文 寸 문촌
어릴 때는 어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춥고 배고팠기 때문이다. 커서 어른이 되면 돈을 벌거고, 그러면 배고프지도 춥지도 않을거라 여겼다.
이제 어른이 되니 어린이가 되고 싶다.
돈이 있으니 이제 춥거나 배고프지는 않다. 그렇지만 늘 어깨가 무겁다.
내일을 걱정하며 내 일을 어깨에 달고 산다.
걱정없이 '지금'을 살아가는 어린 아이가 부럽다. 그 아이들에게는 '내일은 없다.'
어릴 때는 동화책을 읽지 않았다. 읽을 책도 없었고, 읽을 시간도 없었다.
이제 어른이 되어 동화책을 찾아 읽는다.
시간은 없지만 억지로 짬을 만들어낸다. 어른으로 할 일을 일단 내일로 미룬다. 눈물도 흘리고 웃기도 한다.

어린이로 돌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엄마놀이'를 즐기는 아내 덕분에 나도 점점 어린이가 된다. '새 엄마' 격인데,  '새엄마놀이'는 안해서 다행이다. 참으로 고맙고 사랑스럽다. 이렇게 서로에게 길들여 지나보다.
피터팬으로 살아가기? 가출할까?
소공녀로 살아가기? 늘 기품있게?

성냥팔이 소녀는 늘 가슴아프고 눈물이 난다. 오늘도 어딘가에 성냥을 팔러 다니는 소녀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예수님과 칸트와 카르멘이 교차되어 연상될까? 이 연상을 어린이가 상상할 수 있을까?

오늘도 행복하기
♡어린 아이 마음으로
http://munchon.tistory.com/830
♡시인의 눈으로
http://munchon.tistory.com/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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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의 추사기념관, 제주 추사관,
과천의 추사박물관에서 얻은 자료를 정리해본다.
추후, 서울 봉은사, 중앙박물관, 영남대 박물관, 영천 은해사, 예산 수덕사, 해남 대흥사를 다시 찾을 것이다.

1. 예산 추사기념관에서

예산 추사기념관 오른편의 추사묘와 추사고택

2.제주 추사관에서

제주 추사관 뒤의 추사유배지

3. 과천 추사박물관에서

마천십연 조각

해설사는 겨울 눈내린 다음날, 눈을 이고 있는 '불이선란도' 병풍석벽을 구경오라고 권한다.

추사박물관 앞 과지초당
소네트에서 꼬리를 물다가 운(韻)을 잡았다.
운을 음미하며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면 그 맛과 즐거움이 배가된다.
소네트?
[이하 스크랩]
소네트(Sonnet)는 유럽의 정형시의 한 가지이다. 단어 자체의 의미는 '작은 노래'라는 뜻으로, Occitan(남부 프랑스어 방언)의 단어 sonet 와 이탈리아어 sonetto 에서 유래했다. 13세기경까지 엄격한 형태와 특정 구조를 갖춘 14줄로 구성된 시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소네트와 관련된 형식적 규율들은 시대에 따라 진화했다. 소네트는 엄격히 각운이 맞추어지는 형식이며, 르네상스 시기에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졌으나, 잉글랜드로 전해져, 영국 시를 대표하는 시 형식의 한 가지가 되었다. 가장 잘 알려진 소네트 작가는 셰익스피어(Shakespeare)로, 154개의 소네트를 남겼다.

소네트의 운율을 매기는 법은, 8개의 줄을 한 묶음으로 놓는 방식과, 네 줄씩 세번이 나온 후 두 줄이 추가되는 방식이 있다. 소네트의 형식은 크게 이탈리안 소네트(Italian Sonnet), 스펜서리안 소네트(Spenserian Sonnet), 셰익스피어 소네트(Shakespearian Sonnet)의 세 가지가 있다.
셰익스피어 소네트는 셰익스피어가 주로 사용한 방식으로, 10음절로 이루어진 14개의 줄이 약강의 5음보 율격으로 쓰이는 방식이며, 각운의 매기는 방식은 ABAB CDCD EFEF GG 형태이다. (예: 셰익스피어 소네트18번ㅡ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제가 당신을 여름날에 비교해 볼까요?
당신은 훨씬 더 상냥하고 온화합니다
거친 바람이 오뉴월의 사랑스러운 꽃봉오리를 흔들고
여름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날들은 너무나 짧으며

하늘의 눈(태양)은 때로 너무 따갑게 빛나고
그 황금빛 얼굴도 자주 흐려집니다. (구름 사이로 가려집니다)
고움도 상하고 아름다움도 사라지게 되고
우연이든, 자연의 섭리이든 그 아름다움은 없어지지만

