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02. 공자의 삶과 <논어> 이해

논어와 놀기 2018. 6. 26. 19:15 Posted by 문촌수기

02. 공자의 삶과 논어의 가르침

02공자와 논어-군자고궁.hwp

인류의 스승, 공자의 삶을 그림으로 읽다.

  공자 (孔子 BC 552~BC 479)를 나타내는 가장 간단한 다섯 개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춘추시대, 유학 또는 유교, 공구, 중니. 논어’이다. 풀이하면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로서, 유교의 개조(開祖)이다. 이름은 구(丘)이며, 자(字)는 중니(仲尼)이다. 그의 사상이 집약된 책이 바로 《논어(論語)》이다. 공자(孔子)라고 할 때의 ‘자’는 존칭으로 스승이라는 뜻이다.

  공자는 노(魯)나라의 창평향(昌平鄕) 추읍(현재의 山東省)에서 하급무사 숙량흘(叔梁紇)과 그의 내연의 아내 안징재(顔徵在)와의 사이에 태어났다. 어머니 안징재는 공자를 낳을 당시 10대의 어린 소녀였다. 60세가 넘은 숙량흘은 안씨의 셋째 딸을 후처로 맞이한 것이다. 아버지는 매우 힘이 세었으며 제(齊)나라와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그의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그의 삶을 표현한 그림으로 공자의 일생을 살펴본다.

1> 균천감성(鈞天感聖) : 공자가 태어날 때 방에서는 하늘의 노랫소리가 들여오고 공중에서는 하늘이 성자의 탄강을 축복하여 화락한 노래 소리를 보내노라는 말이 들여왔다.

2> 조두학례(俎豆學禮) 공자는 5, 6세 때 항상 제사놀이를 즐겼으며, 친구들에게 제사방법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3> 직사위리(職司委吏) : 20세에 처음으로 창고 회계를 담당하는 위리라는 벼슬을 하였다. 회계가 정확했다고 한다.

 

4> 문례노담(問禮老聃) : 공자 나이 34세 때 제자 남궁경숙과 함께 주나라의 노담에게 찾아가 예를 묻고 가르침을 청했다.

 

공자, 노자를 만나다(문례노담 일화) - “나는 새는 잘 난다는 것을 알고, 물고기는 헤엄을 잘 친다는 것을 알며, 짐승은 잘 달린다는 것을 안다. 달리는 짐승은 그물을 쳐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시를 드리워 낚을 수 있고, 나는 새는 화살을 쏘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용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 위로 올라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오늘 나는 노자를 만났는데, 마치 용과 같은 존재였다.”

5> 협곡회제(夾谷會齊) : 50세 때. 노와 제가 협곡에서 회담을 할 때 공자가 단으로 올라 왼편의 제경공을 질타하는 모습.

6> 광인해위(匡人解圍) : 56세 때. 위나라에서 진나라로 가는 길에 광 땅에서 포위되었다가 풀려났다.~재진절양(在陳絶糧)

7> 공자귀노(孔子歸魯):68세 때 노나라 대부 계강자가 공자를 초빙하여 노나라로 돌아와 제자 교육과 고전 정리에 전념하였다.

 

8> 치임별귀(治任別歸) : BC.479년 공자가 세상을 떠나자 제자들은 노성 북쪽에 있는 사수가에 장사지내고 정식으로 삼년간의 심상을 입었다. 자공만은 6년 동안이나 무덤을 떠나지 않았다.

 

논어, 삶ㆍ사람ㆍ사랑의 길을 가르치다.

어떤 이는 말한다. 논어논어가 아니라, ‘논인(論仁)’이라고. 이 말은 논어에서는 사람됨의 길을 가르치는데 그 중핵적인 가치와 최고의 덕목이 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 인() 뿐이랴? ()도 예()도 신()도 지()도 하물며 학()과 군자(君子)도 많이 언급되고 강조되었으니 굳이 논인(論仁)이라고만 말할 수 없겠다. 차라리 논인(論人)’, 사람됨을 말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겠다.

