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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와 놀기

0915 술로 그 사람됨을 본다

by 문촌수기 2021. 3. 5.

수원화성 팔달문에서 지동시장으로 가는 거리에 정조대왕이 앉아 계신다. 주안상을 펼치고 술을 따르며, "불취무귀(不醉無歸)-취하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며 명을 내리신다. 양껏 마시라는 뜻이겠다. 임금께서 즐거워 먼저 취기가 오르듯 하다.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에 나오는 장면이다.

술이 약한 나는 술 잘마시는 이가 부럽다. 취하여도 내가 술을 즐겨야지, 술이 나를 이기니 뒤탈이 두렵기 때문이다.
醉(취)는 '술'을 의미하는 酉(유)와 '끝마치다'는 의미를 가진 卒(졸)이 결합된 것으로, 술을 끝까지 마셔 취한 상태를 뜻한다. <설문해자>에서는 醉를 "주량을 채워서 마셨으되, 추태를 보이지는 않는 상태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古文에서 卒은 술에 취해 옷을 풀어헤치고 비틀거리는 사람의 형상이다. 두 다리가 꼬일 정도로 만취한 모습이다. 卒에는 '죽다'는 뜻도 있으니, 만취하면 죽음에도 가까워지나 보다. 아예 술을 이겨보려고 다투지 말아야 겠다.

신윤복, '유곽쟁웅(遊廓爭雄).'- 술집(유곽)에서 붙은 시비로 밖에 나와서도 싸움판이 이어졌다. 이미 갓을 부서지고 분을 삭히지 못한 선비는 웃통을 풀어 제킨다. 많이 취한 듯하다.


09 16 子曰: “出則事公卿, 入則事父兄, 喪事不敢不勉, 不爲酒困, 何有於我哉?”
(자왈: “출즉사공경, 입즉사부형, 상사불감불면, 불위주곤, 하유어아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갔으면 공경을 섬기고, 들어와서는 부형을 섬기며, 상사에 감히 힘쓰지 않음이 없으며, 술에 곤(困)함을 당하지 않는 것. 이 중에 어느 것이 나에게 있겠는가?
(~술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술에
지지 않으려면 술과 다투지 말아야 한다.)

The Master said, ‘Abroad, to serve the high ministers and nobles; at home, to serve one’s father and elder brothers;
in all duties to the dead, not to dare not to exert one’s self; and not to be overcome of wine:– which one of these things do I attain to?’

불위주곤

+ 공자의 주량과 음주습관
공자께서 술을 좋아하셨을까? 주량은 얼마나 될까? 술 때문에 곤란을 겪은 일이 있었을까?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음 직한 의문입니다. 이런 궁금증을 풀자면 논어 20편 498장을 모두 다 뒤적여야 합니다.
논어에는 '술 주'(酒)자가 총 5번 나옵니다. 향당편10제10장에 나오는 '향인음주'(鄕人飲酒)는 향음주례라는 풍습에 관한 것이니,  공자의 술습관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위정편2의 8장에, 제자 자하가 효에 관해 묻는 말에 “술이나 음식이 있으면 형이나 아버지가 먼저 드시게 하는 것만을 일찍이 효(孝)라고 하였으랴?” 라는 공자 대답이 나옵니다. 우리의 의문점을 푸는 데는 도움이 안 됩니다.
자한편9 제15장에 해답이 나옵니다. 공자 스스로 자신을 소개하는 대목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술 때문에 곤란을 겪지 않는다.”(不爲酒困). 술을 즐겨 드셨지만, 술로 인하여 곤경에 처하는 일이 없었다는 것은 술에대한 자제력이 매우 뛰어났음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술에 관한 더 화끈한 언급은 향당편10 제8장에 나옵니다. “술은 일정한 양이 없으나, 비틀거릴 정도에 이르지는 않는다. 시장에서 사 온 술과포는 드시지 않는다.”(唯酒無量, 不及亂. 유주무량 불급란; 沽酒市脯, 不食. 고주시포 불식). 이 기록은 공자께서 돌아가신 후에 제자들이 스승을 추모하고 회고하면서 나온 증언입니다.
주량이 한이 없음,
그래도 비틀거리지 않았음,
고주망태를 부리는 일은 일절 없었음.
술은 꼭 집에서 담근 가양주만 드셨음,

