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 때 같은 학교, 총각 선생님들.
30여년지기 친구가 되었죠. 그 때의 친구가 가평으로 초대했어요. 대전의 친구가 내게 들러 같이 갔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좋다는 거죠.
오랜만에 하는 윷놀이가 어찌나 즐겁던지 늦게까지 놀았어요.  이튿날 아침엔 늦잠자고 천천히 천천히 새소리에 일어났네요. 자연 가까이 전원 생활이 이래서 좋은가봅니다.
빵과 커피로 정신을 깨우고 봄 햇살 아래,  가평천을 산책했습니다. 마침 이곳은 벚꽃 스타팅.
백로와 가마우지가 이야기 거리를 지어내고, 물소리는 재미있게 그 이야기 들려주는데 내가 알아듣지 못하니 아쉽네요. 그래도 참 좋아서 그 이야기를 붙잡아 그림으로 남겨봅니다. 산아래 자작나무와 선린마을의 친구 집도 간직해봅니다. .

새삼 생각이 꼬리를 뭅니다.
<논어>에 '회사후소(繪事後素)'라 하거늘,
'그림 그리기는 흰바탕을 마련한 뒤의 일이다'가 맞나요? '그림 그리기의 맨 나중 일은 흰색 칠하기이다'가 맞나요?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못했지만 벚꽃 그림을 그리다 보니 후자가 맞는 말 같네요. 전후가 다 맞다면 시종일여(始終一如)하라는 거겠죠.
내가 그린 저 흰 새들은 백로일까요? 왜가리일까요? 백로는 가마우지와 벗이 되어 평화롭습니다. 가평천의 백로와 가마우지 우화를 상상해봅니다. 장자의 '학다리 오리다리' 같이 끔직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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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을 다하여라.

영화 <역린>은 <중용> 23장에서 시작해서 <중용> 23장으로 끝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其次는 致曲 曲能有誠이니, (기차 치곡 곡능유성)
 誠則形하고, 形則著하고, 著則明하고, (성즉형, 형즉저, 저즉명)
 明則動하고, 動則變하고 變則化니,  (명즉동, 동즉변, 변즉화)

 唯天下至誠이 爲能化니라. (유천하지성 위능화)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 한국전통문화연구소 성백효 역주
그 다음은 한쪽을 지극히 함이니,
한쪽을 지극히 하면 능히 성실할 수 있다.

성실하면 나타나고
나타나면 더욱 드러나고
더욱 드러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감동시키고,
감동시키면 변하고,
변하면 화(化)할 수 있으니,

오직 천하에 지극히 성실한 분이어야
능히 화할 수 있다.


[영화의 개요] : 조선 22대왕 정조 암살을 둘러싼 '정유역변' 실화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

[영화의 줄거리]

인시(寅時) 정각(오전 3시)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정조 1년, 끊임없는 암살 위협에 시달리며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정조(현빈). 정조가 가장 신임하는 신하 상책(정재영)은 그의 곁을 밤낮으로 그림자처럼 지킨다.
 
 인시(寅時) 반각(오전 4시)
 날이 밝아오자 할마마마 정순왕후에게 아침 문안인사를 위해 대왕대비전으로 향하는 정조. 왕의 호위를 담당하는 금위영 대장 홍국영(박성웅)과 상책이 그의 뒤를 따른다.
 
 묘시(卯時) 정각(오전 5시)
 ‘주상이 다치면 내가 강녕하지 않아요.’ 노론 최고의 수장인 정순왕후(한지민)는 넌지시 자신의 야심을 밝히며 정조에게 경고한다.
 
 묘시(卯時) 반각(오전 6시)
 정조의 처소 존현각에는 세답방 나인 월혜(정은채)가 의복을 수거하기 위해 다녀가고,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김성령)이 찾아와 ‘지난 밤 꿈자리가 흉했다’며 아들의 안위를 걱정한다.
 
