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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유산의 길

방화수류정과 용연-용머리의 이야기

by 문촌수기 2017. 3. 26.

용연과 용머리바위에는 무슨 전설이 있겠지 싶어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전국 곳곳에 용머리바위가 산재해있고 몇 군데에 해당되는 전설이 있지만 수원화성의 용머리바위와 용연에는 그럴 듯한 전설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얼마 전 아내와 다시 수원화성 나들이에 나섰다. 창룡문에서 시작된 산책은 남으로 내려가면서 봉돈과 팔달문에 다다랐다. 사통팔달의 팔달문에 걸맞게 장터가 넓었다. 그 앞에서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말라’며 술을 흥건히 따라주시는 정조대왕을 만났다. ‘예. 다음엔 그러겠나이다.’ 속으로만 답하고서는 수원천을 걸으며 화성박물관과 행궁에 들렀다.

그러고선 주일 저녁 미사에 맞춰 천주교 수원성지 본당에 들렀다. 정조대왕 사후에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가 11세의 순조를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하면서 천주교 대박해가 시작되었다. 이때 정약용 등 남인들이 대거 축출되고 귀양을 가게 되었다. 이곳 수원성지는 당시 포도청이 있던 자리로써 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던 곳이다. 그 어느때의 미사보다 경건하였다. 오늘 수원화성에 오길 참 잘했다. 미사 후 신부님의 안내말씀에서 <파체(破涕)>라는 소설이 소개되었다. 이백여 년 전 수원화성과 천주교 신앙 그리고 사랑에 얽힌 이야기란다. 그 속에서 정말 그럴듯한 용머리바위와 용연에 대한 전설을 얻게 되었다. 이규진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아래의 이야기는 소설 <파체> 속에서 얻은 용머리바위의 전설에 살을 더하고 내 나름대로 치장을 하여 다시 구성해보았다. 전설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후대로 이어지나 보다.

옛날부터 이 연못에는 용이 되기를 갈망하는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천년이나 가까이 견디며 이제 승천하는 날 만 기다렸다. 어느 누구도 이 연못에 천년의 이무기가 살고 있는지 모른다. 연못가 마을에는 예쁘장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소녀는 종종 혼자서 연못 가까이에 와서 놀았다. 어느 날 꽃을 찾아 나는 나비를 쫓아 따르던 소녀가 그만 발을 헛디뎌 연못에 빠지고 말았다. 허우적대며 물에 가라앉을 때 연못 속의 이무기가 소녀를 살포시 안아 연못가로 건져 주었다. 소녀는 물 한 방울 젖지 않았다. 깊은 잠을 자다 깨어났기에 물에 빠진 줄도 모르고 있다. 그러니 이무기를 본 적도 없고, 누가 구해주었는지도 더더욱 모른다. 다만 용이 되어야 할 이무기만이 그 소녀를 잊지 못하였다. 깊은 연못 속보다 더 차가운 몸으로 소녀의 따뜻한 몸살을 품었으니 그 체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제 그리움이 되었고 그리움은 상사병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소녀는 어느듯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다. 사랑에 빠진 이무기는 승천일이 다가오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사랑하는 소녀를 두 번 다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용이 되어 승천할 것인가? 아니면 천년의 세월을 포기하고 소녀를 사랑하며 이 세상에 남을 것인가?’
간절한 기도 끝에 이무기는 결국 마음을 고쳐먹었다. 소녀에 대한 사랑은 한 때의 감정이며, 인간 세상의 삶도 아침 이슬같이 부질없는 것이다. 천년의 용은 결국 승천을 결심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영원한 삶이라는 결심을 굳혔다. 드디어 승천하는 날. 하늘을 오르던 용은 잠시나마 미련과 추억을 떨쳐버리고자 연못가로 눈길을 내렸다. 그 순간 사랑했던 여인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아, 저 여인도 나를 사랑했나보다’ 그리하여 마음이 흔들렸고 사랑하는 여인을 자세히 바라보고자 머리를 돌렸다. 앗! 바로 그 순간, 온 몸이 굳어버리고 그만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움으로 눈이 멀어버린 용의 머리가 곤두박질로 떨어진 곳이 바로 용머리바위이며, 짝사랑했던 용의 마음이 깊이 가라앉아 버린 곳이 바로 지금의 용연이다. 연못가의 아름다운 여인은 아무것도 모르며 밤하늘의 보름달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의 눈으로는 용을 볼 수 없다. 아무도 용의 사랑하는 마음을 모른다. 하물며 그 소녀, 그 여인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그렇게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용연에
깊이 묻혀있다.


꽃보다 아름다운 방화수류정은 슬픈 사랑의 용머리가 되어 바위 위에 걸터 앉아있다. 용연의 배수구에는 입을 벌리고 화홍문으로 물을 내려 보내고 있는 용머리가 있다. 팔달문 장터 입구에서 앉아 백성들
에게 술을 따라주는 불취무귀(不醉無歸)의 정조대왕 모습이 떠올랐다. 과연 뜻을 이루지 못한 용은 누구인가? 백성을 사랑하여 무한히 베풀고자 했지만 뜻이 꺾여버린 정조인가? 뒤주에 갇혀 죽은 비운의 사도세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