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런저런 이야기 2013. 1. 4. 13:08 Posted by 문촌수기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Category: 이런 저런 이야기, Tag: 여가,여가생활
04/28/2005 10:05 am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

10여 년 전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마침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상영되었습니다. 영화는 산사에서 수도 생활하는 세 분의 스님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들 삶에 하나의 화두를 던지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난 그 영화 제목이 영 마음에 걸렸습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갔다면 동해안으로 갔는가? 일본으로 갔는가?
게다가 달마는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데 가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보리 달마(達摩)는 서기 527년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선불교를 전하신 첫 스님이십니다. 선(禪)불교란 경전에 의한 수양을 강조하는 교종(敎宗)에 상대하는 개념으로 가르침이란 경전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글자로는 설 수 없으며, 오직 사람의 마음을 곧장 가리켜 본성을 바라볼 때 부처가 된다. "敎外別傳,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라고 가르치는 불교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선과 일상생활 속에서 '나도 부처'란 것을 곧장 깨달아버리는 것을 강조하는 불교입니다. 이런 불교를 전파하신 분이 바로 달마이십니다.

그렇다면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왔는데, 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입니까? 여기가 인도 땅이라면 이해되는 말인데 안 그렇습니까? 우리가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난 이 말도 마음에 안 들어요.
'우리나라는 극동(極東, Far East)에 있다'는 말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기업 중에도 '극동'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업체도 있지요. 누가 우리나라를 극동에 있다고 했습니까? 서구인 중심의 세계관에서만 가능한 말이지요. 아메리카 대륙이 왼쪽에 있고 유럽이 세계의 중심에 있는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오른쪽 끝에 치우쳐 있지요.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됩니다. <우리나라는 여기에 있다.> 아니면, <우리나라는 세계 중심에 있다.>라고요.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우리가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말을 하지 맙시다.

이렇게 말해야합니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달마 서래의 (達摩西來意) ?
이게 뭐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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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혁주33 2019.07.30 1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③” 편

    ※ 2019. 7. 29. 나는 아침기도 성무일도를 시작하기 전에 항상 하던 대로 오늘 ‘성녀 마르타 기념일’ 요한복음 11장 17-27절 ‘부활이며 생명이신 예수님’ 편을 살펴보고 오늘의 묵상【주님을 믿는 이들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살릴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되돌려 주시는 것은 단순한 육신의 숨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되찾아 주시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생명은 창조 이전부터 우리에게 계획된 생명으로 이 땅에서 이미 우리 모두가 누리고 있는 생명이며 육신의 숨이 끊어진다 하더라도 계속 이어지는 그런 생명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라자로에게 되돌려 주시고자 하는 생명은 육신의 숨이 아니라 바로 이 영원한 생명이었습니다. 라자로가 되돌려 받은 육신의 생명은 다시 끊겼지만 그가 되돌려 받은 영원한 생명은 세상 종말이 오더라도 영원히 이어질 것입니다. 