 진시(辰時) 육각(오전 8시 30분)
 한편 궐 밖, 조선 최고의 실력을 지닌 살수(조정석)는 오늘 밤 왕의 목을 따오라는 광백(조재현)의 암살 의뢰를 받게 되는데…
 
 왕의 암살을 둘러싸고 살아야 하는 자, 죽여야 하는 자, 살려야 하는 자들의
 엇갈린 운명의 24시가 시작된다!
                                                 - 네이버 영화에서

 

중용 23장 집주 > 其次通大賢以下凡誠有未至者而言也 致推致也 曲一偏也 形者積中而發外 著則又加顯矣 明則又有光輝發越之誠也 動者誠能動物 變者物從而變 化則有不知其所以然者 蓋人之性 無不同 而氣則有異 故惟聖人能擧其性之全體而盡之 其次則必自其善端發見之篇而悉推致之 以各造其極也 曲無不致 則德無不實 而形著動變之功 自不能已 積而至於能化 則其至誠之妙 亦不異於聖人矣 右第二十三章 言人道也

그 다음이란 대현(大賢) 이하로 무릇 성실함에 지극하지 못함이 있는 자를 통틀어 말한 것이다. 치(致)는 미루어 지극히 함이요, 곡(曲)은 한쪽이다. 형(形)은 속에 쌓여 밖에 나타남이요, 저(著)는 또 더 드러남이요, 명(明)은 또 광휘의 발월(발산)함이 성(盛)함이 있는 것이다. 동(動)은 실함이 남을 감동시킴이요. 변(變)은 남이 따라 변하는 것이요. 화(化)는 그 소이연을 모름이 있는 것이다. 사람의 성(性)은 같지 않음이 없으나 기(氣)는 다름이 있다. 그러므로 오직 성인만이 그 성의 전체를 들어 다하는 것이요. 그 다음은 반드시 선한 단서가 발현되는 한쪽으로부터 모두 미루어 지극히 하여 각각 그 지극함에 나아가는 것이다. 한쪽을 지극히 하지 않음이 없으면 덕이 성실하지 않음이 없어 형저동변(形著動變)의 공효가 저절로 그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쌓여 능히 화(化)함에 이르면 지성(至誠)의 묘(妙)함이 또한 성인(聖人)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23장 전후를 더불어 읽어본다.
21장 自誠明 謂之性 自明誠 謂之敎 誠則明矣 明則誠矣 (자성명 위지성 자명성 위지교 성즉명의 명즉성의)

    성(誠)으로 말미암아 밝아짐을 성(性)이라 이르고 명(明)으로 말미암아 성실해짐을 교(敎)라 이르니, 성실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성실해진다.

 

22장 惟天下至誠 爲能盡其性 能盡其性則能盡人之性 能盡人之性則能盡物之性 能盡物之 性則可以贊天地之化育 可以贊天地之化育 則可以與天地參矣 (유천하지성 위능진기성 능진기성즉능진인지성 능진인지성즉능진물지성 능진물지성즉가이 찬천지지화육 가이찬천지지화육 즉가이여천지참의)
  오직 천하에 지극히 성실한 분이어야 능히 그 성(性)을 다할 수 있으니, 그 성(性)을 다하면 능히 사람의 性을 다할 것이요, 사람의 性을 다하면 능히 물건의 성을 다할 것이요, 물건의 성을 다하면 천지의 화육을 도울 것이요, 천지의 화육을 도우면 천지와 더불어 참여하게 될 것이다.

24장 至誠之道 可以前知 國家將興 必有禎祥 國家將亡 必有妖孼 見乎蓍龜 動乎四體 禍 福將至 善 必先知之 不善 必先知之 故至誠 如神(지성지도 가이전지 국가장흥 필유정상 국가장망 필유요얼 견호시구 동호사체 화복장지 선 필선지지 불선 필선지지 고지성여신)

   
지성(至誠)의 도는 일이 닥쳐오기 전에 미리 알 수 있으니, 국가가 장차 일어나려 할 적에는 반드시 상서로운 조짐이 있으며 국가가 장차 망하려 할 적에는 반드시 요괴스런 일이 있어, 이것이 시초점과 거북점에 나타나며 사체(四體)에 動한다. 그리하여 화와 복이 장차 이를 적에 좋을 것을 반드시 먼저 알며 좋지 못할 것을 반드시 먼저 안다. 그러므로 지성(至誠)은 신(神)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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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 TV에서 영화 <관상>을 보았다.
마지막 송강호의 대사,
"내가 사람의 얼굴을 보았으되 정작 시대를 보지 못했단 말이요.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볼 뿐 파도를 만드는 바람을 못 본 거지"라는 말을 듣자마자,
내 눈귀에 고향 바다의 풍랑(風浪)이 그려지고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지눌의 《수심결(修心訣) 명구가 떠오른다. 물론 <관상>과는 연관성이 없지만. 

