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의 주엽역 승강장 입구에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글귀가 큰 타일에 새겨져 있다. 좋아하는 글귀라서 눈에 띠었다. 바람이 있다면 어린이와 젊은 학생들도 금방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쓰고 그 아래에 한자를 더했더라면 모든 이들이 깨닫는 바가 많을 것이다.
"자기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
(己所不欲, 勿施於人).

이 말씀은 공자님께서 하셨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익히 들었던 말씀이다.
"너희가 대접받고자 하거든 남을 먼저 대접하라." (마태7:12)는 예수님의 황금률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만 살아도 뒷담화 없고, 손가락질 없고, 악성 댓글 없고, 왕따와 폭력, 혐오와 차별, 끼어들기와 보복운전, 오만과 독선은 없을 것이다. 많은 범죄들도 이것을 따르기보다 욕정과 본능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는 도덕의 기본이요 사람답게 사는 길이다. 생의 최고 법칙이다. 大道無門이라, 진리는 결국 한 길로 통한다.
克己復禮충(忠), 중심(中心)이 흔들리지 않는 자기 최선과 충실의 시작이라면,
己所不欲, 勿施於人(기소불욕, 물시어인)은 서(恕)의 실천이다. 너의 마음과 같아서(如心) 공감하는 관용이요 용서이며 너그러움이다.

12‧02 仲弓問仁. 子曰: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 勿施於人. 在邦無怨, 在家無怨.”
(중궁문인. 자왈: “출문여견대빈, 사민여승대제. 기소불욕, 물시어인. 재방무원, 재가무원.”)

중궁이 인을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문을 나갔을 때에는 큰 손님을 뵙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에는 큰 제사를 받들듯이 하며, 자신이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하니라. 이렇게 하면 나라에 있어도 원망함이 없을 것고 집에 있어도 원망함이 없을 것이다."
중궁이 말하였다.
"제가 비록 불민하나, 이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Chung-kung asked about perfect virtue. 
The Master said,  ‘It is, when you go abroad, to behave to every one as if you were receiving a great  guest;  to employ the people as if you were assisting at a great sacrifice;not to do to others as  you  would not wish done to yourself; to have no murmuring against you in the country, and none in the family.’

 

인 ; 출문여견대빈
기소불욕 물시어인

 

일산 주엽역 대합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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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어느날, 일산 풍경

2002년 5월 어느날, 일산 풍경 Category: 이런 저런 이야기, Tag: 여가,여가생활 05/15/2005 03:31 pm 오랫만에 서울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입니다. 전철 일산 주엽역에 내려 계단을 오르면 벽에 새겨진 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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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논인(論仁)이라 한다. 仁은 어진 사랑이요, 사람다움이다. 그러고보면 <논어>는 사랑학이요 인간학이다.
제자들은 스승 공자에서 "仁(사랑)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 중궁이 仁을 물었때는, "자기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마라."고 일러주셨다. 스승의 답은 이렇듯이 쉽다. 그저 삶 속에서 사랑 실천하기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나무에 잎이 자라듯 인(仁, 사랑)하기도 쉬운 것이다.
안연이 仁을 묻자, 공자께서는 극기복례(克己復禮) 하라고 하셨다.
안연이 구체적인 실천을 묻자, "예가 아니거든 행하지말라"고 하셨다. 답도 쉽고 사랑도 쉽다.
다만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1201-2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顔淵曰: “回雖不敏, 請事斯語矣.”
(안연왈: “청문기목.” 자왈: “비례물시, 비례물청, 비례물언, 비례물동.” 안연왈: “회수불민, 청사사어의.”)

안연이 (인의 실천, 극기복례의) 세목을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며,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도 말아야 한다."
안연이 말하였다. "제 비록 불민하나, 이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Yen Yuan said, ‘I beg to ask the steps of that process.’ The Master replied,
 Look not at what is contrary to  propriety; 
listen not to what is contrary to propriety; speak not what is contrary to  propriety;  make no movement which is contrary to propriety.’ 

