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더럽히는 것은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It is not what enters one's mouth that defiles that person; but what comes out of the mouth is what defiles one.- 마태오복음 15,11)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음식이고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말이다. 무엇을 먹고, 어디에 사느냐는 의식주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보고 사람 됨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가난하고 부유할 때의 처신을 보면 사람 됨을 알 수 있다. 위기에 빠지거나 궁한 처지가 되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군자는 그럴 때일수록 심지는 굳어지고, 처신은 더욱 의연해진다.

15 02 在陳絶糧, 從者病, 莫能興. 子路慍見曰: “君子亦有窮乎?”
子曰: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재진절량, 종자병, 막능흥.
자로온현왈: “군자역유궁호?”
자왈: “군자고궁, 소인궁사람의.”)

(공자가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에 계시면서 양식이 떨어지니 따르는 자들이 병들어 일어나지 못하였다. 자로가 성난 얼굴로 공자를 뵙고는 "군자도 궁할 때가 있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궁하며 더욱 단단해지고, 소인은 궁하면 넘친다.(비열하고 방종하여 못하는 짓이 없다.)"

When he was in Chan, their provisions were ex- hausted, and his followers became so ill that they were unable to rise
Tsze-lu, with evident dissatisfaction, said, ‘Has the su- perior man likewise to endure in this way?’
The Master said, ‘The superior man may indeed have to endure want, but the mean man, when he is in want, gives way to un- bridled license.’

군자고궁

+ <공자성적도>~재진절양(在陳絶糧) 자세히
공자가 수난당한 이야기의 절정은 <재진절양(在陳絶糧):진나라에서 식량이 떨어지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자가 초(楚)나라 소왕(昭王)의 초빙을 받고 가는 중이었다. 초나라를 가려면 진(陳)나라와 채(蔡)나라를 지나가야만 했다. 진나라와 채나라는 공자가 초나라에 입국하는 것을 막으려했다. 공자가 초나라에 등용되어 강국이 되면 인접한 두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군사를 보내 공자 일행을 포위했다. 시간이 흐르자 식량이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제자들 중에 병에 걸린 환자가 속출했다. 그러나 공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한 모습으로 시를 읊고 거문고를 연주했다. <재진절양>은 그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제자들에 둘러싸인 공자가 땅바닥에 앉아 있다. 공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평소와 다름없이 제자들에게 수업을 하고 있다. 공자가 시를 읊자 제자들이 진지한 자세로 듣는다. 그들을 포위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저 한가롭게 소풍 나온 사람들의 야유회 장면을 그린 것 같다. <재진절양>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운명을 향해 고개 숙이는 일이 없는 철학자의 평정심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런 공자를 제자라고 모두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위기에 처해서도 한가롭기만 한 스승을 보고 화가 난 자로(子路)가 공자께 툴툴거렸다.
“군자도 곤궁해질 때가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군자는 곤궁함을 굳게 버티지만, 소인은 곤궁해지면 아무 짓이나 한다.”

『논어』「위평공」편에 나오는 얘기다. 이 상황에 대해 『여씨춘추』에는 좀 더 자세히 묘사돼 있다. 자로와 자공(子貢)이 곤궁함에 대해 불평하자 공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곤궁함은 ‘쌀밥이 떨어지고 명아주 국을 끓일 쌀가루가 없는 것’이 아니라 ‘군자가 도에 궁색해진 것을 일컫는 말’이라고 새롭게 정의한다. 지금 공자가 ‘인의(仁義)의 도를 껴안음으로써 안으로는 자신을 살펴봐서 도에 꺼림칙한 것이 없고 어려운 일을 당해 덕을 잃지 않았으니’ 지금의 상황은 결코 곤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얘기를 들은 자공은 지금까지 ‘하늘이 얼마나 높은 지도 몰랐고, 땅이 얼마나 깊은지도 몰랐다’는 얘기로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결국 이 때의 수난은 자공이 초나라에 알림으로써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펴 본 일연의 사건들은 공자가 69세 때 고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14년 동안 계속 됐다. 그러나 공자는 천하에 도가 행해지고 봉건적인 예악질서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자신의 신념을 결코 저버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의 이상과 목적은 이상적인 봉건질서의 주창이었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이 이상적인 사회라 여겼다.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공자는 끊임없이 성군(聖君)을 찾아다녔고 정치적 출구를 모색했다. 공자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했다. 이것은 공자가 유랑 중에 견뎌야만 했던 또 다른 환난이었다.

