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 Redpath / 매기의 추억 가사
https://youtu.be/xvZXeRfRuq4 /C key

커피여과지, 파스텔ᆞ붓펜ᆞ수채물감

누구나 추억의 노래 한 곡 쯤은 있다. 특히 어릴 적 불렀던 노래는 삶의 위안이 되고 일생의 친구가 되었다. '매기의 추억'은 바로 그런 노래였다.
읍내에서 두 시간이나 걸어서 갈 수 있는 고향 할아버지 댁은 산 아래 동네에서 가장 가난했다. 그래서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말 그대로 초가삼간이었다. 그래도 넓은 마당과 키 큰 감나무 두 그루는 어린 나를 넉넉한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할아버지 댁에는 어린 고모가 둘 있었다. 고모들은 백형과 중형 또래다 보니 형만 셋인 나에겐 누나와 다를 바 없었다. 먹을 것 부족한 시절에 가마니에서 고구마를 몰래 꺼내주며 날 예뻐 해주는 고모랑 노는 게 좋아서 방학 때를 기다렸다. 호롱불 아래에서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며 콩 잎따며 불러 준 노래가 참 좋았다. 그 시절에 고모에게서 배운 노래가 '역마차'와 '매기의 추억'이었다.

<'매기의 추억'>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매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매기야 네 희미한 옛 생각
동산 수풀은 우거지고 장미화는 피어 만발하였다
물레방아 소리 그쳤다 매기 내 사랑하는 매기야

동산 수풀은 우거지고 장미화는 피어 만발하였다
옛날의 노래를 부르자 매기 내 사랑하는 매기야
동산 수풀은 우거지고 장미화는 피어 만발하였다
물레방아 소리 그쳤다 매기 내 사랑하는 매기야"


<커피로 그린 그림 이야기>
'매기의 추억'은 아메리카 민요로 많이 알려졌지만, 정확하게는 캐나다의 민요이다. 원곡의 제목은 '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이다.(너와 내가 젊었을 때에, 매기야)

노래의 사연을 커피여과지에 그려보았다. 오른쪽의 저택은 부농의 딸인 매기네 집이다. 언덕 너머 보이는 작은 건물은 노래의 주인공인 매기가 다니는 시골 학교이다. 매기와 노래의 화자는 동네 언덕에 있는 낡은 물방아간을 자주 찾아 사랑을 언약하였다. 물방아간 동산에는 데이지 꽃이 만발하다. 반세기가 지나 백발이 다 된 화자는 신혼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떠난 매기의 영혼과 함께을 추억의 언덕을 찾아온다.

<노래 이야기>
'매기의 추억'은 동심으로 데려다주는 아름다운 노래이지만 슬픈 사연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장소는 캐나다의 온타리오(Ontario)주, 웬트워스(Wentworth) 카운티의 글렌포드(Glanford) 시골 마을이다.
1859년. 토론토 대학(University of Toronto)을 졸업한 조지 워싱턴 존슨(George Washington Johnson)은 이 마을의 공립학교로 부임온다.
검은 색 곱슬머리에 잘 생긴 총각선생님은 금새 시골 학교의 학생들과 마을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햇살에 반짝이는 금발을 가진 마가렛 매기 클라크(Margaret Maggie Clark)는 조지 존슨이 가르친 제자였다. 그녀의 밝고 명랑한 성격은 동네의 칭송거리였다. 매기는 선생님을 좋아했고 머지않아서 둘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때에 매기는 열 여덟 살이고, 조지는 스물 한 살이었다.

존슨이 매기를 가르쳤던 글랜포드의 학교

둘은 글랜포드 마을에서 실개천을 따라 20마일쯤 떨어진 숲 속의 낡은 물방아간을 종종 찾았다.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물방아간 주변에는 데이지 꽃이 많이 피어 있었다. 맑고 상냥한 매기를 닮은 꽃이다. 둘은 이곳에서 노래를 함께 부르며 사랑의 밀어를 나누고 앞 날을 함께 할 것을 맹세하였다.

'매기의 추억'의 배경이 된 물레방아간, 이곳에서 조지 존슨과 매기 클라크는 사랑의 서약을 했다.

물방아간에서 실개천을 따라 1마일 쯤 내려오면 매기의 집이 있다. 그녀의 아버지, 조셉 B. 클라크(Joseph B. Clark)씨는 거농이며 마을의 중심적인 인사였다.

매기 클라크의 집

미국 웨슬리언 대학을 졸업한 매기와 신문사의 저널리스트로 있던 조지 존슨은 1864년에 결혼하였다.
클리블랜드에서 꿀보다 더 달콤한 신혼의 행복이 익어갈 무렵, 돌발적인 비극이 찾아왔다. 결혼 1년도 되지않은 1865년 5월 12일에 급작스런 병으로 매기가 죽고 말았다.
슬픔에 잠긴 조지 존슨은 사랑하는 매기의 유해를 화이트 처치 묘지(Whitechurch cemetery)에 묻고 글랜포드의 옛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조지 존슨은 교직을 재개하기 위해 캐나다로 돌아왔다.

조지 존슨이 결혼한 해인 1864년에 쓴 '단풍나무 잎새(Maple Leaves)' 시에 맞춰 제임스 버터필드(James Butterfield)가 1866년에 가락을 붙여 '너와 내가 젊었을 때, 매기' 노래를 지었다.
글랜포드의 물방아간은 지금은 무너지는 폐허가 되었다. 개울의 물은 많이 줄었다.

조지 존슨은 존스 홉킨스 대학(Johns Hopkins University)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코넬 대학교(Cornell University)의 라틴어 교수를 지냈다. 교직을 은퇴하고 어린 아내를 잃은 지 반세기가 넘어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다가 1917년에 죽었다. 그의 유해는 캐나다로 옮겨져 해밀턴 묘지(Hamilton Cemetery)에 묻혔다.

조지 W. 존슨의 시 '단풍나무 잎새(Maple Leaves)'는 이렇게 전한다.

"At the eve comes darling Maggie,
Who unto my youth was given,
More than all things else to love me.
And is now a saint in Heaven

With a slow and noiseless footstep.
Comes this messenger divine.
Takes the vacant place beside me,
Lays her gentle hand in mine.

And she sits and gazes at me.
With those deep and tender eyes.
Like the stars so still and saint-like.
Looking downward from the skies.’’

"전야에 사랑하는 매기가 온다.
내 청춘을 누구에게 주었는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 그 무엇보다도.
그리고 이제 천국의 성자가 되었다.

느리고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신의 사자가 찾아온다.
내 옆의 빈 자리를 차지하고서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내 안에 놓인다.

그녀는 앉아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깊고 부드러운 눈망울로.
언제나 그랫듯이 별들처럼 성인처럼
하늘에서 내려다 본다."

매기의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마가렛, 조지 W. 존슨의 아내
1865년 5월 12일 사망. 향년 23세."
(MARGARET, Wife of GEORGE W. JOHNSON Died May 12, 1865 Aged 23 Years)

<이야기 주인공> 조지 존슨과 매기 클라크

조지 W. 존슨
매기 클라크

<poem lylicᆞ시>
ㅡ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 ㅡ
(매기 ! 그대와 내가 젊었던 때에)

I wandered today to the hill, Maggie
To watch the scene below
The creek and the creaking old mill Maggie
As we used to long ago!
The green grove is gone from the hill, Maggie
Where first the daisies sprung
The creaking old mill is still, Maggie
Since you and I were young !
동산아래 모습들을 보고싶은 마음에 오늘 언덕에 올랐다오
그 옛날 우리가 같이 앉아 놀곤했던 시냇가와
낡고 오래된 물방앗간은 지금도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오
언덕 주위의 푸른 숲은 사라지고 없었다오
사랑하는 그대여!
귀여운 데이지꽃이 처음으로 피어났던 바로 그 숲 말이오
그대와 내가 어릴 적부터 있어 왔던 삐그덕거리던
낡은 물방앗간은 지금도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오

Oh they say that I'm feeble with age Maggie
My steps are much slower than then
My face is a well written page Maggie
And time all along Was the pen.
They say we have outlived our time, Maggie
As dated as songs that we've sung
But to me you're as fair as you were, Maggie
When you and I were young.
아, 사람들은 말하기를 난 너무 늙었다고 그런다오
사랑하는 그대여!
지금 내 걸음걸이는 예전에 비해 너무나 느려졌다오
내 얼굴은 내가 살아온 인생을 말해주는 듯 하다오
오랜 세월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오
사람들은 우리보고 너무 오래 살았다고들 말을 하고
우리가 불러온 노래만큼이나 시대에 뒤떨어졌다고들 한다오
하지만 내게 그대는 여전히 아름답기만 하다오
그대와 내가 어렸을 때처럼 말이오

<노래> 싱어에 따라 가사가 조금씩 다르다.