Yen Yuan then said, ‘Though I am deficient in intelligence  and vigour, I will make it  my  business  to practise  this lesson.’

비례물 시ㆍ청ㆍ언ㆍ동

 
더읽기>ㆍLove easy, 사랑은 쉬운 것

"Take love easy, as the leaves grow on the tree;" ㅡ Salley Garden에서
https://munchon.tistory.com/1469

Salley Garden

아일랜드의 민요는 이상하리만큼 우리 민족 정서에 맞다. 금새 귀에 익숙해지고 따라 흥얼거리게 된다. 임형주가 부른 'Down by the Salley Garden'은 이별의 회한을 이야기한다는 면에서 우리의 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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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修身)도 제대로 못한 자들이 나랏일에 나섰다가 신세 망친 것은 물론 나라를 흔들고 세상을 더럽혔다. 통탄할 일이다.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멀어지고,
결국 '망신 패가(亡身 敗家) 경국 혼천하(傾國 混天下)'되고 말았다.
修身의 요체는 극기(克己)이다. 절제하고 겸손하며 사양하고 멈출 때를 아는 것이다.
지지(知止)야말로 대지(大智)이다.

"전쟁에 나가 수천의 적을 이기더라도
스스로 자기를 이기는 것만 못하다.
자기를 이기는 것이 가장 현명하니
사람 중의 영웅이라 한다.
마음을 단속하고 몸을 길들여
모든 것 털어 버리고 최후의 경지에 이른다."

-<법구경 상권> 

12‧01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안연문인. 자왈: “극기복례위인.
일일극기복례, 천하귀인언.
위인유기, 이유인호재?”)

안연이 인을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기의 사욕을 이겨 예로 돌아감이 인을 하는 것이니, 하루라도 사욕을 이겨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仁을 허(許)한다.
인(仁)을 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으니 남에게 달려 있겠는가?


(Book XII. Yen Yuan)
01. Yen Yuan asked about perfect virtue. 
The Master said,To subdue one’s self and return to propriety, is perfect virtue. 
If a man can for one day subdue himself and return to propriety, all under heaven will ascribe perfect virtue to him.  Is the practice of perfect virtue from a man himself, or is it from others?’

 

극기복례

 

더읽기> 석가모니의 극기
싯다르타 보살은 6년 금식고행의 수행생활을 청산하고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을 받아 먹게 된다. 우유죽 공양을 드신 보살은 '위없는 깨달음(무상보리)'을 얻고자 보리수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명상에 들어갔다. 이럴 때에 온갖 마구니들이 나타나서 위협하고 유혹했다.

"여기 이자리에서 내 몸은 메말라 가죽과 뼈와 살이 다 없어져도 좋다. 저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이 자리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금식고행의 싯다르타

이 때 싯다르타는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다.
결국 이를 내쫓고 깊은 명상에 들어 새벽녘 샛별이 반짝거릴 적에 드디어 보살은 모든 미혹의 번뇌를 일순간에 다 끊어버릴 무상보리의 정각(正覺)을 얻게 되었다. 바로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라 말하는 '더 이상 위없는 올바른 깨우침'을 얻은 것이다. 태자 나이 35세 때의 일이다.

항마촉지인, 석굴암 본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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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침은 미치지 못함 같다'고 하지만
내게는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 만 못하다".
부족하면 조금 더 채우면 되겠지만, 넘치면 덜어내기 어렵고 닦아야 한다. 가는 길 못 미치면 좀 더 걸으면 되지만, 지나쳐 가버리면 돌아오기도 번거롭고 힘도 더 든다. 넘치는 것보다 오히려 모자란 것이 낫다.
"多多益損 小少益善(다다익손 소소익선)"
The more, the worse.
The less, the better
.

