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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그림 그리고 수업 이야기

사과 이야기

by 문촌수기 2021. 9. 1.

내게 거의 매일 아침마다 먹는 음식이 있다면?
사과이다. 아침 공백에 좋다며 아내가 빠트리지 않는다. 밤에 먹어도 괜찮다는 이야기는 근래에 들었다. 아무렴 어때? 먹고 싶을 때 먹으면 되지.
시절음식이 곧 보약이란다. 이것도 時中인가? 때에 적합하게 행동하는 것이 군자의 중용이란데, 군자의 보약은 때맞춰 먹고, 싶을 때 먹는 것이라고 농담해본다. 사과에는 담긴 영양소도 많지만, 이야기도 많다. 이야기도 재밌다. 재미도 보약이다.
에덴 동산 아담의 사과, 파리스의 심판, 윌리암 텔의 사과, 뉴톤의 사과,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스티브 잡스의 애플...

1. 성경ㅡ에덴 동산 아담의 사과
주간동아, 원포인트 시사 레슨 에서

성경의 선악과는 왜 사과가 됐을까
라틴어로 악을 뜻하는 malum과
사과를 뜻하는 mālum의 언어유희

독일화가 루카스 크라나흐의 ‘아담과 이브’(1530년 경). 선악과를 사과로 형상화 했다.

인류 역사를 변화시킨 세계 3대 사과가 무엇이냐를 놓고 여러 이야기가 오간다. 세 여신이 내놓은 제안 가운데 아프로디테의 것을 골랐다 트로이 전쟁을 초래한 파리스의 사과. 아들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화살로 맞춰 스위스 독립운동의 불을 지폈다는 빌헬름 텔의 사과.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달았다는 뉴턴의 사과. 19세기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펼쳐진 미술혁명을 예고한 세잔의 사과. 컴퓨터와 인공지능(AI) 연구의 길을 열었지만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자살해 애플 컴퓨터의 로고가 된 앨런 튜링의 사과….

여러 사과가 그 후보에 오르지만 첫 번째를 장식하는 사과는 똑같다. 히브리 성경(구약) 창세기에 등장하는 ‘이브의 사과’다. 창조주가 먹지 말라 금했건만 뱀의 유혹에 넘어간 이브(하와)가 먹고 이어 아담에게도 권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됐다는 그 금단의 과일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순간 갑자기 창조주가 나타나 사과가 목에 걸리는 바람에 생겼다고 해 남성의 울대뼈를 ‘아담의 사과(Adam’s apple)’라 부르는 전통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렇지만 성경책을 아무리 뒤져봐도 사과는 등장하지 않는다. 선악과라는 표현도 없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라고만 등장한다. 구약성경의 주무대인 팔레스타인 지역에선 가장 흔한 과일인 무화과를 선악과로 받아들였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에 그린 ‘천지창조’에서도 선악과가 열리는 나무는 무화과나무다.