"바람은 그쳤건만 파도는 여전히 솟구치듯,
진리는 훤히 드러났으나 망상이 여전히 침노하누나."
풍정파상용(風停波尙湧) 이현념유침(理現念猶侵)"

바람을 본다는 것은 세상을 본다는 것이며, 미래를 본다는 것이다.

지눌(知訥 1158~1210)은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주장하였다. 본래적 자기가 곧 본불성(本佛性)임을 홀연히 깨치고(돈오) 난 이후에도, 계속하여 무명(無明)의 습기(習氣)를 제거키 위해 꾸준히 닦아야(점수)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비유하여 '바람은 그쳤으나 파도는 아직도 일렁인다.'고 한 것이다. 그러니 아직도 일렁이는 파도가 모두 잔잔하여 바다가 삼라만상을 모두 비칠 수 있을 때까지 수행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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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캠프에서 담소 중에
이중섭 화백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그의 생을 너무나 '신산하다'했습니다.
'辛酸, 맵고 시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긍정과 희망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의 그림 중, '벚꽃 위의 새'를 이야기하면서, 달빛 아래에 앉아 커피필터지에  수채물감으로 끄적였습니다.
아?, 이 집 안주인이 매화꽃을 무척 좋아한다기에, '야매(野梅)'라 농하면서 벚꽃 대신 '야매꽃에 앉은 새'라 제목하며 그렸습니다.
세상사 알고보면 다  '그래서 그랬구나'
고개 끄덕이게 됩니다. 꽃 잎 지는 까닭은 모두 제 향기로 나비를 부른 탓입니다.
슬캠지기 조 선생님이 반기며 이 낙서를 받아주셨네요. 별거도 아닌 것을 받아주셔서 제가 고맙습니다. '그냥'이라며 장난삼아 낙관을 대신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그래서 그랬구나"를 끼적였습니다.

슬로우 캠프에 매화꽃잎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떨어져 있습니다.
도회지에서 사람과 일에 지친 안주인이 이곳으로 들어와서 매화 그림을 '미친듯이' 그렸답니다. 설매, 홍매, 황매에 청매, 야매(夜梅ᆞ野梅)까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잎 그림자까지 슬캠에 내려 앉아 있습니다. 그랬더니 슬캠이 온통 매화도가 되었네요.
어디 대가가 따로 있나요? 
여기 매화천지 슬로우 캠프에서는 절로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슬로우 캠프 010-2237-2116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운학리 614-3
아? 수주면이 '무릉도원'으로 개명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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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개비 2018.10.04 04: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수석님 답습니다
    그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나며
    한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보는 기분입니다. 슬캠이.. 슬캠의 매화꽃이 봄이 아닌데도. 봄처럼 꿈처럼 무릉도원처럼
    무릉매원으로 되살아나네요
    수석님 글로 인하여
    온통 매화꽃으로 휘날리는 슬캠의 뜨락으로 다시 달려가고싶습니다

  2. 안개비 2018.10.04 0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중섭(1916-1956), 한국  최고의 화가
그의 그림에서 분단과 이산의 상흔을 읽는다.
한민족 정체성 3대 키워드
'소ᆞ가족ᆞ어머니'
이 셋에 더해 진 '긍정'이다.

하나. 백의민족, 한민족을 닮은 흰소.
1955년, <흰 소>ㅡ 저 오른쪽 앞 발에 진취가 있다. 이중섭은 자화상을 그린 것이며 민족을 그린 것이다.

