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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그리기-통일로 가는 길

나는 난민, 이산가족의 후예입니다.

by 문촌수기 2021. 7. 24.

우리 가족들이 꼭 알아야 할 일은, 우리 집안도 난민이었고 이산가족이었다는 사실을!

그러니깐 나의 할아버지께서는 해방된 조국에서 이산가족으로 사셨다는 거야.
나의 <통통이의 이야기> 속에 우리 운암가족사를 넣었어.
그리고 이건 가족사 뿐 아니라, 언젠가는 다시 찾아야하고 그때까지 잊지 말아야 할 민족사이지. 바로 간도땅, 운암 할아버지,
나의 아버지께서 청소년 시절까지 사셨던 고향(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쳥현)이야. 주인공 통통이를 치훈이의 아들로 여기고 읽으면 될거야. 그럼, 이야기 속의 할아버지는 누구지?

  •  

분단의 고통은? ㅡ 할아버지의 슬픈 이야기

할아버지는 한숨을 쉬시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휴우~. 한국전쟁은 수백만 명이 죽었고 천만 명에 가까운 이산가족을 발생시켰단다. 그 당시 인구로는 세 명 중 한 명이 전쟁으로 가족을 잃거나 헤어졌다는 얘기지. 아마 이 지구상에 부모 형제, 부부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을 알 수 없고, 소식을 전할 수도 없으며, 만날 수도 없는 나라는 아마 우리 밖에 없을 거야.”
“할아버지, 이산가족이 뭐예요?”


통통이가 해맑게 물었습니다.

“이산? 이산?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은데…….”


통통이가 궁금해 할 때, 누나가 손뼉을 딱 치며,

“앗! 정조대왕님 맞죠! 그런데 정조대왕의 가족은 아니죠? 그죠?”

역시 상상력이 좋은 우리 누나답다.

“허허허허…… 그래 너희들 정조 임금님 이름도 알고 잘 배웠구나. 통통이가 말한 이산가족은 이리저리 흩어져서 서로 소식을 모르고 살아가는 가족이라는 뜻이지. 그래서 이산(離散)은 슬픈 거란다. 그런데 통통아, 너는 어떨 때 가장 아프니?”
“주사 맞을 때가 아파요. 치과에서 이를 뽑을 때 무섭고 아팠어요.”
“저도 그래요 할아버지.”


누나가 맞장구를 치자 할머니도 한마디 하셨어요.

“하하하. 할머니는 너희 아빠를 낳을 때 가장 아팠단다. 엄마들은 그렇게 아파하면서 아이를 낳지만, 그때가 가장 행복했단다. 호호호.”
“가장 아프면서도 가장 행복했다고요?”

통통이는 할머니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알 듯 모를듯하다면서 고개를 이리저리 갸우뚱거렸어요.

“그래, 주사를 맞거나 이를 뽑을 때 아픈 것은 잠시이지만, 참으로 오래가는 아픔이 있단다. 지워지지 않는 고통의 기억이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지. 너희들은 그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래도 상상은 할 수 있을 거야. 너희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잃어버렸을 때를 상상해봐.”
“맞아요.”
“그래요. 많이 고통스러울 거예요.”

통통이와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할아버지가 옛날이야기를 하나 해줄까?”
“예, 할아버지! 신나요. 재밌는 이야기해주세요.”


통통이는 할아버지의 무릎 가까이로 다가갔어요.

“평화도 이리 와서 들어보렴. 그런데 재밌는 이야기는 아니란다. 슬픈 이야기지.”
“괜찮아요. 할아버지. 저는 슬픈 이야기가 감동이 있어서 더 좋아요.”


누나가 말했어요.

‘쳇, 슬픈 이야기에 무슨 감동이 있다고?’ 통통이는 속마음을 감추고 할아버지 말씀에 귀를 기울였답니다.

“이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의 이야기란다.”
“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럼 ‘왕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해요?”

통통이가 웃으며 말했어요. 누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어요.

“에이~ 아니겠지, 아니죠? 할아버지”
“허허허. 고조할아버지란다.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증조(曾祖)’ 또 그 위를 ‘고조(高祖)라고 하는 거야.”


통통이는 알았다는 듯 나섰어요.

