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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에서 읽는 실록이야기27

광릉숲길 신혼 때 식구들과 그리고 퇴직하고 작년에 친구들과 광릉숲길을 차로 지나갔다. 언젠가 이 길을 걸어가고 싶었다. 남양주 축령산자연휴양림에 숙박하며, 당일은 홍유릉, 사릉을 탐방하고 이튿날은 광릉을 탐방할 계획을 세웠다. 봉선사 주차장에 주차하고 드디어 광릉숲길을 걸어 세조의 능 광릉을 찾아간다. 보라색 빵집이 눈에 띠었다. 점심이 어중간할 것 같아서 들어갔다.나는 뜨아를 주문하고, '당신은 뭐 마실래?'라며 아내에게 물었다. 바리스타 아줌마가, "아휴, 어쩜! 다정하게도 물으시네." 다정한 말한마디와 칭찬한마디로 카페 안이 환해진다. 아내가 더 반짝! 좋은 생각이 들었는지 '치킨당근라페 샐러드'를 브런치로 먹자며 주문한다. 비건베이커리라 관심을 더하며 이것저것 더 묻고 바게트, 치아바타, 베이글 등 포장.. 2025. 11. 15.
세조의 광릉 광릉(光陵)조선 7대 세조와 정희왕후의 능ㆍ최초의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ㆍ최초로 석실과 병풍석을 만들지않은 능ㆍ유일하게 향어로가 없음ㆍ유일하게 하마비가 있음나에게 수양대군 세조는 특별히 유감이다. 1453년(단종 1년)에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고명대신 영의정이신 황보 인(皇甫仁), 우리 할아버지를 죽이고 멸문지화를 안겨 준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후 1698년(숙종 24년)에 단종이 복위되고 영조 때에 완전히 신원되어 영조가 1758년 충정(忠定)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1791년(정조 15) 장릉(莊陵, 단종릉) 충신단(忠臣壇)에 배식(配食)됨으로써 충신의 명예를 얻고 후손들은 300여년 만에 세상에 고개들고 살게 되었다. 내 본향 경북 영천의 임고서원(臨皐書院), 내 고향 경북 구룡포읍의 광남서원.. 2025. 11. 13.
남양주 사릉 남양주 사릉 (南楊州 思陵)국가지정유산, 사적 제209호)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로 180사릉(思陵)조선의 왕릉 중 유일하게 사가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조선 6대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의 능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宋氏)(1440~1521)는 여량부원군 송현수의 딸로 1454년(단종 2)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다음 해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넘겨주자 의덕왕 대비 (懿德王大妃)가 되었다. 그러나 1457년(세조 3) 단종복위운동이 실패하자 단종은 노산군(魯山君)으로 신분이 낮아져 영월로 유배되었고, 정순왕후도 군부인으로 신분이 낮아졌다. 궁을 나온 정순왕후는 현 동대문 밖에 있는 정업원*https://munchon.tistory.com/m/1009> 낙산자락 비우당 자주동샘■ 낙산정상에서 북으로 바라본 전경.. 2025. 11. 10.
순종과 순명황후, 순정황후의 유릉 홍유릉 능역의 정문으로 왼쪽은 고종의 홍릉이며 오른쪽은 순종의 유릉이다. 홍릉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합장릉이고, 유릉은 순종과 순명, 순정황후의 동봉삼실 합장릉이다. 동봉삼실릉(同封三室陵)은 하나의 봉분 안에 세 분의 능을 합장한 형태를 말하며,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과 두 황후(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의 무덤인 유릉(裕陵)**이 유일한 사례이다. 겉보기에는 하나의 단릉처럼 보이지만, 안에는 세 개의 방이 마련되어 있다.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하나의 봉분에 세 분을 모신 동봉삼실릉은 대한제국의 '유릉'뿐입니다.1966년 순정효황후가 승하한 후 비어 있던 서쪽 방에 안장되면서 동봉삼실릉의 형태가 갖추어졌다.병풍석과 난간석은 갖추었지만, 12지신상 대신 모란무늬가 새겨진 것이 특징이다.유릉(裕陵)은 .. 2025. 11. 9.