둘.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1954년, <길 떠나는 가족>
ㅡ다시 만나 행복한 가정을 가꿀 것을 희망하고 있다. 그의 아내는 야마모토 마사꼬, 일본 사람이다.
일제시대에 만나 사랑하고 해방되기 직전 결혼하여 북한 원산에서 살다 한국전쟁 중에 두 아이를 데리고 서귀포 부산 피난 생활을 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살면서 이중섭과 헤어졌다. 전쟁은 가정의 행복을 앗아갔다. 그래도 이중섭은 꿈을 꾼다. 언젠가 다시 만나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1954, 가로 64.5㎝·세로 29.5㎝). 이중섭이 일본인 아내 이남덕 여사와 아들 둘이 탄 소달구지를 이끌고 있다. 생이별한 가족과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고 싶은 바람을 경쾌한 움직임과 색채로 표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셋. 한국전쟁 중 북녘 원산에 홀로 두고 온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의 생사도 모른다. 어머니는 두 손주와 며느리를 중섭과 함께 피난가라며 부랴부랴 등을 떠 밀었다. 다시 만날 것이라며 그림도구만 챙겨 떠나온 것이 영원한 생이별이 되었다. 전쟁과 분단은 가족을 해체 시켰던 것이다. 북에 두고 온 어머니를 생각하면 평생에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이었다.
1956년, <돌아오지 않는 강>
마릴린 먼로의 주연의 영화 제목과 같다.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 올 것을 기다릴텐데, 가지 못하는 자신에게 가학하듯이 아들이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다. 흰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어머니는 저 만치서 돌아오는데 창을 열고 기다리던 아들은 그리움에 지쳐 있다.
이 그림을 그린 같은 해에 이중섭은 생을 마감하였다. 어쩌면 저 세상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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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다가 '성학십도' 병풍을 비치해 놓고 있다. 율곡학파는 '고산구곡도(高山九曲圖)' 병풍이었지만, 퇴계학파는 '성학십도' 병풍을 지니는 것이 전통이었다. 내가 지니고 있는 성학십도 병풍은 서예가의 손으로 쓴 붓글씨가 아니고 도산서원에 보관되어 있었던 성학십도 목판본에다가 먹물을 발라서 찍어낸 것이다.

퇴계학파는 아니지만 이 병풍을 거실에 쭉 펼쳐 놓고 있으면 문자의 향기가 서서히 집 안에 퍼지는 것 같다. 그 병풍 앞에 방석을 놓고 앉아 있으면 퇴계 선생의 '철학 그림'인 십도(十圖)가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혼자서 차를 한잔 끓여 마시면서 눈을 감고 있으면 머릿속으로 들어온 그림들이 다시 아랫배로 내려가는 듯한 착각을 한다. 그러면 만족감이 온다. '아! 나는 조선 유학의 전통을 아직 잊지 않고 있다'는 보수적 자존심이다.

이번에 한형조(60) 교수가 '성학십도' 해설서를 내놓았다. 퇴계가 평생 공부한 내용을 참기름 짜듯이 압축한 결과물이 성학십도라서, 일반인들은 그 내용과 맥락(context)을 깊이 있게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수재라고 소문난 한 교수가 성학십도를 떡갈비 만들 듯이 잘게 씹어서 책을 낸 것이다. '해묵은 사상이 현대의 우리에게 아무런 자양도 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이다.

'외래의 관점들이 본격 검증도 거치지 않은 채 그저 밀려왔다가 유행처럼 다시 썰물로 빠져나간다. 우리는 무엇에 기초하여 문화적 이상을 세우고 문법을 만들어 갈 것인가!'는 탄식에 나도 아주 공감한다. 성학십도의 핵심은 9장 '경재잠(敬齋箴)'이다. 선비 정신의 핵심은 존중과 배려에 있다는 내용이다. 나와 타인, 자연에 대한 존중과 배려 말이다.

그게 경(敬)이다. 지금도 88세 된 퇴계 종손은 종택을 찾아오는 10대 후반의 학생들과 이야기를 할 때에도 항상 무릎을 꿇은 자세이다. 상대방에게는 편히 앉으라고 권한다.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무릎 꿇는 자세가 평생 습관이 되어 익숙하다고 한다. 경재잠의 정신이 400년 넘게 그 후손에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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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神 계보는 줄줄 외면서… 삼국유사는 왜 안 읽나요"
문화 유석재 기자
입력 2018.08.07 03:01
삼국유사ㅡ스크랩
문체부 장관 지낸 최광식 교수 '삼국유사의 신화 이야기' 펴내

최광식(64)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맡고 있던 2010년, '그리스의 신(神)과 인간' 특별전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그리스 신 계보를 줄줄 외우는 거예요. 아~ 이것 참, 답답하더라고요. 우리나라에도 신화가 있는데 그건 통 모르고 말이죠…."

그가 말하는 '한국 신화의 보고(寶庫)'는 바로 '삼국유사(三國遺事)'다. "서양문화의 뿌리가 그리스·로마 신화라면, 우리 민족문화는 그것을 '삼국유사'에 실린 건국 신화와 시조 신화에서 찾아야 합니다." 최 교수는 최근 단행본 '삼국유사의 신화 이야기'(세창출판사)를 냈다. 고려대출판부에서 박대재 교수와 '점교 삼국유사'(2009), 역주본 '삼국유사'(전 3권·2014)를 내고 '읽기 쉬운 삼국유사'(2015)를 쓴 데 이어 네 번째 '삼국유사' 작업이다.