이러한 사실은 가까이에서 모신 제자의 증언이기에 더욱 깊이 와 닿습니다. “술 때문에 곤란을 겪지 않는다”는 본인의 진술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공자님 술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唯酒無量(유주무량), 不及亂(불급란)”입니다. 이것을 네 글자로 줄이면 “不爲酒困(불위주곤)” 이 될 것입니다. 꼭꼭 새겨 두고 꼭 실천하는 것이 성인으로 가는 또 하나의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광진 올림

+정조대왕의 불취무귀(不醉無歸)
[조선왕조실록, 正祖 34卷, 辛未년 16年(1792年 3月 2日)] ~ 가운데줄에서 부터

조선왕조실록-정종(정조)실록, 34권. 3월 2일

성균관 제술(製述) 시험에서 합격한 유생을 희정당(熙政堂)에서 불러 보고 술과 음식을 내려주고는 연구(聯句)로 기쁨을 기록하라고 명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옛사람의 말에 술로 취하게 하고 그의 덕을 살펴본다(醉之以酒以觀其德)고 하였으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다(不醉無歸)는 뜻을 생각하고 각자 양껏 마셔라. 우부승지 신기(申耆)는 술좌석에 익숙하니, 잔 돌리는 일을 맡길 만하다. 내각과 정원과 호조로 하여금 술을 많이 가져오게 하고, 노인은 작은 잔을, 젊은이는 큰 잔을 사용하되, 잔은 내각(內閣)의 팔환은배(八環銀盃)를 사용토록 하라. 승지 민태혁(閔台爀)과 각신 서영보(徐榮輔)가 함께 술잔 돌리는 것을 감독하라.” 하였다.
각신 이만수(李晩秀)가 아뢰기를,
“오태증(吳泰曾)은 고 대제학 오도일(吳道一)의 후손입니다. 집안 대대로 술을 잘 마셨는데, 태증이 지금 이미 다섯 잔을 마셨는데도 아직까지 취하지 않았습니다.”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희정당은 바로 오도일이 취해 넘어졌던 곳이다. 태증(泰曾)이 만약 그 할아버지를 생각한다면 어찌 감히 술잔을 사양하겠는가. 다시 큰 잔으로 다섯 순배를 주어라.” 하였다.
식사가 끝난 뒤에 영보(榮輔)가 아뢰기를,
“태증(泰曾)이 술을 이기지 못하니 물러가게 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취하여 누워 있은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옛날 숙종조에 고 판서가 경연의 신하로서 총애를 받아 임금 앞에서 술을 하사받아 마시고서 취해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였던 일이 지금까지 미담(美談)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 그 후손이 또 이 희정당에서 취해 누웠으니 참으로 우연이 아니다.” 하고, 별감(別監)에게 명하여 업고 나가게 하였다. 그때 가랑비가 보슬보슬 내리니, ‘봄비에 선비들과 경림(瓊林)에서 잔치했다.’는 것으로 제목을 삼아 연구(聯句)를 짓도록 하였다. 상이 먼저 춘(春) 자로 압운하고 여러 신하와 여러 생도들에게 각자 시를 짓는 대로 써서 올리게 하였다. 그리고 취하여 짓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내일 추후로 올리라고 하였다..

술로 취하게 하고, 그 모습을 살펴본다(醉之以酒以觀其態) ~ 태공망 강여상의 병법서 <육도> 에서 장수를 고르는 여덟가지 방법(八徵之法·팔징지법) 중 하나.

+팔징지법(八徵之法) -
강태공은 인재를 발굴하여 함께 일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육도(六韜)에서
問之以言 以觀其詳 - 질문을 던져 일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는지를 관찰하는 것을 출발하여 사람을 알아보는 8단계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첫째, 問之以言 以觀其詳
- 질문을 던져 일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는지를 관찰하라.
둘째, 窮之以辭 以觀其變
- 말로써 궁지에 몰아넣고 위기상황을 맞게 해 그 사람의 대처 능력을 관찰하라.
셋째, 與之間諜 以觀其誠
사람으로 하여금 그 사람의 성실성을 관찰토록 하라.
넷째, 明白顯問 以觀其德
- 명백한 질문으로 그 사람의 덕성(인격)을 살피라.
다섯째, 使之以財 以觀其廉
- 재물을 맡겨 보아 그 사람의 청렴성을 관찰하라.
여섯째, 試之以色 以觀其貞
- 여색으로 시험해 보아 그 사람의 정조관념을 살펴보라.
일곱째, 告之以難 以觀其勇
- 어려운 상황을 알려 주고 그 사람의 용기를 관찰하라.
여덟째, 醉之以酒 以觀其態
- 술로 취하게 하고, 그 모습을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