그대가 지닌 영원한 여름(젊음)은 사라지는 법이 없고
그대가 소유한 아름다움도 없어지지 않죠.
죽음조차 그대를 그림자 속에 가두어 두었다고 자랑하지 못해요.
그대가 영원한 시 속에서 시간과 한 덩어리 될 때에는

인류가 숨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이 시는 영원히 숨 쉴 것이며 그대에게 생명을 줄 것입니다."
 ᆞᆞᆞᆞᆞᆞ
*May ~ 셰익스피어 당시에 쓰던 달력으로는 한여름. (당시 사용되던 달력이 실제보다 늦었기 때문)
소네트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페트라르카, 셰익스피어, 존 밀턴, 워즈워스 등이 있다.

그러고보니 나의 애창곡 '마이웨이(My Way)'에서도 운이 있다. 'my way, high way, byway, shy way.'
'Try to remember'에서도 그렇다.
'Remember와 September'만 그런 것이 아니라, 'slow, mellow, yellow, callow, follow'가 바로 그렇다.

나는 따라 부를 순 없지만 왁스의 노래 '오빠'도 운을 잘 전해주어 듣자마자 신나고 즐거웠다.
"오빠 나만 바라봐 바빠 그렇게 바빠
아파 마음이 아파 내 맘 왜 몰라줘
오빠 그녀는 왜 봐 거봐 그녀는 나빠
봐봐 이젠 나를 가져봐 이젠 나를 가져봐"

운의 맛은 우리 시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 맛의 최고봉은 김삿갓이지 아닐까?

김삿갓의 <팔죽시>
차죽피죽화거죽   此竹彼竹化去竹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풍취지죽낭타죽   風吹之竹浪打竹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반반죽죽생차죽   飯飯粥粥生此竹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생기는 대로
시시비비부피죽   是是非非付彼竹
시시비비는 저에게 맡긴 대로

빈객접대가세죽   賓客接待家勢竹  
빈객 접대는 가세대로
시정매매시세죽   市井賣買時勢竹  
시정 매매는 시세대로
만사불여오심죽   萬事不如吾心竹  
만사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연연연세과연죽   然然然世過然竹 
그렇고 그런 세상 지나가는 대로 살리라.
예술의 전당 가는 길.
비발디의 '가을'을 들으면서 과천의 추사박물관과 과지초당(瓜之艸堂)을 찾았다.

추사박물관에서 특별히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가 눈에 들어왔고 그림 속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추사는 난초를 그리고 연유를 발문(跋文)하였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자 빈칸을 찾아 작은 글씨로 채웠다. 그렇게 네 개의 발문으로 그림이 완성되었다.

첫 발문은 상단 왼쪽에서부터
‘부작란화 이십년(不作蘭畵二十年)'으로 시작하며 오른쪽으로 채우고 '추사'로 인장하였다.
"난초 그리지 않은 지 20년, 우연히 그렸더니 하늘의 본성이 드러났네/ 문 닫고 찾으며 또 찾은 곳/ 이것이 유마의 불이선일세/만약 누군가 억지로 (그림을)요구한다면, 마땅히 유마거사의 '말 없는 대답'으로 거절하리라"

두번째 발문은 오른쪽 중간의 난초닢 사이에 좀더 작은 글씨로 채우고 있다.
"초서와 예서, 기자의 법으로 그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겠으며, 어찌 좋아하겠는가? 구경이 또 제하다"며 고연재(古硯齋)로 인장하였다

이것으로 그림과 발문을 마치려 했더니 사단이 생겼다. 그래서 왼쪽 난초꽃의  화심(花心) 앞에 '묵장'을 인장하고 세번째 발문으로 그 장면을 전해주고 있다.

"애당초 달준이 주려고 아무렇게나 그린 것이다. 다만 이런 그림은 하나만 있지, 둘은 있을 수 없다."

달준이가 누굴까? 북청 유배생활 중에 섬기던 종이었다. 제주도 유배에서 제자 이상적에게 감사하여 <세한도>를 그려주었듯이, 이제는 종에게 이 그림을 주련다. 누가 그려달라고 조른 것도 아니고, 평가받을까 조심하고 욕심과 정성을 쏟은 것도 아니다. 그저 심심한 마음으로 아무렇게나 그렸다. 물 흐르듯이 바람 불듯이 부딪히면 휘어지고 돌아가듯 마음가고 손가는대로 그냥 그렸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고 서각가 소산 오규일이 이걸 가지고 싶다며 떼를 쓰는가보다. 달준이에게서 뺏을 모양이다. 그래서 세번째 발문과 난초 꽃대 사이에 아주 작은 글씨로 이 장면을 크로키처럼 그렸다.

