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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와 청계천12

삼일절과 삼일대로 탑골공원 앞에서 삼일대로 안내문을 읽었다. 그러나 이것은 3 .1운동 100주년 기념 사업(2019년 3월1일)인, 에 대한 안내문이었다. ■삼일대로(三一大路) 3 · 1운동은 삼일대로 일대에서 처음 시작하여 팔도로, 해외로 퍼져나갔습니다. 1919년(기미년) 만세운동을 통해 한국인은 새로 태어났습니다. 서울특별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 겨레의 거룩한 용기와 희생, 인류평화와 독립을 외친 뜻을 기리고 또 현재화하기 위해 삼일대로를 새로 닦고 3천여 시민이 참여한 시민공간을 만들었습니다. ♡♡♡♡♡♡♡♡♡♡ ■ 삼일대로 (안국역에서 한남동) 삼일절을 기념하여 명명된 서울 중구의 도로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초등학교에서 종로구 안국역사거리까지를 잇는 도로이다. 길이 4.8km, 폭30~40m(왕복.. 2024. 3. 1.
삼일절에 찾는 탑골공원 오랜만에 찾았다. 아내는 이곳이 처음이란다. 삼일절에 즈음하여 찾으니 감회가 더욱 크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서인지 공원이 한산하다. 탑골공원 밖에서 안으로 이어진 줄은 점심식사 줄서기였다. 탑골공원팔각정 塔谷公园八角亭 タプコル公園八角亭 지정번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3호 / 시대 : 1902년(광무 6)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2가 38-1번지 탑골공원 팔각정은 1902년(광무 6)에 탑골공원 안에 지은 팔각형 정자다. 이곳은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이다. 팔각정은 장대석 기단 위에 둥근기둥을 세우고 기둥머리 부분은 물익공을 짠 후 기와지붕을 덮었다. 전통과 근대의 건축기술을 두루 사용했던 건축가 심의석(沈宜碩: 1854~1924)이 .. 2024. 2. 29.
삼일절에 찾는 평화의 상징, 베를린광장 다시 서울 종로, 청계천을 걸었지만 청계천 베를린광장을 찾은 것은 처음이다. 베를린시는 서울시를 위해 베를린 장벽 일부를 원형 그대로 이 곳에 옮겨와 베를린 광장을 조성했다. 장벽은 독일 분단의 평화로운 극복과 한반도의 평화 통일에 대한 희망을 상징한다 2005년 10월 베를린시장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청계천 베를린 광장의 베를린 장벽(높이 3.5m, 폭 1.2m, 두께 0.4m)은 1961년 동독에서 설치했던 것인데, 독일이 통일되면서 1989년 칠거되어 배를린시 동부기역에 있는 마르쨘 휴양공원 안에 전시되어 오던 것이다. 서독쪽의 벽면은 사람들의 접근이 가능하였으므로, 이산기족 상봉과 통일을 염원하는 글들이 쓰이게 되었다. 베를린 장벽 오른쪽 전면에 설치된 '곰' 상은 베를린시의 상징으로서, 몸통 양쪽.. 2024. 2. 29.
삼일절에 찾는 삼일빌딩, 삼일고가도로 ■ 삼일절에 찾아가는 삼일빌딩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철동 10-2번지에 있는 건물이다.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하였다. 1970년 완공 당시 대한민국에 있는 건물 중 가장 높았으며, 국내 최초의 커튼 월 방식을 이용한 마천루이기도 했다. 그래서 1970~80년대 유명 건축물로 이름을 떨쳤으나, 1978년 롯데호텔 서울 본관, 1985년 63빌딩 등이 완공되면서부터 점점 밀려나기 시작했다. 삼일빌딩과 삼미그룹 https://youtu.be/JipAbht5S8c KBO 리그 소속 옛 구단 삼미 슈퍼스타즈 모기업으로 잘 알려진 삼미그룹의 사옥으로 쓰이다 경영난에 몰린 삼미그룹이 1985년 산업은행에 건물을 매각해 한때 산업은행 본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2001년, 스몰록인베스트먼트가 산업은행으로부터 502억원에 .. 2024. 2. 29.
청계천 광교ㆍ장통교ㆍ삼일교 광교 명칭 유래 원래는 광통방(廣通坊)에 있는 큰 다리라는 뜻의 대광통교(大廣通橋)이다. 실제로 길이 약 12.3m보다 폭이 더 넓은 약 14.4m의 다리였다. 또, 소광통교(小廣通橋)와 구분하여 대광교(大廣橋)라고도 하였고 세종실록 지리지(世宗實錄 地理志)에는 북광통교(北廣通橋)로 기록되어 있다. 약칭인 광교(廣橋), 광충교(廣冲橋) 등으로도 불리었으며, 도성 안 개천에서 여섯 번째에 있었다고 해서 육교(六橋)라고도 하였다. 광교는 후에 이 일대를 지칭하는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육조거리·운종가·숭례문으로 이어지는 도성 안 중심통로였으며, 주변에 시전이 밀집한 상업활동의 중심지로 도성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던 다리였다. 조선시대 도성 안에 수축되었던 다리 가운데에서 규모가 가장 .. 2024. 2. 29.