'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
George Johnson 작사
James Austin Butterfield 작곡

♡Donna Stewart & Ron Andrico 노래
가사가 원시에 가깝다. 영상이 추억을 떠올리게 하듯 흑백으로 된게 잘 만들어졌다.
https://youtu.be/R1kNXxV3Ziw
/ C key

< 1 >
I wandered today to the hill, Maggie
To watch the scene below
The creek and the creaking old mill, Maggie
As we used to, long ago.

The green grove is gone from the hill, Maggie
Where first the daisies sprung
The creaking old mill is still, Maggie
Since you and I were young.

나는 오늘 언덕을 거닐었어요, 매기
저 아래의 경치를 내려다보기 위해서
시냇물과 삐걱거리는 옛날 물레방아도 보았어요, 매기. 우리가 오래 전에 같이 앉아서 놀았던.

그 푸른 숲은 언덕에서 없어졌어요, 매기
데이지꽃이 처음 돋아났던
그 삐걱거리는 옛날 물레방아는 지금도 있어요, 매기. 당신과 내가 젊었을 그 때부터.

(Chorus)
And now we are aged and grey, Maggie
The trials of life nearly done
Let us sing of the days that are gone, Maggie
When you and I were young.

그리고 이제는 우리도 늙었어요, 매기
인생의 시련도 거의 다 지나갔어요
지나간 시절을 노래불러요, 매기
당신과 내가 젊었을 그 때를.

< 2 >
A city so silent and lone, Maggie
Where the young and the gay and the best
In polished white mansion of stone, Maggie
Have each found a place of rest.

Is built where the birds used to play, Maggie
And join in the songs that were sung
For we sang just as gay as they, Maggie
When you and I were young.
(Chorus)

도시는 너무도 조용하고 쓸쓸해요, 매기
젊음과 기쁨과 최고만 있던
아름답던 그 흰색 대리석 저택에서, 매기
각각 안식처를 찾아갔어요.

새들이 놀던 곳에도 집을 지었어요, 매기
그들이 지저귈 때 같이 따라부르고
그들처럼 즐겁게 노래했지요. 매기
당신과 내가 젊었을 그 때는.
(후렴)

< 3 >
They say I am feeble with age, Maggie
My steps are less sprightly than then
My face is a well-written page, Maggie
But time alone was the pen.

They say we are aged and grey, Maggie
As sprays by the white breakers flung
But to me you're as fair as you were, Maggie
When you and I were young.
(Chorus)

사람들은 나도 나이가 들어 약해졌다고 해요, 매기
내 발걸음은 그 때보다 힘차지 못해요
내 얼굴은 잘 쓰여진 노트에요, 매기
오직 시간만이 기록할 수 있는.

사람들은 내가 늙고 머리가 희어졌다고 해요, 매기
마치 흰 색으로 스프레이한 것처럼,
그러나 당신은 나에게 언제나 똑같아요, 매기
당신과 내가 젊었을 그 때와 같이.
(후렴)

♡Rob Mashburn의 노래
매기가 죽기 전에 조지 존슨이 지은 시에 가까운 가사이다. 컨츄리풍으로 흥겹게 따라 부르고 싶을 만큼 좋아하게 된 노래이다.
https://youtu.be/gEOWAY18vqc / D key

The violets were scenting the woods, Maggie
Their perfume was soft on the breeze
When I first said I loved only you, Maggie
And you said you loved only me
The chestnut bloomed green through the glades, Maggie
A robin sang loud from a tree
When I first said I loved only you, Maggie
And you said you loved only me

A golden row of daffodils shone, Maggie
And danced with the leaves on the lea
When I first said I loved only you, Maggie
And you said you loved only me
The birds in the trees sang a song, Maggie
Of happier days yet to be
When I first said I loved only you, Maggie
And you said you loved only me

I promised that I'd come again, Maggie
And happy forever we'd be
When I first said I loved only you, Maggie
And you said you loved only me
But the ocean proved wider than miles, Maggie
A distance our hearts could not foresee
When I first said I loved only you, Maggie
And you said you loved only me

Our dreams. they never came true, Maggie
Our fond hopes were never meant to be
When I first said I loved only you, Maggie
And you said you loved only me.

크로매틱 하모니카(C키) 연주로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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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커피여과지 노래그림 2021. 1. 25. 19:10 Posted by 문촌수기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밥 딜런이 선정되었을 때 세상은 신선한 충격에 빠졌으며, 각종 SNS와 매체에서는 찬반의 논란이 계속 일어났다. 나는 반겼다. 특히 미국 <시엔엔>방송의 평가에 크게 공감하였다. <CNN>은 ‘밥 딜런의 노벨상 수상을 둘러싼 논란’을 소개하면서, '페이지(page, 책을 지칭)가 아닌 무대(stage)에서 더 잘 알려진 사람에게 노벨상이 돌아갔다'고 전했다. 문학의 지평이 종이 밖으로도 열려있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은 밥 딜런(Bob Dylan)이 1963년 발표한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The Freewheelin' Bob Dylan>에 수록된 곡이다. 같은 해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And Mary)가 커버해 미국 차트 9위에 올랐다. 국내에선 1974년 양병집이 <역(逆)>이란 제목으로 개사해 불렀고, 김광석은 1995년 리메이크 앨범에서 양병집의 버전을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란 제목으로 일부 개사하여 발표했다.

나의 노래그림에서 화자인 기타맨(Guitar Man)은 아이를 무등 태우고 연인으로부터 떠난다. 그러나 그것은 연인들의 진부한 이별 장면이 아니다. CNN의 논평대로 갇혀있던 책장을 열어 제치고 무대로 떠나고 있다. 나를 구속하는 방에서 벗어나 열린 세상으로 여행하고 있다. 수탉이 우는 새벽은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다. 무등을 태운 아이는 결코 빼앗길 수 없는 나의 자유로운 영혼이다. 머뭇거릴 까닭이 없다. 주저할 이유가 없다. 내 이름을 불러봐도 소용없다. 새로운 세상에서 이름 따위가 무슨 소용있어? "그냥 나야(Just Me). 다시 생각할 필요가 없어. 그저 다 좋은거야.(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행복한 발걸음이다.
밥 딜런(Bob Dylan)의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짐머만이다. 조상에게도 구속되지 않는 바람인지, 평소 동경하던 시인 딜런 토마스의 이름을 성(姓)으로 삼으면서 개명하였다.

 

커피여과지 노래그림, &lt;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gt;, 파스텔과 수채물감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1절
It is no use to sit and wonder why, babe it don’t matter, anyhow
앉아서 왜일까 고민하는 건 소용없어, 어쨌든 중요치 않아, 그대
Babe it don’t matter, anyhow and it is no use to sit and wonder why, babe
그대, 어쨌든 중요치 않아, 앉아서 왜 일까 고민하는 건
If you don’t know by now
지금까지 알지 못했다면
When your rooster crows at the break of dawn
새벽에 네 수탉이 울면
Look out your window and I’ll be gone
창문을 봐 난 갈 테니
You’re the reason I’m traveling on
넌 계속 내가 여행하는 이유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더 고민하지 마, 괜찮으니까

2절
It is no use in turning on your light, babe that light I never know
불을 켜야 소용없어, 그건 내가 전혀 몰랐던 빛이야
And it is no use in turning on your light, babe
그래서 불을 켜야 소용없어
I’m on the dark side of the road
난 거리의 어두운 편에 있어
Still I wish there was something
여전히 뭔가 있기를 바라
You would do or say to try and make me change my mind and stay
넌 내 맘을 바꾸고 머물게 하기 위해 뭔가를 하거나 말하겠지
We never did too much talking anyway
어쨌든 우린 너무 말을 하지 않았어
So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그러니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괜찮아

3절
It is no use in calling out my name, girl
내 이름을 불러야 소용없어
Like you never did before
전에 네가 한 번도 그러지 않은 것처럼
It is no use in calling out my name, girl
내 이름을 불러봐야 소용없어
I can’t hear you anymore
네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아
I’m a-thinking and a-wondering all the way down the road
길을 가면서 생각하고 고민해
I once loved a woman, a child I’m told
한때 한 여자를, 한 아이를 사랑했는데
I give her my heart but she wanted my soul
그녀에게 내 마음을 주었지만 그녀는 내 영혼을 원했지
But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하지만 고민하지 마, 괜찮아

4절
So long, honey babe
안녕, 자기
Where I’m bound, I can’t tell but goodbye’s too good a word, babe
어디 가는 지 말할 순 없지만 굿바이는 참 좋은 말이야
So I’ll just say fare thee well
모두들 잘 있으라고 인사할게
I'm not saying you treated me unkind
네가 나한테 불친절했던 건 말하지 않을게
You could have done better but I don’t mind
넌 더 잘해줄 수 있었지만 난 신경 안 써
You just kind of wasted my precious time
넌 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 것뿐이니까
But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괜찮아

밥 딜런과 친구 수지 로톨로(Suze Rotolo)

 

<아래, 스크랩>
그 자체로 아이콘이 된 앨범 커버다. 음악평론가 겸 영화감독 카메론 크로우가 자신의 영화 <바닐라 스카이>에서 톰 크루즈와 페넬로페 크루즈를 등장시킨 장면으로 오마주하기도 했다. CBS 레코드의 사진가 돈 허스타인이 1960년대 초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의 골목길에서 밥 딜런이 당시 실제 연인인 수지 로톨로(Suzie Rotolo)와 걷고 있는 모습을 찍었다. 행복해 보이는 이 연인은 안타깝게도 3년 후 결별했다. 미국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강의하고 디자인 서적을 출판하는 등 아티스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수지 로톨로는 폐암으로 인해 2011년 67세 나이로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곡은 앨범의 표지 모델로 밥과 함께 등장했던 여자 친구 수지 로톨로가 이탈리아에 유학 가면서 헤어져 있을 때 만들었다. 하지만 밥은 이 곡을 단순히 사랑노래로 보는 것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러브 송으로 여기는 데, 러브송은 아니예요. 자신의 기분을 더 좋아지게 하기 위해 뭔가를 말할 때 나오는 것들 이예요. 혼잣말하는 것처럼요”라고 말했다.