“아하, 높을 고(高), 높은 할아버지네.”
“그렇구나. 높은 할아버지. 허허허”


드디어 통통이는 아빠한테서 배운 ‘높은 고(高)’자를 써먹으면서 또 어깨를 으쓱 올렸습니다.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러니깐 고조부 식구는 고향을 떠나 중국 땅 만주에서 살았답니다. 그때의 우리나라는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서 핍박을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나라도 없으니, 우리 백성들은 가난하였고 꿈을 이루기도 어려웠고 이름마저도 빼앗기고 살았던 거죠. 그래서 일제의 지배
에서 벗어나 북쪽 땅 만주로 피난을 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난민이라고 부르죠. 난민이 되어 춥고 거친 만주 땅에서 가난하게 살았지만 그래도 자유로웠습니다. 그곳에서 독립을 위해 싸우는 우리의 독립군들에게 숨을
곳을 내어주고 심부름도 하면서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해방이 찾아왔어요. 고조부모님은 식구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답니다. 모든 식구가 다 같이 조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고조부는 먼저 어머님만 모시고
자녀들을 데리고 남쪽 고향으로 내려오셨어요.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통통이 할아버지 식구들은 남한에서 살고 있답니다. 그런데 큰 문제가 생겼어요. 우리 조국 한반도가 그만 둘로 나눠졌답니다. 일제를 쫓아내면서 우리는 바로 독립한 것이 아니라 북위 38도 선을 경계로 북쪽은 소련이
점령하고, 남쪽은 미국이 점령하면서 한반도의 허리가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만 오도 가도 못하는 분단선이 그어지고 말았죠. 그래서 고조부는 만주에 사는 아버지와 헤어지고 동생들과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만주는 공산국가 중국 땅이어서 남한으로 돌아올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고조부의 동생 한 분만 고향 땅 가까이에 가신다며 북한의 해주까지 내려 오셨다가 더 이상 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돌아가셨답니다.

결과적으로 고조할아버지 가족들은 대한민국과 북한과 중국으로 떨어진 이산가족이 되었습니다.
부부이면서도 서로 죽는 날까지 함께 살 수 없었고, 부자지간에게도 함께 만날 수 없었고, 형제들끼리도 평생을 헤어져 사시다가 돌아가셨답니다.
이렇게 남북의 분단은 통통이의 할아버지에게 큰 슬픔을 안겼답니다. 생각해 보세요. 사랑하는 부부가 함께 살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 비극이 어디 있습니까? 하늘의 견우와 직녀도 일 년에 한 번, 칠월 칠석 날에는 만난다는데 말이죠. 통통이는 아는 체 하며 말했어요.

  •  

“그러니깐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이산가족이란 거죠?”

그러자 누나가 금방 끼어들며 말했습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뭐냐? 고조부라고 해야지. 고조부모님은 결국 이산가족이 된 거죠?”

누나가 얄밉기도 하지만 통통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그렇지. 너희들의 고조부님께서는 아버지랑 동생들과 헤어져서 평생을 사셨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더욱이 그 어머니는 사랑하는 남편과 자녀들과 헤어져 소식도 모르고 사셨으니, 돌아가시는 날까지 얼마나 고통이 컸을까, 상상할 수 있겠지?”

말씀하시는 내내 할아버지는 두 눈이 촉촉이 젖어 있습니다. 할머니의 뺨에도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 누나도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 냈습니다. 통통이도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이산가족의 슬픔을 이제야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 愛別離苦, 애별리고-사랑하는 이와 헤어져야 하는 고통. 인생 8고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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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말고 되찾아야 할, 간도와 백두산

백두산을 중심으로 그 북쪽 땅을 간도라고 합니다. 일찍이 고구려와 발해의 땅이었고 이후에도 우리 조상들이 개척하여 농경지를 만들어 살아오던 곳이 었습니다. 통통이의 고조부모님이 사셨던 곳이며, 윤동주 시인의 고향이고 안중근 의사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장소였습니다.
을사늑약(1905년)으로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뺏은 일제는 청나라(지금의 중국) 와 간도협약(1909년)을 맺으면서 우리 조상들이 살던 간도 땅과 백두산 천지의 일 부를 청나라에 넘겼습니다. 강제로 맺은 을사늑약이 무효가 되기 때문에, 대한 제 국의 참여 없이 일본과 청이 맺은 간도협약도 당연히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북한도 남한의 동의 없이 중국과 비밀리에 조중변계조약(1962년)을 맺었습니다. 이 조약으로 백두산과 천지를 경계로 하는 국경선이 확정되었고 백두산과 천지의 반을 중국 땅으로 넘기고 말았습니다.
북한 땅에서 바라본 백두산 관광객들. 이들 대부분은 한국인들입니다. 중국 땅으로 백두산에 올랐습니다.
남북이 통일되면 간도와 백두산을 다시 우리의 땅으로 찾아올 수 있을까요?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중국이 쉽게 내놓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냥 포기하고 덮어 버리면 안 됩니다. 통일 한반도의 주인공인 남북 어린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고, 바로잡아가야 할 역사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 관심을 갖고 연구를 이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우리의 영토와 역사를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 백두산 천지 ~ 안타까운 것은 중국 땅에서 한반도 방향으로 촬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