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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와 청계천

大山의 말씀과 橫步의 조각상

by 문촌수기 2024. 2. 19.

大山의 명언과 염상섭 상

세종대로사거리에서 종로로 들어 피맛골로 가는 길에 소설가 염상섭이 긴 벤치에 앉아있었다. 교보문고 빌딩 뒤였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말동무를 기다리는 듯하다.

염상섭 조각상 바로 뒤로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는 빗돌이 있었다. 염상섭의 말인 줄 알았다. 알고보니 교보생명보험 설립자 대산(大山) 신용호(1917-2003) 선생의 말씀이란다.
선생은 부친이 독립운동을 하고 형들도 독립운동하느라 어린 나이부터 가장 노릇을 하였으며 폐병까지걸려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못했다. 그럼에도 굴하지않았다. 우리 겨레는 먹고살기 힘들어도 자녀 교육을 우선한다는 것을 알고 6.25전쟁 이후 일찌기 교육보험을 상품화하여 성공하였다.
당시 20대 이상 성인남성의 열의 여덟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그는 무작정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찾아가 “담배를 끊고 그 돈으로 보험을 가입하면 아이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설득한 것이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한교육보험’이라는 상호를 만들었다. 또한, 종로 1번지에 위치한 교보생명 본사 건물을 시작으로 각지에 세워진 교보빌딩마다 지하에 서점을 조성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것이 교보의 성공이 되었고, 대한민국 교육입국의 기적에도 기여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씀은 신용호 선생이 16세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약 3년간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는 ‘천일독서(千日讀書)’ 시절 독서 체험을 통해 깨달은 말이다. 그때 자신의 의지가 훈장이었고, 하숙생에게 빌린 교과서는 교본이요, 읽을 책은 미래를 준비하는 참고서였다.
한편, 스스로 물어본다.
  '내가 만든 책은 무엇이던가?
  '나를 만든 책은 무엇이던가?'

술만 마시면 갈지(之)자로 걷는다는 뜻으로 "횡보(橫步)"라 自號를 짓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술을 사랑하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설가, 횡보(橫步) 염상섭 선생은 여기에 계실까? 내 알기로 집은 성북동이라던데.
종로에서 태어났던가? 직장이 이 동네 종로였던가? 그랬다.
하하하 이번에는 안내석을 찾아 제대로 읽었다. 이곳이 바로 염상섭의 생가터였고, 교보생명에서 협찬해서 염상섭의 상이 있게 된 것이다.

횡보(横歩) 염상섭(廉想渉)의 상(像)
염상섭은 1897년 서울 종로에서 출생하여 1920년 <폐허廢墟)>창간 동인으로 신문학 운동을 시작한 이래 <표본실의 정개구리> <삼대> 등 많은 작품을 발표, 한국 소설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96 문학의 해에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생가 터 부근에 이 상(像)을 세운다 .

1996년 10월 일 / 세운이 : 문화체육부
'96 문학의해조직위원회
조각: 김영중 / 글씨: 임현기
협찬: 교보생명 교보문고

교보빌딩

어떤 이는 글이 새겨진 돌이 크게 세조각으로 주어ᆞ목적어ᆞ서술어 부분이 나눠진 것을 관찰하고, 목적어를 엇대어 연결하여 다른 문장을 말하곤 했다.
  "사람은 사람을 만들고,
     책은 책을 만든다."

이도 옳고 의미있는 말이다.

 나도 평소 신조같이 여기고 길 위의 인문학 산책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에게 가르친 말이 있다.

  "책 속에 길이 있고,
           길 위에 삶이 있다."


'책ᆞ길ᆞ삶ᆞ사람'을 하나로 엮어 걸어가는 종로의 오늘이다.

+
https://munchon.tistory.com/m/1117

 

황보, 횡보를 만나다

성북동 사람, 횡보 염상섭. 국립 세종도서관에서 다시 만나다. 세상의 흐름, 시류(時流)에 따라 흐르지 않고 가로지르며 걸어가시는 그의 걸음, 횡보(橫步)를 떠올려 봅니다.

muncho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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