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들라로이트 - 한 작은 마을도 동서독으로 분단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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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를드 경제 신문 : ‘리틀 베를린’ 뫼들라로이트…25년 이어진 분단 트라우마
  • 기사입력 2014-11-10 11:38
    장벽·철조망 등 ‘유산 상태’ 보존…실업률 등 빈부 격차도 고스란히

     

    독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25년이 지났지만 ‘리틀 베를린’으로 불리는 뫼들라로이트의 분단은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독일 중동부에 위치한 뫼들라로이트는 튀링게주와 바이에른주의 경계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은 2차 대전 이후 냉전의 상징인 동ㆍ서독 분단과 함께 마을이 두동강났다.

    베를린이 도시 분단이라면 뫼들라로이트는 마을 분단으로 ‘리틀 베를린’으로 불리는 이유다.

    베를린 장벽 붕괴 사반세기를 맞는 올해도 역시 뫼들라로이트는 재조명되고 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 “아주 작은 독일 마을의 분단은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분단 ‘트라우마’ 여전 =뫼들라로이트에는 통독이후 유일 분단국인 한국을 포함해 전세계 관광객 6만5000명이상이 다녀갔다. 냉전의 유산을 보기 위해서다.

    뫼들라로이트에는 길이 800mㆍ높이3m의 장벽과 감시탑과 철조망 등 동서분단의 유산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밀려드는 관광객이 반갑지 않다. 뫼들라로이트의 한 여성주민은 “매년 카메라팀이 와서 똑같은 질문을 한다”며 “일정 시점이 되면 주민들은 더이상 그것(분단)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아 한다. 항상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다”고 난색을 표했다. 극좌파인 링케당의 지역의회 의장 디터 레베라인도 “지역사회 입장에서 짜증나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해서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뫼들라로이트는 기본적으로 농업중심사회로. 수천명의 관광객을 수용할 편의시설이 부족하다. 주민들을 위한 선술집 펍 한군데를 빼고는 호텔이나 기념품 가게, 심지어 학생들을 위한 사탕가게 한 곳도 없다.

    일각에서는 “유산을 없애버리자”고 제안하기도 하지만, “박물관과 기념관에 공적자금이 투입된 만큼 이 제안은 주민을 분열시키고 정치적 논란을 야기시킬 것”이라고 WSJ은 전했다.

    ▶주민 격차도 ‘리틀 베를린’= 뫼들라로이트의 분단은 냉전시대의 폐해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통독 이후 국경순찰과 감시견, 비밀경찰은 사라졌지만, 동서 주민들은 시장(市長)을 따로 두고 있고, 어법이나 지역 전화번호, 차량등록판 지역분류도 다르다.

    바이에른 진영의 한 중년 호텔 직원은 “젊은이들 조차 아직까지 동질감을 느끼지 못한다”며 “말하는 것만 봐도 출신지를 바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의 격차는 더 크다. 뫼들라로이트는 튀링게주와 바이에른주로 나뉘어 있는데 바에이른주는 독일 전체에서 가장 부유한 주다. 실업률만 봐도 바이에른주는 4% 수준이지만 튀링게주는 그 두배에 달한다. 또 1989년이래 튀링게주 인구는 50만명 줄었지만, 바이에른은 140만명 증가했다.
    정치성향도 극과극이다. 바이에른주는 지난 60년동안 보수당을 재선시킨 반면 튀링게주는 지난달 선거에서 동독 사회주의자 계승 정당 출신의 주지사를 뽑았다.  서(西)뫼들라로이트 시장인 클라우스 그륀츠너는 “평등화 과정은 재통합 때보다 훨씬 더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며 지역격차 봉합이 쉽지 않음을 나타냈다. 퇴역 농부인 마린 메그너는 “25년 전 동독 평화봉기의 모토는 ‘우리는 한 마을 주민이고, 하나의 국민’이었지만, 이 문구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 그저 희망으로 느껴진다”고 허탈해 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

    [개발과 보존의 기로에 서 있는 DMZ·7]'작은 베를린' 뫼들라로이트

    철조망이 하나의 마을 갈랐지만 주민은 '소통의 끈' 놓지 않았다

    김종화 기자

    발행일 2014-10-08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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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베를린이라고 불리는 뫼들라로이트 마을에 분단의 상징인 철조망과 감시탑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2차세계대전 이후 냉전시대 동·서독으로 경계선
    정치체제 나뉘어졌지만 주민들 정부에 교류 요청
    하루 한번 우체부 장벽 넘어 가족·친척 소식 전해
    정부 허가 받으면 국민들 양국 여행 기회 얻기도

    강원 고성·경기 연천 등 한반도 '한 마을 두 국가'
    친인척 생사조차 확인 못하는 남북 '완벽한 단절'
    접촉 끊지않은 독일, 남·북한 통일시대 좋은 선례


    "통일은 흥분됐지만 문화적인 이질감이 두려웠다."

