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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이야기

왜 찬 밥을 먹을까?

by 문촌수기 2013. 1. 2.

왜 찬 밥을 먹을까?

새 학년을 준비하느라 얼마나 바쁘고 힘들었는지 영국의 시인 엘리어트가 노래한 '잔인한 사월'을 빌러 '잔인한 삼월'이 이제 지나고 시인 김소월 님이 노래하신 "꽃 피는 사월"이 왔습니다. 이맘때 한숨 돌리고 쉬어 갈 수 있는 식목일을 품고 있으니 이 날은 꽃 속에 꽃의 격입니다.

허나 우리네 많은 사람들은 나무를 심는 식목일 땜에 이날을 쉰다고 생각하지, 성묘하는 미풍양속이 전해져 오는 한식(寒食) 땜에 쉰다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올해의 한식은 정확히 4월 6일입니다만 통상 공휴일인 식목일에 한식절의 성묘를 갑니다.

나무 심는 적당한 시기는 이미 지났다고 말하는 걸 보면 4월 5일을 공휴일로 고집하며 쉬는 것은 분명 성묘의 미풍양속을 간직하고 있는 한식절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실의 내 아이들에게 겨레의 뿌리깊은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칠판에 큼직하게 "寒食"이라고 쓰고 물어보았습니다. 깊게 생각을 하고 바르고 큰 소리로 말을 하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자주 물어봅니다.

"한식은 찰 한(寒), 밥 식(食) 곧, '찬밥'을 뜻합니다. 곧 이 날은 '찬 밥'을 먹는 날입니다. 그럼 왜 '찬 밥'을 먹을까요 말해봅시다. 난, 정답을 바라지 않아요. 그저 여러분들 나름대로 생각해보고 논리적이거나 그럴 듯한 이유를 말하면 됩니다. 자 말해봐요."

몇몇 아이들은 참 그럴 듯하고 재미있는 까닭을 말했습니다.

"한 해 더워 먹지 말라는 의미로 '찬 밥'을 먹습니다."
"겨울 추위를 견뎌 낸 것을 잊지 말고 한 해 동안 어려움을 잘 견뎌나가라고 '찬 밥'을 먹습니다."
"나무를 심는 날이기 때문에 그 날 만이라도 땔감을 지피지 않았기에 전날 해둔 '찬 밥'을 먹습니다."

참 그럴 듯한 대답들입니다. 또 다른 아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추운 겨울동안 언 땅에 묻힌 조상님들께 송구스러워서 '찬 밥'을 먹습니다."
"따뜻한 밥을 지어 나섰지만 성묘 길에 다 식어 산소에서 '찬 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성묘하러 가는 풍속이 있다는 말을 듣고 한 말입니다.
물론 엉뚱하게도 '밥하기 귀찮아서', '찬밥이 좋아서', '양식(洋食)이 싫어서', '근데 '찬 밥'은 어떻게 만들어요?' 등등의 엉뚱한 소리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이쯤이면 내 아이들이 참 기특하고 바른 생각들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죠?

여러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 듣지 못했지만 한식날의 유래를 어렴풋이 말하려는 몇몇 친구들을 한꺼번에 불러 한편의 전설을 만들어 말하도록 시켰습니다. 몇 분이 지나면서 전설의 주인공 이름이 바르게 나오더니 드디어 한편의 전설을 들려줍니다.

"그게요, 어떻게 되었나 하면요. 옛날에 개자추[중국 진(晉)나라의 충신 개자추(介子推)]라는 사람이 있었거던요. 그 사람이 충성을 다해서 자기 주인[문공(文公)]을 임금 자리에 오르도록 만들었는데 간신배들 때문에 그만 아무런 벼슬도 얻지 못하고 상도 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삐쳤어요 깊은 산골에 숨어살았답니다. 나중에 임금님이 개자추를 찾았는데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임금님이 산에다 불을 지르면 불을 피해 나올거라 생각하고 불을 지르게 했답니다. 그런데 그만 개자추가 불에 타 죽어버렸어요. 그래서 불에 타죽은 개자추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 그 날 만이라도 온 나라 백성들에게 불을 지피지 못하게 했답니다."

중학교 때 어느 선생님에게서 들었는지, 아님 부모님께서 들려주신 얘기를 기억한 것인지 참으로 존경스러운 선생님이시고 부모님이십니다. 그리고 참으로 대견하고 기특한 내 아이들입니다.
이제 제가 마무리를 지으며 말해줍니다.

"훌륭합니다. 이야기 참 잘 했습니다. '찬 밥'을 먹는 한식에는 또 이런 유래도 있답니다. 궁궐의 임금님은 청명(淸明)날 한 해 동안 지켜오고 사용해 오던 묵은 불씨를 끄고 새 불씨를 일으켜 각 고을로 내려보내면, 백성들은 이튿날 한식절에 새 불씨를 이어받아야 했기에 하루는 불 없이 지내야 했답니다. 그래서 '찬 음식'을 먹었지만, 그래도 이 하나의 불씨로 온 나라는 하나가 되었답니다. 올림픽 때나 전국체전 때 하나의 불씨로 일으킨 성화(聖火) 아래에서 온 인류와 국민이 하나가 되려 노력하는 이치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들, 설령 성묘를 가지 않더라도 이 날 하루 중 한 때만이라도 '어떻게 하면 온 국민이 하나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고, 또한 돌아가신 조상님의 음덕에 감사하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찾아보길 바랍니다."

가르치는 일이 오늘따라 참으로 보람 있었습니다.


2002년 04월 05일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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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내년(2006)부터는 식목일을 쉬지않는다니, 아이들 한식의 의미를 더더욱 모르겠네요-2005.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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