“오소산이 보고 억지로 빼앗아가니 정말 가소롭구나.”

'가소(可笑)' 속에 추사의 평온한 미소가 보인다. 그래도 달준이에게 주었는지, 소산이가 결국 뺐어 가졌는지 그건 모르겠다. 추사는 거기에도 무심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낙교천하사'와 '김정희인'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림이 글이 되고, 글이 그림이 되었다.
그림과 이야기가 잘도 어울린다.
ㅡㅡㅡ
언뜻 두개의 키워드, '소네트(sonnet)'와 '화중유시(畵中有詩)'가 짝을 지었다. 내 안에서 비발디의 음악[樂]과 추사의 그림[畵]이 만나  소네트[詩歌]를 낳고 있다.

비발디는 사계를 작곡하고 그 계절을 노래하며 소네트를 붙였다 한다. 가령. '가을'의 소네트는 이렇다.
ᆞᆞᆞᆞ
가을 (L'Autunno)
https://youtu.be/Np52I5Dg6C8

제1악장 (Allegro, F Major, 4/4)
"마을 사람들은 춤과 노래로 복된 수확의 즐거움을 축하한다.
바커스의 술 덕택으로 떠들어댄다.
그들의 즐거움은 잠으로 끝난다." 

제2악장 (Adagio molto, d minor, 3/4)
"일동이 춤을 그치고 노래도 그친 뒤에는 조용한 공기가 싱그럽다.
이 계절은 달콤한 잠으로 사람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

제3악장 (Allegro, F Major, 3/8)
"새벽에 사냥꾼들은 뿔피리와 총, 개를 데리고 사냥에 나선다. 짐승은 이미 겁을 먹고 총과 개들의 소리에 지칠 대로 지치고 상처를 입어 떨고 있다. 도망칠 힘조차 다하여 궁지에 몰리다가 끝내 죽는다." 
ᆞᆞᆞᆞ
아직 소네트는 뭔지 잘 모르겠다.
칠언절구 한시나 우리의 연시조를 닮은 듯하다.
시조를 읊고, 그림 속에서 이야기를 찾아 연시조 또는 소네트 형식으로 표현해보는 수업을 해봐야겠다.
가령, 추사의 세한도와 세한도 발문을 패러디해서 '나의 세한도와 소네트(연시조)'형식으로 표현해보는 수업이나, 윤동주 시 '자화상' 읽기와 나의 자화상과 소네트, 도덕윤리 수업 속에 畵中有詩ᆞ畵中有謠ᆞ畵中有話를 설계해 볼 만하겠다.

*소네트:소네트와 운의 맛 http://munchon.tistory.com/1182
추사고택

추사고택 완쪽에는 추사의 출생 설화가 전해지는 우물이 있다.
추사가 태어나기 전에 비가오지 않아 산천초목이 시들고 우물이 말랐다.
추사가 이십개월 만에 태어나자 비가 오기 시작하여 초목이 살아나고 샘이 쏟아 우물을 채웠다한다.

추사묘

탁본체험실

추사고택을 찾아들어가다 초입에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묘가 있다. 추사의 증조부모이다. 화순옹주는 영조의 딸이며 증조부 김한신은 영조의 사위다. 그러고보면 봉사손 김정희는 조선왕실의 외손인 셈이다.
증조부모님은 같은 해에 태어나 서른 여덟 같은 해에 돌아가셨다. 조선 왕실에 이렇게 애절한 사랑이 또 있을까?
조선왕조 실록에 기록되어있다.