오늘 마르타는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많은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일부분도 같이 살펴보았는데 즉 오늘의 묵상 일부분에서 ‘영원한 생명’이란 똑같은 단어가 다섯 번이나 소개된 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道를 깨달았다. 진리를 깨달았다. 생, 노, 병, 사를 해결했다는 것이 바로 영생이라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즉 죽음이 없는 영생을 해결했다는 것은 바로 요한 14장 6-7절에서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라고 말씀하신 전능하신 진리인 그분을 깨달았다는 즉 그분은 道를 깨달은 적도 없으신 道 자체이시고, 진리를 깨달은 적도 없으신 진리 자체이시고, 생명을 깨달은 적도 없으신 생명 자체이신 진리인 그분과 합일(空)을 이루었다는 즉 전능(空)을 깨달았다는 즉 그 생명(空)은 죽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즉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생, 노, 병, 사를 해결했다는 것은 태어나서 받은 성소(聖召)를 깨달았다는 것이며 즉 달마대사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제야 제대로 깨달아지는 것이지만 단순히 불교를 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반야다라를 따라 출가하여 40년 동안 수행하고 스승이 죽으면서 유언으로 내가 죽은 후 67년이 지나면 동쪽으로 가서 전법을 전하도록 하여라. 남쪽에 머무르지 말고 북쪽으로 가도록 해라. 그래서 남쪽에서 양무제를 만나고 북쪽 위나라로 가서 숭산 소림사에서 신광(혜가)이라는 수도자가 나타날 때까지 고요히 머물렀듯이 그리고 혜가에게 법을 전하고 내 일은 이미 끝났도다. 하고 혜가에게 다섯 번 독약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해주시고 여섯 번째의 독약은 제자에게 법을 전했음으로 즉 스승이 명하신 성소(聖召)를 완수했음으로 그냥 피하지 않고 받아들여 독약을 먹고 죽어서 528년에 그 시신을 웅이산에 장사지냈다고 하였듯이(인터넷 다음 블로그「달마의 생애」참조) 즉 내가 죽은 후 67년이 지나면 동쪽으로 가서 전법을 전하도록 하여라. 남쪽에 머무르지 말고 북쪽으로 가도록 해라. 그래서 남쪽에서 양무제를 만나고 북쪽 위나라로 가서 숭산 소림사에서 신광(혜가)이라는 수도자가 나타날 때까지 고요히 머물렀듯이 즉 67년 이란 년도까지 정해주신 이런 전법은 스승이 명하신 분명한 성소(聖召)라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2. 최혁주33 2019.07.30 1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③” 편

    ※ 2019. 7. 29. 나는 아침기도 성무일도를 시작하기 전에 항상 하던 대로 오늘 ‘성녀 마르타 기념일’ 요한복음 11장 17-27절 ‘부활이며 생명이신 예수님’ 편을 살펴보고 오늘의 묵상【주님을 믿는 이들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살릴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되돌려 주시는 것은 단순한 육신의 숨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되찾아 주시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생명은 창조 이전부터 우리에게 계획된 생명으로 이 땅에서 이미 우리 모두가 누리고 있는 생명이며 육신의 숨이 끊어진다 하더라도 계속 이어지는 그런 생명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라자로에게 되돌려 주시고자 하는 생명은 육신의 숨이 아니라 바로 이 영원한 생명이었습니다. 라자로가 되돌려 받은 육신의 생명은 다시 끊겼지만 그가 되돌려 받은 영원한 생명은 세상 종말이 오더라도 영원히 이어질 것입니다. 오늘 마르타는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많은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일부분도 같이 살펴보았는데 즉 오늘의 묵상 일부분에서 ‘영원한 생명’이란 똑같은 단어가 다섯 번이나 소개된 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道를 깨달았다. 진리를 깨달았다. 생, 노, 병, 사를 해결했다는 것이 바로 영생이라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즉 죽음이 없는 영생을 해결했다는 것은 바로 요한 14장 6-7절에서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라고 말씀하신 전능하신 진리인 그분을 깨달았다는 즉 그분은 道를 깨달은 적도 없으신 道 자체이시고, 진리를 깨달은 적도 없으신 진리 자체이시고, 생명을 깨달은 적도 없으신 생명 자체이신 진리인 그분과 합일(空)을 이루었다는 즉 전능(空)을 깨달았다는 즉 그 생명(空)은 죽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즉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생, 노, 병, 사를 해결했다는 것은 태어나서 받은 성소(聖召)를 깨달았다는 것이며 즉 달마대사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제야 제대로 깨달아지는 것이지만 단순히 불교를 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반야다라를 따라 출가하여 40년 동안 수행하고 스승이 죽으면서 유언으로 내가 죽은 후 67년이 지나면 동쪽으로 가서 전법을 전하도록 하여라. 