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당(午睡堂), 낮잠자기 좋은 집!
말만 들어도 위로가 된다.
일 없이 생각 없이 낮잠에 빠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선비가 책베개를 하고 팔베개로 높여서 툇마루에 누웠다. 포근한 햇살을 덮고서 달콤한 낮잠에 빠졌다. 이제 그림은 다 그렸다. 제호를 붙이고 낙관만 하면 된다. 그림 속에도 나무 그늘 아래에서 낮잠에 빠진 선비를 그렸다. 버드나무는 푸르게 늘어지고 복숭아 꽃 향기는 은은하게 전해진다. 이 그림을 '수하오수도(樹下午睡圖)라 제호하는 것은 어떨까' 누워 생각에 잠기다 만족해하며 낮잠에 잠겼다.
이 선비는 누굴일까? 나도 그 자리에 누워 낮잠에 빠지고 싶다.

또한 그렇다.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이라! 
밖은 시끄러워도 문을 닫아 버리면 여기가 곧 깊은 산골이구나.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일일이 신경쓰며 간섭하고, 원망하며 변명하고, 일희일비할 일도 아니다. 누가 날더러 비겁하다 할지라도, 어떻게 해보겠다며 먼저 나서 애써 가르칠 일도 아니다. 내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세상사가 시끄러워도 내 귀를 닫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면 여기가 곧 적막한 산골이다. '세상 같은 것은 더러워서 버린다'는 시인 백석(白石)의 심정도 이러한 것이 아닐까?
그냥 두자. 나를 달래자. 먼저 나를 구하자. 나를 구하지 못하고는 어느 누구도 구할 수 없다. 매화는 피었다 지고, 단풍은 물들었다 시든다. 다 때가 있다.

최순우 옛집 뒷뜨락ᆞ오수당(午睡堂)
~최순우는 단원 김홍도의 화첩에서 오수당 글씨를 찾아내고 그대로 집자하여 당호로 삼았다. 최순우는 한양도성 밖 성북동 이곳에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서서'를 썼다.

최순우 옛집 안채뜰ᆞ'두문즉시심산' 현판

단옹 김홍도의 수하오수도

김홍도(金弘道)ㅡ수하오수도(樹下午睡圖) 제시.

桃紅復含宿雨, (도홍부함숙우)
柳綠更帶朝煙. (유록갱대조연)
寫與 卞穉和. 檀翁. (사여 변치화, 단옹)

복사꽃은 붉더니 간밤의 비를 머금었고,
버드나무 초록빛은 아침 안개띠를 둘렀네.
ㅡ변치화에게 그려주다. 단옹 김홍도

김홍도는 낮잠을 무척 즐겼거나 바랐던 모양이다. 그림 속에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고면거사(高眠居士)'라는 자호를 가진 걸 보면, 높은 베개를 좋아했던가 보다.
단옹은 왕유(王惟)의 전원락(田園樂) 싯구를 가져오면서 그림을 그렸다. 이를 일러 화중유시(畵中有詩)라던가 시중유화(詩中有畵)라던가?
왕유의 시는 이렇게 이어진다.

花落家童未掃(화락가동미소)
떨어진 꽃잎을 아이는 아직 쓸지않고
鶯啼山客猶眠(앵제산객유면)
꾀꼬리는 우는데 손님은 아직도 꿈결이다.

 

탐라교육원 연구사님께 감동하다.

교단 이야기 2018.12.08 20:21 Posted by 文 寸 문촌
올해 초여름 그리고 오늘 초겨울,
제주도 탐라교육원에서 강의.
그 자리를 마련하신 연구사님의 정성에 고마워서 글을 쓴다.
지난 6월의 인문학 강연 때는 보내드린 인문학산책 현장 이미지를  현상하여 로비와 계단에 전시하고, 그림엽서까지 만들어 강의를 들으러 오신 선생님들께 선물로 나누셨다.
이렇게 감동적으로 강연장을 꾸며서 강사와 대상자를 맞이한 강의는 처음이었다. "지극정성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그리고 오늘.
한라산 중산간 지대에는 눈이 내렸다. 택시타고 탐라교육원을 가면서 지난 초여름, 4ᆞ3평화공원에서 만난 슬픈 비설(飛雪) 모자상을 떠올렸다. 그러나 탐라교육원의 풍광에 금방 지워졌다. 강의실을 찾아가는 복도와 로비에 부착해둔 '따뜻한 말 한마디'에 다시 감동했다. 교육자로서 일과 사람을 대하는  정성이 정말 귀감이 되었다. 그것을 전하고 싶었다.