조선왕조실록ᆞ영조실록 91권,
영조 34년 1월 17일 갑진 1번째기사 1758년 청 건륭(乾隆) 23년
<화순 옹주의 졸기> 국역ㅡ
화순 옹주가 졸(卒)하였다. 옹주는 바로 임금의 첫째 딸인데 효장 세자(孝章世子)의 동복 누이동생[同母妹]이다.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에게 시집가서 비로소 궐문을 나갔는데, 심히 부도(婦道)를 가졌고 정숙(貞淑)하고 유순함을 겸비(兼備)하였다. 평소에 검약(儉約)을 숭상하여 복식(服飾)에 화려하고 사치함을 쓰지 않았으며, 도위(都尉)와 더불어 서로 경계하고 힘써서 항상 깨끗하고 삼감으로써 몸을 가지니, 사람들이 이르기를, ‘어진 도위와 착한 옹주가 아름다움을 짝할 만하다.’고 하였는데, 도위가 졸하자, 옹주가 따라서 죽기를 결심하고, 한 모금의 물도 입에 넣지 아니하였다. 임금이 이를 듣고, 그 집에 친히 거둥하여 미음을 들라고 권하자, 옹주가 명령을 받들어 한 번 마셨다가 곧 토하니, 임금이 그 뜻을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는 슬퍼하고 탄식하면서 돌아왔는데, 이에 이르러 음식을 끊은 지 14일이 되어 마침내 자진(自盡)하였다. 정렬(貞烈)하다. 그 절조(節操)여! 이는 천고(千古)의 왕희(王姬) 중에 있지 아니한 바이다. 조정에 받들어 위로하고 정후(庭候)하였다.

사신(史臣)은 말한다. "부인(婦人)의 도(道)는 정(貞) 하나일 뿐이다. 세상에 붕성지통(崩城之痛)*1) 을 당한 자가 누구나 목숨을 끊어 따라가서 그 소원을 이루려고 하지 아니하겠는가마는, 죽고 사는 것이 또한 큰지라, 하루아침에 목숨을 결단하여 집에 돌아가는 것처럼 보는 이는 대개 적다. 그러나 정부(貞婦)·열녀(烈女)가 마음의 상처가 크고 슬픔이 심한 즈음을 당하여, 그 자리에서 자인(自引)*2) 하는 것은 혹시 쉽게 할 수 있지만, 어찌 열흘이 지나도록 음식을 끊고 한 번 죽음을 맹세하여 마침내 능히 성취하였으니, 그 절조가 옹주와 같은 이가 있겠는가? 이때를 당하여 비록 군부(君父)의 엄하고 친함으로서도 능히 감동해 돌이킬 수 없었으니, 진실로 순수하고 굳세며, 지극히 바른 기개(氣槪)가 분육(賁育)*3) 이라도 그 뜻을 빼앗지 못할 바가 있지 아니하면 능히 이와 같겠는가? 이는 진실로 여항(閭巷)의 필부(匹婦)도 어려운 바인데, 이제 왕실의 귀주(貴主)에게서 보게 되니 더욱 우뚝하지 아니한가? 아! 지극한 행실과 순수한 덕은 진실로 우리 성후(聖后)께서 전수(傳授)하신 심법(心法)이므로, 귀주가 평일에 귀에 젖고 눈에 밴 것을 또한 남편에게 옮겼던 것이다. 아! 정렬하도다. 아! 아름답도다."
[註 032] 붕성지통(崩城之痛) : 남편이 죽은 애통.
[註 033] 자인(自引) : 자살.
[註 034] 분육(賁育) : 중국 춘추 전국 시대의 용사(勇士)
(원문)
○甲辰/和順翁主卒。
主卽上之第一女, 而孝章世子同母妹也。 下嫁于月城尉 金漢藎, 始出閤, 甚得婦道, 貞柔兼備。 雅尙儉約, 服飾不用華侈, 與都尉交相儆勉, 常以淸愼自持, 人謂賢都尉淑翁主可以儷美云, 及都尉卒, 主決意下從, 勺水不入口。 上聞之, 親幸其第, 勸進糜餌, 主承命一呷, 旋卽哇之, 上知其志不可回, 嗟歎而還, 至是絶粒積十四日, 竟以自盡。 烈哉, 其操! 此千古王姬之所未有也。 朝廷奉慰庭候,

【史臣曰: 婦人之道, 貞一而已。 世之遭崩城之痛者, 孰不欲殞身下從, 以遂其願, 而死生亦大矣, 其能判一朝之命, 視之如歸者蓋尠矣。 然貞婦、烈媛, 當其創(臣)〔巨〕 慟甚之際, 卽地自引, 容或易辦, 而豈有經旬絶粒, 矢以一死, 卒能成就, 其節操如翁主者哉? 當是時雖以君父之嚴且親, 而亦莫能感回焉, 苟非純剛至正之氣, 有賁育所不能奪者能如是乎? 此固閭巷匹婦之所難, 而乃見於天家貴主, 尤豈不卓然矣乎? 嗚呼! 至行純德, 實我聖后傳授心法, 故貴主平日所濡染者, 亦移之於所天。 嗚呼, 烈哉! 嗚呼, 懿哉!】
【태백산사고본】 64책 91권 6장 A면
【국편영인본】 43책 676면
【분류】왕실-비빈(妃嬪) / 역사-사학(史學)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