미국의 역사학자 냇 헨토프(Nat Hentoff)는 “이 곡이 미국의 민속 음악인 Who's Gonna Buy Your Chickens When I'm Gone (내가 없을 때는 누가 너에게 치킨을 사줄까?)에서 멜로디와 가사 몇 소절을 가져온 것이며 포크 가수인 폴 클레이튼(Paul Clayton)이 밥에게 가르쳐 주었다”고 주장했다.

<Who's Gonna Buy Your Chickens When I'm Gone> https://youtu.be/lQBiGzr8bCA

가사는 떠나는 사람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유학을 떠난 수지의 입장을 자신으로 대체해서 그린 것이 아닌가 싶다. 버려진 걸 인정하기 힘들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곡이 아닐까. 가사에는 떠나는 자와 남는 자 서로의 모습이 섞여 있을 것이다.
https://youtu.be/u-Y3KfJs6T0   - E key

 

 

<그레이티스트 히트>와 함께 증정된 밀튼 글레이저의 포스터, 1967

앨범 커버보다 더 먼저 소개하고 싶은 것이 포스터다. 1966년, 의문의 오토바이 사고로 큰 부상을 당한 밥 딜런은 은둔하다시피 모습을 감추었다.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죽어간다는 등 고약한 소문도 떠돌았다. 밥 딜런의 인기곡을 모은 앨범 <그레이티스트 히트> 출시를 앞둔 CBS레코드는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뉴욕의 그래픽 디자이너 (로서 10년 후 그 유명한 I ❤NY 캠페인을 탄생시킨) 밀튼 글레이저Milton Glaser 에게 앨범과 함께 증정할 포스터 디자인을 의뢰했다. 글레이저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자화상'에서 영감을 받아 딜런의 옆모습을 검은 실루엣으로, 부시시한 머리카락을 사이키델릭한 패턴으로 표현했다. 자세히 보면 머리카락 사이 엘비스Elvis 철자가 숨겨져 있는데, 딜런은 어린 시절 엘비스 프레슬리의 광팬이었으며, 엘비스 프레슬리가 되고 싶어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엘비스의 노래를 듣는 순간 나는 감옥에서 풀려난 기분이었다."

나의 노래그림에서는 Getty이미지에 글레이저 그림을 모방하면서, 딜런(DYLAN) 철자를 넣었다.


一而二話 一而二畵,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좌) &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노래그림


김광석의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
https://munchon.tistory.com/m/1522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

2,600년 전의 일이다. 노자께서는 제자들에게 노자를 만난 다음 이렇게 전했다. 그 모습이 어떠했을까? 지금 상상해도 극적인 장면이다. "나는 새는 잘 난다는 것을 알고, 물고기는 헤엄을 잘 친다

munchon.tistory.com


참고> 밀턴 글레이저 I♡NY


세계적인 범죄도시, 파산 직전에 빠진 뉴욕시의 오명을 구하고자 'I♡NY' 디자인(1977년)하여 무상으로 양도한 것으로 유명한 밀턴 글레이저의 디자인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1051

 

'I♥NY' 밀턴 글레이저의 사망, 그리고 디자이너의 인지도 - 뉴스톱

미국의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인 밀턴 글레이저가 지난 6월 26일 91번 째 생일날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디자이너 치고는 꽤 여러 매체에 그의 부고 기사가 실렸다. 이렇게 많은

www.newsto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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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퀴로 가는 자동차

커피여과지 노래그림 2021. 1. 23. 17:30 Posted by 문촌수기

2,600년 전의 일이다. 공자께서는 노자를 뵙고 난 다음에 제자들에게 그 만남의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상상해보니 극적인 장면이다.

"나는 새들이 잘 난다는 것을 알고, 물고기들은 헤엄을 잘 친다는 것을 알며, 짐승들은 잘 달린다는 것을 안다. 달리는 짐승은 그물을 쳐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시를 드리워 낚을 수 있고, 날아가는 새는 화살을 쏘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용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오늘 나는 노자를 만났는데 그는 마치 용 같은 존재였다."ㅡ<사기> 노자한비열전 中

공자가
테제의 철학자라면, 노자는 안티테제(anti-these)의 철학자이다. 노자는 역설과 반동의 철학자이다. 노자는 발상을 전환하라면서 이렇게 선언하였다.
"反者道之動(반자도지동)
거꾸로 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
(The movement of the Tao consists in Returning.)
이런 反과 逆의 정신을 노래한 것이 여기에 있다.
ㅡㅡㅡㅡ
역발상을 노래하다.

김광석이 부른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는 밥 딜런의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노래(1963년)를 양병집이 번안하여 <역(逆)>이라는제목으로 내놓은 노래를 1995년에 리메이크하여 히트한 곡이다. 세상의 고정관념에 갇혀있지 말고 뒤집고 새롭게 바라보는 역발상의 메시지를 노래하고 있다.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 김광석 노래/
양병집이 1974년 번안한 <역(逆)> 가사를 일부 개사함, 김광석 '다시부르기2' 수록
-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95.08.27)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 / 네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속으로 나는 비행기 / 하늘로 나는 돛단배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위로
오늘도 에드벌룬 떠있건만
포수에게 잡혀온 잉어만이
한숨을 내쉰다

남자처럼 머리깍은 여자 / 여자처럼 머리 긴 남자
가방없이 학교가는 아이 / 비오는 날 신문 파는 애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위로
오늘도 에드벌룬 떠있건만
태공에게 잡혀온 참새만이
긴숨을 내쉰다


한여름에 털장갑 장수 / 한겨울에 수영복 장수
번개소리에 기절하는 남자 / 천둥소리에 하품하는 여자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위로
오늘도 에드벌룬 떠있건만
독사에게 잡혀온 땅꾼만이
긴 혀를 내두른다

독사에게 잡혀온 땅꾼만이
긴 혀를 내두른다

다이아토닉 하모니카 (HOHNER 크로스오버 G키) 연주

두바퀴로가는자동차G.m4a
3.03MB
노래그림, 김광석의 &amp;amp;amp;amp;amp;amp;amp;amp;lt;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amp;amp;amp;amp;amp;amp;amp;amp;gt;, 커피필터지에 파스텔과 수채물감

내가 그린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는 바퀴(輪)로 달리지 않는다. 바퀴축이 없이 360도 회전이 가능한 공(球)이다. 지금은 경기도 자동차과학고등학교가 된 나의 교단 첫담임, 나는 아이들에게 급훈으로 '자동차에 미쳐라'고 가르치면서, 바퀴대신 공 하나로 달리는 자동차를 만들어 보라며 그림을 그려주었다. 언제쯤 나올지? 하나의 바퀴로 달리는 자동차는 보았다. 언젠가는 하늘을 날으는 자동차도 나오겠지. 번개로 충전한 드론을 두 손으로 잡고 한겨울에도 비키니를 입고 하늘을 날아가는 시대가 머지않았다. 비키니 입은 사람을 여자로 봐서는 안된다. <두바퀴..>에서는 '여자처럼 머리 긴 남자'를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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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逆)> - 양병집 번안곡 1974년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 속으로 나는 비행기, 하늘로 뜨는 돛단배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
오늘도 에드벌룬 떠있건만
포수에게 잡혀 온 잉어만이 한숨을 내쉰다

시퍼렇게 멍이 들은 태양, 시뻘겋게 물이든 달빛
한겨울에 수영복 장수, 한여름에 털갑장 장수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위로
오늘도 에드벌룬 떠있건만
태공에게 잡혀온 참새만이 눈물을 삼킨다

남자처럼 머리깍은 여자, 여자처럼 머리 긴 남자
백화점에서 쌀을 사는 사람, 시장에서 구두 사는 사람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위로
오늘도 에드벌룬 떠있건만
땅꾼에게 잡혀온 독사만이 긴 혀를 내민다

<스크랩> “처음엔 쓴 약 같았다”는 ‘딜런 전도사’의 고백

'포크 음악 1세대'인 가수 양병집이 노벨문학상을 탄 밥 딜런의 2집 '더 프리휠링 밥 딜런'의 레코드판(LP)을 보고 있다. 이 앨범엔 양병집이 번안해 부른 '소낙비' 의 원곡 '돈트 싱크 트와이스 잇츠 올 라이트' 등이 실려있다.

