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4일 토요일. 다행히 새벽비로 초미세먼지가 씻겨지고, 모두 제색깔을 아름답게 드러낸 가을날씨였습니다.
우리 아이들 11명과 사제동행, 역사산책ㅡ"대한제국 명성황후에서 안중근까지" ㅡ남산이야기 잘 다녀왔습니다.
특별히 이 날을 택한 이유는 10월 26일은 안중근의사가 대한제국의 침략원흉, 이토를 척결한 날을 기념하고 의미를 새기기 위함입니다.
아이들과 길 위에서 나눈 역사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ᆞ장충단에서 명성황후시해사건, 을미사변 이야기와 추모 
 
일제는 장충단(당시의 국립현충원)을 허물고 유곽을 짓는가 하며 이등박문(이토오)를 위한 박문사 절을 지었다는 이야기에 분개한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위한 옛 사진 그림 등을 챙겨서 보여주었답니다.  [첨부 pdf파일]

2015-길 위의 역사산책.pdf

(아이들에게 을미사변, 명성황후시해사건 이야기를 전하고 함께 추모하느라 사진 촬영은 잊었네요. 아래 사진은 작년 봄에 찍은 사진)

ᆞ장충단 공원의 수표교 이야기(과학적 생각)와 박문사 이야기(일제의 민족정기 능멸)

ᆞ한양도성 성곽 축성 시기별 특징과 각자성석 찾기

아이들에게 한양도성의 의미와 축성의 시대별ㅡ태조, 세종, 숙종, 순조ㅡ 성돌의 특징을 가르쳐주고, 공사구간 동원군현과 책임관 이름 등이 새겨진 각자성석을 찾게하면서 폰으로 찍어 보게하였다. 아이들이 찾았다며 사진찍고 자랑하고 묻기도 한다. 이게 무슨 뜻이냐고. "여기는 경상도 흥해사람들이 동원되어 공사를 시작한 구간이구나."ㅡ "이곳은 공사 책임관들 이름이 새겨졌구나." ~ 왜 새기냐고 묻는다. "그만큼 공사에 대한 책임과 국가적 성업에 참여한 공로에 대한 인정도 되겠지." ~ 아이들이 아하!그렇겠구나 라고 한다. 조선시대 사람들과 시공을 떠나 함께 있는 듯 하다는 친구도 있다....
아이들 중엔 "서울에도 이런게 있구나"라며 도성의 성벽에 감탄한다. 곧 정식 세계문화유산이 될것이라하니 자기가 걷는 길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단다.
 

 

 

[흥해시면] 경상도 영일군의 흥해 사람들이 이곳을 축성했다는 표시같다.  

태조 때의 축성 모습 그대로 - 남산의 산성돌에도 글자가 새겨 져 있다.

축성 감독관들의 이름과 날짜가 새겨져 있다.

ᆞ태조때 축성 원형의 남산 산성ㅡ나무계단길

ᆞ서울중심점과 N타워 그리고 목면대왕 국사당터 봉수대이야기

어른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옛 추억으로 그 때 그 교복을 입고 동창생들이 다시 만나 놀러 왔나 보다.

늙어서 좋다는 것이 이런 거네. 

서울 중심점에 서 있다.

왼쪽에 인왕산, 가운데 북악산과 그 아래의 왼쪽에 청와대가 보인다. 북악산 백악마루에서 오른쪽 뒤로 하늘에 맞닿은 산은 삼각산(북한산)이다. 오른쪽으로 내려오는 숲 사이에 종묘의 긴 지붕이 보인다.

사진 가운데에 낮게 보이는 산이 바로 한양도성의 좌청룡인 낙(타)산이다. 자세히 보면 성곽이 흥인지문으로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른쪽에 높게 쏟아 있는 빌딩이 흥인지문(동대문) 앞에 있는 두산타워(두타)이다.

남산 정상에 조선의 국사당이 있었다. 그러나 일제는 지금의 백범광장, 안중근 의사 기념관 터에 일본 신사(신궁)을 건립하고, 신궁 위에 있는 조선의 국사당을 허물어 버렸다. 국사당은 겨우 지금의 인왕산, 한양 도성 밖으로 옮겨졌다.

ᆞ잠두봉에서 내려본 서울중심부와 인왕산의 한양도성성곽 그리고 안중근의사기념관의 모습

ᆞ남산 회현지구 한양도성발굴작업과 일본의 조선신궁

ᆞ해방후 극일과 민족정기 회복을 위한 안중근의사기념관, 백범광장 이야기

ᆞ안중근의사기념관 참관과 추모

"역사를 잊지 않겠습니다." 약속 드리며....

ᆞ숭례문 옆, 남대문시장에서 점심
ᆞ한국은행 앞을 지나 대한제국 환구단에 찾아가기

ᆞ황궁우와 환구단 터, 그리고 석고 이야기

ㅡ 오늘의 길 위의 인문학 역사산책, 계획했던 대로 모두 마쳤습니다.
아이들에게 의미있는 나들이였기를 바라며,
우리 아이들과 조국의 미래에 희망합니다.

 

 [계획] -  1) 학급담임을 통한 희망학생 모집을 위한 학급 게시용   2015매홀고 길위의역사산책.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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