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9 군자치기언이과기행

논어와 놀기 2021. 8. 5. 21:54 Posted by 문촌수기


14‧27 子曰: “君子恥其言而過其行.”
(군자치기언이과기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말을 부끄러워하고 행실을 말보다 더 한다.

14‧28 子曰: “君子道者三, 我無能焉: 仁者不憂, 知者不惑, 勇者不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의 도가 셋인데 나는 능하지 못하니, 인자는 근심하지 않고, 지자는 의혹하지 않고, 용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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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4 學者爲己 , 배워서 남 주나?

논어와 놀기 2021. 7. 24. 21:51 Posted by 문촌수기

코로나바이러스 창궐로 연기된 도쿄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양궁의 메달 소식은 국민들을 위로하고 힘을 북돋워졌다. 특히 17살 고등학생 선수의 패기 넘치는 "코리아 파이팅!" 고함성은 경기장을 쩌렁하게 울렸다. 호방한 기세는 상대를 압도했다. 메달 보다 더 큰 활기를 불러 일으켰다.
육예(六藝)는 옛날 주(周) 나라때부터 군자, 선비들이 익혀야 헀던 교육과목으로,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 등 6가지 기능이다. 예용(禮容), 음악(音樂), 궁술(弓術), 마술(馬術), 서도(書道). 수학(數學)을 말한다. 육덕(六德, 知 仁 聖 義 忠 和), 육행(六行, 孝 友 睦 婣 任 恤)과 더불어 경삼물(卿三物)이라고 하는데 경대부(卿大夫)가 인물을 선발할 때 표준으로 삼았다.

궁도는 스포츠 경기 이전에 군자와 선비의 인격 수양이다. 자기 내면의 집중력을 키우고, 세상을 읽는 도리를 가르쳐 준다. 활을 쏘았는데 적중하지 못했다면 소인배들은 활과  화살 탓하고 바람 탓하고 남 탓한다. 대인은 바람을 읽지 못한 나를 탓하고, 활과 화살의 특성을 알지 못한 내게서 문제점을 찾으며 고쳐간다.
오랜만에 붓을 들어 나의 '반구저기(反求諸己)'를 돌아본다. '도리어 나에게서 구하라.'는 -맹자의 말씀이다. 다시 수양코자 활을 들고 과녁 앞으로 나아가야 겠다.

14‧24 子曰: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자신을 위하였는데, 지금의 배우는 자들은 남을 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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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생사 존망이 달린 중대한 일이다. 이런 와중에 정직과 도덕을 고집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망신과 망국 뿐이다. 전쟁에서는 피아의 손실을 최대한 줄이면서 속전속결로 승리를 거두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만, 위장, 교란, 기습 등 비도덕적인 속임수도 전술로 사용해야 한다. 특히 약한 것이 강한 것을 대적할 때는 이런 속임수가 대단히 필요하다.
초(楚) 나라와 한(漢) 나라가 싸울 적에 한신은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작전으로 전쟁에서 이겼다. 위나라가 초의 항우에게 투항하여 한나라는 좌우에 적을 두는 형국이 되었다. 한 유방은 한신에게 위나라를 칠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한신은 위나라의 동쪽 변방에서 요란한 소리를 울리면서 공격하는 훈련을 하다가, 몰래 반대편의 후방을 공격해 들어가서 위나라 왕을 사로 잡아 승리하였다.
어디 전쟁 뿐이겠나? 성동격서의 기만 전술은
장기나 바둑에서도 통하고, 스포츠 경기에서도 지혜로운 작전이다. 그러나 정치와 교육과 과학과 경영에서는 正道를 지켜야한다.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대선 정국이 될까봐 걱정이다. 가는 곳이 바른 곳이어야 하며, 가는 길도 발라야 한다.

14‧15 子曰, “晉文公譎而不正, 齊桓公正而不譎.” (진문공 휼이부정, 제환공 정이불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진문공은 속이고 바르지 않았으며,
제환공은 바르고 속이지 않았다."

*두 공은 춘추오패라 불리는 춘추시대의 맹주들이다. (관중과 포숙아를 신하로 두었던) 제환공은 대의를 내세워 초나라를 정벌하였으며, (한식의 유래가 된 개자추를 신하로 두었던) 진문공은 음모로써 승리를 취하였다.