양병집은 ‘딜런 전도사’다. 한대수가 딜런의 자유롭고 저항적인 음악 세계를 모티프로 자신만의 음악을 내놨다면, 양병집은 딜런의 노래를 번안하거나 가사를 바꿔 그의 음악을 국내에 직접적으로 알렸다.
‘어 하드 레인스 어 고너 폴’을 번안한 ‘소낙비’와 ‘돈트 싱크 트와이스 잇츠 올 라이트’를 개사해 만든 ‘역’(逆)등이 대표적이다. ‘소낙비’는 가수 이연실이 1973년 불러 인기를 누렸고, ‘역’은 김광석(1964~1996)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제목을 바꿔 불러 더 유명해졌다. 두 곡은 양병집이 1974년 낸 데뷔 앨범 ‘넋두리’에 실렸다.

발매 3개월 만에 폐기된 양병집의 데뷔앨범 '넋두리'. 한국일보 자료사진


양병집의 ‘역’은 딜런의 ‘돈트 싱크 트와이스 잇츠 올 라이트’와 멜로디는 같지만, 가사는 완전히 다르다. 그는 헤어진 연인에게 갈라선 이유를 고민하느라 끙끙대지 말라는 원곡의 노랫말을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란 엉뚱한 내용으로 바꿨다. 허허실실거리는 듯 하지만 풍자의 날이 매섭다. 양병집은 “원곡에 유머가 느껴져 이를 살리면서도 시대상을 녹여 국내 음악팬들에 공감대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곡이 실린 앨범 표지로 담배를 꼬나 문 사진을 사용하는 ‘불경’을 뽐낸다. 유신정권의 서슬 퍼런 검열이 한창이던 1974년, 그의 앨범은 발매된 지 3개월이 안 돼 ‘판매금지처분’을 받았다. 이후 양병집은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김민기, 한대수와 함께 ‘3대 저항 가수’로 불렸다. 양병집은 “그냥 반항가수 정도로 하자”라며 손사래를 쳤다.
문단에선 노랫말은 멜로디를 위해 쓰여진 것이라, 온전한 문학이라 볼 수 없다는 비판적 목소리도 나온다. 가사가 문학이 될 수 있냐는 질문에 양병집은 “당연하지”라고 답했다. 그는 “딜런이 노랫말로 세상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그 어떤 작가보다 문학적 업적이 강렬하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딜런 수상에 대한 비판은)질투라고 봐요. 딜런은 한 두 곡 좋은 노래를 낸 게 아니라 50년 넘게 산맥을 이루듯 문학적 서사를 이어왔잖습니까.”
한국일보, 글·사진 양승준 기자 / 일부발췌

<하나이면서 둘인 노래, 하나이면서 둘인 노래>

커피여과지 노래그림~ 밥딜런의 '돈싱크투와이스 잇츠 올 라이트'와 김광석의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우)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 원조>
밥딜런, 돈싱크 투와이스 잇츠 올 라이트
https://munchon.tistory.com/m/1519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밥 딜런이 선정되었을 때 세상은 신선한 충격에 빠졌으며, 각종 SNS와 매체에서는 찬반의 논란이 계속 일어났다. 나는 반겼다. 특히 미국 <시엔엔>방송의 평가에 크게

munchon.tistory.com

<反과 逆, 혁신의 자세>
https://munchon.tistory.com/m/1299

그림을 읽자, 노자 사상 픽토리텔링

노자 사상은 어렵다. 어린 학생들에게는 당연히 어렵고 말고다. 우선 두 개의 도(道, 길)를 알자고 했다. 그리고 그 길을 그림으로 읽어보고 이야기하자 했다. 이야기와 그림은 우리의 생각에 흥

munchon.tistory.com

<反者道之動>

도덕경 40장, 반자도지동 약자도지용, 천하만물 생어유 유생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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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it be', 커피여과지, 커피가루, 낙엽, 수채물감, 먹

https://youtu.be/3LL3vj5piWQ

하모니카 연주> HOHNER 다이아토닉 C key, 밥딜런 시그니처

Let it be.m4a
3.13MB

정말 지긋지긋한 경자년이 지나가고 드디어 신축년 새해가 왔다. 그간 우리는 코로나19로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버려지고 부서지고 잊혀지고 무너졌다. 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고, 놀이터에서 아이들 소리가 사라졌다. 친구들과의 만남은 잊혀지고,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부르는 노래 소리는 그쳤다. 가족과도 헤어지고 급기야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게 입을 닫아야했다. 가슴 조이며 그래도 낙관하며 잘 견뎌 왔다. 달리 방법이 없다.
그래도 나 혼자 희망의 노래를 불러본다. 이 모든 게, 내 탓은 아니라고 위로하며, '이 또한 지나가겠지'라며 긍정해본다, 너무 애쓰지도 말고 그냥 흘러가는대로 순리에 맡기자며 내버려 둔다. 조급하지도 말며 다시 찾겠다며 억지 부리지도 말자며 달래본다.
버려지는 커피여과지에 말라버린 낙엽으로 <렛잇비> 노래그림 그린다.
"Let it be, 무위(無爲)하소서"라며, 신축년 연하장으로 대신한다.
광명과 평화의 2021년 소띠 해를 기원하며.


<Let it be > 노랫말 해석 ㅡ (VOA, 팝스 잉글리쉬 부지영)
(1절)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내가 어려움에 처해 있으면
Mother Mary comes to me
어머니 메리가 내게 와서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지혜의 말씀을 해주시죠, 그냥 내버려두라고
And in my hour of darkness
그리고 내가 암흑의 시간 속에 있을 때
She is standing right in front of me
어머니 메리는 바로 내 앞에 서서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지혜의 말씀을 해주시죠, 그냥 내버려두라고
(후렴)
Let it be, let it be
그냥 둬, 그냥 내버려두라고
Let it be, let it be
그냥 둬, 그냥 내버려두라고
Whisper words of wisdom, let it be
지혜의 말씀을 속삭여 주죠, 그냥 내버려두라고

(2절)
And when the brokenhearted people
세상의 모든 상처입은 사람들이
Living in the world agree
함께 아파할 때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해답이 있을 거에요, 그냥 내버려두라고….
For though they may be parted
비록 그들이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There is still a chance that they will see

깨달을 기회는 아직 있어요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해답이 있다는 걸…. 그냥 내버려두라고
(후렴×2)

(3절)
And when the night is cloudy
구름이 잔뜩 낀 밤에
There is still a light that shines on me
날 비추는 한 줄기 빛이 있어요
Shine on until tomorrow, let it be
내일까지 비칠 거에요, 그냥 내버려두세요
I wake up to the sound of music
음악 소리에 잠을 깨죠
Mother Mary comes to me
어머니 메리가 내게 와요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지혜의 말씀을 들려주면서, 그냥 내버려두라고
(후렴×2)

내 부족한 하모니카 연주를 음원으로, 내 친구 바리톤 김영후 선생님이 노래로 날개를 달아주셨다.

let it be-하모니카와바리톤.m4a
3.05MB



https://youtu.be/5__EYzhYa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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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십팔번, 이문세의 '옛사랑' 노래를 부르며 눈 오는 날 광화문 거리를 찾아가고 싶지만 말문이 막혀서.
이 시대는 촛불을 켜고 반대의 함성이 가득했던 광장을 비워야 하며 반대는 커녕, 입 다물기를 강요 받으며 살아야 하나보다. 코로나19바이러스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선시대 임금보다 더 높은 곳에 계시는 분의 심기를 상하게 해서는 안되는 또 다른 이유가 또 있구나. 국민과 소통하겠다며 광화문 앞으로 내려오겠다는 공약은 空約이 되고. 방역과 경호의 철옹성을 쌓아 스스로 여는 말문조차도 뜸하다.

