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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이야기

또 하나의 시작

by 문촌수기 2013. 1. 2.

또 하나의 시작

학교에서는 또 하나의 시작이 있었습니다.
오늘 새내기 식구를 맞이하는 입학식이 치러지면서 새 학년을 활기차게 시작하였습니다. 이렇듯 학교는 3월이 되어야 시작이 됩니다. 그러나 가만히 돌이켜보면 우리는 벌써 몇 번이나 시작을 거듭하여 왔던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의 동지(冬至)가 첫째 시작이었습니다. 동지 날 이후부터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기 시작하기에 이 날은 바로 태양의 시작이며 부활절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조께서는 이 날을 '아세(亞歲)' 또는 '작은 설'이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명실공히 한 해의 진정한 시작은 신정(新正)이라 불리는 양력설인 1월 1일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공공기관과 사업체는 한해의 업무를 새롭게 시작하는 시무식(始務式) 행사를 가지며 새로운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겨레는 또 한 번의 대대적인 시작의 행사를 거행합니다. 바로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입니다. '설'이란 말은 이날 이후 한 '살' 더 먹는다 해서 생긴 말이기도 하고, '새롭다'는 뜻의 '설다'에서 유래된 말이라고도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들께 차례를 올리고, 웃어른께는 만수무강을 기원드리는 세배를 드리며, 아랫사람과 연배끼리는 한해의 복을 축원하는 덕담을 나누면서 우리는 또 하나의 새해를 아름다운 풍속으로 시작합니다. 세 번째 시작입니다.

여기서 그치는가 했다니 그게 아닙니다. 넷째 번의 시작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한해 농사의 시작이며 봄의 시작인 입춘(立春)입니다.
"立春大吉 建陽多慶(입춘대길 건양다경)"의 글을 컴퓨터로 세로 한자로 새겨 B4용지로 프린트한 다음 근무하는 교무실 문에다 입춘방(立春榜)으로 붙여 놨더니 출입하시는 선생님들께서 새롭다하시며 지나치는 아이들은 더더욱 많은 흥미를 보였습니다. 그걸 노리고 '쇼(show)'를 한 것이지요. 교육은 '쇼'일 때가 있습니다. 가르치기 위해 일부러 꾸며 보여주는 일 말입니다. 그런 다음 교실에 들어가 입춘과 입춘방의 의미를 가르치며 겨레의 미풍양속을 전하였습니다. '처음엔 부적으로 알았다'며 솔직히 부끄럽게 고백하는 아이를 볼 때, 저의 '쇼'가 기대이상의 효과를 거두었다는 사실에 흡족했습니다. 그렇게 한 해의 절기와 계절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학교는 오늘 새내기를 맞이하면서 진짜로 새로운 시작을 하였습니다. 다섯 째 번의 시작입니다. 동지, 신정, 설날, 입춘 그리고 개학과 입학. 다섯 번이나 거듭하여 이제 오늘에서야 진정 새롭게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우리 한겨레, 대한국인에게는 한해의 시작이 참으로 언제일까라는 의문이 생겨 옆에 근무하는 김선생님에게 지나가는 말로 여쭈었습니다. 선생님 역시 지나가는 말씀으로 건넸습니다.

'내가 시작할 때가 아닐까요.'

그런가 봅니다. 날을 정해놓고 아무리 시작에 시작을 거듭하여도 내가 변하지 않고 내가 시작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시작은 없고 결코 발전은 없을 것입니다.

종종 가는 식당에 걸린 액자에서 읽었습니다.


"日日新 日日進 日日是好日"

"나날이 새롭고 나날이 발전하며 나날이 좋은 날"

자아, 다시 시작합니다.

2002년 03월 04일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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