미켈란젤로, 원죄와 에덴동산의 추방

그런데 왜 선악과가 사과로 고착된 걸까. 히브리 성경은 그리스어 번역을 거쳐 5세기 초 히에로니무스(영어명 제롬)의 주도 아래 라틴어 번역이 집대성됐다. 로마가톨릭에서 정경(正經)으로 삼았던 불가타성경이다. 불가타성경에서 문제의 나무는 ‘리늄 시엔티에 보니 에 말리(lignum scientiae boni et mali)’로 번역됐다. 히브리어와 마찬가지로 '선과 악을 구별하는 지혜의 나무'라는 뜻이다.
문제는 그 나무의 열매를 뜻하는 단어에 있었다. 히브리 성경에선 모든 종류의 열매와 그 즙까지 의미하는 페리(peri)라는 단어를 썼다. 사과를 비롯해 무화과, 석류, 포도, 쌀, 밀 등 모든 열매를 포괄하는 단어다. 히에로니무스는 이를 라틴어 말룸(ma–lum)으로 번역했다. 이 단어는 사과라는 뜻과 함께 배나 복숭아처럼 실한 과육 속에 씨를 품은 과일을 통칭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라틴어에서 이 단어의 장모음 a를 단모음으로 발음하는 malum은 ‘악(惡)’을 의미한다. 그 형용사형인 malus는 '나쁘다'는 뜻이고, a를 장모음으로 발음하는 ma–lus는 사과나무다.
결론적으로 ‘악’이란 단어와 ‘사과(나무)’라는 단어의 표기 및 발음이 유사한 것에서 영감을 얻어 일종의 ‘펀’(pun·다의어와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언어유희)을 구사한 것이다. 이런 말장난이 인류 원죄를 강조하는 중세 기독교시대를 거치면서 ‘악한 과일=사과’라는 의미로 고착됐을 개연성이 크다.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 나무에 열린 열매를 먹은 사건이야말로 인류 원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존 밀턴이 1667년 간행한 ‘실낙원(Lost Paradise)’에서 문제의 과일을 2번이나 사과(apple)로 명명한 점도 ‘선악과=사과’ 확산에 기여했다.
기독교 전파 과정의 산물이란 해석도 있다. 사과는 북유럽신화와 켈트신화에서 신들에게 영원한 청춘을 안겨주는 열매로 신성시됐다. 이런 이교도적 신앙을 약화하고자 일부러 사과를 금단의 열매로 격하했다는 것이다. 이유가 뭐가 됐든 선악과는 인류 역사를 바꾼 사과가 될 수 없다.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2. 신화ㅡ파리스의 심판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3. 역사ㅡ윌리암 텔의 사과,
14세기 초엽으로 스위스는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식민지였다.
오스트리아 총독인 '게슬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야만성을 띄고 있는 사람이였다. 그는 길가에 높은 나무막대기 위에 오스트리아 왕을 상징하는 모자를 걸어 놓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경례하도록 강요했다.
때마침 '윌리암 텔'이 여섯살 난 아이를 데리고 그 앞을 지나치면서 절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이의 머리 위에 사과를 얹고 텔로 하여금 활을 쏘게 하였다.
활을 잘 쏘는 그였지만, 아이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주저할 수 밖에 없었다. 차마 아들을 향해 활을 당길 수 없었던 윌리엄은 몇번인가를 망설이고 망설인 후에 화살을 활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서서히 고개를 들어 아들을 보았다.
아들은 편안하고 밝은 표정의 미소를 짓고 있었고, 윌리엄은 활을 들어 크게 심호흡을 한 후에 활을 당겼다. 화살은 활 시위를 떠나 정확히 사과의 한 가운데에 명중되었다.

그렇게 화살은 게슬러의 의도와는 달리 아이의 머리 위의 사과를 뚫고 지나갔고, 순간 눈이 휘둥글해진 총독은 텔을 쏘아보고 있었다.
텔이 또 하나의 화살을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슬러는 윌리엄텔이 2개의 화살을 준비한 것을 보고,
만일 실패하는 경우에는 윌리엄텔이 자신을 쏘아 죽이려 했음을 알고 윌리엄텔을 풀어주려 하지 않는다. 게슬러는 텔을 결박하여 연행해 가게 하지만, 폭풍이 내리는 틈을 이용하여 텔은 탈출에 성공한다.
그후 바위산 위에서 윌리엄 텔이 폭군 게슬러를 쏘아 죽이고, 스위스에는 평화가 찾아온다는 내용의 희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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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조선일보―윌리엄 텔 이야기
[흥미진진 이야기 보따리] "아들 머리 위 사과를 활로 쏘라" 폭군의 명령에 용감한 사냥꾼은…
입력 : 2015.08.25 09:25