11‧15 子貢問: “師與商也孰賢?”
子曰: “師也過, 商也不及.”
曰: “然則師愈與?”
子曰: 過猶不及.”
(자공문: “사여상야숙현?” 자왈: “사야과, 상야불급.” 왈: “연칙사유여?” 자왈: “과유불급.”)

자공이 "자장(사)과 자하(상) 중에 누가 낫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께서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 하셨다.
자공이 물었다. "그러면 자장이 낫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 같다."

Tsze-kung asked which of the two,  Shih or Shang, was the superior.  The Master said, 
‘Shih goes beyond the due mean,  and Shang  does  not come up to it.’ ‘Then,’ said Tsze kung,  'the superiority is with Shih, I suppose.’
The Master said, ‘To go beyond is as wrong as to fall short.

과부자윤급

 
참고> 공문십철 중, 자장ㆍ자공ㆍ자하
덕행으로 뛰어난 제자 : 안회 민자건 염백우 중궁
언변에 뛰어난 제자 : 재여 자공
정사에 뛰어난 제자 : 염구 자로
문학에 특출한 제자 : 자유 자하


자공, 단목 사
이름은 단목사이며 자공은 그의 자이다. 논어에 자공의 얘기가 제일 많이 나올 정도로 대단히 영리하고 사교에 능해 돈벌이의 천재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공자도 선진편을 통해 "자공은 천운을 기다리지 않고도 부를 누렸는데 그의 슬기로운 판단은 거의 다 적중했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안회처럼 道를 즐기는 것보다는 못하다."고 충고를 했다.
자공은 현명하고 사업을 잘해 공자를 경제적으로 많이 도왔다. 자공은 공자가 세상을 뜬 이후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각각 대부의 벼슬까지 올랐다가 제나라에서 죽었다.


자하, 복상
성은 복, 이름은 상이며 자하는 자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서 공자의 가르침을 후세에 전하는 데 크게 공헌을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공자의 제자들 중에서도 문학 방면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제일인자였다고 볼 수 있다.
그 증거로 팔일편을 보면 된다. 자하는 공자가 세상을 뜬 후 공자의 사상을 널리 전파했고, 나중에 위나라 문후의 스승이 되었으나 아들이 죽자 통곡을 하다가 눈이 멀었다고 한다.

자장, 전손 사
전손 사(顓孫師, 기원전 503년 ~ ?)는 중국 춘추 시대의 사상가 공자의 제자로, 자는 자장(子張)이며 진(陳)나라 사람이다.
매사에 의욕적인 인물로 배우는 데도 열의가 있었고, 위급한 것을 보면 생명을 내걸 정도로 의협심이 강했다. 공자보다 48세 아래 후기제자로 공문십철에는 들지 못했다.
공자는 자장이 다른 사람에게 과시할 수 있는 외모나 명성, 출세 등에 관심을 집중한다고 보았다. <논어> 「위정편」을 보면 자장이 녹(祿)을 구하는 방법을 배우려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많이 듣고 의심스러운 부분은 빼놓고 그 나머지를 조심스럽게 말하면 허물이 적으며, 많이 보고 위태로운 것을 빼놓고 그 나머지를 조심스럽게 행하면 후회하는 것이 적을 것이다. 말에 허물이 적고 행실에 후회함이 적으면 녹은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 라고 하여, 자장이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언행을 삼가는 법에 대해 설명하였다. 공자는 자장이 출세에 너무 관심을 두는 것을 우려했고 또 편벽하다고 생각했다. 자장은 동문수학하는 문인(門人)들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자유(子游)는 “나의 벗 자장은 하기 어려운 것을 할 수 있지만, 아직 인(仁)을 이루지는 못했다.” 라고 하였고, 증삼(曾參)은 “당당하구나, 자장이여! 그러나 함께 인(仁)을 행하기는 어렵구나.” 라고 하였다.
자장은 공자에게 가르침을 받을수록 자신의 단점과 잘못을 깨닫고, 이를 극복하여 공자의 문인으로서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갖추려고 열심히 노력하였다. 공자에게 묻는 질문도 점차 출세나 명성보다는 사물의 이치나 덕을 높이는 방법 등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자장은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공자의 가르침을 충실히 실천하려고 노력하였기에, 훗날 자공은 <공자가어> 「제자행편」에서 자장에 대해 “아름다운 공로가 있어도 자랑하지 아니하고, 귀한 지위를 가졌어도 잘한다고 여기지 아니하며, 남을 업신여기거나 안일에 빠지지 아니하고, 고할 데 없는 이들에게 거만하게 굴지 않는 것은 자장의 행동이다.” 라고 평가를 했다. (위키백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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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 말의 허물은 고칠 수도 없구다.