이문세 노래그림, 광화문 연가(좌)ㆍ옛사랑(우)
정동교회

그래도 노래 부른다. 내 마음대로 노래라도 부르며 추억속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그린다. 광화문 연가와 옛사랑을 좌우로 나란히 그려 두니 보기도 좋지않나? 하늘에 복을 빌며 기도하는 좌우의 합장이다.
내리는 흰눈으로 반칙과 거짓과 위선과 독선을 씻어내고 깨끗한 새해를 소망해본다.
* 이문세 노래에 맞춰, 하모니카 연주> HOHNER 다아이토닉, 크로스오버 Akey

옛사랑Aㅡ이문세노래.m4a
4.50MB

<옛사랑> 노랫말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나온 일들이 가슴에 사무쳐
텅빈 하늘밑 불빛들 켜져가면
옛사랑 그이름 아껴 불러보네

찬바람 불어와 옷깃을 여미우다
후회가 또 화가 난 눈물이 흐르네
누가 물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지나온 내 모습 모두 거짓인걸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내맘에 둘꺼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 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

흰눈 나리면 들판에 서성이다
옛사랑 생각에 그길 찾아가지
광화문 거리 흰눈에 덮여가고
하얀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내맘에 둘꺼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 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

사랑이란게 지겨울 때가 있지
내맘에 고독이 너무 흘러넘쳐
눈 녹은 봄날 푸르른 잎새위엔
옛사랑 그대모습 영원속에 있네

흰눈 나리면 들판에 서성이다
옛사랑 생각에 그길 찾아가지
광화문 거리 흰눈에 덮여가고
하얀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

https://youtu.be/CPLK6L1fq7k

窮民이 가지는 집회 결사의 자유, 양심의 자유와 의사표현의 자유마저도 저당잡히는 시대를 살아야 하나보다. 이순신 장군도 세종대왕도 기가막혀 말문을 닫으려 한다. 정말 '경험 해보지 못한 나라'에서 지금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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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그리기>
성공회 주교좌 성당
청계천
동아일보사옥
광화문 네거리ㆍ세종대로ㆍ종로
이순신장관ㆍ세종대왕 동상
광화문 광장
세종문화회관
교보문고와 주미대사관
광화문과 경복궁
북악산과 북한산
르네 마그리트의 '사람의 아들' 패러디
광장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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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oogle 2021.01.24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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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길, 덕수궁 돌담길, 정동골목 언덕길. 동생이 고향을 떠나 총각때부터 18년 동안 생활했던 경향신문사를 찾아 올라갔던 그 골목길. 함께 걸었던 추억을 떠올려본다. 떠나온 고향보다 오래 살았던 서울 생활. 동생은 가끔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디가 내 고향일까?", 하기사 우린 어디에 살던 나그네이다.
일산에 살다가 동탄으로 이사를 올 적에도 가장 그리울 것 같아 떠나야 할 발길이 머뭇 거렸던 곳이 이곳, 광화문 네거리(세종대로, 종로) 였다. 새해에는 마스크 벗고 같이 노래하며 다시 이 길을 걸어보리라 희망한다.

이문세 노래그림 ~ 광화문연가ㆍ옛사랑

*하모니카 연주> HOHNER 다이아토닉, 마린밴드 Bb key

광화문연가Bb-반주.mp3
1.70MB

노랫말 따라 그린다. 오월의 향기와 눈덮인 교회당, 그리고 지금은 비어있는 돈의문(서대문)이 다시 설 수 있기를 바라면서....
https://youtu.be/mezYFe9DLRk

<광화문 연가>

이제 모두 세월따라 /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 다정히 걸어가던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 세월을 따라 따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 눈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눈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 곳에 /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 세월을 따라 따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 눈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눈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 곳에 /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 세월을 따라 따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 눈덮인 조그만 교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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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따라 그림따라 걷는 추억과 역사의 현장
덕수궁 - 서울시립미술관 - 정동극장 - 정동제일교회 - 중명전 -구 러시아 공사관 터 - 이화학당ㆍ심슨기념관 - 경향신문사 - 돈의문터 - 경교장(강북삼성병원) - 홍난파가옥과 월암공원 - 딜큐사ㆍ테일러 가옥 - 인왕산 한양도성 곡장과 성곽길 정상

개화기 당시 한성부, 덕수궁 주변 - 오른쪽 하단의 황단(皇壇)이 대한제국 선포 뒤 하늘에 제사드리는 환구단이다.


스크랩1> 망국의 현장 덕수궁과 석조전.
서울 중구 정동에는 대한제국의 황궁이었던 덕수궁이 있습니다. 덕수궁 안에는 최초의 서양식 석조 건물이 있는데요. 최근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는 가상현실(VR) 영상으로 제작한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을 내년 1월까지 홈페이지에 공개한다고 밝혔어요. 석조전은 서울 덕수궁 안에 대한제국 황제와 황후의 생활 공간을 만들어 놓은 서양식 궁전입니다. 비운의 한국 근현대사가 농축된 장소이기도 하죠.
◇한양 한복판에 지은 서양식 건물
1896년 일본의 위협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던 고종은 1년 만에 돌아옵니다. 일본군이 점령한 경복궁이 아닌 덕수궁을 정궁(정식 궁궐)으로 삼고, 대한제국을 선포해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되지요. 이해인 1897년에 설계를 시작한 덕수궁 안의 전각이 석조전이었습니다. 영국인 재정고문 존 맥리비 브라운이 발의해 13년 동안 건물을 짓게 됩니다. 자신이 살 서양식 궁전을 건설했다는 데서 고종의 근대화 의지를 읽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어요.
설계를 맡은 사람은 영국인 건축기사 존 레지널드 하딩이었어요. 하딩은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그리스 풍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석조전을 설계했죠. 여기에 유럽의 식민지였던 동남아 지역의 기후에 맞춰 베란다를 설치했죠.
지층을 포함해 3층 석조 건물로 정면 54.2m, 측면 31m의 장대한 규모였죠. 석조전은 조선의 궁궐이 왕의 침소와 업무 공간으로 분리됐던 것과 달리 두 기능을 통합했습니다. 1층엔 접견실과 홀, 2층엔 황제와 황후의 침실과 거실이 있었어요.
◇궁궐 완성 석 달 전 나라는 망하고
1910년 12월 1일 석조전이 완공됐습니다. 그러나 ‘황제와 황후’는 이곳으로 들어와 생활할 수 없었습니다. 석조전이 완공되기 석 달 전인 8월 29일 일본과 강제병합되면서 나라가 망했기 때문입니다. 황제도 황후도 더 이상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대한제국이 건립된 해에 설계를 시작한 궁궐이 그 대한제국이 멸망한 해에 완공된 것입니다.
1907년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뒤로 덕수궁을 거처로 삼고 있던 고종은 “서양식으로 생활하려니 영 불편하다”며 입주하지 않았어요. 고종 입장에선 자신의 근대화 노력이 좌절된 상징으로 보였을지도 몰라요.
석조전에는 정식 이름이 붙지 않았어요. 조선 시대 궁궐의 전각 이름에는 깊은 속뜻이 있습니다. 경복궁의 근정전(勤政殿)에 ‘부지런히 정치함’, 덕수궁의 중화전(中和殿)에 ‘치우치지 않는 바른 성정’이란 의미가 있죠. 하지만 석조전은 그냥 ‘돌로 지은 건물’이란 뜻입니다. 나무와 흙으로 집을 짓던 우리 전통 건축물과 다르다는 의미가 그대로 건물 이름으로 굳어진 셈이죠.
◇좌절된 근대화, 망국, 그리고 분단
이후 석조전은 귀빈 접대나 만찬을 여는 건물로 가끔 사용됐고, 일본에 볼모로 가 있던 고종의 아들 영친왕이 잠시 고국에 올 때마다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1922년 5월 11일 이곳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어요. 영친왕과 일본인 왕비 사이에서 난 장남이자 왕실의 후계자였던 이진이 생후 9개월도 되지 않아 이곳에서 갑작스럽게 구토를 하고 열이 오른 끝에 세상을 떠났던 것입니다.
1930년대 일제는 덕수궁을 공원으로 꾸미면서 석조전 옆에 새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 서관(지금의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을 지어 이왕가미술관을 만들었고, 원래 석조전에는 일본 미술품들을 전시했습니다.
광복 후인 1946년에는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미·소 공동위원회 회의가 석조전에서 열렸습니다. 모스크바 3상회의 합의에 따라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한반도 문제 해결을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신탁통치 문제로 의견 대립을 보인 끝에 1947년 결렬됐습니다. 좌절된 근대화와 망국(亡國)의 한을 품은 장소에 이번엔 분단의 아픔이 더해진 셈이죠. 이후 국립박물관과 궁중유물전시관 등으로 사용되던 석조전은 2014년 복원 공사를 마치고 ‘대한제국역사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스크랩2> 한국최초의 감리교회 정동제일교회

