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 추성부도를 모방하다

카테고리 없음 2021. 2. 17. 10:19 Posted by 문촌수기

시를 그리다. 경전 명구를 그리다.

@그림의 구도,

세한도, 단원의 '추성부도'를 닮다.

아마도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의 세한도는 조선 최고의 화백, 단원의 추성부도를 모방한 것은 아닐까?
적어도 나무와 가옥의 구성과 둥근창을 가진 중국식 초옥은 많이 닮았다.

이상국, <추사에 미치다>
"추성부도는 김홍도가 구양수의 추성부를 읽고 느낀 바 있어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나는 이 추성부도와 추사의 세 한도의 집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이 그림은 김홍도 만년작으로 61세 때 그려졌고 그때 당시 추사 나이는 19세였다 추사가 이 그림을 모방한 것이 아니다 하더라도 추성부도를 본 적이 있다면 무의식 속에 이 집과 나무들의 구도가 남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둥근 창에 있는 가옥 형태는 조선의 것은 아니며 구양수의 서재에 어울린다."

김홍도필 <추성부도>는 중국 송대(宋代) 구양수(歐陽修, 1007∼1072)가 지은 ‘추성부(秋聲賦)’를 단원 김홍도(1745∼1806?)가 그림으로 그려낸 시의도(詩意圖)이다.

화면의 왼쪽에는 백문타원인(白文楕圓印)으로 기우유자(騎牛游子)라 찍혀 있으며 추성부 전문이 김홍도의 자필로 쓰여져 있는데, 끝 부분에 ‘을축년동지후삼일(乙丑年冬至後三日) 단구사(丹邱寫)’라 하였으므로 이 그림은 1805년 즉, 단원의 나이 61세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해는 단원이 죽기 바로 전 해로 추정되므로 그의 마지막 기년작이자 죽음을 앞두고 그린 작품으로 믿어진다.

화면의 오른쪽에는 메마른 가을 산이 그려져 있고, 산 능선 위로는 수평방향의 갈필로 음양을 주어 밤 중임이 시사되어 있다. 중앙에는 중국식 초옥(草屋)이 있으며 둥근 창 안에는 구양수가 보인다. 이 그림은 구양수가 책을 읽다 소리가 나자 동자에게 무슨 소리인지 나가서 살피라 했고, 이에 밖으로 나간 동자는 ‘별과 달이 환히 빛날 뿐 사방에 인적은 없고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납니다(성월교결(星月皎潔) 명하재천(明下在天) 사무인성(四無人聲) 성재수간(聲在樹間))’라고 답했다는 바로 그 장면을 그려낸 것이다. 동자는 손을 들어 바람소리 나는 쪽을 가리키고 있으며, 집에서 기르는 학 두 마리는 목을 빼고 입을 벌려 그 바람소리에 화답하듯 묘사되어 있다. 또 마당의 낙엽수들은 왼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고 바닥에는 떨어진 낙엽들이 드문드문 흩날리고 있다. 화면 왼쪽 언덕에는 나무가 두 그루 서 있고, 그 옆쪽에는 대나무에 둘러싸인 초가집이 보이며 위로는 보름달이 떠 있다.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어둡게 시채되어 있으며 갈필을 사용하여 가을밤의 스산한 분위기가 잘 드러나 있다. 좌우에 산이나 언덕을 배치하여 초옥과 마당을 감싸듯, 부감하듯 그려냄으로써 주제를 강조하는 포치방식은 역시 구도에 대한 단원의 뛰어난 감각을 단적으로 말해주며, 호리호리하면서도 불규칙하게 꺾여 올라가 끝이 갈라지는 나무 형태 또한 단원의 전형적인 화법을 보여준다.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약간 비비듯이 처리된 메마른 붓질들은 차가운 달빛 속에서 거칠고 황량한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해 내고 있다. 그것은 곧 구양수가 전하고자 했던 노년의 비애이자 또한 동시에 죽음을 앞 둔 단원의 심회의 형상화이기도 할 것이다. 구양수가 만물이 조락하는 가을을 맞아 인생의 허무함을 탄식하는 ‘백가지 근심을 마음에 느껴(백우감기심(百憂感其心))’라는 구절은 바로 단원이 1805년 김생원이라는 이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도 인용했던 구절로서 단원의 당시 심적 상태를 여실히 반영해 준다. 아픈 몸에다 아직은 어린 외아들 김양익의 장래문제, 출가한 딸에 대한 걱정 등이 겹쳐 단원 역시 인생의 허무함에 절로 탄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 세한도 낙관
정희, 장무상망, 완당, 추사