아기 예수 오실 때가 되었네

마음을 찾아서 2018.12.07 09:22 Posted by 文 寸 문촌
아기 예수 오실 때가 되었네.
아파트마다 대문을 꽃불등을 장식하고 트리도 만들어 밝혔다. 서울 시내 곳곳에도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추운 세모를 따뜻하게 데우고 있다.
서울성모병원에서도 아기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구유장식을 현관에 꾸몄다. 잠시 앞에서 아픈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시어 세상의 고통을 치유해 주십사 기도하였다.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

대림 4주간을 보라색ㅡ연보라색ㅡ연분홍색ㅡ하얀색 띠로 이어가다 그 끝자리에 아기 예수 누울 요람이 마련되었다.
아직 빈자리. 구세주 어서 오시길 비나이다.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올바른 길 걷게 하소서."
그 날 처럼 눈이 푹푹 나릴 때,
흰 당나귀를 타고
시인은 자야를 찾아왔다.
응앙 응앙 울음 소리에
사당 문이 열린다.

이제서야 오셨구려
참 머언 길을 오셨네요.
괜찮아요.
아무 말씀 마셔요.

어서 오셔요.
화촉 밝혀 데운 이 방으로
이렇게 그대
오기 만을 기다렸어요.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ㅡ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길상사 길상화 공덕비와 사당

시인이 떠나온 곳은 흰 눈에 물들어버린 자작나무 숲이다. 시인은 이렇게 그 곳을 노래하였다.

백화(白樺)  ㅡ 백석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인제 자작나무 숲

길상사 계추

길 위의 인문학-문사철 인문학 여행 2018.12.02 11:49 Posted by 文 寸 문촌
한가을이다.
물들어가는 단풍이 꽃보다 더 곱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의 단풍은 여느 단풍놀이보다 아름답다.
길상사의 주불을 모신 금당은 극락전이다.
서방정토 영원세상 극락세계를 주관하시는 아미타불을 모셨기에 아미타전, 무량수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길상사는 본래 사찰이 아니었다. 대원각이라는 이름으로 술과 고기와 음식을 팔던 고급요정이었다. 풍류가락이 울려퍼지고 흥청(興淸)이 만청(滿廳)이었다.
그랬던 이곳이 대원각의 주인마님이었던 김영한님과 법정 스님의 <무소유> 인연으로 '맑고 향기로운' 부처님 말씀이 퍼지는 사찰이 되었다.
다른 사찰 전각에는 단청이 칠해져있지만,
이곳 전각에는 단청이 없다.
아무리 치장해도 웃음꽃 전하는 요정의 여인네들보다 더 고울 수 없으니 굳이 단청칠 할 필요가 없었을게다. 대원각의 주연회당이 그대로 길상사의 극락전이 되었다. 극락전에 단청칠을 했더라면 가을 단풍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부끄러웠을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한량들의 술에 안주로 희생된 모든 축생들과 애써 웃음팔고 옷을 갈아입으며 고통을 치마 속에 감추어야했던 여인네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길상사 극락전의 아미타불 좌우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지옥중생을 구원하고 현세 중생의 고통을 치유하며 영원 평안의 극락 세계로 구제하는 기도를 드린다.
금당 아래 좌우로는 마애불과 아기 석가모니불도 무류(無類) 중생들을 포근하게 맞이하고 있다.

길상사 가을에는
단풍이 참 곱습니다.
산책나온 이웃의 두수녀님 얼굴에
미소가 피었네요.
뒷짐지고 행지실로 올라가시는
법정스님께서
무슨 말씀을 건내셨길래,
저리도 평화로울까요?
성모님을 닮았다는
관음보살님은 들으셨겠죠.

관음보살상을 조각한 천주교인 최종태 화가는
"이 억겁의 시간에 우리 두 손(법정스님과 나)이 잠깐 하나로 만나서 이 형상을 만들게 되었다"고 말했답니다.

'이 억겁의 시간에 우리 두 손이 잠깐 하나로 만나..' 이 말씀 속에서 경외감을 느껴요. 우주의 나이 137억년, 여기에 우리의 삶 100년은 정말 눈깜짝할 사이죠.
'우리 두 손'을 손(手)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가는 '손님'으로 읽으면 더더욱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우주의 손님이 되어 만난 우리의 인연에 감동하고 감사합니다.

