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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와 청계천

고종황제 어극40년 칭경비

by 문촌수기 2024. 2. 11.

세종대로 사거리, 종로 입구에 비전(碑殿)이 있다. 바쁜 걸음에 지나쳤지만 오늘은 잠시 머물러 안내문을 읽어본다.
나라 형편도 어렵다며 이까짓게 뭐라고 세웠나? 국제 정세를 읽지못하고 무능하게 제 짝 왕비도 잃어버리고, 결국에는 나라마저도 잃어버린 임금, 아직도 나는 고종이 마땅찮다.

기념비전과 만세문
만세문(萬歲門)

서울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
高宗 御極* 40年 稱慶*紀念碑
Monument for the 40th Anniversary of King Gojong's Enthronement, Seoul
사적 제171호
(*어극: 즉위 / *칭경: 경축의 의미)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는 1903년(광무 7) 9월 2일에 세위졌다. 비석의 앞면에는 “대한제국 대황제의 나이가 60세를 바라보게 된 것과 즉위한 지 40년이 된 것을 축하한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고종의 아들인 순종이 직집 글을 썼다. 원래 고종이 즉위한 지 40년이 되는 해이자  51세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입소한 해는 1902년이었지만 나라 형편이 어려워 한 해 늦게 세우게 되었다.
비를 보호하는 건물인 비각은 대한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2층 기단 위에 정자형 건물로 짓고 기념비전(紀念碑殿)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고색창연한 이 비전은 조선의 아름다운 전통 건축 양식이 잘 남아있어 예술적ㆍ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남쪽 정면에는 돌기둥 위에 무지게 모양의 돌을 얹어 '만세문'을 만들고, 그양 옆에는 해치상을 조각하였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떼어가 자기 집 대문으로 사용하던 만세문과 담장을 찾아다가 1954년경에 일부를 보수했고, 1979년에다시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 기로소: 조선시대 연로한 고위 문신들의 친목과 예우를 위해 설치한 관서)

빗돌 앞면의 글씨는 당시 황태자였던 순종이 썼다고 한다. 서울 도로의 기점·종점임을 나타내는 도로원표 표석도 이곳에 있다.
현재 광화문 네거리 기념비각에 있는 도로 원표 단위는 일본식 한자 조합어인 ‘米千(m +1000=km)’으로 되어 있다.

칭경비(경축기념비)
도로원표, 기념비전 앞 만세문 오른쪽 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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