@세한도(歲寒圖) 발문(跋文)
 
去年以晩學大雲二書寄來(거년이만학대운이서기래)
今年又以藕耕文編寄來(금년우이우경문편기래)
此皆非世之上有(차개비세지상유) 購之千萬里之遠(구지천만리지원)
積有年而得之(적유년이득지) 非一時之事也(비일시지사야)
 
그대가 지난해에 계복(桂馥)의 <만학집(晩學集)> 운경(惲敬)의 <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文藁)> 두 책을 부쳐 주고, 올해 하장령(賀長齡)이 편찬한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 120권을 보내 주니, 이는 모두 세상에 흔한 일이 아니다. 천만리 먼 곳에서 사온 것이고, 여러 해에 걸쳐서 얻은 것이니 일시에 가능했던 일도 아니었다.
 

且世之滔滔(차세지도도) 惟權利之是趨爲之(유권리지시추위지)
費心費力如此(비심비력여차) 而不以歸之權利(이불이귀지권리)
乃歸之海外蕉萃枯槁之人(내귀지해외초췌고고지인)
如世之趨權利者(여세지추권리자)

 

지금 세상은 온통 권세와 이득을 좇는 풍조가 휩쓸고 있다. 그런 풍조 속에서 서책 구하는 일에 마음을 쓰고 힘들이기를 그같이 하고서도, 그대의 이끗을 보살펴 줄 사람에게 주지 않고 바다 멀리 초췌하게 시들어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것을 마치 세상에서 잇속을 좇듯이 하였구나!

 
太史公云(태사공운) 以權利合者(이권리합자) 權利盡以交疎(권리진이교소)
君亦世之滔滔中一人(군역세지도도중일인)
其有超然自拔於滔滔權利之外(기유초연자발어도도권리지외)
不以權利視我耶?(불이권리시아야) 太史公之言非耶?(태사공지언비야)
​​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이 말하기를 “권세와 이득을 바라고 합친 자들은 그것이 다하면 교제 또한 성글어진다”고 하였다. 그대 또한 세상의 도도한 흐름 속에 사는 한 사람으로 잇속을 좇는 세상 풍조의 바깥으로 초연히 몸을 빼내었구나. 잇속으로 나를 대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태사공의 말씀이 잘못되었는가?
 
 
孔子曰(공자왈) 歲寒然後(세한연후) 知松栢之後凋(지송백지후조)
松栢是貫四時而不凋者(송백시관사시이부조자)
歲寒以前一松栢也(세한이전일송백야) 歲寒以後一松栢也(세한이후일송백야)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성인특칭지어세한지후) 今君之於我(금군지어아)
由前而無加焉(유전이무가언) 由後而無損焉(유후이무손언)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더디 시들음을 알 수 있다”고 하셨다. 소나무 잣나무는 본래 사계절 없이 잎이 지지 않는 것이다. 추운 계절이 오기 전에도 같은 소나무 잣나무요, 추위가 닥친 후에도 여전히 같은 소나무 잣나무다. 그런데도 성인(공자)께서는 굳이 추위가 닥친 다음의 그것을 가리켜 말씀하셨다. 이제 그대가 나를 대하는 처신을 돌이켜보면 그 전이라고 더 잘한 것도 없지만 그 후라고 전만큼 못한 일도 없었다.
 