과거 스위스 국민이 지금처럼 자유롭고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게슬러라는 폭군이 사람들을 다스렸을 때만 해도 스위스 사람들의 생활은 무척 처참했습니다.
하루는 게슬러 왕이 광장에 커다란 장대를 세우고 자신의 모자를 그 꼭대기에 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성안으로 들어오는 자는 누구나 그 앞에서 절을 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사람들은 할 수 없이 그 모자에 절을 했지만 단 한 사람, 윌리엄 텔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꼿꼿이 서서 그 흔들리는 모자를 비웃는 것은 물론, 게슬러에게도 절대 고개 숙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게슬러는 이 얘기를 전해 듣고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반역의 길을 걸을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무례한 사내를 벌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윌리엄 텔의 집은 산중에 있었으며 그는 이름난 사냥꾼이었습니다. 나라 안에서 그만큼 활을 잘 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게슬러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냥꾼의 재주가 도리어 재난을 불러일으키게 할 잔인한 계획을 꾸몄습니다.
게슬러는 윌리엄 텔 아들 머리 위에 사과를 올리고, 이 과일을 화살로 맞추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는 가슴이 뛰고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그는 폭군에게 자신의 솜씨를 이런 식으로 시험하지 말라고 애원했습니다.
만약 어린 아들이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요? 화살을 쏘는 자신의 손이 떨리기라도 한다면, 화살이 명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당신은 제 아들을 죽일 생각이십니까?"
게슬러는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더는 아무 말 마라. 너는 화살 하나로 사과를 맞추어야 한다. 만약 실패하면 내가 보는 앞에서 내 병사들이 네 아들을 죽일 것이다."

그러자 윌리엄 텔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화살을 활시위에 걸었습니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고 나서 조준을 했습니다. 드디어 화살이 날아갔습니다. 윌리엄 텔의 아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소년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활 솜씨를 믿고 있으니까요.
화살은 '휙' 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을 가로질렀습니다. 화살은 사과의 한가운데를 정확하게 맞춰 떨어뜨렸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윌리엄 텔이 그곳을 떠나기 위해 발길을 돌리자 그의 외투 안에 감춰두었던 화살 하나가 땅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본 게슬러가 소리쳤습니다.
"이놈! 그 두 번째의 화살은 어찌 된 것이냐?"
"폭군이여! 이 화살은 만약 내 아들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당신의 심장을 쏠 생각으로 갖고 있었던 것이오."

>> 생각 꾸러미
폭군은 결국 자기 꾀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만약 윌리엄 텔이 명중시키지 못했다면 폭군의 목숨도 장담하지 못할 상황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윌리엄 텔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했기 때문에 어느 것도 잃지 않고 아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위기를 이겨내려면 지혜와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도 용기와 지혜가 있습니까?

스코프 제공 |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 50(제임스 M. 볼드윈 글·이정헌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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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307년 빌헬름 텔의 사과
입력 | 2005-11-18 03:01:00 ㅡ 동아일보

자식의 머리에 올려놓은 표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길 수 있는 강심장이 몇이나 될까.
1307년 11월 18일 스위스 알트도르프 마을 광장.
활을 잡은 빌헬름 텔은 묵묵히 아들을 바라봤다.
“저는 아빠를 믿어요.”
멀리 서 있는 아들 발터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활쏘기를 포기하거나, 빗맞히면 어차피 둘 다 죽어야 한다. 할 수 있는 건 오직 온 정신을 집중하는 것뿐….
화살은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정통으로 쪼개 버렸다.
빌헬름 텔은 합스부르크가의 지방관(地方官) 게슬러가 걸어 놓은 모자에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가 체포된다. 그 벌로 자식의 목숨을 걸고 활을 쏘아야 했던 텔은 결국 게슬러를 죽여 복수한다.
지배자에게 밉보여 자식을 향해 활을 쏘는 이야기는 유럽에선 드물지 않다.