The Master said, "The duke Wan of Tsin was crafty and not upright. The duke Hwan of Ch’i was upright and not craf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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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3 時然後言 義然後取, 타이밍이다.

논어와 놀기 2021. 7. 17. 21:47 Posted by 문촌수기

아테네 학당으로 들어오는 스승과 제자가 가리키는 손 모양이 크게 다르다. 스승 플라톤은 이데아 세계를 이야기하는 듯 하늘을 가리키고,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손바닥을 엎어 땅을 가리키며, 현세를 살아가는 중용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과대와 과소의 극단이 없는 최적의 상태를 중용(memos, Golden Mean)이라고 하였다. 즉 지나침도 없고 모자람도 없는 상태이다. 비겁과 만용의 중용은 용기이고, 무감각과 방탕의 중용은 절제이며, 인색과 낭비의 중용은 절약이며, 비굴과 교만의 중용은 겸손이다. 그렇다고 해서 산술적인 평균 값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 편도 아니고 저 편도 아닌 것을 중용이라 여기면 줏대가 없다. 오고 가는 선이 다른데 그저 중간에 서 있다면 이쪽 저쪽에서 치여 크게 다친다. 매사 적당히 平以上만 유지하고 있다면 발전이 기대할 수 없다.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용일까?
君子中庸也, 君子而時中
(군자중용야, 군자이시중)
"군자의 중용은 시중(時中)이다."
라는 말을 새긴다. <중용>에 나오는 말이다. 때에 적합한 행동이 중용이다. 용기가 중용이라지만, 때를 먼저 아는 것이 필요하다. 나아 갈 때를 알아 나아가는 것만 용기가 아니다. 저자거리에서 깡패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 간 한신(韓信)과 같이, 물러날 때를 알아 물러나는 것도 참된 용기이며 중용이다. 비록 그 순간에는 조롱거리가 되었겠지만, 이 순간의 수모를 참지 못했다면 한신은 결코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때에 적합한 행동만이 아니다. 장소에 적합한 행동도 時中이요, 상대하는 사람에 적합한 처신도 時中이다. 시장터에서 하는 짓을 전장터에서 할 수 없고, 자식 대하듯 부모를 대할 수 없다. 때를 알아 時言, 後笑, 義取하는 것이 중요하다.

14‧13 子問公叔文子於公明賈曰:
“信乎, 夫子不言, 不笑, 不取乎?”
公明賈對曰:
“以告者過也. 夫子時然後言, 人不厭其言;
樂然後笑, 人不厭其笑;
義然後取, 人不厭其取.”

子曰: “其然? 豈其然乎?”
(자문공숙문자어공명가왈:
“신호, 부자불언, 불소, 불취호?”
공명가대왈: “이고자과야. 부자시연후언, 인불염기언; 락연후소, 인불염기소;
의연후취, 인불염기취.”

자왈: “기연? 개기연호?”)

공자(孔子)께서 공명가에게 공숙문자의 인품을 물었다.
"참으로 공숙문자는 말씀하지 않고 웃지 않고 취하지도 않으시는가?"
공명가(公明賈)가 대답하였다.
"말한 사람이 지나쳤군요. 夫子께서는 때에 맞은 뒤에야 말씀하시므로 사람들이 그 말을 싫어하지 않으며, 즐거운 뒤에야 웃으시므로 사람들이 그 웃음을 싫어하지 않으며, 의에 맞은 뒤에야 취하시므로 사람들이 그 취함을 싫어하지 않는 것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할까? 어찌 그렇겠는가?"

*공숙문자:위나라 대부 공손지(公孫枝)
*공명가: 성이 공명, 이름이 가, 위나라 사람


Kung-ming Chia replied, ‘This has arisen from the re- porters going beyond the truth.
– My master speaks when it is the time to speak, and so men do not get tired of his speaking. He laughs when there is occasion to be joyful, and so men do not get tired of his laughing. He takes when it is consistent with righteousness to do so, and so men do not get tired of his taking.’ The Master said, ‘So! But is it so with him?’