서울정동 감리교회

1884년 여름, 조선을 방문한 맥클레이(Mcclay,R.S.)는 고종으로부터 선교 윤허를 받았다. 당시 맥클레이는 일본에 체류 당시 친분을 맺었던 김옥균(金玉均), 미국 초대 주한미국공사 푸트(Foote,L.H.)와 동반하여 고종에게 선교의 뜻을 전하였다. 고종은 병원과 학교를 먼저 개설하고 점차 선교할 것을 권하였다.
한편, 1884년 12월 4일 발발한 갑신정변(甲申政變)에서 왕실의 외척 민영익(閔泳翊)이 개화당의 습격으로 치명상을 입었다. 이때 선교사 알렌(Allen,H.N)이 그를 치료하였는데, 이 일로 서양인과 기독교에 대한 왕실의 신임이 커졌다. 조선 선교를 위하여 선교사 파송을 염두에 두고 있던 감리교와 장로교에서는 각각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를 보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제물포를 통하여 조선에 첫 발을 디뎠다. 당시 언더우드는 서울에 입성하여 제중원 교사로 활동을 시작한 반면, 아펜젤러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인천에 머물다 1885년 4월 13일 일본으로 돌아갔다. 같은 해 6월 20일, 아펜젤러는 다시 한국을 찾았고 인천에 머무르다가 6월 28일 외국인을 위한 한국 최초의 감리교 예배를 인도하였다. 최초로 풍금을 들여와 찬송과 예배를 봉헌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1889년 서울에 선교의 터를 구축한 감리교 선교사들은 곧 인천 선교에 착수하여 청국 조계 내에 초가집 2채를 구입하여 감리교 서점을 열었다. 하지만 청국 조계가 조선인 거류지와 거리가 떨어져 있는 관계로 전도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891년 6월 아펜젤러가 인천 지역 선교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서울에 머물면서 배재학당에서 강의를 했는데, 주말마다 말을 타고 인천에 와서 전도를 하면서 예배당의 필요성을 느꼈다. 따라서 35.6㎡(10.8평) 규모의 예배당을 건축했다. 바닥에 마루를 깔고 외벽에 석회를 발랐으며 두 개의 방을 둔 이 예배당은 비록 작은 규모였지만 기존 건물을 활용한 것이 아니라 예배를 위해 새롭게 건축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교인이 점차 증가하면서 1901년 내동에 웨슬리 예배당을 새롭게 건립하였다. 1955년 웨슬리 예배당이 멸실되자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예배당 건립이 진행하었고 화재와 철거 등을 반복하다가 1985년 창립 100주년 기념 예배당을 완공하였다. 2012년에 옛 웨슬리 예배당을 복원하였다.
정민교 기자 jmk2580@incheonnewspaper.com <저작권자 © 인천신문>

스크랩3> 구 러시아공사관 - 치욕의 아관파천 현장

사적 제253호. 지정면적 1,102㎡. 1885년 10월에 정동에 개설한 러시아공사관(당시 영사관)의 정식 건물을 짓기 위하여 1890년 8월 그 자리에 초석을 놓았다고 한다.
이 건물은 이른바 아관파천(俄館播遷)의 장소, 즉 1896년 2월부터 1897년 2월까지 고종이 피신하여 있던 곳인데, 파천중 친일 김홍집(金弘集)내각이 무너지고 친러 박정양(朴定陽)내각이 조직되었으며, 서재필(徐載弼) 주재의 독립협회가 결성되는 등 역사적으로 다난한 시대의 증인이 된 건물이다. 건물은 6·25사변으로 대부분 파괴되고 현재 지하층과 탑옥부분만 남아 있다. 구조는 벽돌조 2층으로 한쪽에 탑옥이 있으며, 양식은 사면에 무지개모양의 2연창(連窓)과 요소에 박공머리를 두고 있는 르네상스식 건물이다. 원형이 대부분 손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의의를 감안하여 1977년 9월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에서

구, 러시아 공사관

* 아관파천(俄館播遷): 친러 세력에 의하여 고종 임금이 1896년 2월 11일부터 1897년 2월 20일까지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으로, ‘아관(俄館)’은 러시아 공사관을 말함
서울 구 러시아공사관은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1895년의 이듬해인 1896년 2월 11일부터 1897년 2월 20일까지 고종 임금이 피신하여 국정을 수행하며 대한제국 건설을 구상하였던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 곳이다. 1890년(고종 27)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립되었지만,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파괴되어 현재는 탑 부분만 남은 상태다.
이곳에서 고종 임금은 친위 기병대를 설치하는 안건(1896.6.8.)과 지방 제도와 관제 개정에 관한 안건(1896.8.5.)을 반포하였으며, 민영환을 특명전권공사(特命全權公使)에 임명(1897.1.11.)하여 영국ㆍ독일ㆍ러시아 등 각국에 외교 사절로 머물게 하는 등 일본을 비롯한 열강으로부터 주권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였다.
또한, 환구와 사직 등에 지내는 향사(享祀, 제사)를 모두 옛 역서(曆書)의 예대로 거행하도록 조령(1896.7.24.)을 내리는 등 천자의 독립된 나라임을 알리기 위한 준비를 한 곳이기도 하다. 그 결과 고종 임금은 러시아 공사관을 떠나 경운궁으로 환궁(1897.2.20.)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환구단을 건축하고 환구 의례를 거행한 후 황제로 즉위하여 대한제국을 선포(1897.10.12.)하기에 이르렀다.
* 환구단은 문화재 지정 시 문화재위원회에서 한글 표기는 고종 황제가 제사를 지낸 1897년 10월 12일 자 ‘독립신문’ 기록에 따라 ‘환구단’으로, 한자 표기는 <고종실록>에 전하는 바와 같이 圜丘壇으로 하기로 함

심슨기념관


돈의문과 인왕산

경교장
홍난파가옥
월암공원

테일러 가옥ㆍ딜쿠샤
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2000659

3.1운동 알린 테일러 가옥 '딜쿠샤' 개관…예약 관람

서울시대표소통포털 - 내 손안에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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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 거룩한 밤

커피여과지 노래그림 2020. 12. 24. 21:22 Posted by 문촌수기
고요한 밤(Silent night) 노래그림

고요한 밤 거룩한 밤(silent night)은 해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불리는 캐럴 송 중 하나다.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를 경축하며, 새해 인사도 드릴 겸 노래 그림을 그린다. 2021년은 새해는 소띠해. 음양 오행설에 의하면 白(흰색)의 운이 따른다고 하니, 반칙과 거짓과 질병이 없고 평화롭고 깨끗한 세상이 올거라 믿으며 흰송아지를 그렸다. 딸 아이네 반려묘, 나나 순이도 함께 아가의 탄생을 축하한다.
온 세상에 평화와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도드린다.

1818년 프란츠 그루버(Franz Xaver Gruber)가 작곡하고, 오스트리아의 오베른도르프(Oberndorf bei Salzburg)에서 요제프 모어(Joseph Mohr)가 가사를 붙였다.

*하모니카 연주 > HOHNER 다이아토닉, 크로스오버 G key

고요한밤.m4a
2.35MB
고요한밤G.m4a
2.10MB

우리말 노래> 가톨릭식 번역본

1절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만상이 잠든 때/홀로 양친은 깨어있고 평화 주시러 오신 아기/평안히 자고 있네 평안히 자고 있네
2절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하늘의 천사가/기쁜 소식을 알려주니 착한 목동은 기뻐하네/구세주 나셨도다 구세주 나셨도다
3절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천주의 성자가/인간 모습을 취하시니 우리 구원을 알림인가/우리 주 강생했네 우리 주 강생했네
4절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하느님 사랑을/오늘 우리게 베푸시니 천하만민은 화해하네/지극한 사랑이여 지극한 사랑이여

"Stille Nacht, heilige Nacht"
어니스틴 슈먼하인크가 부르는 소프라노 솔로
https://youtu.be/bXMM24n1yno Bb

https://youtu.be/DKz1eOyIfz8

Portrait by Sebastian Stief (Hallein,1846), Silent Night Museum, Hallein

Franz Xaver Gruber(1787-1863)
Joseph Mohr (1792-1848)


이 노래의 발상지는 오스트리아의 음악도시 잘츠부르크에서 약 20km 떨어진 오베른도르프(Oberndorf)라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이 마을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국경에서 자동차로 약 20분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다.

노래의 발상지가 된 성 니콜라우스 교회

1800년대 초 이 마을에 요제프 모어(Joseph Mohr)라는 가톨릭 교회 사제와 프란츠 그루버(Frantz Gruber)라는 학교선생이 있었다.
음악의 도시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모어는 이 마을의 성 니콜라우스 교회에서 1817년부터 1819년까지 사제로 재직했다. 그루버는 이웃 마을인 아른스도르프에서 1807년부터 1829년까지 학교선생으로 있으면서 성 니콜라우스 교회에서 오르간 반주를 맡아 일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얼굴을 자주 맞대며 일하는 동안 자연히 가까워졌다.
1818년의 크리스마스 축제를 며칠 앞두고 성당에 있는 오르간이 고장이나 고칠 수가 없었다. 당시 26세인 모어 신부는 그루버 선생에게 축복이 가득한 성탄 전야에 모여들 마을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무엇인가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는데 탈이 났다. 이에 대해 그루버는 모어 신부가 잘 치는 기타 반주로 곡을 만들어 보자고 해서 이 제안은 곧 실행에 옮겨졌다.
모어 사제는 모든 사람들이 조용하게,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기로 했다. 그는 그 동안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느꼈던 감정을 토대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Stille Nacht Heilige Nacht)"으로 시작되는 노랫말을 만들었다.