 
然由前之君(연유전지군) 無可稱(무가칭) 由後之君(유후지군)
亦可見稱於聖人也耶?(역가견칭어성인야야) 聖人之特稱(성인지특칭)
非徒爲後凋之貞操勁節而已(비도위후조지정조경절이이)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역유소감발어세한지시자야)
 
그러나 예전의 그대에 대해서는 따로 일컬을 것이 없지만 그 후에 그대가 보여준 태도는 역시 성인에게서도 일컬음을 받을 만한 것이 아닌가? 성인이 특히 추운 계절의 소나무 잣나무를 말씀하신 것은 다만 더디 시드는 나무의 굳센 정절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역시 추운 계절이라는 그 시절에 대하여 따로 마음에 느끼신 점이 있었던 것이다.
 
 
烏乎!(오호) 西京淳厚之世(서경순후지세) 以汲鄭之賢(이급정지현)
賓客與之盛衰(빈객여지성쇠) 如下邳榜門(여하비방문)
迫切之極矣(박절지극의) 悲夫(비부) 阮堂老人書(완당노인서)
 
아아! 전한(前漢) 시대와 같이 풍속이 아름다웠던 시절에도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처럼 어질었던 사람조차 그들의 형편에 따라 빈객(賓客)이 모였다가는 흩어지곤 하였다. 하물며 하규현(下邽縣)의 적공(翟公)이 대문에 써 붙였다는 글씨 같은 것은 세상인심의 박절(迫切)함이 극에 다다른 것이리라. 슬프다. 완당 노인이 쓰다.
 
@ 하규현의 적공이 대문에 써 붙였다는 글씨는?
ㅡ <사기열전>, 급정열전 史記 汲鄭列傳에서

一死一生 乃知交情(일사일생 내지교정)
한 번 죽고 한 번 삶에 사귐의 정을 알고,
一貧一富 乃知交態(일빈일부 내지교태)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함에 사귐의 태도를 알며,
一貴一賤 交情乃見(일귀일천 교정내현)
한 번 귀하고 한 번 천함에 곧 사귐의 정을 알 수 있다.
- 史記 汲鄭列傳(급정열전
)
ㅡㅡㅡ

세한도 초옥을 닮았지만,
매화향으로 봄을 노래하고 있다.

ㅡ 전기(田琦 1825-1854), 매화초옥도

백매 가득한 숲길을 따라, 화가는 가야금을 메고 친구의 집을 찾고있다.

초옥에서는 선비가 피리를 불고 있다. 피리소리에 매화향이 실려 펴지는 듯하다.

亦梅仁兄草屋笛中(역매인형초옥적중) ㅡ고람 사
친구 역매(오경석)가 초옥에서 피리를 불고 있구나.
ㅡ고람(전기)가 그리다.
* 역관 오경석은 이상적의 제자이며, 위창 오세창의 아버지이다. 우선 이싱적은 세한도를 선물받은 완당의 제자요, 오세창은 세한도에 발문을 쓴 근대 서화가이며 독립운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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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다.

논어와 놀기 2020. 4. 21. 10:23 Posted by 문촌수기

단원 김홍도는 왕유(王惟)의 전원락(田園樂) 싯구를 가져오면서 수하오수도(樹下午睡圖)를 그렸다. 그림 속에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고면거사(高眠居士)'라는 자호를 가진 걸 보면, 낮잠을 무척 즐기고 높은 베개를 좋아했던가 보다.

桃紅復含宿雨, (도홍부함숙우)
柳綠更帶朝煙. (유록갱대조연)

- 寫與 卞穉和. 檀翁. (사여 변치화, 단옹)
복사꽃은 붉더니 간밤의 비를 머금었고,
버드나무 초록빛은 아침 안개띠를 둘렀네.

- 변치화에게 그려주다. 단옹 김홍도

부지런한 이들의 낮잠은 달콤하다.
하지만 게으른 이들의 낮잠에는 삶이 썩어간다.

05ᆞ09 宰予晝寢. 子曰: “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不可杇也; 於予與何誅?”