 

논어20, 이름과 약호

<學而第一> LY01 학이 <爲政第二> LY02 위정 <八佾第三> LY03 팔유

<里仁第四> LY04 이인 <公冶長第五> LY05 공야장 <雍也第六> LY06 옹야

<述而第七> LY07 술이 <泰伯第八> LY08 태백 <子罕第九> LY09 자한

<鄕黨第十> LY10 향당 <先進第十一>LY11 선진 <顔淵第十二>LY12 안연

<子路第十三>LY13 자로 <憲問第十四>LY14 헌문 <衛靈公第十五>LY15 위령공

<季氏第十六>LY16 계씨 <陽貨第十七> LY17 양화 <微子第十八> LY18 미자

<子張第十九> LY19 자장 <堯曰第二十> LY20 요왈

○ 《논어, 최고의 덕 인()을 가르치다.

()이 최고의 덕목이며 중핵의 가치가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무엇보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덕목이다. 물론 글자 하나를 가지고 빈도가 높다고 해서 그 문장과 경전의 핵심이 그 글자라는 것은 아니다. 가령, 필자가 논어에서 인()과 예() 그리고 군자(君子) 등을 검색하여 출현빈도를 조사해보았다. ()109, ()24, ()75, ()118, ()38, ()65, 군자(君子)107회였다. ()는 인()보다 8회나 더 많이 출현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가 논어의 중핵적인 가치라고는 할 수 없다. 단순히 안다, 알았다의 지(知天命)모른다, 몰랐다의 부지(人不知而不慍)에서 쓰인 는 가치로서의 덕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ㆍ예()ㆍ학()ㆍ군자(君子)’가 공자나 그의 제자들 입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언급되었던 가치들임은 부정할 수 없다.

둘째, 구문적으로 보아도 ()은 여러 덕목들 중 상위의 덕목이다. 적어도 중심이 되며 가장 포괄적인 덕목이다. 다음 글을 보면 사람다움에 이 으뜸이고 예악은 버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사람 : 인은 사람다움이다(仁者人也)

2) 사랑 :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仁者愛人)

3) : 인은 일과 사람 관계에 대한 성실 충실이다. (誠實忠實)

○ 《논어, 군자(君子)를 가르치다.

공자는 천하를 주유하면서 많은 수난을 당한다. 그 수난 속에서도 그는 뜻을 굴하고 세상에 아첨하지 않았다. 수많은 수난 중, 그 절정은 소위 재진절양(在陳絶糧’[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자가 초()나라 소왕(昭王)의 초빙을 받고 가는 중이었다. 초나라를 가려면 진()나라와 채()나라를 지나가야만 했다. 진나라와 채나라는 공자가 초나라에 입국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 공자가 초나라에 등용되어 강국이 되면 인접한 두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군사를 보내 공자 일행을 포위했다. 시간이 흐르자 식량이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제자들 중에 병에 걸린 환자가 속출했다. 그러나 공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한 모습으로 시를 읊고 거문고를 연주했다. ‘재진절양은 그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제자들에 둘러싸인 공자가 땅바닥에 앉아 있다. 공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평소와 다름없이 제자들에게 수업을 하고 있다. 공자가 시를 읊자 제자들이 진지한 자세로 듣는다. 그들을 포위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저 한가롭게 소풍 나온 사람들의 야유회 장면을 그린 것 같다. ‘재진절양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운명을 향해 고개 숙이는 일이 없는 철학자의 평정심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런 공자를 제자라고 모두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위기에 처해서도 한가롭기만 한 스승을 보고 화가 난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불평하였다.

군자도 곤궁해질 때가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군자는 곤궁함을 굳게 버티지만, 소인은 곤궁해지면 아무 짓이나 한다.”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군자고궁 소인궁사람의)

논어위평공 편에 나오는 얘기다.

이런 수난의 사건들은 공자가 69세에 고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14년 동안 계속됐다. 그러나 공자는 천하에 도가 행해지고 봉건적인 예악질서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자신의 신념을 결코 저버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의 이상과 목적은 이상적인 봉건질서의 주창이었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이 이상적인 사회라 여겼다.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공자는 끊임없이 성군(聖君)을 찾아다녔고 정치적 출구를 모색했다. 공자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했다. 이것은 공자가 유랑 중에 견뎌야만 했던 또 다른 환란이었다.

 

 

  학생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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