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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스토리텔링

바로우어즈(borrowers)

by 문촌수기 2016. 12. 5.

1, 2년간 나의 글과 자료 등이 담긴 USB를 2개 잃어버렸다. 아마 2개가 동시에 없어진 걸 보면 내가 소중하다며 잘 보관한다는 게 너무 깊이 두었나보다며 나를 달랜다. 열흘째 찾아 헤매며 뒤진다. 그렇다고 다른 일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그저 '어디 잘 있겠지, 분명 내 가까이에 있을거야.' 스스로 위로하며 조금 한가해지면 다시 뒤져봐야겠다. 내 삶의 주변을 차근차근 정리하면서. 위로 삼아 시를 읊어보기도 한다.

"멀리서 빈다. ~ 부디 아프지말라." 안전하게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철학선생님이 '바로우어즈(borrowers, 빌려가는 사람)'라는 꼬마 난장이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손가락 만한 바로우어즈가 아마 선생님의 USB를 빌려갔나 봅니다. 얘들은 주인한테 말도 않고 그냥 빌려갔다가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답니다. 나는 잃어버렸다고 속상해하며 찾고 있는데, 이 아이들은 아무런 미안함도 없이 그저 빌려 갔을 뿐이죠."
 

'그게 뭐 어땠어?' 이 친구들, 아무렇지도 않다며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허참, 고약한 놈들.. 그러면서도 그 꼬마난장이들의 장난기에 귀엽다는 생각도 든다. 어떻게 생긴 놈이지, 함 보고 싶네.

  "아마, 선생님 USB안에 재미있는 글이 많아서 읽는데 시간이 걸리나 보네요."라 말한다. 그러면서 곧 제자리에 그리고 선생님 눈에 띠는 자리에 돌려줄거라 한다. 참 고마운 선생님이다. 철학 선생님답다.  '아니, 혹시 이 친구들이 빌려갔다가 엉뚱한 곳에 둔 것은 아닐까?' 나도 괜하게 의심하며 바로우어즈 이야기에 빠져든다. 

참 고운 위로다. 이 유쾌한 위로에 힘을 얻어 오늘은 날잡고 내 삶의 주변을 차근차근 정리하면서 바로우어즈 꼬맹이들을 찾아봐야 겠다.

"그동안 이 모든 것들이 너희들 짓이었단 말이지?  ~~~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

내가 잃어버린 것이 아니고 너희들이 빌려갔단 그지. 아무튼 고마워. 다음엔 내한테 말하고 빌려갔으면 좋겠어."

 

그렇게 상상하니 나를 원망하지 않고 달랠 수 있고, 

지나 간 것을 조금씩 잊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어느 사찰 주련에 걸린 글이 생각난다.

"득지본유, 실지본무 (得之本有, 失之本無)"

~ 얻은 것은 본래 있었던 것이고, 잃은 것은 본래 없었던 것이다."

 

얻었다고 좋아라하고 잃어버렸다고 슬퍼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거기에 너무 빠지고 집착하지말자.

얻은 것은 본래 내 것이었고, 잃어버린 것은 본래 내 것이 아니라 여기자. 그래야 내 맘이 편하다.

 

 

원작 : 마리 노튼(영국동화) | 영화 : 바로워즈(1997) | 애니 : 마루 밑 아리에티(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