<8년 전 봄날의 관세음보살상>
'관세음 성모상'이라 이름해도 좋다.

"세상 사람들 바람을 다 들어주시고
굽어 살피셔서 부처님께 천주님께 전구하소서.
나무 관세음 보살님, 아베 관세음 성모님"

성북동 가을 길을 따라 걷는다.
'시인의 방ㅡ방우산장'의 의자에 앉아 잠시 시를 읊는다. 그리고 추억을 그린다.

"꽃이 지는데 바람을 탓하랴.
...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ㅡ 조지훈의 <낙화> 중에서.

그렇다. 지난 봄에 꽃이 지더니
이제  물들었던 잎이 진다.
세상사가 그렇다.
다 가야 할 때가 있다.
그러니 누구를 탓하랴?

  조지훈 시인은 이 곳 성북동에 살면서 박목월,  박두진 등과 함께 청록집을 출간하였다. 이른바 청록파 시인들이다.
조지훈 시인이 살던 그 때 그 집은 지금 없지만 시인을 기념하고자 성북동 142-1번지 가로길에 조지훈 '시인의 방ㅡ방우산장(放牛山莊)' 표지 기념 조형물이 설치되어있다.
   시인은 자신이 기거했던 곳을 모두 ‘방우산장(放牛山莊)’ 이라고 불렀다. 이는 그가 1953년 신천지에 기고한 '방우산장기'에서 '설핏한 저녁 햇살 아래 내가 올라타고 풀피리를 희롱할 한 마리 소만 있으면 그 소가 지금 어디에 가 있든지 내가 아랑곳할 것이 없기 때문' 이라고 말한 것에서 연유하였다. 즉, 마음속에 소를 한 마리 키우면 직접 키우지 않아도 소를 키우는 것과 다름없다’ 는 그의 ‘방우즉목우’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참고로 보조국사 지눌의 호는 목우자(牧牛子)이며, 만해 한용운의 당호는 심우당(尋牛堂) 임을 같이 알아두면 더욱 흥미롭다. 대체 그 놈의 소가 뭐길래, 찾고 키우고 놓아둔다는 걸까?
  기념 조형물을 '폴리'라고 한다. 폴리(Folly)'란 건축학적인 본래의 기능을 잃고 조형적인 의도와 장식적 역할을 하는 건축물을 뜻한다.  근래 도시의 거리에는 그 동네의 자랑스런 사람과 이야기를 찾아 이런 도시조형물(urban folly)을 설치해 가고 있다.
   성북동의 방우산장 조형물은 파빌리온 형의 대리석벽과 창호지없는 격자문이 시인이 살았던 집 방향으로 열려있고, 그 위로 우리 전통 가옥의 처마와 그 아래에 마루가 있으며 마당같이 조성된 곳에는 의자들이 놓여 있다. 시인의 방이라 여기고 둘러앉아 시인의 시 한 수 읊으면 제격이다. 대리석벽 바깥면에는 시인의 절창인 <낙화>시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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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성당

길 위의 인문학-문사철 인문학 여행 2018.11.25 18:57 Posted by 文 寸 문촌
'한국의 바티칸'이라 별명하는 성북동 나들이. 길상사와 짝을 지어 성북동 성당을 찾는 의미는 크다. 성북동 성당은 좀 특별하다. 성전이 지하에 있다.
초기교회 카타콤바를 연상시킨다.
그래서인지 더욱 차분하고 경건하다.
유리 성화도 특별하다.
전통적인 스테인글라스 성화기법이 아니고, 우리 정통의 민화풍에 우리 옛 조상들을 그렸다. 얼핏보기에 불경이야기를 그린 듯 하기도 하다.
성모상도 조선의 어머니인 듯.