노르웨이에는 11세기에 개암나무 열매를 아들의 머리에 올려놓고 활을 쏴야 했던 사냥꾼 이야기가 전해진다. 덴마크 역시 12세기에 아들 머리 위의 사과를 명중시킨 명사수의 전설이 있다.
그 가운데 유독 빌헬름 텔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독일 작가 프리드리히 실러 덕분이다.
실러는 친구인 대문호 괴테에게서 빌헬름 텔의 이야기를 듣고 희곡으로 만든다. 포악무도한 지방관에 맞서 조국을 해방시킨 영웅의 이미지를 심었다. 개인적인 복수 차원의 살해는 공동체를 위한 애국적인 암살로 격상된다.
희곡 ‘빌헬름 텔’이 완성된 건 1804년. 유럽이 한창 정치적 격변기에 있던 시절이었다. 처음엔 그 정치적인 폭발력 때문에 극장 상연이 거부됐다.
빌헬름 텔의 이미지는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여러 차례 각색됐다. 수백 년 전 스위스의 명사수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때로는 자유의 상징으로, 때로는 테러리스트로 극과 극을 오갔다.
전해오는 이야기엔 활을 쏜 날짜까지 나와 있지만 역사학자들은 여전히 빌헬름 텔이 실존 인물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엔 실재(實在)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스위스 국민의 60% 이상이 실존 인물로 믿고 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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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과학ㅡ뉴턴 사과의 진실은?

위대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이 정말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중력을 발견했을까. 뉴턴의 사과나무 일화의 출처가 최초로 공개됐다. 영국 왕립학회가 뉴턴의 사과나무 이야기에 대한 원문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일명 ‘사과나무 일화 논란’은 이제 끝날 것으로 보인다. ● 중력과 사과나무의 인연은 1660년대 중반 20대 초반의 대학생 뉴턴은 흑사병 때문에 학교가 휴교를 해서 집에 머물렀다. 이 기간에 뉴턴은 정원의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의 법칙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사과나무 일화다. ‘사과’는 뉴턴과 중력의 법칙을 관한 얘기에서 마치 신화 같이 통용된다. 하지만 이 일화는 그동안 과학사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릴 정도로 분분했다. 뉴턴 본인이 사과나무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는 얘기가 있다. 또 계몽사상가 볼테르가 뉴턴이 죽던 해에 처음을 사과나무 이야기를 했으며 그는 뉴턴의 조카 캐서린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는 식의 말도 나온다. ● 1726년 오후, 뉴턴이 한 말 영국왕립학회가 이 같은 논란을 해소할만한 문서를 최근 공개했다. 이 문서는 뉴턴과 친분이 두터웠던 영국의 과학자 윌리엄 스터클리(William Stukeley, 1687-1765)가 쓴 ‘아이작 뉴턴경의 삶에 대한 회고록(Memoirs of Sir Isaac Newton’s life)’이다. 스터클리는 뉴턴의 어린 시절부터 말년까지를 기록한 문서들을 묶어서 1752년에 영국왕립학회에 제출했다. 영국왕립학회는 이 오래된 문서들을 전자북으로 공개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했다. 사과나무 일화는 이 문서의 42쪽에 나온다. 1726년 봄 어느 날 오후 저녁을 먹고 난 후 뉴턴과 스터클리가 나눈 대화를 자세히 기록한 것이다. ● 사건의 전모 당시 이 두 사람은 사과나무 아래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뉴턴은 중력의 개념이 이와 동일한 상황에서 자신의 머리에 갑자기 떠오르게 되었다고 스터클리에게 말했다. 