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때요? 이 이야기는 마치 우리나라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 그렇게 낯설지 않죠?
성춘향이가 오직 이몽룡에게 바친 사랑과 깨끗한 몸을 지키고자 변사또의 수절을 끝내 거부하여 옥에 갇힌 이야기며, 벼랑 끝에 몰리우도 몸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우리네 여성들 이야기하고 무척이나 비슷합니다. 이렇듯 순결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 최고의 미덕이며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었던가 봅니다.
그런데 세상은 많이 변했지요. 급변하는 세상은 여성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게 되고 이젠 남성과 똑같은 사회적, 경제적 파트너가 되어 동등한 인격체로서 대우를 받게
었지요. 아니 지금도 여성 해방, 여성 평등이라면서 여자들의 목소리가 많이 커졌죠.
그러다 보니, 어떤 여성 해방론자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순결'은 남성 중심의 봉건적 사회의 가치관이며, 또한 '순결'은 남성에게는 해당되지 않고 오직 여성만을 구속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적어도 남성도 순결을 지키거나 아니면, '순결'을 강요하는 도덕과 사회규범을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그 사람들은 순결을 가르치는 사회는 '반(反)여성적, 봉건적 사고방식에 젖은 구태 의연한 사회' 라면서 비난의 화살을 쏘아붙이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주장이 전혀 억지는 아닙니다. 일부다처제가 통했던 옛날은 특히 성적
인 의미의 순결은 여성들이 지켜야할 최고의 덕목이었고, 결혼을 했어도 오직 한사람의 지아비만 섬겨야 된다는 불평등한 논리였겠지요.
그러나 동서 고금으로 남성들에게는 강요되지 않고 여성에게만 멍에 지어진 순결이
라고 해서 오늘날의 페미니스트, 즉 여성 해방론자들에 의해 '순결'의 가치가 떨어져서야 되겠습니까?
순결은 무엇입니까?
'육체적으로 성적으로 깨끗한 상태'를 말합니다. 또 그러면서도 '마음에 조금도 더
러움이 없고 그 어느 누구에게도 부끄러움이 없는 깨끗한 상태'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즉,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깨끗한 상태'를 순결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천성이 깨끗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와 같은 천성은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시켜 주는 것이고 또한 인간의 가치를 높여주는 성품입니다. 깨끗해야 남 앞에 서더라도 부끄럽지 않고, 당당할 수 있지요. 그러한 원칙은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다소 다른 형태이지만 옛날부터 남성에게도 순결은 요구되었습니다. 특히 그것은 절
개라는 이름으로 선비가 지녀야할 최고의 덕목이요 목숨보다 소중한 덕목이요 게다가 외부에서 강제된 강요의 덕목이 아니라 스스로의 명예를 위해 자율적으로 선택되는 덕목이었습니다.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의 순결이 바로 그것이며, 안중근, 윤봉길의사의 순결이 바로 그것이지요.
남성에게 요구되는 순결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절개라면, 여성에게 요구되는 순결은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 정조(貞操)였습니다. 어쨋든, 다른 형태이지만 결코 순결이 여성에게만 강요되었던 것은 아니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정절(貞節)이라는 이름으로 요구되었던 순결은 전통사회가 억지로 떠맡긴 강요
가 아니라 정신적 고결함과 육체적 정결함을 잃지 않고 그것을 온전히 지켜나가려는 인간 본연의 명예였으며 진정 곧고 의로운 선택이었습니다.
우리 학생 여러분.
단순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순간적, 육체적 충동을 이기지 못하여 자기의 고결한 순결과 동정을 그렇게 쉽게 버려서야 되겠습니까? 보다 성숙하고 아름다운 사랑은 참고 지켜주고 보존하는 노력을 통해서만 얻어집니다. 쉽게 얻고 쉽게 버리는 것은 결코 가치롭다고 할 수 없지요. 어렵게 얻고 어렵게 지키고 깨끗하게 지켜지는 사랑은 진정 아름답고 고귀한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 존엄성을 확인시켜주는 '깨끗함'은 아무리 시대가 변하더라도 가정과
사회의 질서를 잡아주는 동서고금의 불변적 가치이며 개인적 사명입니다. 이제 남녀 학생 모두는 자기의 정신과 육체를 진정 깨끗하게 보존하고 가꾸었다가 정녕 사랑하는 임을 위하여 소중하게 바칠 수 있도록 잠시라도 순결이라는 미덕을 놓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너희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여러분이 순결한 상대를 원한다면 먼저 순결을 소중히 지켜야 될 것입니다. 깨끗한 곳에는 아름다운 꽃이 놓여 있는 것처럼 세상의 이치는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1999년 6월 23일 '청소년을 위한 순결 강의' 황보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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