시연후언, 낙연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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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인격완성과 자아실현을 삶의 의미라고 여긴다. <논어> 헌문편에서의 '成人'은 단순히 어른(adult)이 아니라, 人格을 形成한 상태를 말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한다. 인격완성과 자아실현은 교육의 목적이기도 하다.
'見利思義, 見危授命' 이 글을 볼때마다, 안중근 의사를 떠올린다. 이토오를 척결하고 수감된 안중근 의사. 손가락을 끊고 맹세했던 구국의 의지를 보이고자 당당하게 그의 왼손을 가슴앞에 내 보였다. 그는 이 말씀대로 사셨다. 그리고 돌아 가시기 전 옥중에서 붓을 들어 이 글을 쓰셨다. 그는 선비 중의 선비이시며, 장군 중의 대장군이시며, 대인 중의 眞大人이며 成人이셨다.

14‧12 子路問成人. 子曰 ..“今之成人者何必然?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
(자로문 성인. 자왈, "금지성인자하필연? 견리사의 견위수명, 구요불망평생지언, 역가이위성인의)
자로가 인격완성한 사람 됨을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금의 成人됨이 知ㆍ不慾ㆍ勇ㆍ藝ㆍ禮樂할 필요가 꼭 있어야 하겠는가?)
利를 보고 義를 생각하며, 위태로움을 보고 목숨을 바치며, 오랜 약속에 평소의 말을 잊지 않는다면 또한 성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The man, who in the view of gain, thinks of righteousness; who in the view of danger is prepared to give up his life; and who does not forget an old agreement however far back it extends:– such a man may be reckoned a complete man.’

안중근 의사는 순국 직전까지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하며, 틈틈이 <논어>의 명구를 휘호하셨다.
서울 남산공원 백범광장 위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석림 중에서, '견리사의 견위수명'이 머릿돌같이 우뚝하다.

더읽기ㆍ안중근 의사, 그의 정의로운 전쟁과 논어
https://munchon.tistory.com/m/1146

논어03. (길에서 읽는 논어) 안중근 의사의 삶과 논어 유묵.

3. 길에서 읽는 논어ㅡ안중근 의사의 삶과 유묵 ▣ 그의 정의로운 전쟁 1909년(31세) 3월 2일 안중근은 김기용, 강기순, 백남규 등 11인과 동의단지(同義斷指)동맹을 결성하였다. 3월 5일에는 총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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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는 자는 어떻습니까?
(빈이무첨 부이무교, 貧而無諂, 富而無驕)"
공자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괜찮다. 하지만 가난하면서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 예를 갖추는 자만 못하지.
(빈이락 부이호례, 貧而樂 富而好禮)"
<논어> 제1학이편에 나온 글이다.

14‧10 子曰: “貧而無怨難, 富而無驕易.”
(빈이무원란 부이무교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난하면서 원망이 없기는 어렵고, 부유하면서 교만이 없기는 쉽다.
The Master said, "To be poor without murmuring is difficult. To be rich without being proud is easy."


♡박노수는 모란화그린 뒤에 '부이무교(富而無驕)'라 제호하였다.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꽃 중의 꽃으로 '화려하면서 사치스럽지 않고', 격조 높은 품격를 가졌으니, 화이불치(華而不侈)와 뜻과 통하기도 한다.
<논어> 학이와 헌문편에 나오는 글이다.

남정 박노수의 그림, '부이무교' 제호

♡貧而樂을 노래한 'Seven Daffodil(일곱송이 수선화)' 를 커피여과지에 그려보았다. 양희은이 번안하여 불렀다.

'Seven Daffodil(,일곱송이 수선화)' 커피여과지에 그림

https://youtu.be/45zwC4Qs7RE

♡다시 읽기ㅡ학이편, '빈이락, 부이호례'
https://munchon.tistory.com/m/1347

0115 가난해도 즐길 줄 안다

서촌의 옥인동 골목길에서 인왕산 수성동 계곡을 오르는 길에 박노수 미술관이 있다. 오래전 미술관에서 박노수 화백의 모란도가 전시된 적 있었다. 박노수 화백은 모란화를 즐겨 그렸다. 畵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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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Spare the rod, spoil the child.)'는 서양 속담이 있다.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고, 귀한 자식 매 한대 더 든다.'는 우리 속담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매를 들어 체벌하며 키우라는 말은 아니다. 엄하게 가르쳐라는 뜻이다.
자녀와 협상을 통해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정하고 스스로 실천하게 하며, 정해진 약속과 규칙은 지키고, 어길 시에는 단호하게 금하고 벌해야 한다. 다만 훈계가 길거나 거칠어서는 안된다. 말은 부드럽고 짧을수록 좋다. 그러나 엄정함을 잃지말아야 한다.
"자녀는 부모가 하라는대로 하지 않고 하는 대로 한다." 고 했다. 가장 좋은 자녀 교육법은 부모가 모범을 보이며, 기준을 공정하고 엄하게 지키는 것이다.