(재여주침, 자왈: 후목불가조야, 분토지장불가오야,어여여하주?)

재여가 낮잠을 자자, 공자가 말씀하셨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장은 흙손질 할 수가 없다. 내재여에 대하여 꾸짖을 것이 있겠는가?"

Tsai Yu being asleep during the daytime, the Master said, "Rotten wood cannot be carved; a wall of dirty earth will not receive the trowel. This Yu,-what is the use of my reproving him?"

더하기+>

김홍도 수하오수도
桃紅復含宿雨(도홍부함숙우) 柳綠更帶朝煙(유록갱대조연) - 寫與 卞穉和(사여 변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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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당(午睡堂), 낮잠자기 좋은 집!
말만 들어도 위로가 된다.
일 없이 생각 없이 낮잠에 빠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선비가 책베개를 하고 팔베개로 높여서 툇마루에 누웠다. 포근한 햇살을 덮고서 달콤한 낮잠에 빠졌다. 이제 그림은 다 그렸다. 제호를 붙이고 낙관만 하면 된다. 그림 속에도 나무 그늘 아래에서 낮잠에 빠진 선비를 그렸다. 버드나무는 푸르게 늘어지고 복숭아 꽃 향기는 은은하게 전해진다. 이 그림을 '수하오수도(樹下午睡圖)라 제호하는 것은 어떨까' 누워 생각에 잠기다 만족해하며 낮잠에 잠겼다.
이 선비는 누굴일까? 나도 그 자리에 누워 낮잠에 빠지고 싶다.

또한 그렇다.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이라! 
밖은 시끄러워도 문을 닫아 버리면 여기가 곧 깊은 산골이구나.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일일이 신경쓰며 간섭하고, 원망하며 변명하고, 일희일비할 일도 아니다. 누가 날더러 비겁하다 할지라도, 어떻게 해보겠다며 먼저 나서 애써 가르칠 일도 아니다. 내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세상사가 시끄러워도 내 귀를 닫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면 여기가 곧 적막한 산골이다. '세상 같은 것은 더러워서 버린다'는 시인 백석(白石)의 심정도 이러한 것이 아닐까?
그냥 두자. 나를 달래자. 먼저 나를 구하자. 나를 구하지 못하고는 어느 누구도 구할 수 없다. 매화는 피었다 지고, 단풍은 물들었다 시든다. 다 때가 있다.

최순우 옛집 뒷뜨락ᆞ오수당(午睡堂)
~최순우는 단원 김홍도의 화첩에서 오수당 글씨를 찾아내고 그대로 집자하여 당호로 삼았다. 최순우는 한양도성 밖 성북동 이곳에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서서'를 썼다.

최순우 옛집 안채뜰ᆞ'두문즉시심산' 현판

단옹 김홍도의 수하오수도

김홍도(金弘道)ㅡ수하오수도(樹下午睡圖) 제시.

桃紅復含宿雨, (도홍부함숙우)
柳綠更帶朝煙. (유록갱대조연)
寫與 卞穉和. 檀翁. (사여 변치화, 단옹)

복사꽃은 붉더니 간밤의 비를 머금었고,
버드나무 초록빛은 아침 안개띠를 둘렀네.
ㅡ변치화에게 그려주다. 단옹 김홍도

김홍도는 낮잠을 무척 즐겼거나 바랐던 모양이다. 그림 속에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고면거사(高眠居士)'라는 자호를 가진 걸 보면, 높은 베개를 좋아했던가 보다.
단옹은 왕유(王惟)의 전원락(田園樂) 싯구를 가져오면서 그림을 그렸다. 이를 일러 화중유시(畵中有詩)라던가 시중유화(詩中有畵)라던가?
왕유의 시는 이렇게 이어진다.

花落家童未掃(화락가동미소)
떨어진 꽃잎을 아이는 아직 쓸지않고
鶯啼山客猶眠(앵제산객유면)
꾀꼬리는 우는데 손님은 아직도 꿈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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