*이 글은 '주간조선 2284호에서 가져왔다.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8&nNewsNumb=002284100025

군자와 소인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재진절양

weekly.chosun.com


+ <세한도에서 읽는 군자고궁>

추사의 歲寒圖를 보면, 군자고궁을 읽을 수 있다. 歲寒의 궁핍한 상황 속에서도 지조와 의리를 잃지 않는 松柏의 固窮을 그렸다. 송백은 자신의 모습이요. 제자 우선(이상적)의 모습이다. '세한송백' 은 <논어>0927에서 가져왔다.

김정희, 세한도 일부

https://munchon.tistory.com/m/1543

0927 歲寒孤節의 아름다운 이야기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사연이다. "우선이, 이것 보시게. 완당이.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날이 차가워진 이후라야 소나무 측백나무는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고 하였다. 송백은 사철을 통

munchon.tistory.com

댓글을 달아 주세요

0927 歲寒孤節의 아름다운 이야기

논어와 놀기 2021. 3. 20. 15:08 Posted by 문촌수기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사연이다.
"이것 보시게. 우선(추사의 제자, 이상적의 호)이, 완당이 보냄.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날이 차가워진 이후라야 소나무 ㆍ측백나무는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고 하였다. 송백은 사철을 통하여 시들지 않는 것으로서, 날이 추워지기 전에도 하나의 송백이요 날이 추워진 후에도 하나의 송백이다. 성인이 특히 세한을 당한 이후를 칭찬하였는데, 지금 자네는 이전이라고 더한 것이 없고, 이후라고 덜한 것이 없구나. 세한 이전의 자네를 칭찬할 것 없거니와, 세한 이후의 자네는 또한 성인에게 칭찬 받을 만한 것 아닌가? 성인이 특별히 칭찬한 것은 한갓 시들지 않음의 정조와 근절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또한 세한의 시절에 느끼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
-
완당(阮堂) 노인(老人)이 쓰다.

09 28 子曰: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彫也.”
(자왈: “세한, 연후지송백지후조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알 수 있다."

The Master said, ‘When the year becomes cold, then we know how the pine and the cypress are the last to lose their leaves.’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추사의 <세한도>


이야기+
일년 중 가장 춥다는 세한(歲寒)의 절기도 지나고 봄이 왔다. 남녘의 꽃향기를 실려오지만 그래도 봄바람은 아직 차다.

참으로 오랜만에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왔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보고 싶어서였다. 많이 봐 온 그림이지만 직접 내 눈으로 오리지널을 친견한다는 것은 정말 설래는 일이다.

추사의 오리지널 세한도와 앞뒤로 붙인 두루마리


<세한도>는 제주도에 유배 온 지 5년이 지난 추사(秋史) 김정희가 나이 59세(1844년) 때 그린 것이다.
역관(譯官)이었던 제자 이상적(李尙迪, 1804~1865)에게 고마움을 전하고자 그려 준 그림이다. 추사는 자신의 처한 상황과 제자의 한결같은 마음을 歲寒 松柏을 그렸으며, 그 사연을 기록하였다.

강하면서도 수려한 예서체로 '세한도(歲寒圖 )' 쓰고, 그 오른쪽에 '우선시상(藕船是賞)’과 ‘완당(阮堂)’이라고 썼다. ‘우선이, 이것 보시게. 완당이’이라는 뜻이다.

‘우선(藕船)’은 제자이면서 통역관인 이상적의 호이다. 그림과 글씨를 감상하다가 눈길을 왼쪽으로 가면서 자칫 놓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꼭 눈여겨 보고 가야할 곳이 있다. 바로 가장 오른쪽 하단의 붉은 색 ‘장무상망(長毋相忘)’ 유인(遊印) 낙관(落款)이다.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으로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정을 새겼다. 나에게도 이렇게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며 약속한 제자가 있었던가? 스승이 있었던가? 그런 친구 있었던가?

아호인, 완당
성명인, 정희
유인, 長毋相忘
아호인, 추사

뤼순 옥중에서 안중근 의사, 유묵 세한연후
~ '後' 자를 빠트리고 써서, 나중에 아니 '不'자가 작게 삽입되었다. 뜻은 다르지 않는다.


세한연후의 뜻을 새기고자 휘호하여 가까이 두었다.


