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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5

0915 술로 그 사람됨을 본다 수원화성 팔달문에서 지동시장으로 가는 거리에 정조대왕이 앉아 계신다. 주안상을 펼치고 술을 따르며, "불취무귀(不醉無歸)-취하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며 명을 내리신다. 양껏 마시라는 뜻이겠다. 임금께서 즐거워 먼저 취기가 오르듯 하다. 정조실록에 나오는 장면이다.술이 약한 나는 술 잘마시는 이가 부럽다. 취하여도 내가 술을 즐겨야지, 술이 나를 이기니 뒤탈이 두렵기 때문이다. 醉(취)는 '술'을 의미하는 酉(유)와 '끝마치다'는 의미를 가진 卒(졸)이 결합된 것으로, 술을 끝까지 마셔 취한 상태를 뜻한다. 에서는 醉를 "주량을 채워서 마셨으되, 추태를 보이지는 않는 상태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古文에서 卒은 술에 취해 옷을 풀어헤치고 비틀거리는 사람의 형상이다. 두 다리가 꼬일 정도로 만취한 모습.. 2021. 3. 5.
0807 홍의, 넓고도 굳세도다. 도산 서원의 중심이 되는 주강당 전교당(典敎堂, 보물 제210호)은 각종 회합과 공부가 이루어지는 주강당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짝수 칸으로 이루어진 전교당의 '도산서원' 편액은 선조의 사액(賜額)으로 한석봉의 글씨이다. 실내 중앙에는 전교당, 정조대왕이 지으신 제문과 전교(傳敎)를 달아두었고 서벽에는 한존재(閑存齋)의 현액이 있다. 전교당의 계단 아래 좌우에는 유생들이 기거하는 방으로 동재가 박약재(博約齋)이고, 서재가 홍의재(弘毅齋)이다. 박약재는 의 ‘박학어문, 약지이례(博學於文, 約之以禮)’의 준말이며, ‘학문을 널리 배우고, 예로써 자신을 절제하라’는 뜻이다. 홍의재의 ‘사불가이 불홍의(士不可以不弘毅)’에서 가져온 말로, '홍(弘)'은 크고 넓은 마음이며, '의(毅)'는 굳세고 결단 있는 .. 2021. 2. 22.
영릉(파주삼릉) 영릉, 추존 진종소황제와 효순소황후 조씨의 능(쌍릉) 영조의 첫째 아들, 사도세자의 이복형, 정조의 호적상 아버지 영릉永陵(추존 진종과 효순황후) 위치 :경기 파주시 조리읍 삼릉로 89능의 형식 :쌍릉능의 조성 :1726년(영조 5), 1752년(영조 28), 1776년(정조 즉위) 능의 구성 영릉은 추존 진종소황제와 효순소황후 조씨의 능이다. 영릉은 같은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의 형식으로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진종소황제, 오른쪽이 효순소황후의 능이다.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신분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검소하게 조성하였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영릉의 비각은 총 2개로 비각 안에는 세 기의 능표석이 있다. 1비는.. 2021. 1. 7.
건릉(융건릉)-조선 제22대 정조 건릉ㆍ健陵 -조선 제22대 정조선황제와 효의선왕후의 능 정조선황제正祖宣皇帝(1752~1800, 재위 1776~1800)는 장조의 둘째 아들로 할아버지 영조英祖가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다.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라 천명하고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규장각을 두어 학문 연구에 힘썼으며 장용영을 설치하고 수원 화성城을 건축하는 등 조선의 중흥을 이끌었다. 재위 24년(1800)에 세상을 떠나자 묘호를 정종正宗이라 올렸으며, 광무 3년(1899) 정조선황제로 추존하였다. 효의황후 (1753~1821)는 청원부원군高原院君 김시묵金時의 딸로 영조 38년(1782) 왕세손빈에 책봉되었고,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천성이 공손하고 온화하였.. 2020. 11. 24.
융릉(융건릉)-정조의 부, 사도세자 융릉(隆陵) : 추존 장조의황제(사도세자)와 헌경의황후(혜경궁 홍씨)의 능 추존 장조의황제 莊祖懿皇帝 (1735-1762, 사도세자)는 제21대 영조英祖의 둘째 아들이자 제22대 정조선황제正祖宣皇帝의 생부이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글과 시를 잘 지었고, 무예에도 뛰어났다. 그러나 영조를 대신하여 정치업무 (대리청정)를 보게 되며서 노론정권과 마찰을 빚게 되었고, 급기야 영조 38년(1762) 나경언의 고변사건으로 왕세자에서 폐위된 후 뒤주에 갇혀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곧 이를 후회하고 애도하는 뜻에서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렸다. 정조는 즉위 후 존호를 장헌세자라 올렸으며, 광무 3년(1899) 장종莊宗을 거쳐 장조의 황제로 추존하였다. 헌경의황후獻敬懿皇后(1735 1815, 혜경궁 홍씨)는.. 2020.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