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씽킹 - 문자도 유형
그림으로 편지쓰기, "30년 후의 나에게" 또는 "30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내가 나에게 편지쓰기, 그것도 30년 후의 내가 부모가 되었을때 지금의 나에게 편지쓰기. 또는
지금의 내가 30년 후에 꿈을 이룬 나 자신에게 편지쓰기.

생생하게 상상하면 꿈을 이룰 있다. 30년 후 나의 모습을 생생하게 상상하고 지금의 나를 돌아보라.
활동 > 주요 단어를 이미지로 표현하여 그림 편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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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재학시절 하숙했다던 집에서 인왕산 숲길을 걸어서 윤동주 문학관으로 간다.
그의 시, <새로운 길>처럼 나의 길은 늘 새로운 길이다.

동주의 육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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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홀릭Go!  우리 학교, 매홀고등학교 학습교구실을 소개드립니다.
선생님들의 수업을 위한 여러 보조 자료ᆞ기구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공유하며 사용하는 공간입니다.
이곳에 들어오면 수업을 위한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떠 올라요. 내가 몰랐던 것을, 다른 교과에서 사용하던 것을, 아? 이런 것도 있네! 라며 생각을 떠올리고 묻고 자연스럽게 생각을 나누며 수업에 적용해보게 됩니다.
여러 부서 행사를 위한 준비물 저장소도 되고, 문서철을 위한 기구도 이곳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번호키로 누구나 쉽게 사용하고 장부에 기록하면 됩니다.

5단 다섯개. (1단 ~ 40센티×85센티)

별거 다 있죠. 매직 마카 색연필 싸인펜 캘리그래피용 등 필기도구, 고무자석테이프, 자석, 놀이 게임 헥사 클레이 생각 카드, 하노이탑 놀이도구, 4절캔트지, 포스트잇, 자석칠판. 콜벨. 색종이, 등 다양한 문방도구,

개인적으로 구입 사용하다가 기부한 것들도 있구요. 기부ᆞ기부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공유가 되고 그리고 협의하고  나아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었죠.
ㅡ 묵자가 얘기하길, "서로 사랑하면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 (겸상애ᆞ교상리)
하였는데, 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요?
먼저 나부터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내놓고, 가까운 선생님들, 뜻 있는 선생님들 하나 둘씩 모아 함께 시작해봐요. 그리고 그 뜻과 모습을 관리자분들께 전하여 공간을 마련하면 되죠. 단, 그 공간은 교무실 가까이, 선생님들 가장 많이 오가는 길목이 좋죠.

제가 좋아하는 분이 보내주신 새해 연하 휘호 속의 '겸상애ᆞ교상리' ㅡ 더불어 사랑하면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ㅡ 묵자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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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문학관은 윤동주이다.

인문학과스토리텔링 2017.10.16 22:08 Posted by 文 寸 문촌
다시 윤동주를 찾았다.
윤동주 문학관은 윤동주를 담았다.
네모 반듯하고 하얀 색의 외벽은
그의 단정하고 순결한 영혼을 닮았다.

제1전시실에는 아홉개의 전시대에서 동주의 삶과 시와 고통과 죽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며, 가운데에는 정(井)자 모양을 우물이 있다. 이 우물은 동주의 고향에서 가져왔다한다. 우물은 동주의 '자화상'을 비추던 그 우물이다. 우물을 에워싼 아크릴 벽에 자화상 시가 새겨져 있다.
전시대 맞은 편 벽에는 동주의 시를 발간한 시집들과 연관 책들과 표지가 소개되고 있다.

제2전시실의 '열린 우물'은 그의 시 <자화상>을 비추는 우물이며, 하늘과 바람과 별을 담았으며, 자연을 사랑한 그의 시심을 닮았다. 마침 동주를 사랑한 학생들의 시화전이 열리고 있다.

제3전시실, '닫힌 우물'은 동주가 옥사한 후쿠오카 감옥소를 연상하며 그의 고통과 비명과 절망을 울리고 있다.
저 꼭대기 한 줄기 햇살은 동주의 삶에 대한 간절함이며, 죽어서도 영원히 살아가는 동주의 모습이며, 조국 해방의 희망이다.

시인의 자화상 시를 다시 읽는다.
그의 육필에서 동주의 심장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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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마트 ~ Heimat, 내 청춘의 고향

이런저런 이야기 2017.10.16 16:13 Posted by 文 寸 문촌
옛날 앨범을 정리하다 청춘의 시기에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책갈피를 하나 발견했다.
다시 청춘으로 돌아가라면?
난, 싫다!

"하이마트-Heimat [고향]-음악인의 집"
어제는 춥고, 오늘은 배고프고, 내일은 어두워도 이곳 대구의 클래식 음악감상실, 하이마트에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베토벤 교향곡을 듣고 있노라면, 그까짓 것들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하이마트
내 청춘의 고향
나의 소도
나의 도피안
그 곳에서 나는
잊을 수 있었고
쉴 수 있었고
나로서만 존재할 수 있었다.