즉 왜 항상 사과가 옆이나 위가 아니라 아래로 떨어지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그에게 중력 법칙을 발견하도록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이런 글이 있다. “그(뉴턴)가 깊은 생각에 잠겨 앉아있는 그때에 사과가 떨어졌다. 그는 왜 사과는 옆이나 위가 아니라 수직으로 떨어지는 것인지를 생각했다. 그 이유는 분명히 지구가 사과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물질에는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야 한다.” ● 원본이 존재한다는 게 중요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예술사학자 마틴 켐프(Martin Kemp) 교수는 이번 일에 대해 “사본이나 복사본이 아니라 원본을 존재한다는 것은 역사학자들에게 매우 귀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왕립학회 도서관원 케이스 무어(Keith Moore)는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관찰하면서 그 뒤에 숨은 원리를 추측해내는 뉴턴의 얘기에서 “뉴턴이 과학적 방법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고 정리했다. 그는 “사과의 모양은 지구처럼 둥글다. 또한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는 아담과 이브의 얘기를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신앙심이 깊었던 뉴턴은 이 둘 간의 유사성을 발견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향집 울즈소프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는 뉴턴의 일화는 유명하다. 이 일화의 진위를 놓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1666년의 어느 날 갑자기 사과가 뉴턴의 머리 위에 떨어졌고, 잠시 뒤 “유레카”의 순간이 뉴턴에게 떠오른 그런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은 듯하다. 그렇다고 사과와 만유인력의 법칙이 완전히 무관하다고 딱 잘라 말하기도 쉽지 않다. 뉴턴은 생전에도 수차례 지인들에게 사과 일화를 얘기했다. 이 이야기를 한두 다리 건너 전해들은 사람 중에 계몽주의의 위대한 선구자 볼테르도 있었다. 뉴턴과 동시대에 살면서 뉴턴으로부터 직접 그 일화를 전해 들었다는 문서도 없지 않다.
그 내용은 대충 이렇다. 사과가 수평 방향으로 또는 위로 움직이지 않고 지구 표면으로 떨어지는 것은 지구가 사과를 당기는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좀 더 높은 가지에 달린 사과도 똑같은 힘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가 당기는 힘, 즉 중력이 달까지 이르지 않는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뉴턴은 이런 생각을 발전시켜 달이 지구 주변에 붙들려 있으려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이 작용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달은 끝없이 지구를 향해 떨어지는 사과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
이는 훗날 《프린키피아》3권에 소개된 뉴턴의 이른바 포탄 사고실험과 연결된다. 포탄이든 사과든 별 차이가 없으니까 우리는 그냥 사과라 하자. 뉴턴은 높은 산에 올라가 사과를 던지는 사고실험을 했다. 사과나무에서 가만히 떨어지는 사과는 나무 바로 아래에 떨어진다. 만약 뉴턴이 그 사과를 집어 들고 사선으로 (지면과 적당한 각도를 이루면서) 던지면 사과는 갈릴레오가 예측한 대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다가 결국 땅에 다시 떨어진다. 뉴턴이 사과를 더 세게 던지면 (세게 던진다는 말의 물리적 의미는 초속도를 크게 한다는 말이다.) 사과는 더 멀리 날아갈 것이다. 여기서 뉴턴은 아주 극단적인 생각을 한다. 만약 사과를 아주 세게 던져서 그 비거리가 지구 둘레 정도에 해당하면 어떻게 될까?