논어와 놀기 2021. 4. 1. 20:15 Posted by 문촌수기

공자의 제자 남용은 '백규의 시'를 외워고 자주 읊었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억(抑)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흰 구슬의 흠집은 오히려 갈아서 없앨 수 있지만, 말의 허물은 어떻게 할 수도 없다네"

白圭之玷,尚可磨也;斯言之玷,不可爲也
(백규지점, 상가마야. 사언지점, 불가위야)

말이란 엎지러진 물과 같아서 뱉고 나면 도로 줏어 담을 수가 없다. 말[言]이란 입에서 곧게 나오는 것이니 직언(直言)하는 것이다. 입[口]에서 나오는 매운[辛] 것이니 너무 매우면 큰 허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입을 초화지문(口是招禍之門)이라 한다.
남용은 이 구절을 하루에 세 번씩 반복하여 외웠으므로 말에 신중하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공자는 조카딸을 그의 아내로 준 것이다.

11‧06 南容三復白圭, 孔子以其兄之子妻之.(남용삼복백규, 공자이기형지자처지.)
남용이 백규를 읊은 시를 (하루에) 세 번 반복해서 외우니, 공자께서 그의 형의 딸자식(조카딸)을 그에게 시집 보내셨다.

Nan Yung was frequently repeating the lines about a white scepter stone.  Confucius gave him the daughter of his elder brother to wife.

 

삼복 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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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길을 걷다보면 빈 의자를 자주 만나게 된다. 한성대 입구역 산책길 초입에 '한중 평화의 소녀상'이 자리에 앉아있고 그 옆에 빈 의자가 있다. 빈의자는 누구를 위한 자리일까? 길상사를 찾아 올라가는 길이다. 어느 가게 앞에도 빈 의자가 놓여있다. 쉬었다 가라는 배려인가보다. 길따라 계속 걷다보면 '조지훈 시인의 방, 방우산장' 조형물을 만나게 된다. <낙화> 시가 새겨진 한쪽 벽만 있는 무릎 높이 기단 위에 옛날 교실의 걸상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드디어 '맑고 향기로운 도량 길상사'에 들어 선다. 고기와 술과 웃음을 팔던 요정이 기도하는 절이 되었다. 길상사에서 가장 깊은 곳에 법정스님의 유품과 진영을 보관하는 진영각이 있다. 법정스님께서 이승에서 마지막 밤을 주무시고 떠나신 곳이다. 진영각 왼쪽에는 서툰 솜씨로 짠 목재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오래전 법정스님께서 불일암에 계실 적에 빠삐용 처럼 '나는 무슨 죄를 지었는가?'를 돌아보고자 짜셨다 했다. 그 의자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어린왕자를 무척 사랑하신 스님을 존중하며, 외로운 어린 왕자가 앉았던 의자를 연상해본다.
성북동 길에서 만났던 이 의자들은 누구의 자리일까? 자리가 비었다고 함부로 앉을 수 없어, 마음 만 앉아 나에게 물어본다.
"위안부 소녀들의 고통을 씻어주기 위해 나는 무엇을 했던가? 꽃이 지는데 바람을 탓해야 하나, 누구를 탓해야 하나? 나는 인생을 허비하지 않았는가?
나는 바르게 살았던가?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10‧12 席不正, 不坐.(석부정 부좌)
(공자께서는)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으셨다.
If his mat was not straight, he did not sit on it.