나를 만든 책은 뭘까?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새삼 나를 만든 책은 무엇일까? 스스로 물어본다. 국민학교 다닐 때 읽었던 어린왕자, 난 나를 밤하늘의 어느 별에서 온 어린 왕자로 여겼다. 외로운 현실보다 상상의 세계에 살 때에는 행복했다. 중학교때는... 글쎄...생각나는 책이 없다. 고등학교 들어오면서 동서출판사의 그레이트북스(Great Books) 100권 전질이 책꽂이에 가득 꽂히고 거부(巨富)가 된 듯 흡족해하면서 책에 빠져들었다. 학교공부는 가난한 현실을 가르쳐 주었지만, 독서는 '그레이트'한 상상을 펼치게 하였다. 그레이트북스 중, 특히 , , 등 도스또옙스키가 쓴 장편소설을 가장 애독했다. 카프카의 니체의 프로이트의 심리학 장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 에밀 라즈니쉬 공자의 논어, 노자.. 2024. 2. 29.
종로를 걷다. 종각 보신각 인사동의 한국미술관 전시, 서예를 감상하러 가는 길이었다. 종로의 종각, 청계천, 탑골공원을 들러서 다녀왔다. ■ 보신각(普信閣) 지정번호: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0호 시대:1396년(태조5) 소재지:서울 중로구 종로 54 (관철동,보신각) 이곳은 조선시대 도성의 문을 열고 닫는 시간과 화재와 같은 긴급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종을 쳐서 알렸던 터다. 1396년(태조5) 처음 설치한 종루는 옛 서울의 중심부인 지금의 인사동 위치에 있었으나 태종 때 현 위치로 옮겼다. 도성 문을 열 때 치는 종을 파루(罷漏, 또는 바라), 문을 닫을 때 치는 종을 인정(人定 또는 인경)이라 했는데, 파루는 불교의 33천(天)에 따라 33번, 인정은 별자리의 28수(숙, 宿)에 따라 28번을 쳤다. 세종 때에 정면 5칸, 측면.. 2024. 2. 29.
大山의 말씀과 橫步의 조각상 세종대로사거리에서 종로로 들어 피맛골로 가는 길에 소설가 염상섭이 긴 벤치에 앉아있었다. 교보문고 빌딩 뒤였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말동무를 기다리는 듯하다. 염상섭 조각상 바로 뒤로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는 빗돌이 있었다. 염상섭의 말인 줄 알았다. 알고보니 교보생명보험 설립자 대산(大山) 신용호(1917-2003) 선생의 말씀이란다. 선생은 부친이 독립운동을 하고 형들도 독립운동하느라 어린 나이부터 가장 노릇을 하였으며 폐병까지걸려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못했다. 그럼에도 굴하지않았다. 우리 겨레는 먹고살기 힘들어도 자녀 교육을 우선한다는 것을 알고 6.25전쟁 이후 일찌기 교육보험을 상품화하여 성공하였다. 당시 20대 이상 성인남성의 열의 여덟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2024. 2. 19.
피맛골 피맛을 본 적 있던가? 드라큐라는 자주 맛보겠지. 하지만 난 국민학교 때 형이 자꾸 부추겨 동생과 복싱하다가 어프컷 한방에 코피가 터졌을 때, 중학생 때는 시험을 망쳐 선생님한테 주먹진 손으로 뺨을 맞고 입안이 터졌을 때, 젊어서는 뭘 씹을게 없어 혀나 입술을 깨물었을 때, 지금은 치주질환으로 잇몸치료를 하고 지혈이 빨리 된다며 침을 뱉지말고 삼키라할 때, 그렇게 피맛을 봤다. 한마디로 뭐라고 정의를 내릴수있을까? 허허허 그냥 '찝찔하다'는 말 밖에. 피맛골은 이렇게 '피의 맛(血의 味)'을 먼저 연상시킨다. 피맛골 하늘소 벗님들 덕분에 피맛골은 처음 와본다. 피맛골은 피마(避馬)의 골목길이라나? 이것도 모르고 살았네. 하기사 아직도 모르는게 많고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걸 보면 또한 '살 맛'도 난다. 내.. 2024. 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