이게 가능하다면 사과는 지면에 닿지 않고 계속해서 지구 주위를 돌게 될 것이다. 즉, 지상계의 사과가 천상계의 위성이 되었다. 사실 지금의 인공위성도 이렇게 지구 주위를 (물론 케플러의 법칙에 따라 타원궤도로) 돌고 있다.
지상계의 사과와 천상계의 달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면 이는 놀라운 결과이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에서는 천상계와 지상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즉, 천상계와 지상계에는 전혀 다른 법칙이 적용되었다. 뉴턴은 자신의 새로운 중력법칙으로 천상계와 지상계를 하나로 통합해버렸다. 사과든 달이든 만유인력의 법칙이 적용되면 땅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영원히 지구 주위를 돌기도 한다. 서로 다른 법칙이 적용되는 두 개의 분리된 세상이 있다는 것보다 그 모두에 적용되는 하나의 ‘보편적인’ 법칙이 있다면 누구라도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래서 뉴턴의 중력법칙을 ‘보편중력의 법칙(Law of Universal Gravitation)’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만유(萬有)는 어디에나 있다는 뜻이니까 universal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는 말보다 보편중력의 법칙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만유인력이라는 말 자체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만유인력이라는 말을 초등학교 때부터 들었지만 이 말에 universal이라는 뜻이 있는 줄은 대학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말로 설명하면 이렇다. 질량이 있는 두 물체 사이에는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두 물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당기는 힘이 보편적으로 작용한다. 그 비례상수는 중력상수 또는 뉴턴상수라 부른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이른바 ‘역제곱의 법칙(inverse square law)’이다. 힘의 크기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내용이다. 지구가 태양에서 두 배 멀어지면 지구-태양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이 네 배로 작아진다. 거리가 세 배 멀어지면 힘은 아홉 배 작아진다. 태양계의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타원궤도를 돌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역제곱 법칙 때문이다. 역제곱 법칙을 수학으로 표현하면 힘이 거리의 (-2)제곱에 비례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 왜 하필 거리의 지수가 (-2)인가가 역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행성의 궤도가 태양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안정성) 행성이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오려면 (닫힘성) 수학적으로 두 가지의 경우만 허용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거리의 지수가 (-2)인 경우이다.
만약 중력이 거리의 세제곱 또는 1.5제곱에 반비례했다면 지금 우주의 모습은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지구가 태양 주변을 안정적으로 돌지 못했다면 우리 같은 생명체가 생겨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전혀 다른 생명체가 생겨났을 수는 있다.)
한편 이 지수가 정확하게 (-2)인 것은 우리 우주의 공간이 3차원인 사실과 깊은 관계가 있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태양으로부터 일정한 거리 R에 100개의 똑같은 행성이 균일하게 퍼져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 행성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반지름이 R인 가상의 구면 위에 놓여 있을 것이다. 만약 거리가 두 배, 즉 2R만큼 떨어진 곳에 있는 가상의 구면을 생각해 보자. 이 구면의 넓이는 반지름이 R인 구면의 넓이보다 네 배 클 것이다. 왜냐하면 넓이는 길이의 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이 구면에 원래 구면과 똑같은 밀도로 행성을 배치하려면 네 배, 즉 400개의 행성이 필요할 것이다. 구면 자체가 네 배로 넓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거리 R은 애초에 임의의 값으로 잡을 수 있으니까, 태양이 미치는 중력은 반지름 R인 구면 위의 100개의 행성에 미치는 힘이나 반지름 2R인 구면 위의 400개의 행성에 미치는 힘이나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개의 행성이 느끼는 중력은 거리가 두 배 늘어남에 따라 제곱으로 네 배 줄어들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논의를 수학적으로 일반화한 것이 가우스 법칙이다)
만약 우리가 사는 우주의 공간이 3차원이 아니라면 중력의 역제곱 법칙은 바뀔 수도 있다. 이런 SF 같은 논의가 실제로 과학의 연구주제이기도 하다. 3차원 이상의 덧차원(extra dimension)이 아주 미세한 크기로 숨어 있다면 우리가 미처 눈치 채지 못할 수도 있다. 1998년 덧차원 논의가 학계의 뜨거운 주제였을 때 밀리미터 이하의 세계에서도 중력의 역제곱 법칙이 적용되는지가 큰 관심거리였다. 실험적으로 그 이하까지 확인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의 실험결과 하나를 소개하자면 수십 마이크로미터까지 역제곱 법칙이 확인되었다.