하이데거는 그 곳을 '존재의 진리'라고 보았다. 헤겔은 그 곳을 '자기 자신 곁에 있음'이며, 정신의 고향이며, 정신의 본성인 내면성이라 했다.
공간으로서 고향이 아니라, 인간 현존재의 본질이 거기에 거주한다는 그런 의미의 고향이다. 

"나ᆞ지금ᆞ여기에 있다."
~  I am here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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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 두들링ㅡDMZ 문자도

비주얼씽킹+맵수업 2017.10.13 18:48 Posted by 文 寸 문촌
서울 전농중학교에서 학생중심수업을 위한 미래형 통일수업 연수를 가졌습니다.
첫째날, '비주얼씽킹으로 공부하는 통일교실' 강의에서 알파벳 두들링을 해보았습니다.
'두들4구글(doodle 4 google)'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죠. 그것은 우리의 옛 전통민화의 문자도와 같은 것입니다.
이 또한 동도서기인 셈이죠.
주제는 DMZ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활용 방안이며 활동은 그 주제를 실현하기 위한 <DMZ 문자도> 그리기 입니다.
비무장지대의 DMZ을 'Dream Making Zone, 꿈을 만드는 곳'으로 재해석도 하죠.
표현하기ㅡ발표하기ㅡ상호평가하기

DMZ을 작은 마우스 하나에 담았습니다.
'DMZ마우스'의 첫 클릭으로 통일의 단추를 꿰고 나아가 통일한국(KOREA)이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희망을 담았습니다.
상호평가에서 최고점을 받았네요.
와우, 원더풀! 브라보!

참고ㅡ두들4구글
Doodle 4 Google : 스토리가 있는 구글두들링 - http://munchon.tistory.com/m/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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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전농중에서,
비주얼씽킹으로 하는 통일교육수업 연수.
함께 해주신 선생님들 덕분에 통일의 희망은 더욱 커져 갑니다.
"통일한국의 행복 조건을 손가락 그림으로 표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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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광무 원년) 고종은 경운궁으로 환궁하여 그해 8월 17일 광무(光武)란 연호를 쓰기 시작하고10월 3일 황제 칭호 건의를 수락하였다. 고종은 자주 의지를 대내외에 널리 표명하고 땅에 떨어진 국가의 위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반드시 제국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으며, 10월 12일 원구단(園丘團)에서 상제(上帝)님께 천제를 올리고 국호를 대한제국이라 고치고 황제를 자칭하면서 즉위하였다. 대한제국이 선포되자 각국은 대한제국을 직접으로, 간접으로 승인하였다. 그중 제정 러시아와 프랑스는 국가 원수가 직접 승인하고 축하하였으며 영국, 미국,독일도 간접으로 승인하는 의사를 표시하였다.[5] 그러나 당시 열강 대부분은 대한제국의 성립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제위에 오른 고종은 그 직후인 11월 12일 미루었던 명성황후의 국장(國葬)을 치렀으며, 과거에 청에 사대하던 관계를 상징하던 영은문을 허물고 그 자리에 독립문 건립에 추진하여 11월 20일에 완공하여 조선의 자주독립을 원하고 있었다.
고종은 경운궁으로 환궁하고서 입법기관인 교전소를 설치하고 원로대신 다섯 명과 더불어 박정양과 이완용, 서재필, 탁지부 고문 영국인 존 브라운, 법부 고문 샤를 르장드르를 위시한 외국인 고문관들을 교전소 부총재와 위원으로 배정했으나 교전소 위원이 친미개화파와 외국인이 과반수를 차지하자 원로대신들이 꺼리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다.

서울대 이태진 명예교수 ㅡ
"대한제국은 무기력하지 않았고, 고종은 무능한 황제가 아니었다"
http://v.media.daum.net/v/20171011173625646?f=m&rcmd=rn

환구단 ㅡ 황제국 선포 후 하늘에 제사드린 환구단의 황궁우와 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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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자락 비우당

길위의인문학-서울한양도성 2017.10.10 21:38 Posted by 文 寸 문촌

낙산 동쪽 자락 비우당(庇雨堂),

조선의 백과사전인 <지봉유설>의 저자,  실학자 지봉 이수광이 살았던 집터이다. 집터는 한양도성을 이루고 있는 동.서.남.북 봉우리 중 가장 낮은 서쪽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 동쪽 상산 줄기에 위치하고 있다. 
이수광은 조선중기 실학자의 선구자로 세차례에 걸쳐 사신으로 중국을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은 물론 중국, 일본, 유구, 베트남 등 중국 주변국은 물론 영국, 포르투갈 등 서양세계를 비롯한 다양한 내용을 담은 백과사전 성격의 ‘지봉유설(芝峰類說 )’을 저술하였다. 그는 일찍이 관직에 나아가 이조참판까지 역임하고, 명나라에 사신을 세번씩이나 다녀올 정도로 고위층에 해당하는 인물이었지만, 그가 살았던 작은 초가집은 당시 그가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집터에는 이수광이 살았던 집을 복원해 놓고 있는데 부엌 1칸, 방2칸으로 이루어진 조선시대 전형적인 서민가옥 형태를 하고 있다. 원래 이수광의 외가쪽 인물로 청백리로 널리 알려졌던 유관이 살았던 집을 이수광이 고쳐지어 살았다고 전해지는 집이다.  현재의 가옥은 최근에 옛모습을 복원한 것으로 실제 초가집과는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조선시대 한양에 거주했던 선비들이 소박하게 살았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집터 뒷편에는 단종비 정순왕후가 폐위된 뒤 빨래를 했던 곳으로 전해지는 자주동샘과 거북모양의 바위가 남아 있다.