세한연후의 '상록수'를 부르며 그리다.
"저 들에 푸르른 솔 잎을 보라. "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세한도 친견

카테고리 없음 2021. 2. 24. 17:03 Posted by 문촌수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세한도 원본을 직접보고 왔다.
내 눈 앞에 추사를 직접 만난 듯 그 감동은 크게 울려 왔다.

국보 제180호 완전체로서 두루마리 총길이 14m 69.5 추사이다.

추사가 이상적에게 전한 원조 그림은 이 가운데 약 70㎝ 길이이고 나머지는 모두 세한도를 칭송한 청나라 문인 16인과 한국인 4인의 감상 글로 비단으로 꾸민 두루마리에 담겨 있었습니다.


 전시 안내 팜플렛

전시 구성도


https://youtu.be/sj0MzlzCEOQ

1-2 <세한의 시간> 영상보기 https://youtu.be/y0uBoFLwgwI

1-3 세한 속 깨달음,세한도 이야기ㅡ 완전체 영상

1-4 <세한도> 속의 세한
https://youtu.be/hkaHQaEN_I8


2-2 송백의 마음

https://youtu.be/qMSTBqmllxw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세한도, 추성부도를 모방하다

카테고리 없음 2021. 2. 17. 10:19 Posted by 문촌수기

시를 그리다. 경전 명구를 그리다.

@그림의 구도,

세한도, 단원의 '추성부도'를 닮다.

아마도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의 세한도는 조선 최고의 화백, 단원의 추성부도를 모방한 것은 아닐까?
적어도 나무와 가옥의 구성과 둥근창을 가진 중국식 초옥은 많이 닮았다.

이상국, <추사에 미치다>
"추성부도는 김홍도가 구양수의 추성부를 읽고 느낀 바 있어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나는 이 추성부도와 추사의 세 한도의 집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이 그림은 김홍도 만년작으로 61세 때 그려졌고 그때 당시 추사 나이는 19세였다 추사가 이 그림을 모방한 것이 아니다 하더라도 추성부도를 본 적이 있다면 무의식 속에 이 집과 나무들의 구도가 남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둥근 창에 있는 가옥 형태는 조선의 것은 아니며 구양수의 서재에 어울린다."

김홍도필 <추성부도>는 중국 송대(宋代) 구양수(歐陽修, 1007∼1072)가 지은 ‘추성부(秋聲賦)’를 단원 김홍도(1745∼1806?)가 그림으로 그려낸 시의도(詩意圖)이다.

화면의 왼쪽에는 백문타원인(白文楕圓印)으로 기우유자(騎牛游子)라 찍혀 있으며 추성부 전문이 김홍도의 자필로 쓰여져 있는데, 끝 부분에 ‘을축년동지후삼일(乙丑年冬至後三日) 단구사(丹邱寫)’라 하였으므로 이 그림은 1805년 즉, 단원의 나이 61세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해는 단원이 죽기 바로 전 해로 추정되므로 그의 마지막 기년작이자 죽음을 앞두고 그린 작품으로 믿어진다.

화면의 오른쪽에는 메마른 가을 산이 그려져 있고, 산 능선 위로는 수평방향의 갈필로 음양을 주어 밤 중임이 시사되어 있다. 중앙에는 중국식 초옥(草屋)이 있으며 둥근 창 안에는 구양수가 보인다. 이 그림은 구양수가 책을 읽다 소리가 나자 동자에게 무슨 소리인지 나가서 살피라 했고, 이에 밖으로 나간 동자는 ‘별과 달이 환히 빛날 뿐 사방에 인적은 없고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납니다(성월교결(星月皎潔) 명하재천(明下在天) 사무인성(四無人聲) 성재수간(聲在樹間))’라고 답했다는 바로 그 장면을 그려낸 것이다. 동자는 손을 들어 바람소리 나는 쪽을 가리키고 있으며, 집에서 기르는 학 두 마리는 목을 빼고 입을 벌려 그 바람소리에 화답하듯 묘사되어 있다. 또 마당의 낙엽수들은 왼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고 바닥에는 떨어진 낙엽들이 드문드문 흩날리고 있다. 화면 왼쪽 언덕에는 나무가 두 그루 서 있고, 그 옆쪽에는 대나무에 둘러싸인 초가집이 보이며 위로는 보름달이 떠 있다.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어둡게 시채되어 있으며 갈필을 사용하여 가을밤의 스산한 분위기가 잘 드러나 있다. 좌우에 산이나 언덕을 배치하여 초옥과 마당을 감싸듯, 부감하듯 그려냄으로써 주제를 강조하는 포치방식은 역시 구도에 대한 단원의 뛰어난 감각을 단적으로 말해주며, 호리호리하면서도 불규칙하게 꺾여 올라가 끝이 갈라지는 나무 형태 또한 단원의 전형적인 화법을 보여준다.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약간 비비듯이 처리된 메마른 붓질들은 차가운 달빛 속에서 거칠고 황량한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해 내고 있다. 그것은 곧 구양수가 전하고자 했던 노년의 비애이자 또한 동시에 죽음을 앞 둔 단원의 심회의 형상화이기도 할 것이다. 구양수가 만물이 조락하는 가을을 맞아 인생의 허무함을 탄식하는 ‘백가지 근심을 마음에 느껴(백우감기심(百憂感其心))’라는 구절은 바로 단원이 1805년 김생원이라는 이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도 인용했던 구절로서 단원의 당시 심적 상태를 여실히 반영해 준다. 아픈 몸에다 아직은 어린 외아들 김양익의 장래문제, 출가한 딸에 대한 걱정 등이 겹쳐 단원 역시 인생의 허무함에 절로 탄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 세한도 낙관
정희, 장무상망, 완당, 추사