반대로 아주 큰 우주적인 스케일에서 역제곱 법칙이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주의 암흑물질 등을 대체해서 설명하기 위해 일부 과학자들은 수정된 뉴턴 동역학(Modified Newtonian Dynamics, MOND) 이론을 도입하기도 한다. 덧차원이나 MOND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을 보면 과학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과학자들은 필요하다면 위대한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조차도 수정할 용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 법칙이 대체 어느 한계까지 작동하는지를 끊임없이 검증한다. 우리의 경험세계에서 잘 맞는다고 결코 만족하는 법이 없다. 이처럼 끝없이 의심하고 검증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자세가 바로 과학의 혁신을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이다.
만유인력의 또 다른 측면, 즉 힘의 크기가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한다는 점을 다시 살펴보자. 이 결과는 역제곱의 법칙보다 이해하기 쉽다. 태양의 질량이 두 배가 되면 지구가 느끼는 중력은 두 배가 된다. 이 상태에서 지구의 질량이 세 배가 되면 지구가 느끼는 중력은 여섯 배가 된다.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태양도 똑같이 여섯 배 커진 힘을 느낀다. 이게 뭐가 그리 대단할까 싶은데, 중력의 크기는 “질량에 비례해서” 커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질량이 많이 나가는 사람은 그만큼 지구로부터 큰 중력을 받는다. (이 힘을 특별히 ‘몸무게’ 또는 ‘체중’이라 부른다. 몸무게는 질량이 아니라 중력의 크기이다.)
이제 무거운(질량이 큰) 물체와 가벼운(질량이 작은) 물체를 자유 낙하시키는 실험을 생각해 보자.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는 왜 동시에 떨어질까? 무거운 물체는 질량이 크니까 그만큼 지구로부터 더 큰 힘을 받는다. 한편 뉴턴의 제2운동법칙(F=ma)에 따라 질량이 클수록 원하는 가속도를 얻으려면 큰 힘이 필요하다. 예컨대 A라는 가속도를 얻기 위해 가벼운 물체에는 작은 힘을 줘도 되지만 무거운 물체에는 그만큼 더 큰 힘을 줘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우주에는 정확히 이런 성질을 만족하는 힘이 있다. 바로 중력이다. 중력은 질량에 비례한다. 따라서 A라는 가속도를 얻기 위해 필요한, 질량에 비례하는 그 힘을 중력이 제공해 줄 수 있다.
정리해 보자. 무거운 물체에는 큰 중력이 작용한다. 그 힘으로 무거운 물체를 지구 중심으로 잡아당겨 A라는 가속도를 만들었다. 반면 가벼운 물체에는 그보다 작은 중력이 작용한다. 다행히 F=ma에 따라 작은 힘으로도 A라는 가속도를 만들 수 있다. 무거우면 무거운 만큼 일정한 가속도를 얻기 위해 큰 힘이 필요하지만 중력은 딱 그만큼 질량에 비례하는 큰 힘을 제공한다. 가벼운 물체는 가벼운 만큼 일정한 가속도를 얻기 위해 작은 힘만 필요한데 중력은 딱 그만큼 질량에 비례하는 작은 힘을 발휘한다. 그 결과 질량에 상관없이 지표면의 모든 물체에는 똑같은 크기의 가속도가 작용한다. 가속도는 속도의 시간에 따른 변화이므로 가속도가 똑같다면 임의의 시간에 물체의 속도도 똑같다. 따라서 모든 물체는 동시에 바닥에 떨어진다.
이쯤 되면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가 왜 동시에 떨어지는가 하는 문제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은 문제임을 간파했을 것이다. 위의 논의에는 한 가지 트릭이 숨어 있다. 제2 운동법칙에 들어가 있는 질량과 만유인력의 법칙에 들어가 있는 질량을 암묵적으로 같다고 본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질량을 정의하는 데에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제2법칙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즉 어떤 물체를 특정한 가속도를 얻기 위해 얼마의 힘을 작용해야 하는지 측정하면 그 물체의 질량을 정할 수 있다. 이렇게 정해진 질량을 관성질량이라 한다. 또 다른 방법은 중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물체를 지구가 얼마나 큰 힘으로 당기는지를 비교 측정하면 그 물체의 질량을 정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몸무게를 재는 것도 이 방식이다. 이처럼 중력을 이용해 정의되는 질량을 중력질량이라 부른다.
앞서의 트릭을 다시 말하자면 나는 중력질량과 관성질량을 암묵적으로 같다고 본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 같을 이유는 없다.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은 전혀 다른 두 방식(첫째 방식에서 사용한 힘이 중력이 아니라면)으로 정의된 양이다. 그렇게 정의된 두 양이 같을 이유는 없다. 그런데 왠지 이 둘은 같아야 할 것 같다! 원래 의심이 많은 과학자들은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 어느 정도의 정밀도로 일치하는지 지금도 집요하게 (심지어 우주에 올라가서까지) 실험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아직 왜 이 둘이 같은지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 자연의 근본원리로부터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 같음을 설명할 수 있다면 순식간에 과학계의 슈퍼스타가 될 것이다.
뉴턴으로부터 200여 년 뒤에 등장한 아인슈타인은 이와 관련된 “생애 최고로 행복했던” 영감을 얻어 결국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하게 된다. 그러니까 가벼운 돌과 무거운 돌만 있으면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에서 근대의 갈릴레오와 뉴턴을 거쳐 현대의 아인슈타인까지 이를 수 있다.
그러나 만유인력에는 뉴턴 자신도 만족하지 못했던 점이 있었다.
참고자료
-Steve Connor, The core of truth behind Sir Isaac Newton's apple, Independent,18 January 2010,
https://www.independent.co.uk/news/science/the-core-of-truth-behind-sir-isaac-newtons-apple-1870915.html