비우당, 서울 종로구 창신동
비우당은 ‘비를 가리는 집’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실학자인 지봉 이수광(1563~1628)이 살던 곳이다. 낙산 동쪽 상산의 한 줄기인 지봉 아래 있었는데 이수광의 호 지봉이 여기에서 나왔다. 원래는 창신동 쌍용2차 아파트 자리에 있었는데 서울시에서 낙산공원을 조성하면서 이곳에 복원하였다. 조선 초기의 청백리로 명성이 높은 유관이 이곳에서 살았는데 지붕이 새자 손수 우산을 받치고 살면서 부인에게 “우산 없는 집은 어떻게 견딜꼬?”라 농담을 하였다는 ‘유재상의 우산’이라는 고사가 생겼다. 이곳은 외손인 이수광 집안으로 상속되었는데, 그 집이 임진왜란 때 소실되자 이수광이 집을 새로 짓고 그 이름을 비우당이라 하였다. ‘동원비우당기’에 이러한 사연을 자세히 적었다. 이수광은 비우당에 살면서 이 일대의 여덟곳을 ‘비우당 팔경’이라 하고 시를 읊었다. 동지세류에서 흥인문 바깥의 못가에 핀 버들이 봄바람에 버들개지를 날리고 꾀꼬리가 지저귀는 모습을 노래하였으며, 북령소송에서는 북악의 산마루가 낮에도 늘 어둑한데 푸른 솔 그림자가 집에 드리운 것을 보고 동량으로 쓰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였고, 타락청운에서는 아침마다 누운 채 낙산의 구름을 마주하면서 한가한 구름처럼 살고 싶다고 하였다. 아차모우에서는 아차산에서부터 벌판을 지나 불어오는 저녁비를 노래하였다. 전계세족에서는 비가오고 나면 개울에 나가 발을 씻고 개울가 바위에 드러눕는다고 하였고, 후포채지에서는 지봉과 상산의 이름에 맞추어 상산사호처럼 살고 싶다 하였다. 암동심화에서는 복사꽃 핀 꼴짜기에서 나비를 따라 꽃을 찾아가는 풍류를 말하였고, 신정대월에서는 맑은 정자에 올라 술잔을 잡는 흥취를 말하였다. 비우당이 있던 곳은 조선시대 자지동이라 불렀다.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가 폐위되어 영월로 간 단종을 기다리면서 이곳에 와서 빨래를 하였는데 빨래가 붉은 빛으로 염색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 위쪽에 거북바위가 있었다. 정순왕후가 단종이 탄 거북이를 타고 승천하는 꿈을 꾸었는데 아침에 보니 이 바위가 나타났다는 전설도 전한다. <출처:서울시청>

한양도성 낙산정상에서 동으로, 왼쪽에 한성대, 오른쪽에 쌍용2차아파트 담장 사이로 난 길을 내려오면 아파트단지 정문 가까이에서 자주동샘 안내 이정표가 보인다. 이 내리막길을 50여 미터 쯤 내려오면 비우당이 있다.

낙산정상에서 북으로 바라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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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여태껏 무식한 놈이었네요.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안도현 시인의 '무식한 놈' 시랍니다.

추석 잘 지내셨어요.
가을햇살이 그리운데..
오늘은 웬지 썰렁하죠?
그저깨 추석. 은계성당에서 위령미사드리고 바로 곁 오산천변을 걷다가 구절초 군락지를 만났어요.
좋아하는 들국화, 그냥 이름도 구분 못하고 그냥 들국화라고만 불렀는데...구절초 라네요.
이름도 웬지 사연이 깊은 듯.
아홉 구,꺾일 절, 풀 초
무슨 사연인가 했더니, 음력 구월 구일(중양절)에 약재로 쓰기 좋아 꺾어 간답니다.
중국에서는 조선국이라고 부르네요.
들국화 피면 가을이요. 지면 겨울이라는데...
가을햇살 좋은 날. 들국화 보러 들길 걸어보셔요.
그 예쁜 모양에 반하여, 가까이 두고싶어서 누운 꽃자루의 구절초 몇송이를 데려왔습니다.

내친 김에 화원에 들러 국화분 몇개도 들여왔구요. 가을을 국화와 함께 즐기려 합니다. 이따가 국화차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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