고종과 명성황후, 홍릉(洪陵) 남양주에는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릉 40기 중, 4기가 있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홍릉, 순조와 순명ㆍ순정황후의 유릉, 단종비 순정왕후의 사릉, 세조와 정희왕후의 광릉이 있다.축령산 자연휴양림에서 숙박하기로 하고 1박 2일에 걸쳐 이들 왕릉을 탐방하고 가을 단풍 숲길을 향유했다.오전에 먼저 찾은 홍릉과 유릉, 같은 담장안에 있었다. 지금껏 찾아 다녔던 여러 왕릉과 달리 홍릉 유릉은 황제릉으로 능조성의 형식이 크게 달랐다. ■ 황제릉이 왕릉과 다른 점은?ㅡ 제향공간인 정자각이 일자형 침전ㅡ 침전 안에 어탑과 당가를 갖춤*어탑(御榻): 임금이 앉는 평상이나 침상.*당가(唐家): 침전 안에 설치하는 닫집(지붕 모양으로 만든 장식물)ㅡ 왕릉의 능침영역에 있던 문석인 무석인 등 동물석을 침전 앞에 배치ㅡ 석양, 석호.. 2025. 11. 8.
김포 장릉 21대 대통령선거일.아침 일찍 집 앞의 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 들러 투표하고 김포의 장릉을 찾았다. 동탄에 살 적에는 융건릉을 종종 찾았는데 부천에 와서는 집에서 3, 40분이면 갈 수 있는 김포 장릉을 2년을 넘겨서 이제서야 찾아간다. 김포시청 뒤 산, 도심에서도 가까워서 시민들에게 휴식의 장소가 되고, 숲도 있고 호수도 있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자연생태 학습의 장으로 쉽게 찾아갈 수 있겠다 싶다. 아니나 다를까? 지팡이를 짚은 어르신, 아이와 손을 잡고 걷는 이들, 유모차를 탄 아기, 하물며 전동 휠체어를 탄 사람들도 능을 찾아가는 숲길에서 볼수 있었다. ■ 능주 이야기원종과 인헌왕후는 누구?원종(元宗, 1580~1619)은 조선 제14대 왕 선조宣祖(재위 1567~1608)와 인빈 김씨 사이에서.. 2025. 6. 3.
단종의 장릉만의 특별함 처가 식구들과 함께 한 영월 관광, 마지막 행선지가 단종의 장릉이다. 먼저, 조선왕조의 가장 슬픈왕, 단종 약사를 정리해본다. 단종 약사 ● 출생 : 1441년(세종 23)에 세자(문종)과 세자빈(현덕왕후) 사이에서 출생 ● 어머니는 난산으로 3일 만에 죽고, 할머니뻘인 세종 후궁 혜빈 양씨가 양육함 ● 8 세 : 1448년(세종 30) 세손에 책봉됨. 조선왕실 최초의 왕세손임 ● 10세 : 1450년(세종 32) 세종 승하, 문종 즉위. 단종은 왕세손에서 세자로 책봉됨 ● 12세 : 1452년(문종 3) 문종 승하, 단종 즉위. ● 13세 : 1453년(단종 1) 10월, 수양대군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장악, 안평대군 사사, 고명대신 영의정 황보 인, 좌의정 김종서, 우의정 정 분 등 피살 ● 14세 :.. 2023. 11. 27.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국가지정 명승 제50호. 어린 단종이 유배되어 온 곳, 육지 속의 섬과 다름없는 청령포(淸泠浦)를 다시 찾았다.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로, 2008년 12월 국가지정 명승 제50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1456년 박팽년, 성삼문 등 사육신들의 상왕 복위의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되어 모두 죽음을 당하는 사육신 사건이 일어나고 다음해인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첨지 중추원사 어득해가 거느리는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원주, 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 2023. 11. 23.
정숙옹주 태실 동탄호수공원 내에 조선시대 대 임금, 선조의 왕녀인 정숙옹주 태실지가 있다.정숙옹주 태실비ㆍ貞淑翁主 胎室碑ㅡ 화성시 유형문화재 제17호 태실은 왕실에서 왕자ㆍ공주ㆍ옹주가 태어나면 길지를 선정해 태를 봉안하던 곳이다. 정수옹주 태 실비는 전면에 왕녀(王女) 아가씨(阿只氏) 태실(胎室)이라고 새겨져 있다. 그리고 후면에는 "황명 만력 십육년 칠월 십일일 월시립(皇明 萬歷 十六年 七月 十一日 乙時立)이라 새겨져 있어 조선 선조 21년(1588)에 비를 세웠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선조의 왕녀로 1587년에 태어난 정숙옹주의 태실비로 판단된다. 태실비는 크게 비석의 받침돌, 몸체, 머리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비석의 머리 부분은 둥근 반원형으로 연잎과 연줄기가 장식되어 있고, 위에는 연꽃 봉오리가 있다. 받.. 2021. 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