@세한도(歲寒圖) 발문(跋文)
 
去年以晩學大雲二書寄來(거년이만학대운이서기래)
今年又以藕耕文編寄來(금년우이우경문편기래)
此皆非世之上有(차개비세지상유) 購之千萬里之遠(구지천만리지원)
積有年而得之(적유년이득지) 非一時之事也(비일시지사야)
 
그대가 지난해에 계복(桂馥)의 <만학집(晩學集)> 운경(惲敬)의 <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文藁)> 두 책을 부쳐 주고, 올해 하장령(賀長齡)이 편찬한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 120권을 보내 주니, 이는 모두 세상에 흔한 일이 아니다. 천만리 먼 곳에서 사온 것이고, 여러 해에 걸쳐서 얻은 것이니 일시에 가능했던 일도 아니었다.
 

且世之滔滔(차세지도도) 惟權利之是趨爲之(유권리지시추위지)
費心費力如此(비심비력여차) 而不以歸之權利(이불이귀지권리)
乃歸之海外蕉萃枯槁之人(내귀지해외초췌고고지인)
如世之趨權利者(여세지추권리자)

 

지금 세상은 온통 권세와 이득을 좇는 풍조가 휩쓸고 있다. 그런 풍조 속에서 서책 구하는 일에 마음을 쓰고 힘들이기를 그같이 하고서도, 그대의 이끗을 보살펴 줄 사람에게 주지 않고 바다 멀리 초췌하게 시들어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것을 마치 세상에서 잇속을 좇듯이 하였구나!

 
太史公云(태사공운) 以權利合者(이권리합자) 權利盡以交疎(권리진이교소)
君亦世之滔滔中一人(군역세지도도중일인)
其有超然自拔於滔滔權利之外(기유초연자발어도도권리지외)
不以權利視我耶?(불이권리시아야) 太史公之言非耶?(태사공지언비야)
​​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이 말하기를 “권세와 이득을 바라고 합친 자들은 그것이 다하면 교제 또한 성글어진다”고 하였다. 그대 또한 세상의 도도한 흐름 속에 사는 한 사람으로 잇속을 좇는 세상 풍조의 바깥으로 초연히 몸을 빼내었구나. 잇속으로 나를 대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태사공의 말씀이 잘못되었는가?
 
 
孔子曰(공자왈) 歲寒然後(세한연후) 知松栢之後凋(지송백지후조)
松栢是貫四時而不凋者(송백시관사시이부조자)
歲寒以前一松栢也(세한이전일송백야) 歲寒以後一松栢也(세한이후일송백야)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성인특칭지어세한지후) 今君之於我(금군지어아)
由前而無加焉(유전이무가언) 由後而無損焉(유후이무손언)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더디 시들음을 알 수 있다”고 하셨다. 소나무 잣나무는 본래 사계절 없이 잎이 지지 않는 것이다. 추운 계절이 오기 전에도 같은 소나무 잣나무요, 추위가 닥친 후에도 여전히 같은 소나무 잣나무다. 그런데도 성인(공자)께서는 굳이 추위가 닥친 다음의 그것을 가리켜 말씀하셨다. 이제 그대가 나를 대하는 처신을 돌이켜보면 그 전이라고 더 잘한 것도 없지만 그 후라고 전만큼 못한 일도 없었다.
 