남쪽에 머무르지 말고 북쪽으로 가도록 해라. 그래서 남쪽에서 양무제를 만나고 북쪽 위나라로 가서 숭산 소림사에서 신광(혜가)이라는 수도자가 나타날 때까지 고요히 머물렀듯이 그리고 혜가에게 법을 전하고 내 일은 이미 끝났도다. 하고 혜가에게 다섯 번 독약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해주시고 여섯 번째의 독약은 제자에게 법을 전했음으로 즉 스승이 명하신 성소(聖召)를 완수했음으로 그냥 피하지 않고 받아들여 독약을 먹고 죽어서 528년에 그 시신을 웅이산에 장사지냈다고 하였듯이(인터넷 다음 블로그「달마의 생애」참조) 즉 내가 죽은 후 67년이 지나면 동쪽으로 가서 전법을 전하도록 하여라. 남쪽에 머무르지 말고 북쪽으로 가도록 해라. 그래서 남쪽에서 양무제를 만나고 북쪽 위나라로 가서 숭산 소림사에서 신광(혜가)이라는 수도자가 나타날 때까지 고요히 머물렀듯이 즉 67년 이란 년도까지 정해주신 이런 전법은 스승이 명하신 분명한 성소(聖召)라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3. 최혁주33 2019.07.30 1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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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7. 29. 나는 아침기도 성무일도를 시작하기 전에 항상 하던 대로 오늘 ‘성녀 마르타 기념일’ 요한복음 11장 17-27절 ‘부활이며 생명이신 예수님’ 편을 살펴보고 오늘의 묵상【주님을 믿는 이들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살릴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되돌려 주시는 것은 단순한 육신의 숨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되찾아 주시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생명은 창조 이전부터 우리에게 계획된 생명으로 이 땅에서 이미 우리 모두가 누리고 있는 생명이며 육신의 숨이 끊어진다 하더라도 계속 이어지는 그런 생명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라자로에게 되돌려 주시고자 하는 생명은 육신의 숨이 아니라 바로 이 영원한 생명이었습니다. 라자로가 되돌려 받은 육신의 생명은 다시 끊겼지만 그가 되돌려 받은 영원한 생명은 세상 종말이 오더라도 영원히 이어질 것입니다. 오늘 마르타는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많은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일부분도 같이 살펴보았는데 즉 오늘의 묵상 일부분에서 ‘영원한 생명’이란 똑같은 단어가 다섯 번이나 소개된 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道를 깨달았다. 진리를 깨달았다. 생, 노, 병, 사를 해결했다는 것이 바로 영생이라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즉 죽음이 없는 영생을 해결했다는 것은 바로 요한 14장 6-7절에서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라고 말씀하신 전능하신 진리인 그분을 깨달았다는 즉 그분은 道를 깨달은 적도 없으신 道 자체이시고, 진리를 깨달은 적도 없으신 진리 자체이시고, 생명을 깨달은 적도 없으신 생명 자체이신 진리인 그분과 합일(空)을 이루었다는 즉 전능(空)을 깨달았다는 즉 그 생명(空)은 죽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즉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생, 노, 병, 사를 해결했다는 것은 태어나서 받은 성소(聖召)를 깨달았다는 것이며 즉 달마대사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제야 제대로 깨달아지는 것이지만 단순히 불교를 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반야다라를 따라 출가하여 40년 동안 수행하고 스승이 죽으면서 유언으로 내가 죽은 후 67년이 지나면 동쪽으로 가서 전법을 전하도록 하여라. 남쪽에 머무르지 말고 북쪽으로 가도록 해라. 그래서 남쪽에서 양무제를 만나고 북쪽 위나라로 가서 숭산 소림사에서 신광(혜가)이라는 수도자가 나타날 때까지 고요히 머물렀듯이 그리고 혜가에게 법을 전하고 내 일은 이미 끝났도다. 하고 혜가에게 다섯 번 독약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해주시고 여섯 번째의 독약은 제자에게 법을 전했음으로 즉 스승이 명하신 성소(聖召)를 완수했음으로 그냥 피하지 않고 받아들여 독약을 먹고 죽어서 528년에 그 시신을 웅이산에 장사지냈다고 하였듯이(인터넷 다음 블로그「달마의 생애」참조) 즉 내가 죽은 후 67년이 지나면 동쪽으로 가서 전법을 전하도록 하여라. 남쪽에 머무르지 말고 북쪽으로 가도록 해라. 그래서 남쪽에서 양무제를 만나고 북쪽 위나라로 가서 숭산 소림사에서 신광(혜가)이라는 수도자가 나타날 때까지 고요히 머물렀듯이 즉 67년 이란 년도까지 정해주신 이런 전법은 스승이 명하신 분명한 성소(聖召)라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4. 