카타쿰바(Catacumba)는 고대 로마인들의 지하 공동묘지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웅덩이 옆’이라는 뜻이다. 로마인들은 지하 공동묘지가 로마 성문 밖 언덕과 언덕 사이에 조성했기에 카타쿰바라 불렀다. 로마인들은 카타쿰바를 ‘네크로폴리스’(νεκροs πολιs-죽은 이들의 도시)라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 이 죽은 이들의 도시에 숨어들어와 부활 신앙을 고백하고 기도하며 미사를 봉헌했다. 최초의 교회 공동체가 이 카타쿰바에서 형성된 것이다.
  교회가 세워지면서 죽은 이들의 도시는 더는 어둠의 공간이 아니었다. 부활을 기다리는 희망의 안식처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더는 네크로폴리스라 하지 않고 ‘치메테리움’(cymeterium-기다리는 곳, 안식처)이라 불렀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치메테리움 곧 카타쿰바 내부를 구원과 부활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장식하고 이곳이 단순히 박해의 피난처가 아니라 산 이와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 공간임을 고백했다.
  서울 성북동성당은 마치 카타쿰바를 연상시킨다. 북악산 동편 자락에 터 잡은 성북동은 예부터 아름다운 바위 언덕들과 맑은 시내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마을이었다. 성북동성당은 이 마을 중턱 움푹 들어간 양지바른 곳에 자리하고 있다.
  성전 역시 역설적이다. 지하에 있다. 어둡지만 편안하다. 제대를 중심으로 양 측면 각 4개의 창에 색유리화가 장식돼 있다. ‘예수 성탄’, ‘성모 승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한국 순교자’, ‘부활하신 그리스도’, ‘생명나무인 십자가’, ‘최후의 만찬’, ‘성 김대건 신부’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모두 ‘구원’과 ‘부활’을 이야기한다. 성체를 중심으로 구원과 부활을 상징하는 색유리화가 장식된 지하 공간. 이 공간을 가득 채우는 하느님 찬미의 기도 소리가 더없는 희망과 안식을 준다. 그래서 성북동성당은 카타쿰바, 치메테리움을 참 많이 닮았다.
ㅡ 가톨릭 평화신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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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저축이 되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야기 2018.11.20 11:39 Posted by 文 寸 문촌
"행복은 저축이 되지 않는데."
아내가 라디오에서 들었다며 내게 전한다.
'아내에게 저축되었으니 이 행복한 말을 나눌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괜한 딴지로 달리 생각해본다.
아니다. 설령 저축되고 기억되어도 내게 전하고 나눌 때 행복한 것이니 이 말이 맞는 말 같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러니깐, 지금 사용하라는 거다. '아끼다 ×된다'는 말이 이 말이구나." 감탄했다.
행복은 감정이니 지금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누릴 수 있을 때 행복한거다. 가을 산책 길의 행복을 찾아 누린다.

고맙다. 아직도 꽃 피어 있어서

물들어 가는 것이 꽃 보다 예쁘구나.

갈대, 너를 볼 적 마다 
가야 할 때를 알게 되는 가을을 느낀다.
다들 고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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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낭송 - Love, George Herbert

이런저런 이야기 2018.11.19 16:04 Posted by 文 寸 문촌

 http://www.korearoot.net/song/HarrieReading-Love-GeorgeHerbert.mp3

                내가 참 좋아하고 존경하는 '두복'님(필명)의 시 낭송입니다.


           

Love(3) - George Herbert -

Love bade me welcome: yet my soul drew back,
Guilty of dust and sin.
But quick-eyed Love, observing me grow slack
From my first entrance in,
Drew nearer to me, sweetly questioning
If I lacked anything.

"A guest," I answered, "worthy to be hers":
Love said, "You shall be he."
"I, the unkind, ungrateful? Ah, my dear,
I cannot look on thee."
Love took my hand, and smiling did reply,
"Who made the eyes but I
?"

 

 
사랑(3) - 조지 허버트 -
 
사랑은 열렬히 나를 환영했다. 
그러나 내 영혼은 주춤했다. 
죄 많은 몸인 것을 의식하고서.

그러나 눈치빠른 사랑의 신은 처음 들어서면서부터
망설이는 것을 보고서
내게로 더 가까이 다가와 상냥하게 물었다,
“무엇이 부족한 것이 있느냐고?”

“여기에 있을 만한 손님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사랑은 말했다, “그대가 그런 사람이라”고.
“불친절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제가요? 아, 님이여,
저는 당신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신은 내 손을 잡고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나 이외 누가 눈을 만들었는가?”고.

“주님, 옳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망쳤습니다.
그러니 수치에 걸맞는 곳으로 가게 해 주십시오.”
사랑의 신은 말했다. 
“그 책임을 누가 졌는지 그대는 모르는가?”고.
“님이여, 그러면 제가 섬기겠습니다.”
이에 사랑의 신은 “앉아 이 식사를 맛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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