최광식 교수가 도깨비 문양 고구려 와당의 복제품을 들고 활짝 웃었다. '삼국유사'는 우리 토착 신앙이 불교와 어떻게 융합됐는지 잘 보여주는 사료다.
/장련성 객원기자

왜 '삼국유사'인가? "흔히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고 '삼국유사'는 야사(野史)로 봅니다. 하지만 이 구도는 잘못됐습니다." 일연 스님은 고대의 역사와 불교, 신화와 설화·향가를 비롯한 민족의 문화유산을 남기고자 '삼국유사'를 썼다는 것이다. "무미건조한 '사기'에 비해 '유사'는 생동감이 넘치는 인간의 모습과 감칠맛 나는 정서가 담겨 있지요."

이를 깨달은 것은 고려대 사학과 학생 시절 '두 책을 비교하라'는 과제를 수행하면서였다. 그는 '삼국유사'를 평생 공부하겠노라 마음먹고 석사 논문을 썼는데, 당시 그의 논문을 둘러싸고 '이걸 과연 역사학 영역으로 봐야 하느냐'를 논의하는 학과 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이번 책 '삼국유사의 신화 이야기'에서 최 교수는 "신화란 단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상징적으로 반영하고, 문화의 원형을 보여준다"고 했다. 신화에 나타난 '코드(code)'를 잘 들여다보면 실제 역사가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단군신화는 사실상 그 아버지 환웅이 중심이 된 '환웅 신화'인데, 신단수에서 세상을 연 일종의 천지창조 신화 속에서 곡식과 쑥·마늘을 가진 '농경 세력'의 등장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토착 세력인 호랑이는 수렵 종족, 곰은 수렵에서 농경으로 전환하는 단계의 종족을 상징하고 있다.

"신라의 석탈해와 가야의 허황옥 신화는 해양 세력의 유입을 보여주는 단서이지요. 김알지 신화는 발달한 철기와 제련 기술을 지닌 북방 세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주인공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천강(天降) 신화를 북방계,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卵生) 신화를 남방계로 나눠 '한국 신화는 대부분 남방계'로 본 과거 일본인 학자들의 견해를 반박했다. 부여·고구려·신라·가야 모두 '천강'과 '난생'의 요소가 혼합돼 있다는 것이다. 중세에 이르러 신화는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리는데, 왕건 신화에는 '용'이 등장하는 반면 견훤 신화의 주인공은 '지렁이'로 격하된다.

문화재청장과 문체부 장관을 지낸 최 교수는 장관 시절 만난 작가들이 '우리나라엔 스토리텔링의 원천이 없다'고 푸념하면 정색을 했다고 한다. "'삼국유사'는 좀 읽어 보고 말씀하시죠!"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던 시절엔 "'삼국유사'가 없었더라면 무엇을 가지고 고조선·부여·발해가 우리 역사라고 할 수 있었을지 아찔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삼국유사'의 다섯 번째 작업으로 오는 가을 제자들이 쓴 다양한 분야의 논문집을 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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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경지 ㅡ스크랩

인문학과스토리텔링 2018.08.13 09:00 Posted by 문촌수기
ㅡ이내옥 미술사학자·'안목의 성장' 저자.