 
然由前之君(연유전지군) 無可稱(무가칭) 由後之君(유후지군)
亦可見稱於聖人也耶?(역가견칭어성인야야) 聖人之特稱(성인지특칭)
非徒爲後凋之貞操勁節而已(비도위후조지정조경절이이)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역유소감발어세한지시자야)
 
그러나 예전의 그대에 대해서는 따로 일컬을 것이 없지만 그 후에 그대가 보여준 태도는 역시 성인에게서도 일컬음을 받을 만한 것이 아닌가? 성인이 특히 추운 계절의 소나무 잣나무를 말씀하신 것은 다만 더디 시드는 나무의 굳센 정절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역시 추운 계절이라는 그 시절에 대하여 따로 마음에 느끼신 점이 있었던 것이다.
 
 
烏乎!(오호) 西京淳厚之世(서경순후지세) 以汲鄭之賢(이급정지현)
賓客與之盛衰(빈객여지성쇠) 如下邳榜門(여하비방문)
迫切之極矣(박절지극의) 悲夫(비부) 阮堂老人書(완당노인서)
 
아아! 전한(前漢) 시대와 같이 풍속이 아름다웠던 시절에도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처럼 어질었던 사람조차 그들의 형편에 따라 빈객(賓客)이 모였다가는 흩어지곤 하였다. 하물며 하규현(下邽縣)의 적공(翟公)이 대문에 써 붙였다는 글씨 같은 것은 세상인심의 박절(迫切)함이 극에 다다른 것이리라. 슬프다. 완당 노인이 쓰다.
 
@ 하규현의 적공이 대문에 써 붙였다는 글씨는?
ㅡ <사기열전>, 급정열전 史記 汲鄭列傳에서

一死一生 乃知交情(일사일생 내지교정)
한 번 죽고 한 번 삶에 사귐의 정을 알고,
一貧一富 乃知交態(일빈일부 내지교태)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함에 사귐의 태도를 알며,
一貴一賤 交情乃見(일귀일천 교정내현)
한 번 귀하고 한 번 천함에 곧 사귐의 정을 알 수 있다.
- 史記 汲鄭列傳(급정열전
)
ㅡㅡㅡ

세한도 초옥을 닮았지만,
매화향으로 봄을 노래하고 있다.

ㅡ 전기(田琦 1825-1854), 매화초옥도

백매 가득한 숲길을 따라, 화가는 가야금을 메고 친구의 집을 찾고있다.

초옥에서는 선비가 피리를 불고 있다. 피리소리에 매화향이 실려 펴지는 듯하다.

亦梅仁兄草屋笛中(역매인형초옥적중) ㅡ고람 사
친구 역매(오경석)가 초옥에서 피리를 불고 있구나.
ㅡ고람(전기)가 그리다.
* 역관 오경석은 이상적의 제자이며, 위창 오세창의 아버지이다. 우선 이싱적은 세한도를 선물받은 완당의 제자요, 오세창은 세한도에 발문을 쓴 근대 서화가이며 독립운동가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0609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다

논어와 놀기 2020. 11. 6. 18:09 Posted by 문촌수기

추사 김정희가 쓴 글이 나라의 보물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글씨의 가치가 물론 국보급이지만 글의 내용이 내 마음 속 보배이다.

"대팽두부과강채, 고회부처아녀손"
(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

"가장 좋은 요리는 두부ᆞ오이ᆞ생강ᆞ채소, 제일 좋은 자리는 부부와 아들딸 그리고 손주"


대쪽 같은 추사도 말년에 얻은 일상의 소소함이 참 행복이라며 대팽의 협서(본문 옆에 따로 글을 기록하는 글)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것은 촌 늙은이의 제일가는 즐거움이다. 비록 허리춤에 말(斗)만한 큰 황금도장을 차고 밥상 앞에 시중드는 여인이 수백 명 있다 하더라도 능히 이런 맛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공자의 제자 안회가 누리는 소확행, 과연 '일단사 일표음'에만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그것(physics) 너머(meta-)에 무엇이 있을 것이다.

06‧09 子曰: “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
(자왈, "현재 회야! 일단사 일표음, 재누항 인불감기우, 회야불개기락, 현재 회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질다. 안회여. 한 대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로 누추한 시골에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지만, 안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으니, 어질구나 안회여."

