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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4

1012 席不正不坐,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는다. 성북동 길을 걷다보면 빈 의자를 자주 만나게 된다. 한성대 입구역 산책길 초입에 '한중 평화의 소녀상'이 자리에 앉아있고 그 옆에 빈 의자가 있다. 빈의자는 누구를 위한 자리일까? 길상사를 찾아 올라가는 길이다. 어느 가게 앞에도 빈 의자가 놓여있다. 쉬었다 가라는 배려인가보다. 길따라 계속 걷다보면 '조지훈 시인의 방, 방우산장' 조형물을 만나게 된다. 시가 새겨진 한쪽 벽만 있는 무릎 높이 기단 위에 옛날 교실의 걸상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드디어 '맑고 향기로운 도량 길상사'에 들어 선다. 고기와 술과 웃음을 팔던 요정이 기도하는 절이 되었다. 길상사에서 가장 깊은 곳에 법정스님의 유품과 진영을 보관하는 진영각이 있다. 법정스님께서 이승에서 마지막 밤을 주무시고 떠나신 곳이다. 진영각 왼쪽에는 .. 2021. 3. 31.
심우장의 주인공들 심우장(尋牛莊), 때는 1937년 3월. 아직 잔설에 서늘하다. 그림 속에 세 명의 주인공이 한자리에 만났다. 북정마을의 심우장 언덕 위로 성벽이 보인다. 한양도성 북악산 동북자락 성곽이다. 일제의 패망을 암시하듯 '돌집' 위의 남녘 하늘에는 핏빛 전운(戰雲)이 감돈다. 세 명의 주인공은 만해 한용운, 일송 김동삼, 시인 조지훈. 만해와 일송은 환갑을 바라보는 초로이며 지훈은 아직 감수성 풍부한 열일곱 청춘이다. 그들이 일송 김동삼의 장례식, 심우장 마당에서 만난다. ♡만해 한용운(韓龍雲, 1879 ~ 1944) 일제 강점기의 시인, 승려,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청주. 호는 만해(萬海)이다. 대한민국 사람치고 만해 한용운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만해 선생은 성북동에 자리잡으면서 집을 북향으로 짓게.. 2018. 12. 14.
성북동에서 만나는 소 세마리 성북동 인문학 산책길을 걷다, 세마리의 소를 만난다. 방우, 견우, 심우이다. 억지로 얽었다라고 할지라도 소(牛)와 연결하여 세 사람의 문인(文人)을 이야기 해 보는 것은 재미가 있다. 첫번째 만난 사람은 조지훈이다. 성북동 길에 그의 집터를 기념하여, '방우산장' 파빌리온 조형물을 세웠다. 방우(放牛)란 '소를 놓아주다. 소를 풀어주다'라는 의미이다. 시인은 "마음 속에 소를 키우면 굳이 소를 잡아 둘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고삐 풀린 소는 누구이며, 어디로 갔을까? 시대의 흐름(시류)에 맹종하지 않고 거스르고 가로지르며 횡보(橫步)한 염상섭의 집터를 찾았다.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자기 집을 가져 본 적이 없이 가난하게 살았던 그가 마지막에 살았던 전셋집을 찾았다. 그러나 흔적도 쉽게 찾을 수 없어.. 2018. 5. 9.
방우산장, 조지훈 시인의 방에 머물다. 비오는 성북동 길. 이 봄 비에 꽃 떨어질까 저어한다. 다행히 바람은 잔잔하고 비는 가늘다. 덕분에 세상은 고요하고, 공기는 맑다. 조지훈 시인은 이 곳 성북동에 살면서 박목월, 박두진 등과 함께 청록집을 출간하였다. 이른바 청록파 시인들이다. 조지훈 시인이 살던 그 때 그 집은 지금 없지만 시인을 기념하고자 성북동 142-1번지 가로길에 조지훈 '시인의 방ㅡ방우산장(放牛山莊)' 표지 기념 조형물이 설치되어있다. 시인은 자신이 기거했던 곳을 모두 ‘방우산장(放牛山莊)’ 이라고 불렀다. 이는 그가 1953년 신천지에 기고한 '방우산장기'에서 '설핏한 저녁 햇살 아래 내가 올라타고 풀피리를 희롱할 한 마리 소만 있으면 그 소가 지금 어디에 가 있든지 내가 아랑곳할 것이 없기 때문' 이라고 말한 것에서 연유하.. 2018.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