조선시대 서화의 역사를 보면 궁극에는 추사 김정희로 수렴한다. 추사는 당시 동아시아 최고 지성으로서 모든 것을 갖춘 인물이었다. 55세에 뜻하지 않은 제주 유배를 겪는데, 쓰라림으로 점철된 그때부터가 진정한 추사 예술과 정신의 시기였다.
추사는 자부심이 대단해 오만에 가까웠다. 거기에 원한과 분노의 불길이 끼얹어졌다. 그러나 유배가 길어지면서 그것도 서서히 녹아내렸다. 여기에서 문인의 지조와 절개를 표현한 '세한도'가 나왔다. 그림 속 나무는 나무가 아니고, 집은 집이 아니다. 그것은 오만과 분노의 껍데기를 뚫고 들어가 마주친 자아의 처절한 고독이고, 그 강력한 주장이다. 동양 회화는 문인화의 두 거장 황공망과 예찬이 출현해 그 극점을 찍었다. 그로부터 500여 년이 지난 뒤 추사가 그들에게 필적하는 작품을 낸 것이다.
추사는 제주 유배에서 9년 만에 풀려났다. 다시 북청으로 유배돼 2년여를 보내고 돌아와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북청 유배 어간에 그린 '불이선란도'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쓴 '판전' 글씨는 '세한도' 단계에서 더 깊은 경지로 나아갔다. '불이선란도'는 '세한도'에서 보이던 강력한 자기주장이 사라지고, 평생 추구했던 서예 정신 '괴(怪)'의 완성이었다. 일부 자부심의 찌꺼기가 남아 있긴 하지만, 자비의 눈으로 자신을 관조하고 있다. '판전' 글씨에 이르러서는 죽음을 예감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해탈의 경지를 보여준다. 지금껏 추구해온 예술을 부정하고 초월하여 진정한 자유를 실현했다.
추사는 숨을 거두기 사흘 전까지도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불교 수행의 높은 경지였다. 당시 추사는 간화선(看話禪·화두를 사용해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선)을 격렬히 비판했다. 간화선으로는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추사의 주장에 대해, 한국 현대불교는 답을 해야 할 처지이다.
http://m.chosun.com/news/article.amp.html?sname=news&contid=2018080700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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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로 살아가기.

인문학과스토리텔링 2018.08.10 14:05 Posted by 문촌수기
어릴 때는 어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춥고 배고팠기 때문이다. 커서 어른이 되면 돈을 벌거고, 그러면 배고프지도 춥지도 않을거라 여겼다.
이제 어른이 되니 어린이가 되고 싶다.
돈이 있으니 이제 춥거나 배고프지는 않다. 그렇지만 늘 어깨가 무겁다.
내일을 걱정하며 내 일을 어깨에 달고 산다.
걱정없이 '지금'을 살아가는 어린 아이가 부럽다. 그 아이들에게는 '내일은 없다.'
어릴 때는 동화책을 읽지 않았다. 읽을 책도 없었고, 읽을 시간도 없었다.
이제 어른이 되어 동화책을 찾아 읽는다.
시간은 없지만 억지로 짬을 만들어낸다. 어른으로 할 일을 일단 내일로 미룬다. 눈물도 흘리고 웃기도 한다.

어린이로 돌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엄마놀이'를 즐기는 아내 덕분에 나도 점점 어린이가 된다. '새 엄마' 격인데,  '새엄마놀이'는 안해서 다행이다. 참으로 고맙고 사랑스럽다. 이렇게 서로에게 길들여 지나보다.
피터팬으로 살아가기? 가출할까?
소공녀로 살아가기? 늘 기품있게?

성냥팔이 소녀는 늘 가슴아프고 눈물이 난다. 오늘도 어딘가에 성냥을 팔러 다니는 소녀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예수님과 칸트와 카르멘이 교차되어 연상될까? 이 연상을 어린이가 상상할 수 있을까?

오늘도 행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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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중섭

인문학과스토리텔링 2018.07.07 16:32 Posted by 문촌수기
이중섭의 짧고 불행한 삶.
그래도 가장 행복한 한 때가 있지 않았을까?
6.25동란을 피해 고향 원산에서 부산을 거쳐 서귀포에서 피난 생활을 하였을때.
비록 손바닥만한 단칸방이지만 어여쁜 아내랑 두 아들의 웃음에 행복했겠다.
듬직한 한라산에 기대고
넉넉한 바다에 안겼으니..
서귀포 이중섭의 거리와 화가가 셋방살이 한  집을 찾았다.

초가 오른쪽의 열린 문으로 들어가야 화가 가족의 셋방이 있다. 시골집 부엌 부뚜막만한 방이다.
나그네가 평상에 누워 한가한 오수를 즐긴다. 부럽다. 같이 누울 수 없고...

1.4평, 이 작은 방에 어떻게 네식구가 살았을까?

그래도 이렇게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부뚜막도 없이 부엌바닥에 솥이 얹혔다.
이다지도 궁핍하였지만 그래도 가족이 할 울타리안에 살갗을 맞대고 부비며 살았으니 그의 생애 가장행복한 시절이었을 것이다.

일본으로 보낸 아내와 두 아들을 그리워하며 늘 희망하였으리라. 재회의 행복을 꿈꾸며..
서귀포 앞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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