[1818 년 추운 크리스마스 이브에 모어는 2 년 전에 쓴 시를 가지고 이웃 마을 인 아렌스도르프(Arnsdorf)에있는 친구 그루버를 방문하기 위해 오베른도르프(Oberndorf)에 있는 그의 집에서 3km를 걸어갔다 .
그는 불과 몇 시간 거리에 있는 크리스마스 이브 자정 미사를 위한 캐롤이 필요했고, 교회의 합창단 마스터이자 오르간 연주자이기도 한 그의 친구 그루버가 그의 시에 가락을 맞출 수 있기를 바랐다. 그루버는 모어의 "고요한 밤"에 단 몇 시간 만에 멜로디를 붙였다.
이 노래는 자정 미사에서 기타와 합창단을 위해 간단한 편곡으로 불려졌다. "고요한 밤"의 기원과 관련하여 수 년에 걸쳐 다양한 전설이 생겨 났지만, 가장 간단하고 가능성 있는 설명은 모어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악기인 기타로 연주 할 수있는 오리지널 노래를 원했던 것 같다.
몇 년 안에 캐롤의 편곡이 잘츠부르크 대교구의 교회에 나타 났고 Ziller Valley의 포크 가수들이 유럽을 여행하면서 작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노랫말은 6절로 되어 있는데 1절은 다음과 같다.

Stille Nacht, heilige Nacht!
Alles schläft, einsam wacht
Nur das traute hochheilige Paar.
Holder Knabe im lockigen Haar,
Schlaf in himmlischer Ruh',.
Schlaf in himmlischer Ruh'.

모어 사제는 이 노랫말을 성탄전일인 12월 24일 그루버선생에게 전하면서 두 명의 솔로, 그리고 기타반주를 곁들인 합창에 맞도록 곡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였다. 노랫말을 받고 난 그루버는 그의 탁월한 음악 소질을 발휘하여 그날 밤으로 곡을 만들었다. 성탄전일의 조용하고 거룩한 뜻을 담고 있는 가사에 어울리는 곡이었다.
모어 사제는 이 곡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 노래는 두 사람의 공동노력으로 오베른도르프의 성 니콜라우스 교회에서 곡을 만든 당일인 12월 24일 저녁예배 도중에 처음으로 불렸다. 물론 참석한 신도들로부터 많은 갈채를 받았다.
모어 사제는 기타를 치면서 테너를 맡고, 그루버 선생은 베이스를 맡았으며, 교회합창단이 후렴을 불렀다. 그 후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매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이 교회에서 불리면서 점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생 중인 191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벨기에의 이프르에서 영국과 독일 간의 전쟁중 독일군의 한 병사가 크리스마스 캐롤인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불렀는데, 이를 들은 영국 군사들이 환호하자 독일군이 노래를 다 끝마친 후 독일군 장교가 나와 영국군 하사와 악수를 하여 정전을 맺었다. 이를 크리스마스 정전이라 한다.
1937년 8월 15일 성 니콜라오교회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노래를 만든 모어 신부와 그루버 두 사람을 기념하기 위해 "고요한 밤 성당(Stille Nacht Kapelle)"으로 명명되었다.

Silent Night Chapel in Oberndorf, Austria

한편, 성 니콜라우스는 산타클로스의 원형이기도 하다. 라틴어로 성 니콜라우스를 뜻하는 상투스 니콜라우스(Sanctus Nicolaus)를 네덜란드어 로는 산테 클라스라 불렀는데, 이 발음이 영어식으로 변형되어 오늘날의 산타클로스가 된 것이다.

Instrumental version played on piano by Kevin MacLeod in 2000

Silent night! Holy night!
All is calm, all is bright
Round yon virgin mother and child!
Holy infant, so tender and mild,
Sleep in heavenly peace!
Sleep in heavenly peace!

Silent night! Holy night!
Shepherds quake at the sight!
Glories stream from heaven afar,
Heavenly hosts sing Alleluia!
Christ the Saviour is born!
Christ the Saviour is born!

Silent night! Holy night!
Son of God, love's pure light
Radiant beams from thy holy face
With the dawn of redeeming grace,
Jesus, Lord, at thy birth!
Jesus, Lord, at thy birth!

Oberndorf bei Salzburg 는 잘츠부르크 시에서 북쪽으로 약 17km (11 마일) 떨어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주에 있는 마을이다.

Oberndorf bei Salz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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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여과지 노래 그림 한 장 그리기위해
커피를 갈아서 내린다.

커피를 마신다

노래를 듣다.

노래를 부르며 추억에 젖는다.
광화문 연가와 옛사랑
그리운 마음에 그림이 그려진다.
커피여과지 물들다.

커피 여과지 씻다.

여과지 말리다. 펴다.

그리다.

낙관을 찍는다.

다리미로 다린다.

종이 박스를 오려서 액자로 삼는다.

스프레이 접착제로 풀칠한다.

듣지않는 LP을 골라내어 액자로 삼았다. 그림 속에서 노래가 흘러 나온다.


중심을 잡고 조심스럽게 붙인다.
전시하고 감상하며 다시 노래부른다.
노래 사연과 그림 속 이야기를 추억하며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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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지나면 잊혀지나 했는데 지워지지 않는구나. 그래도 생각하지 않고 살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밀려 오는 생각은 어쩔 수가 없구나. 그래도 차마, 입에는 담지 못할 것 같았는데....차마 그릴 수 없는데...

조동진 <제비꽃>, 커피여과지 노래그림

다행히 아무도 울지 않았다. 모두가 잠 듯한 조용한 소아암병동을 남자는 혼자 걷고 있다. 복도벽에 붙은 아기 천사 그림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한참을 바라보더니 그림에서 조심스럽게 아기 천사의 날개를 뜯어내고 있다. 그제서야 안심한 듯 남자는 복도를 지나 돌아간다. 병실의 아이는 평온히 잠들어 있고, 묵주를 들고 기도하던 마리아는 아이 옆에 엎드려 있다.

조동진의 <제비꽃> 사연이야 어쨌든, 나는 이 노래를 세상 먼저 떠난 모든 아기들을 위해 부른다. 점점 야위어 가고 아주 한밤 중에도 깨어있기를 바랐던지 잠들지 않은 너. 하늘 높이 날으는 작은 새가 되어버린 나의 어린 아기에게 이 그림과 노래를 바친다. 이 노래 덕분에 나의 아이는 작은 새가 되었고, 제비꽃이 되었다. 잊어야 하는데 잊혀지지 않아 나의 작은 소녀를 그린다. 너는 말 한마디 없이 새털보다 가벼운 미소를 건내주었다. 그게 마지막이었지. 널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와 노래 뿐이구나.
'음~ 음~ 음~ 음~ ' 다하지 못 한 말, 다 할 수 없는 말은 이렇게 신음한다.

'제비꽃' 하모니카 연주
: (호너 다이아토닉, 마린밴드 Bb
)

제비꽃ㆍ반주Bb.m4a
4.40MB

 조동진의 <제비꽃> 노랫말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음~음~음~음~~

내가 다시 너를 만났을 때
너는 많이 야위었고
이마엔 땀방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음~음~음~음~~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 때
너는 아주 평화롭고
창 너머 먼 눈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 있고 싶어

음~음~음~음~~


기독교에서 제비꽃은 장미, 백합과 더불어 성모님께 바치는 '성실겸손'의 꽃이란다. 조동진의 <제비꽃> 노래를 부르며 내가 떠올린 꽃말은 '이루지 못한 사랑'이며, '꽃 피지 못한 삶'이다. 그래도 다행히 너는 '영원한 나의 소녀'가 되었다.


https://youtu.be/SAK_LuLpf8s


(스크랩), 조동진의 <제비꽃> 사연
조동진은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청맥, 1991)에서 '제비꽃' 시를 쓰게 된 내력을 밝힌다. 그는,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는 봄바람 속에서 짧게 흔들리고 있는 그 꽃을 발견하게 되면 반가움과 함께 왠지 애처로운 생각도 든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꿈 많은 젊음이 갖는 절망감을 보는 듯해서 더욱 그러하다"고 한다. 이 시의 제목을 '제비꽃'이라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제비꽃'(1985)을 불렀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제비꽃의 실제 모델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물론 내 노래 속의 등장인물은 내가 살아오면서 실제로 만났던 사람들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중략) 특히 〈제비꽃〉을 지으면서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여성 이미지는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 있던 루이제 린저의 소설 《생의 한 가운데》의 니나 붓슈만과 프랑스 작가 앙드레 슈발츠-바르트(Andre Schwarz-Bart)의 《내 이름은 고독(A Woman of Named Solitude)》에 나오는 혼혈 노예 '솔리튜드'였다. 아마도 세상과 맞서며 끊임없이 자신과의 투쟁을 벌이는 두 여주인공에게서 상당한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오래 전부터 우리와 닮은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꿈과 사랑, 슬픔과 좌절, 그러고는 조금씩 달관해 가는 그 성숙 과정을 노래해 보고 싶었고, 그래서 조금 욕심을 내어본 노래가 〈제비꽃〉이다.