-H. Goldstein, Classical Mechanics, Addison-Wesley.
-Wen-Hai Tan et al., New Test of the Gravitational Inverse-Square Law at the Submillimeter Range with Dual Modulation and Compensation, Phys. Rev. Lett. 116, 131101 (2016).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5. 동화ㅡ잠자는 숲 속의 미녀,

6. 기술ㅡ스티브 잡스의 애플,
스티브 잡스는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과 공동 창업한 회사 이름을 애플컴퓨터로 했다. 이름 때문에 비틀스의 소속사인 애플레코드와 소송도 했다. 잡스는 사과 품종인 매킨토시를 제품명으로 했고 집 뜰엔 사과나무를 심었다. 젊은 시절 사과과수원에서 공동체 생활을 했던 잡스는 사과를 가장 완벽한 과일로 생각했다. 제품이 사과처럼 아름답고 완벽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애플이라는 이름을 선택했다고 잡스 주변 인사들은 전했다.

애플 로고는 처음엔 사과나무 아래 있는 뉴턴을 형상화했으나, 1978년 오늘날처럼 한 입 베어먹은 사과 모양으로 바뀌었다. 1998년 단색으로 단순화하기 전까지 애플이 22년간 사용한 로고는 무지개 색의 사과였다. 이 로고를 두고 영국 과학자 앨런 튜링과 연결짓는 설명이 있다. 튜링은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 체계를 해독해내어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 공로를 세웠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화학적 거세형을 받는다. 수모를 못견디고 튜링은 1954년 청산가리를 주사한 사과를 베어물고 자살했다. 무지개 깃발은 성소수자 상징이라는 점에서 한입 베어 문 무지개 사과가 튜링을 기린 것이라는 해석이다.

애플의 최고경영자 팀 쿡이 10월말 <비즈니스위크> 기고에서 “게이임이 자랑스럽다”고 커밍아웃을 한 이후 반향이 확산되고 있다. 최고경영자가 동성애자임을 공개한 일은 세계 500대 기업 처음이고, 애플은 기업 가치 세계1위의 기업이다.

커밍아웃 이전부터 쿡은 동성애 매체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게이 1위로 꼽혀왔다. 쿡은 잡스와 달리 기업 경영자로서 사회적 메시지 발언을 삼가지 않아왔다. 쿡은 성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넘어 수시로 미국 민권법과 마틴 루서 킹의 인권운동을 언급하며 각종 차별 철폐를 말해왔다. 애플의 로고가 디지털세상의 혁신 아이콘을 넘어 차별 반대 기업의 상징까지 지니게 될지 관심이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원문보기:
https://m.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62517.html#cb#csidxb90ed549c3185958c70cff8360ac17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