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7 베를린

독일-한국교원통일포럼2014 2016. 2. 14. 23:56 Posted by 문촌수기

베를린 도시 이야기

베를린의 도시 풍경

독일 동부에 자리한 베를린은 지정학적으로 유럽의 중심이라 일컬어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 슈프레(Spree)강이 흐른다. 이 강은 일찍이 빙하기에 베를린과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사이에 형성된 계곡을 따라 흐르다 베를린 한복판을 가로로 지나간다. 이 강은 베를린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슈판다우(Spandau) 구에서 다시 하벨(Havel) 강과 만난다. 베를린 서부를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하벨강은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여러 호수들이 체인처럼 엮인 모습에 가깝다.

이 호수 가운데 베를린 시민들의 삶을 특히 풍요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테겔(Tegel) 호수와 반제(Wannsee) 호수다. 이 아름다운 호수들이 슈프레 강 위쪽으로 유입되고, 그 덕분에 수량이 풍부해진 슈프레강이 다시 뮈겔 큰 호수(großer Müggelsee)를 지나 베를린 동쪽으로 빠져나간다. 그리하여 파리와 센강을, 런던과 템스 강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듯이, 독일 사람들은 베를린을 생각할 때 슈프레와 하벨 그리고 아름다운 호수들을 떠올린다.

베를린은 슈프레 강 양안을 중심으로 확장을 거듭해왔다. 지리학자들은 이 양안을 고원이라 부르지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고원이라 이름 붙이기에는 부족할 만큼 높지 않은 지형이다. 베를린에서 가장 높다는 악마의 산(Teufelsberg)과 뮈겔 산(Müggelberge)을 생각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고작 해발 115미터를 넘지 못하는 이 두 산은 차라리 언덕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다.

베를린의 풍경은 격동에 얽힌 독일사의 편력을 증인처럼 전해준다. 1871년에 창건된 독일제국, 제1차 대전 패배와 더불어 수립된 바이마르공화국, 제2차 대전을 불러일으킨 나치 제국 그리고 동독의 역사가 이제는 통일 독일의 수도가 된 베를린 곳곳에 배어 있다. 그 이전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는 2차 대전 때 연합군의 공습으로 거의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도시 곳곳에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오늘날 베를린은 낡은 건물의 해체와 고층 건물 신축 공사를 통해 하루가 다르게 모습을 바꾸어 가고 있다. 말하자면 베를린은 아직도 공사 중이다. 그렇지만 과거 동독이 지배했던 동베를린 지역에는 저층 건물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텔레비전 송신탑(Fernsehturm)은 베를린 시내 어디에서나 바라볼 수 있는 유럽 최고의 건축물이다. 높이 368미터의 이 탑은 1969년에 세워졌으며, 관광객의 발길이 빈번한 알렉산더 광장(Alexanderplatz)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해발 204미터 높이에 있는 이 탑의 전망대에 올라서면, 시 전체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향하는 카를 마르크스 거리(Karl-Marx-Allee) 양편에는 기념비적인 공공건물들이 위용을 자랑하며 늘어서 있어, 스탈린 시대의 사회주의 고전 건축 양식의 특징을 맛볼 수 있다. 붉은색 벽돌로 지어져 ‘붉은 시청(Rotes Rathaus)’으로 불리는 건물도 이곳에 연해 있다.

베를린 하면 사람들이 곧바로 떠올리는 상징은 무엇일까? 바로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이다.1) 브란덴부르크 문은 베를린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독일의 과거 그리고 통일 독일의 미래까지 보여주는 랜드마크다. 독일의 유로화 동전(10, 20, 50센트)에 브란덴부르크 문이 새겨져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홀로코스트 상기기념물(Holocaustmahnmal)도 베를린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공식 명칭이 ‘학살당한 유럽 유대인들을 위한 기념물’인 이곳은 과거사에 대한 독일인의 반성적 자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다. 시내 한복판의 금싸라기 땅 19제곱미터 위에 유대인 공동묘지의 석관 모양 시멘트 기둥 2711개를 세운 지상의 기념물은 관람객의 불편함을 요구하는 독특한 설계 방식으로 유명하며, 지하에는 작은 규모의 기념관을 세워 불편한 느낌을 가진 관람객들에게 홀로코스트의 과거와 대면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 세계적인 건축가 아이젠만(Peter Eisenman)의 설계에 따라 2005년 완공된 이래 매년 관람객 350만 명이 방문하고 있다.2)

독일의 과거를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건축물이 바로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제국의회(Reichstag) 의사당이다. 나치 시절에 불탔고 2차 대전을 거치며 다시 크게 파괴된 이 역사의 장소는 1950년대에 대대적으로 보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건물은 1990년대에 영국의 저명한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의 설계로 리모델링되었다. 의사당의 거대한 유리 돔이 바로 그의 작품으로,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도시의 장관을 맛볼 수 있는 명소가 되었다.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예전의 베를린 성(Berliner Stadtschloss)까지 동서로 뻗어 있는 대로인 운터 덴 린덴은 한때 베를린 최고의 산책로로 여겨졌다. 이 도로에는 수많은 고전 양식의 건물들이 연해 있으며, 훔볼트(Humboldt)대학교의 건물 가운데 일부도 이곳에 있다. 프리드리히 거리는 ‘포효하는 20년대’로 통칭되는 1920년대 베를린의 분위기를 잘 보여 주는 전설적인 도로로서, 20세기의 전통과 오늘날 베를린의 근대 건축을 연결시켜 주는 접점 역할을 하고 있다.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남쪽으로 1킬로미터가량 떨어져 있는 포츠담 광장(Potsdamer Platz)은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후 본격 개발되어 이제는 베를린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1990년 이후 유럽에서 독특한 대규모 건물들이 속속 들어선 이곳은 전 세계 건축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은 헬무트 얀(Helmut Jahn)이 설계한 소니센터로, 독특한 건축양식과 화려함으로 베를린에서 가장 현대적인 건축물로 꼽힌다.