    작은 베를린이라고 불리는 뫼들라로이트에서 만난 독일인들이 말한 통일 당시 이 지역 분위기다.

    뫼들라로이트는 마을 자체가 동서독으로 분단된 특이한 사연의 마을이다.

    그렇다 보니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 또한 분단 당시 동독 또는 서독에서 각기 다른 이념의 국가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많다.

    2년만에 방문한 지난 8월말 뫼들라로이트 국경박물관에서 만난 독일인들은 서로 다른 이념체제에서 성장해서 결혼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통일 당시의 분위기를 묻자 "흥분을 넘어 자칫 폭동으로 갈까 걱정이 앞섰다"고 전했다.

    상대방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생각과 생활환경의 차이로 인해 갈등이 심했다는 것이다.

    특히 뫼들라로이트 근교에 위치한 도시인 플라우엔 지역에는 사람들의 충돌을 막기 위해 곳곳에 경찰이 배치될 정도였다.

    이들은 "40년이라는 분단의 시간을 극복하지 못해 갈등이 있었는데 한국은 60여년 넘게 단절되어 있다면 서로간의 이해가 더 많이 필요하다"며 "꾸준한 대화와 교류만이 통일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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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천을 중심으로 동·서독으로 분단됐던 뫼들라로이트. 동독에서 바라본 서독 시골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 작은 베를린 뫼들라로이트

    뫼들라로이트는 하나의 마을이 하천을 중심으로 동·서독으로 나뉜 곳이다.

    이런 이유로 독일인들은 작은 베를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독일인들에게 뫼들라로이트는 단지 동서독의 분열기에 하나의 마을이 분단됐기 때문에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는 건 아니다.

    뫼들라로이트의 분단 역사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부터 시작된다.

    1차 대전이 끝난 후 뫼들라로이트는 바이에른주와 튀링겐주로 나뉘어졌었다.

    바이에른주에는 교회가, 튀링겐주 지역에는 학교를 비롯한 일반 편의시설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당시에는 주경계선만 나뉘어져 있었을 뿐 서로 이용하는데는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냉전시대가 시작되며 이념이 다른 국가로 새롭게 태어난 동·서독은 뫼들라로이트에 장벽을 세웠고 서로간의 교류가 단절된다.

    그렇다고 완벽한 단절은 아니었다.

    하나의 마을이었기 때문에 가족간, 또는 친척간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양국 정부에 교류를 지속적으로 요청했고 이 요청이 받아들여져 하루에 1회 우체부가 장벽을 넘어 왕래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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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단 시절에 동독 군인들이 사용했던 2만여점의 군사장비들이 뫼들라로이트 국경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 소통의 끈을 놓지 않은 뫼들라로이트 주민들

    2년만에 또다시 그뤼네스반트의 취재를 나서며 뫼들라로이트를 찾게 된 건 이 곳에서 독일인들이 40여년간 통일을 준비한 소통의 역사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뫼들라로이트는 도심에서 떨어진 외진 시골 마을이었기 때문에 마을 구성원 대부분이 친인척 관계였다.

    정치적인 이유로 나라가 분단됐지만 이들에게 분단은 다른 나라 이야기일뿐 한 가족과 같이 지냈던 마을 구성원들은 마을이 나뉘어지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동독 정부에 의해서 장벽이 세워졌을 때도 이들은 서독에 속한 마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했고 관철시켰다.

    뫼들라로이트와 같이 하나의 마을이 분단으로 나뉘어진 곳은 한반도에도 여러 곳이 있다.

    강원도 고성군의 경우 DMZ가 하나의 군을 2개의 지역으로 나누고 있고 경기도 연천군의 일부 지역도 북한에 편입되어 있어 60여년째 분단 되어 있다.

    특히 연천군의 백학면, 왕징면 등 2개 면의 일부 지역이 북한에 편입되어 있어서 하나의 행정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독일은 이런 분단된 마을이 정치체제는 나뉘어져 있지만 서로간의 소통은 단절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교류를 허용했지만 한반도는 60여년이 넘도록 단절 된 채 친인척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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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 뫼들라로이트 국경박물관에서 관람객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독일은 뫼들라로이트에만 이런 소통의 기회를 준 것은 아니다.

    동·서독 정부는 양국 국민이 자국 정부에 허가를 받고 상대 국가를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런 최소한의 교류가 40여년 가까이 서로 다른 정치 체제 안에서 멀어질 수 있는 게르만족을 통일 이후 빠르게 하나의 국가 안에서 화합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됐다.

    글/김종화기자 / 사진/김종택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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