석부정부좌

 더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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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ᆞ중 평화의 소녀상

성북동 인문학 산책의 첫걸음은 한ᆞ중 평화의 소녀상을 만나는 것부터 시작된다. 한성대 입구역 6번출구 버스정류장 작은 가로공원에 있다. 여느 곳의 평화의 소녀상과는 많이 다르다. 조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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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평화의 소녀상

 

방우산장 조형물

https://munchon.tistory.com/1239

조지훈의 방우산장

성북동 가을 길을 따라 걷는다. '시인의 방ㅡ방우산장'의 의자에 앉아 잠시 시를 읊는다. 그리고 추억을 그린다. "꽃이 지는데 바람을 탓하랴. ...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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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진영각(행지실), 법정스님과 어린왕자
빠삐용의자 ㆍ 나는 어린 왕자의 의자를 연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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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과 어린 왕자.

"니가 나를 찾아오다니,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할아버지가 제게 보내신 편지(영혼의 모음, 1971.11)를 이제사 받았어요." "그랬구나. 너를 이렇게 만나다니 정말 다행이구나. 이제 너와 함께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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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식동원(藥食同源)이란다. 보약 따로 없다. 음식이 곧 보약이다. 철에 맞는 음식먹고, 소식하며 정성껏 요리한 음식이 곧 건강의 비결이다. 봄이 되었는데 이맘때 나는 봄나물, 산나물이 그립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 봄이 되면 어머니가 더 그립다.

<논어>10, 향당편에서는 공자가 일상속에서 보여준 식습관을 전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 공자는 무척 까탈스런 미식가 같다. 그러나 달리보면 小食하고 절제하며 청결하고 경건한 식생활 모습을 보이셨다.
'君子는 上達'이라 하지만, 공자에게서 음식은 결코 下達이 아니다. 양생의 보약이고 호학 수행의 기운이며 상달하는 계단이었다. 덕분에 병 없이 73세까지 장수하시고 큰 도를 이루셨으며 세상의 木鐸[스승]이 되셨다. 공자의 식습관은 이랬다.

"밥은 정결하고 회는 가는 것을 좋아하셨다. 쉰 밥, 상한 생선, 부패한 고기는 먹지 않으셨고, 빛깔이나 냄새 나쁜 것도 먹지 않으셨다. 간이 맞지 않거나 덜 익거나 많이 익어 요리가 잘못된 것도 먹지 않으시고, 때가 아닌 것을 먹지 않으셨다[不時不食]. 자른 것이 바르지 않은 것도 먹지 않으시고, 마땅한 장을 얻지 못하면 먹지 않으셨다. (고기와 술을 많이 드시고 좋아하셨지만.과하지 않으셨다.) 시장에서 산 술과 포를 먹지 않으셨다. (정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생강을 먹는 것을 거두지 않으시고[不撤薑食] 많이 드시지 않으셨다[不多食]. 음식 드실때는 대답하지 않으시고, 잠자리에서 말씀하지 않으셨다[食不語 寢不言]. 비록 거친 밥과 나물국이라도 반드시 고시래하시되 공경히 하였다. [疎食菜羹 必祭必齊]"

10‧08 不時不食....
肉雖多, 不使勝食氣. 唯酒無量, 不及亂.
(불시불식... .육수다, 불사승식기. 유주무량, 불급란)
때가 되지 않은 것은 먹지 않으셨다...고기가 비록 많으나 밥 기운을 이기게 하지 않으시며, 술은 일정한 양이 없었지만 어지러움에 이르지 않게 하셨다.

He did not eat anything which was ill-cooked, or was not in season. ~~~

Though there might be a large quantity of meat, he would not allow what he took to exceed the due proportion for the rice. 
It was only in wine that he laid down no limit for himself, but he did not allow himself to be confused by it.