최혁주33 2019.07.30 1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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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7. 29. 나는 아침기도 성무일도를 시작하기 전에 항상 하던 대로 오늘 ‘성녀 마르타 기념일’ 요한복음 11장 17-27절 ‘부활이며 생명이신 예수님’ 편을 살펴보고 오늘의 묵상【주님을 믿는 이들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살릴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되돌려 주시는 것은 단순한 육신의 숨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되찾아 주시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생명은 창조 이전부터 우리에게 계획된 생명으로 이 땅에서 이미 우리 모두가 누리고 있는 생명이며 육신의 숨이 끊어진다 하더라도 계속 이어지는 그런 생명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라자로에게 되돌려 주시고자 하는 생명은 육신의 숨이 아니라 바로 이 영원한 생명이었습니다. 라자로가 되돌려 받은 육신의 생명은 다시 끊겼지만 그가 되돌려 받은 영원한 생명은 세상 종말이 오더라도 영원히 이어질 것입니다. 오늘 마르타는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많은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일부분도 같이 살펴보았는데 즉 오늘의 묵상 일부분에서 ‘영원한 생명’이란 똑같은 단어가 다섯 번이나 소개된 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道를 깨달았다. 진리를 깨달았다. 생, 노, 병, 사를 해결했다는 것이 바로 영생이라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즉 죽음이 없는 영생을 해결했다는 것은 바로 요한 14장 6-7절에서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라고 말씀하신 전능하신 진리인 그분을 깨달았다는 즉 그분은 道를 깨달은 적도 없으신 道 자체이시고, 진리를 깨달은 적도 없으신 진리 자체이시고, 생명을 깨달은 적도 없으신 생명 자체이신 진리인 그분과 합일(空)을 이루었다는 즉 전능(空)을 깨달았다는 즉 그 생명(空)은 죽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즉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생, 노, 병, 사를 해결했다는 것은 태어나서 받은 성소(聖召)를 깨달았다는 것이며 즉 달마대사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제야 제대로 깨달아지는 것이지만 단순히 불교를 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반야다라를 따라 출가하여 40년 동안 수행하고 스승이 죽으면서 유언으로 내가 죽은 후 67년이 지나면 동쪽으로 가서 전법을 전하도록 하여라. 남쪽에 머무르지 말고 북쪽으로 가도록 해라. 그래서 남쪽에서 양무제를 만나고 북쪽 위나라로 가서 숭산 소림사에서 신광(혜가)이라는 수도자가 나타날 때까지 고요히 머물렀듯이 그리고 혜가에게 법을 전하고 내 일은 이미 끝났도다. 하고 혜가에게 다섯 번 독약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해주시고 여섯 번째의 독약은 제자에게 법을 전했음으로 즉 스승이 명하신 성소(聖召)를 완수했음으로 그냥 피하지 않고 받아들여 독약을 먹고 죽어서 528년에 그 시신을 웅이산에 장사지냈다고 하였듯이(인터넷 다음 블로그「달마의 생애」참조) 즉 내가 죽은 후 67년이 지나면 동쪽으로 가서 전법을 전하도록 하여라. 남쪽에 머무르지 말고 북쪽으로 가도록 해라. 그래서 남쪽에서 양무제를 만나고 북쪽 위나라로 가서 숭산 소림사에서 신광(혜가)이라는 수도자가 나타날 때까지 고요히 머물렀듯이 즉 67년 이란 년도까지 정해주신 이런 전법은 스승이 명하신 분명한 성소(聖召)라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5. 최혁주33 2019.08.14 0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6.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비디오를 보고)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불교를 전하러 오셨겠지만
    인도에서 깨달은 달마대사가
    와서 또 면벽을 구년을 하고
    “마음의 달이 물 밑에서 차오르면
    참 너는 어디로 가겠느냐?”고
    “네 화두는 바닥이 보이느냐?”고
    이것이 묻는 화두였습니다
    깨달음은 마음의 법칙이고 영의 질서인 것을
    마음의 달이 물밑에서 차오르면
    참 나는 어디로 가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은 겸손해지면
    채워지는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그리하여 마음이 깨끗하여지면
    왜 마음의 밑바닥이 들여다보이지 않겠습니까?

    ※ 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③”’ 편 ※ 2019. 7. 29.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