14‧07 子曰: “愛之, 能勿勞乎? 忠焉, 能勿誨乎?”
(자왈, 애지 능물노호? 충언, 능물회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랑한다면 (자녀를/제자를) 수고롭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충성한다면 (임금을/윗사람을) 가르쳐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The Master said, "Can there be love which does not lead to strictness with its object? Can there be loyalty which does not lead to the instruction of its object?"

*충언회호 ~ 간신과 충신은 여기서 구분된다.
감언이설로 아부하면 간신이요. 쓴소리로 가르치면 충신이다. 나라의 흥망이 여기에도 달렸다.

애지 능물노호, 충언 능물회호 ㅡ 전서
애지 능물노호, 충언 능물회호 ㅡ행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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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 仁者有勇, 어진 이는 용감하다.

논어와 놀기 2021. 7. 3. 21:26 Posted by 문촌수기

선비의 이야기를 더하려 한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에 전국적으로 의병을 일어났다. 곽재우, 고경명, 조헌 등 지방의 유생들이 의병장이 되고, 사명당 서산대사 등 승려들이 의승장이 되어 나라를 구하는 일에 앞장섰다. 조선의 명이 기울어지고 대한제국 마저 기틀을 잡지 못하며,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면서 곳곳에서 의병(義兵)이 크게 일어났다. 갑오개혁, 을미사변, 단발령 그리고 을사조약, 군대해산, 경술국치 등 풍전등화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며 전국적으로 의병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안중근은 대한의군(義軍) 참모중장이라는 이름으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1909.10.26, 하얼빈역)하였다.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자 초대 총독인 테라우치 마사다케는 심복인 다카하시 도오루에게 조선에서 의병들이 일어나는 원인이 무언인지 조사하라고 명하였다. 다카하시는 의병장의 집을 수색하고 놀랬다. 그들에게는 한결같이 책상머리에 <퇴계집>이 있다는 것이다. 조선의 의병장들은 바로 선비[士]들이었다. 글만 읽는 백면 서생들이 아니라, 백성과 나라를 구하고자 붓(筆) 대신에 칼을 든 의롭고 용감한 선비(士)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그는 테라우치 총독에게 '조선에서 선비를 없애지 못하면, 끊임없이 일어나는 의병 때문에 식민통치가 불가능할 것' 이라고 보고했다. 이때부터 선비정신에 대한 말살정책이 교묘하게 진행되었다. 박은식(朴殷植)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의병은 우리 민족의 국수(國粹)요 국성(國性)이다. 나라는 멸할 수 있어도 의병은 멸할 수 없다.” 한국인의 정신, 우리의 선비 정신의 정수는 무엇일까? 나는 의(義)ㆍ용(勇)ㆍ청(淸)ㆍ절(節)의 덕과 지행일치의 삶이라고 감히 정리해본다.

14ㆍ05 子曰: “有德者必有言, 有言者不必有德. 仁者必有勇, 勇者不必有仁.
(자왈: “유덕자필유언, 유언자불필유덕. 인자필유용, 용자불필유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이 있는 저는 반드시 훌륭한 말이 있거니와, 훌륭한 말이 있는 자는(라고 해서) 반드시 덕이 있지는 못하다. 인자는 반드시 용명이 있거니와, 용맹이 있는 자는(라고 해서) 반드시 인이 있지는 못하다."
The Master said, "The virtuous will be sure to speak correctly, but those whose speech is good may not always be virtuous. Men of principle are sure to be bold, but those who are bold may not always be men of principle."