 

육수다 불사승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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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可與適道, 함께 같은 길을 걸어도..

논어와 놀기 2021. 3. 27. 18:26 Posted by 문촌수기

오래전 춘천 마라톤을 달렸다. 처음 도전하는 풀코스라서 설래고 긴장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출발 총성을 기다리고 있다. 옆에 선 낯선 여성이 붙임성도 좋게 말을 건냈다. "처녀 출전이세요? 저도 처녀 출전이라예." "아? 예~~" 그저 웃음으로 답했다. 얼굴을 붉힐 뻔 했다.
같은 길[道]을 걷는 이를 도반(道伴)이라 한다. 같은 도를 수행해도 먼저 도달하는 이가 있고 늦게 도달하는 이가 있다. 중도 포기하는 자도 허다하다.
다행히 나의 풀코스 43.195km, 첫 도전은 4시간 30분대로 완주했다. 처녀 출전한다던 여성은 출발 총성과 함께 헤어졌다. 덕분에 재밌는 추억 만 남았다.

09 29 子曰: “可與共學, 未可與適道; 可與適道, 未可與立; 可與立, 未可與權.
( “가여공학, 미가여적도; 가여적도, 미가여립; 가여립, 미가여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더불어 함께 배울 수는 있어도 함께 도에 나아갈 수는 없으며, 함께 도에 나아갈 수는 있어도 함께 설 수는 없으며, 함께 설 수는 있어도 함께 권도*를 행할 수는 없다."
(~동문이라도 진로가 같지 않고, 같은 길을 걸어도 나란히 설 수 없다. 함께 서 있어도 저울 추가 같을 수 없다.)
The Master said, ‘There are some with whom we may study in common, but we shall find them unable to go along with us to principles. Perhaps we may go on with them to principles, but we shall find them unable to get established in those along with us. Or if we may get so established along with them, we shall find them unable toweigh occurring events along with us.’

가여공학 미가여적도

 
더하기>권도(權道)와 시중(時中)
*권(權)은 저울의 추를 말한다. 권도를 부린다 함은 능히 경중을 저울질하여 의리에 합치됨을 말한다. 즉, 사리를 분별하여 시의적절하게 처리함을 이른다.

<맹자> 진심편에 “執中無權ㆍ집중무권”이란 말이 있다.  “가운데를 잡으면 저울 추. 권(權) 이 필요없다"는 뜻이다. 지나침도 없고 모자람도 없는 중용(中庸, the Golen Mean)은 미덕이다. 그렇다고 늘 변함없이 '가운데만 잡는 것(執中)'만을 고집하면 저울의 추 마저 필요없게 된다. 시의 적절한 임시변통의 쓰임[用]이 있어야 무게를 잴 수 있다. 그래서 "君子之中庸也(군자지중용야)는 君子而時中(군자이시중)이라" 한다. ㅡ《中용》에서.
사랑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으며 늘 평정심을 고집하는 것은 執中이고, 사랑할 때를 알아서 사랑하고, 미워해야 할 사람을 가려서 미워하는 것은 時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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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나이 '마흔에 불혹(不惑)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지자(知者)는 불혹'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공자는 '마흔에 지자가 되었다'는 논리다.
무엇을 알았기에 흔들리지 않을까?
노자의 《도덕경 》에서 답을 찾아본다.
족함을 아는 것이고, 그침을 아는 것이다.
노자는 말하였다.
"족함 알면 욕 되지 않고, 그침 알면 위태롭지 않다. 오래 갈 수가 있다(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만족을 아는 것이 부자이다.(知足者富)"
알았으면 그만이지, 애써 말할 것도 없다.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知者不言)"
불혹(不惑)하니 욕되지 앓고 위태롭지 않고 말할 것도 없다. 부자 따로 없다.
知止者賢인데, 나는 언제 그렇게 되려나?
공자가 말한 知者는 지식인(소피스트)인가, 愛智者(필로소퍼)인가? 딴지를 걸어본다. 공자 스스로를 好學者라 했으니 Philosopher인가 보다.
나의 不惑은 아직 멀다. 유혹(誘惑)이 많은지라.