베를린 시내의 동서 축선은 6월 17일 거리(Straße des 17. Juni)다. 운터 덴 린덴 거리를 서쪽으로 확장시켜 주는 이 거리의 동쪽 끝에는 브란덴부르크 문이, 서쪽 끝에는 샤를로텐부르크의 에른스트 로이터 광장(Ernst-Reuter-Platz)이 있다. 이 도로는 베를린 중심에 있는 거대한 숲 공원인 티어가르텐(Tiergarten)을 관통한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출발해 이 거리를 따라가면 그 중간에 승전기념탑이 있다. 이 거리의 본래 이름은 샤를로텐부르크 대로(Charlottenburger Chaussee)였는데, 현재의 특이한 명칭은 1953년 6월 17일 동베를린에서 일어난 소요, 곧 소련군과 동독 경찰의 발포로 많은 노동자가 죽은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졌다. 시내 중심에 자리한 위치 때문에 베를린 마라톤 대회나 러브 퍼레이드 같은 초대형 이벤트에 활용되는 일이 빈번하다. 나치 시기에는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동서 축선의 핵심을 차지했고, 2차 대전이 끝나기 직전에는 파괴된 공항 대신 활주로 역할을 하기도 했다.

6월 17일 거리를 따라가면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거대한 별 구역이 있다. 오늘날 이곳은 6월 17일 거리를 비롯해 많은 길이 교차하는 교통의 축을 이루어 하루 평균 18만 대의 차량이 지난다. 하나의 섬과 같은 이곳 중심에는 전승기념탑이 서 있다. 베를린 시내 도처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이 기념물은 1871년 독일 통일에 앞서 프로이센이 치른 세 차례의 전쟁, 곧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본래는 제국의회 의사당 앞에 있는 국왕광장(오늘날에는 공화국 광장(Platz der Republik)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에 세워진 이 전승기념탑은 1938년 베를린을 세계의 수도로 만들겠다는, ‘세계의 수도 게르마니아’ 건설 계획에 따라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베를린 시민들은 기념탑 위에 있는 황금빛 빅토리아 여신상을 가리켜 ‘황금의 엘제(Goldelse)’라고 부른다. 도로에 둘러싸여 하나의 섬과 같은 이곳을 중심으로 도로 건너편 외곽에는 앞에서 말한 세 차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들, 곧 비스마르크, 로온(Albrecht von Roon)3), 몰트케(Helmuth Karl Bernhard von Moltke)4)를 기리는 민족기념물들이 반원 형태로 전승기념탑을 둘러싸고 있다.

‘쿠담’이라는 약칭으로 더 많이 불리는 선제후 거리(Kurfürstendamm)의 이름은 옛날 이 지역을 통치했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1543년 사냥터로 향하는 통나무 길을 만들도록 한 데서 유래한다. 폭 넓은 도로에 호화로운 상점들이 밀집해 있어 ‘베를린의 샹젤리제’로 불린다. ‘포효의 시대’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황금의 20년대’에 이 일대는 여가와 향락의 중심지로 이름을 날렸지만, 대공황과 더불어 명성이 사라졌다. 그러나 라인 강의 기적이 일어난 1950년대 이후 상업 중심지의 위상을 회복했다. 통일 후에는 포츠담 광장, 프리드리히 거리, 알렉산더 광장 등과 최고의 상업 지구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긴 역사적 연원에 걸맞게 선제후 거리 일대는 독일사의 주요 사건들을 기억나게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 거리의 동쪽 끝에 해당하는 브라이트샤이트 광장(Breitscheidplatz)에는 빌헬름 황제 기념 교회(Kaiser-Wilhelm-Gedächtniskirche)가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끈다. 이 교회는 2차 대전 때 공습으로 파괴되었고, 현재도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곳에서 가까운 타우엔치엔 거리(Tauentzienstraße)에는 유럽 대륙 최대의 백화점이라고 하는 카데베(KaDeWe)가 있다. 또한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베를린 위기가 한창 고조되던 1963년 미국 대통령 케네디(John F. Kennedy)가 “나도 한 사람의 베를린 시민입니다(Ich bin ein Berliner)!”라는 연설로 서베를린 시민들을 감격케 한 쇠네베르크 시청(Schöneberg Rathaus)이 있다. 독일 역사의 영광과 치욕, 위기와 극복의 장면 장면이 담겨 있는 선제후 거리는 바로 이런 점에서 독일사의 축소판 지도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네이버 지식백과] 베를린의 도시 풍경 (도시는 역사다, 2011. 6. 1.,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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