유덕자필유언, 유언자불필유덕. 인자필유용, 용자불필유인

<논어> 놀기를 끝내면, 퇴계와 선비정신을 다시 만나리라. <성학십도> 를 숙독하며. 따라 그려보리라.

https://www.itkc.or.kr/bbs/boardView.do?id=101&bIdx=33027&page=1&menuId=0&bc=0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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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itk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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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 危言危行, 道(도)가 뭐 길래?

논어와 놀기 2021. 7. 3. 21:24 Posted by 문촌수기

도(道)를 길이라 한다. 길이라 하면 쉬운 것 같지만, 길이 어디 한 길 뿐이랴? 물길, 들길, 산길, 바닷길, 하늘길, 사잇길, 지름길, 철길, 인도, 차도, 보도, 고속도로, 하물며 눈길, 손길, 말길(言路), 경로. 대체 무슨 길을 道라고 하는 건가? way, road, street, path, track, trail, route, course도 길이다. 방법도 길이요, 과정도 길이요, 경로도 길이요, 인생도 길이요, 진리도 길이다. 그래서 노자는 "도(道)를 도(道)라고 하면 도(道)가 아니다."라고 하였고, 프랭크 시나트라는 'My Way' 속에서, charted course(경로)를 계획하고, 모든 highway(탄탄대로)나 byway(샛길)도 걸었지만, 결코 shy way(수줍은 길)은 아니며 당당하게 my way를 걸었다고 노래하였던가?
나라에 도가 있다는 것은, 말길이 통한다는 말이고, 나라에 도가 없다는 것은 말길이 막혔다는 말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늘 희망한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The road is always everywhere.)"
"걸으면 ,길이 된다. (Walk, it's the way)"

1404 子曰: “邦有道, 危言危行; 邦無道, 危行言孫.”
(자왈: “방유도, 위언위행; 방무도, 위행언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라가 도가 있을 때에는 말을 높게 하고 행실을 높게 하며, 나라가 도가 없을 때에는 행실은 높게 하되 말은 공손하게 하여야 한다."
* 危言危行(위언 위행): 시속(時俗)을 좇지않고 우물쭈물함도 없이,  바르고 대담하며 고준(高峻)한 언행(言行).

The Master said, ‘When good government prevails in a state, language may be lofty and bold, and actions the same. When bad government prevails, the actions may be lofty and bold, but the language may be with some reserve.’

방무도 위행언손

https://munchon.tistory.com/m/1500 마이웨이를 노래합니다

마이 웨이ㆍMy Way

내 인생 이제 후반전으로 들어왔다. 퇴직하고서야 멈추어서 뒤를 돌아본다. '나의 삶, 마이 웨이(MyWay)를 어떻게 걸어 왔던가? ' 프랭크 시나트라는 때론 'by way(샛길)'을 걷고, 때론 'high way(고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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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 선비ㆍ士는 누구인가?

논어와 놀기 2021. 6. 30. 16:29 Posted by 문촌수기

士(사)는 뭐 하는 사람일까? 선비일까, 무사일까? 누구이길래, '그 뜻은 넓고 굳세며(弘毅), 임무는 무겁고 갈 길은 멀다(任重道遠)'고 했을까? 士(사)를 갈라보니, 一위에 十이 얹혀진 모양이다.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聞一知十) 사람이며, 열 개나 되는 많은 문제를 하나로 요약하여 해결할 줄 아는(推十合一) 사람이다. 그러고보면 선비 임에 틀림없다.
이번에는 士의 생긴 모양, 그대로를 살펴보자. 아래의 돌검(石劍, 돌칼)을 보자마자 나는 '士(사)' 글자를 머릿속으로 그렸다. 물론 이 돌검은 지위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지만, 칼을 들고 있다면 무사이지 않은가?

마제석검

士(사)란 결국 선비의 文과 무사의 武를 겸비한 의사, 열사, 지사를 가리킨다. 그들의 임무는 무겁고, 가야할 길은 멀고, 편히 쉴 수가 없었다. 그분들 덕분에 이 나라를 지켜왔다. 고맙고 죄송하다.

1403. 子曰, “士而懷居, 不足以爲士矣.”
(사이회거 부족이위사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선비로서 편안하기를 생각하면 선비라 할 수 없다."
The Master said, ‘The scholar who cherishes the love of comfort is not fit to be deemed a scholar.’

사이회거, 부족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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