The Master said, "Admirable indeed was the virtue of Hui! With a single bamboo dish of rice, a single gourd dish of drink, and living in his mean narrow lane, while others could not have endured the distress, he did not allow his joy to be affected by it. Admirable
indeed was the virtue of Hui!"

일단사 일표음, 불개기락

<더읽기 ㅡ 추사의 '대팽고회' 대련>

보물 제1978호, 김정희 필 대팽고회 대련
(金正喜 筆 大烹高會)

수 량 : 2폭 / 지정일 : 2018.04.20
소재지 :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시 대 : 1856년(철종 7)

<대팽고회> 추사의 행복을 맛보다.
https://munchon.tistory.com/m/1068

나의 소확행! 드디어 추사팽 실현

추사는 '대팽두부과강채ᆞ고회부처아녀손'이라며 만년의 행복을 표현하였다. "가장 좋은 요리는 두부ᆞ오이ᆞ생강ᆞ채소이며, 최고의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그리고 손주들." 허리에 황금인장

munchon.tistory.com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나의 소확행! 드디어 추사팽 실현

행복을찾아서 2018. 2. 16. 21:13 Posted by 문촌수기

추사는 '대팽두부과강채ᆞ고회부처아녀손'이라며 만년의 행복을 표현하였다.
"가장 좋은 요리는 두부ᆞ오이ᆞ생강ᆞ채소이며, 최고의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그리고 손주들."
허리에 황금인장을 차고 산해진미로 진수성찬하여 밥상에 시중드는 이가 비록 수백명일지라도 이보다 더 좋은 행복이 어디 있을까?
무술년 설날 전날.
딸ᆞ사위를 기다리며 아내랑 만든 김치만두를 넣고 드디어 추사팽을 실현하였다.

추사대팽은 다름아닌 김치만두 전골이다.
만두와 두부ᆞ오이대신에 애호박(남과)ᆞ 생강ᆞ버섯ᆞ배추ᆞ대파 등 여러 채소를 넣고 다시마ᆞ멸치ᆞ무ᆞ대파ᆞ버섯기둥을 넣고 끓인 육수에 국간장과 다진 마늘로 간을 하였다. 시원하고 칼칼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나의 주문에 정성껏 요리해준 아내의 솜씨에 감사하다.

누가 뭐래도 나에겐 음양오행설에 따른 최고의 요리가 되었다. 물과 불이 만나, 하얀 두부, 검은 버섯, 노란 배추속닢과 생강, 푸른 대파와 애호박, 붉은 김치 만두로 최고의 전골 요리가 되었다. 아내는 당근을 빠트렸다며 조금 아쉬워 했다.
나의 소소한 행복 더하기!
추사의 <대팽고회>를 임서한다.

나의 소확행, 나의 고회
사위와 딸아이가 아들ᆞ딸 넷을 데리고 세배를 한다. 그렇게 자녀 많이 낳으라고 덕담을 주었다. 행복한 시간이다.
어릴 적 같이 놀았던 '곰곰이ᆞ동동이ᆞ도나ᆞ뾰뇨' 봉제 인형들이다. 결혼하여 분가하였지만, 이 아이들은 엄마아빠한테 맡기고 갔다. 이 아이들도 소중한 가족이다. 아들없는 나에게 최고의 만남이란,
'고회부처서아손'(가장 좋은 자리란 부부와 사위 딸 그리고 손주의 만남)이다.

시댁간다며 떠난 자리에 이 아이들만 뒤집어져있다. 아내가 설정하여 우리 가족 카톡방에 올리두고선 '야들 좀 봐라. 저그 안델꼬 갔다고, 디비지고 울고 난리났구나'며 어서 또 오너라는 부모의 뜻을 전한다. 행복은 비록 작은 일이지만 자주하는데에 있다. 사랑 가득한 '아내'를 둔 나는 참 행복하다. 내 '안에' 둔 사랑.

추사의 대팽고회 대련

'행복을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확행 얻기 8S  (0) 2018.02.18
소확행을 위하여, IBEST하기!  (0) 2018.02.18
나의 소확행! 드디어 추사팽 실현  (0) 2018.02.16
나의 소확행 ABC  (0) 2018.02.16
추사의 소소한 행복, 따라 써보기  (0) 2018.02.16
무소유와 1,000원의 가치  (0) 2017.12.16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