-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청맥, 1991)

 그는 '제비꽃' 시를 쓰면서 니나 붓슈만과 솔리튜드를 생각했다. 이 시는 동화처럼 서사를 갖추고 있고, 한 소녀의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의 말처럼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꿈과 사랑, 슬픔과 좌절, 그러고는 조금씩 달관해 가는 그 성숙 과정을" 노래에 담았다고 할 수 있다.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조동진 또한 앞글에서 살핀 안동 대곡분교 홍성희(3학년), 김춘옥(2학년)과 마찬가지로 활짝 핀 제비꽃에서 '웃음'("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을 읽는다. 그런데 홍성희와 김춘옥이 제비꽃의 웃음을 직관으로 단순하게 '방글방글' '생글생글'로 붙잡았다면, 조동진은 그 웃음에서 '한 인간의 인생'을 본다. 1연에서는 '꿈과 사랑'(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2연에서는 '슬픔과 좌절'(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3연에서는 '달관'(창 너머 먼 눈길)의 웃음으로 말이다. 그는 제비꽃의 웃음에서, 꿈과 희망을 보고, 힘들지만 그래도 버텨내겠다는 의지를 읽고, 지난날이 한없이 그립지만, 그래서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 있고" 싶지만, 이제는 지금을 긍정하는 달관의 웃음으로 노래한다. 연마다 있는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에서 그 웃음은 저마다 결이 다른 웃음이고,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세상을 알고, 살아가고, 이제 곧 세상을 떠날 때의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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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 기러기와 찔레꽃

 

이연실의 <찔레꽃>, 이 노래는 동요와 국민 가요의 범주를 넘어서 우리의 민요가 된 것 같다.

<찔레꽃>/ 이연실 가사ᆞ노래 /박태준 작곡 /1972년
“엄마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 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려오시네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이연실의 찔레꽃 https://youtu.be/iwBTngQuq9I

이연실의 노래 따라 하모니카 부른다. 괜한 눈물이 난다. 엄마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찔레꽃F이연실.m4a
3.08MB

 

난 어릴 적부터 지금 껏 '엄마 일'을 '엄마 길'로 듣고 불렀다. '엄마 길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엄마 길이 어디길래, 찔레꽃이 피었을까? 무슨 일이길래, 엄마 혼자서 깊은 밤에 하얀 발목 바쁘게 내려오실까? 숲이구나. 산이구나. 타박네처럼 울엄마 젖먹으러 찾아가는 산길이구나. 돌아가신 엄마가 나의 꿈 길을 찾아 내려 오시는 그 길이구나.

돌아가신 엄마 산소를 찾아 올라가는 숲에는 찔레 나무가 많다. 찔레 가시에 찔리고 걸릴까봐서 낫으로 쳐가며 산소를 오른다.
나이 들어 다시 읽어본 노래는 '엄마 길'이 아니라, '엄마 일 가는 길'이었다. '엄마 일'이 뭘까? 물론 살림살이다. 자식키우고 식구들 먹이는 일이었다. 자식 크는 재미와 사랑으로 향기롭지만, 가난하고 고단한 살림에 시린 가시가 더 많았던 삶이었다. 그렇게 엄마는 찔레꽃을 닮으셨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워 계신 산소는 깊은 숲속 산중턱에 있다. 숲 길을 오르면 엄마 젖냄새가 난다.
엄마 아버지는 나비가 되어 찔레꽃을 피운다. 엄마 아버지는 돌아가셨어도 숲을 살리고 계셨다. 이제 '엄마 일'은 나의 일이 되었다. 자주 찾아뵙고 돌보는 일이다. 그런데 그 일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그리움을 달래려고 '엄마 일'과 찔레꽃을 그린다.

 

숲과 찔레꽃, 커피여과지에 수채물감, 색연필, 파스텔

 

 

 

숲숲숲, 울엄마 잠자리

 

 <찔레꽃> 노래의 원래 제목은 <가을밤>이다. 찔레꽃은 봄 여름에 피는데도 <가을밤>이라고 제목을 한 것은 <가을밤>이라는 원곡에서 곡조를 그대로 가져오고 개사하였기 때문이다.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가을밤>의 노랫말에는 찔레꽃이 없다. 엄마 그리움만 한결 같다.

<가을밤> / 이태선 작사 / 박태준 작곡 /1929년
“가을밤 외로운밤 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산길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가을밤 고요한 밤 잠 안오는 밤
기러기 울음소리 높고 낮을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https://youtu.be/ClDpDYgvQcM

https://youtu.be/69UTftrTK8k

<가을밤>보다 먼저 엄마 그리움을 노래한 같은 곡조의 노래가 또 있었다. 즉 <찔레꽃>, <가을밤>의 윈조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인 <기러기>이다.
(공식적으로는 윤극영의 <반달>이 최초의 동요이다.1926년에 발표한 동요집 《반달》 속에 수렴된 반달을 1924년 10월 12일에 만들었다고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대구가 동향인 윤복진과 박태준이 만든 곡이다.

<기러기> /윤복진 작사 /박태준 작곡 /1920년
"울 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길을 잃은 기러기 날아갑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넓은 하늘로
엄마 엄마 찾으며 흘러갑니다.”

오동잎이 우수수 지는 달밤에
아들 찾는 기러기 울고갑니다.
'엄마엄마' 울고간 잠든 하늘로
'기럭기럭' 부르며 찾아갑니다"

 

 

https://youtu.be/rEz-0l6-IRw

https://youtu.be/ncL1s20Uog0

이 동요가 <가을밤>으로 개사된 이유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해에 작사자 윤복진이 월북을 했기 때문이다.

 

가을밤 기러기, 커피여과지에 수채물감

 

그런데 <가을밤>의 1절 가사는 1929년 12월 7일자 동아일보에 이정구라는 사람의 이름으로 실려 있었다. 이정구도 월북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쓰지 못하고 이태선의 이름이 작사가에 오르게 된 것이다.

가수 이연실은 1972년, <가을밤>에 새로운 가사를 붙여 <찔레꽃>을 발표했다. 그런데 < 찔레꽃> 가사도 이연실의 창작물은 아니었다. 1930년 이원수(고향의 봄의 작사자)가 지은 동시가 원작이었다.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 언니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배고픈 날 따먹는 꽃이라오. / 광산에서 돌 깨는 언니 보려고/ 해가 저문 산길에 나왔다가/ 찔레꽃 한잎 두잎 따 먹었다오/ 저녁 굶고 찔레꽃을 따 먹었다오.”

여기서 찔레꽃의 모티브를 가져온 이연실은 더욱 가슴을 저미는 가사로 만들어 청아하면서도 구슬픈 목소리에 실었다.

+이야기 더하기

 

 

<찔레꽃> 여섯 송이를 기르는 노랑나비.
20여년 전이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가슴에 喪章(상장)을 달고 학교에 출근을 하니, 우리 반 한 아이가 "왜 나비 리본을 달았어요?"물었다. 그래서 대답해주기를,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이제 나비가 되셨구나." 이후, 노랑나비를 보면 돌아가신 어버이라 믿게 되었다.

 

 

<기러기> 동요 속의 오동잎을 그리다가, 새삼 알게 되네. 화투에 11자, 똥광 똥쌍피, 이 똥 이파리가 오동(梧桐)나무 잎인 걸, 桐(동)이란 것을! 딸을 낳으면, 시집갈 적에 장롱짜주려고 마당에 심었다는 그 나무. 노래 그림 그리다가 새삼 배우는 게 많아서 재밌다.

 

 

<가을밤> 그림 속 억새밭에 분홍바늘꽃을 그렸다. 집근처 공원에 많이 피었는데 담장가에 심으면 참 예쁘겠다. 암술 끝에 십자가를 달고 있는 모습이 신비롭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여름을 달리면 평원에 분홍바늘꽃과 자작나무의 군락지가 펼쳐진다 한다.

 

 

https://youtu.be/CVKIG51eij0


영화, <하모니>에서 찔레꽃
https://youtu.be/AEeSbQ2c2PQ

https://youtu.be/Syret-0gHT4

제주 4.3 추념식에서 가수 이은미가 부른
<찔레꽃>과 <가을밤 >
https://youtu.be/gipsDe4Cc9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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