09 29 子曰: “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
(자왈: “지자불혹, 인자불우, 용자불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자는 의혹하지 않고, 어진 자는 근심하지 않으며, 용맹한 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The Master said, ‘The wise are free from perplexities; the virtuous from anxiety; and the bold from fear.’

지자불혹, 인자불우, 용자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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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歲寒孤節의 아름다운 이야기

논어와 놀기 2021. 3. 20. 15:08 Posted by 문촌수기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사연이다.
"우선이, 이것 보시게. 완당이.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날이 차가워진 이후라야 소나무 측백나무는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고 하였다. 송백은 사철을 통하여 시들지 않는 것으로서, 날이 추워지기 전에도 하나의 송백이요 날이 추워진 후에도 하나의 송백이다. 성인이 특히 세한을 당한 이후를 칭찬하였는데, 지금 자네는 이전이라고 더한 것이 없고, 이후라고 덜한 것이  없구나. 세한 이전의 자네를 칭찬할 것 없거니와, 세한 이후의 자네는 또한 성인에게 칭찬 받을 만한 것 아닌가? 성인이 특별히 칭찬한 것은 한갓 시들지 않음의 정조와 근절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또한 세한의 시절에 느끼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 완당(阮堂) 노인(老人)이 쓰다.

09 28 子曰: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彫也.”
(자왈: “세한, 연후지송백지후조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알 수 있다."

The Master said, ‘When the year becomes cold, then we know how the pine and the cypress are the last to lose their leaves.’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추사의 <세한도>


이야기+
일년 중 가장 춥다는 세한(歲寒)의 절기도 지나고 봄이 왔다. 남녘의 꽃향기를 실려오지만 그래도 봄바람은 아직 차다.

참으로 오랜만에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왔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보고 싶어서였다. 많이 봐 온 그림이지만 직접 내 눈으로 오리지널을 친견한다는 것은 정말 설래는 일이다.

추사의 오리지널 세한도와 앞뒤로 붙인 두루마리


<세한도>는 제주도에 유배 온 지 5년이 지난 추사(秋史) 김정희가 나이 59세(1844년) 때 그린 것이다. 
역관(譯官)이었던 제자 이상적(李尙迪, 1804~1865)에게 고마움을 전하고자 그려 준 그림이다. 추사는 자신의 처한 상황과 제자의 한결같은 마음을 歲寒 松柏을 그렸으며, 그 사연을 기록하였다. 

강하면서도 수려한 예서체로 '세한도(歲寒圖 )' 쓰고, 그 오른쪽에 '우선시상(藕船是賞)’과 ‘완당(阮堂)’이라고 썼다. ‘우선이, 이것 보시게. 완당이’이라는 뜻이다.

‘우선(藕船)’은 제자이면서 통역관인 이상적의 호이다. 그림과 글씨를 감상하다가 눈길을 왼쪽으로 가면서 자칫 놓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꼭 눈여겨 보고 가야할 곳이 있다. 바로 가장 오른쪽 하단의 붉은 색 ‘장무상망(長毋相忘)’ 유인(遊印) 낙관(落款)이다.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으로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정을 새겼다. 나에게도 이렇게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며 약속한 제자가 있었던가? 스승이 있었던가? 그런 친구 있었던가?

아호인, 완당
성명인, 정희
유인, 長毋相忘
아호인, 추사

뤼순 옥중에서 안중근 의사, 유묵 세한연후
~ '後' 자를 빠트리고 써서, 나중에 아니 '不'자가 작게 삽입되었다. 뜻은 다르지 않는다.


세한연후의 뜻을 새기고자 휘호하여 가까이 두었다.


세한연후를 노래하며, '상록수'를 부르며 그려보았다.
"저 들에 푸르른 솔 잎을 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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