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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그리기-통일로 가는 길

통일독일과 독일의 재즈

by 문촌수기 2016. 2. 29.

독일의 재즈

틸 브뢰너
트럼펫 연주자 틸 브뢰너: 세계적으로 이름 난 독일 출신의 동시대 재즈 뮤지션 | 사진: Ralf Dombrowski

독일의 재즈는 매우 다양하다. 유럽 어떤 나라의 재즈도 독일 재즈만큼 광범위한 스타일과 전통, 연주기법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블루스, 부기, 딕시랜드부터 스윙, 비밥, 쿨재즈, 재즈록, 프리재즈, 나아가 뉴뮤직, 월드뮤직, 힙합, 앰비언트, 포크송, 팝뮤직 등이 결합한 형태의 복합적 재즈까지 그 모든 즉흥 연주 장르들이 폭넓은 기반 위에 발전하고 있다.

재즈는 라이브로 연주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젊은 뮤지션부터 실전에서 잔뼈가 굵어진 베테랑 연주자에 이르기까지 아티스트의 구성이 매우 다양하다. 독일 재즈를 사랑하는 팬들의 수도 적지 않고, 각 팬들의 재즈에 대한 지식 역시 꽤 풍부한 편이다. 독일의 재즈는 연방제 국가라는 독일의 정치적 특수성 때문에 역사적으로 수많은 변화와 사건을 겪었고, 그 덕분에 지역마다 고유한 특색을 지니게 되었다. 장벽 붕괴 이후 독일 재즈계가 갖게 된 예술가적 역동성에 대해 국제적으로 점점 더 많은 시선이 집중되고 있고,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독일식 재즈, 독일에서 연주되고 있는 재즈는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을 지니고 있다는 뜻인데, 이러한 특징은 역사적 배경과 교육환경, 나아가 공연문화나 연주클럽과 관련된 상황들, 각 지역이 연합된 연방제 국가라는 정치적 배경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분단된 과거, 하나된 현재

독일은 40년 넘게 두 개의 정치 체제로 분단되어 있던 연방제 국가였다. 그 증 서독의 재즈는 초기에 미국식 모델을 따라 발달하였는데, 적어도 1960년대 이후부터는 거기에서 벗어나 전통에 대해 의문을 품는 진보적 태도와 전통을 고수하려는 보수적 태도 사이의 균형점이 재즈계의 발달을 주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에는 부퍼탈 재즈계의 독보적 영향력을 비롯해 색소폰 연주가인 페터 브뢰츠만 등이 다른 재즈 장르들에 비해 두각을 나타낸 것이 사실이지만, 결국 서독 재즈의 역사는 알베르트 망겔스도르프의 실험에서부터 클라우스 돌딩거의 재즈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표현형식을 아우르며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구동독의 연주자들은 국가의 통제와 예술가적 정체성이라는 두 개의 대립되는 상황 하에서 자기만의 길을 찾아냈다. 피아니스트인 울리히 굼페르트 등 몇몇 뮤지션들은 프리재즈와 더불어 전통 민요와 노동가요, 작센 바로크 스타일 등을 혼합한 독일만의 고유한 ‘재즈 칵테일’을 발전시키기도 했는데, 아쉽게도 장벽 붕괴 이후 그러한 트렌드를 따르는 이들이 줄어들고 말았다. 반면, 동서독 양국의 뮤지션들 간의 교류는 정치적 분단 상황에도 불구하고 1989년 이전부터 이미 각종 페스티벌이나 순회공연 등을 통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거기에서 맺어진 결실들이 통일 이후 독일 재즈계의 통합과 공동 성장의 기반이 되었다.
 
세대 간 만남, 다양한 스타일의 만남, 동서의 만남: '베이비'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귄터 좀머와 틸 브뢰너가 2010년 제34회 라이프치히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선 모습. 출처: 유튜브

구조적 특성

독일 재즈계의 우수성은 관련 기관들의 전국적 고밀도 네트워크와 다양한 활동들 그리고 수많은 지원등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고, 그러한 가운데 방송사들도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ARD의 경우, 지부별로 해당 지역의 재즈계를 소개하면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고, 이와 동시에 각종 페스티벌과 클럽들에서 연주되는 음악들을 중계하고 후원함으로써 재즈계가 보다 탄탄하게 발돋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나아가 거기에서 연주된 음악들 대부분을 아카이브에 보관하기도 한다.

‘2013 청소년 재즈 콩쿠르’ ‘2013 청소년 재즈 콩쿠르’에 참가한 젊은 연주자들의 모습 | 사진: Ralf Dombrowski 수많은 재즈 페스티벌들 역시 독일 재즈계와 해외 뮤지션들의 교류를 촉진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드레스덴 국제 딕시랜드 축제나 자유로운 즉흥 연주의 대명사이기도 한 베를린의 토털뮤직미팅, 나아가 록과 세계음악, 전자음악계의 새로운 트렌드를 소개하는 모어스(Moers) 페스티벌 등이 그 대표적 사례들이다. 독일은 또 다양하고 세분화된 재즈 뮤지션 양성 프로그램을 자랑한다. 현재 전국에 걸쳐 18개의 음악대학과 콘서바토리움이 재즈 학과를 개설하고 있고, 지역적 차원이나 중등교육 차원에서도 장차 재즈 뮤지션이 되기를 희망하는 꿈나무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이미 관련 음악을 접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진행 중이다.

전 세계로부터의 유입되는 자극

독일 재즈계의 한 가지 큰 특징은 다양한 국가 출신의 연주자들이 독일에서 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온 연주자들은 북쪽의 플렌스부르크로부터 남쪽의 가르미시-파르텐키르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독일 연주자들에게 자신들의 경험을 소개하고 새로운 자극을 주고 있다. 결국 그러한 폭넓은 다양성과 무한한 잠재력, 나아가 관련 실무자나 행사 주최자, 미디어, 청중들의 개방적인 마인드들이 모여서 독일을 매우 매력적인 세계적 재즈 무대로 발전시킨 것이다.

아키 타카세, 블라디슬라프 센데츠키, 데이비드 프리드먼, 칼레 칼리마, 시민 사마와티 등은 소속 밴드와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를 개최하면서 독일 내에서 국제적 충격과 자극을 주고 있는 대표적 재즈연주의 대가들이다.

베를린의 클레츠머 재즈 밴드(Klezmer-Jazzer) 소속 연주자 다니엘 칸 베를린의 클레츠머 재즈 밴드(Klezmer-Jazzer) 소속 연주자 다니엘 칸 | 사진: Ralf Dombrowski

지역별 중심

지재즈의 중심지마다 자기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는 알베르트 앙겔스도르프와 하인츠 자우어를 주축으로 한 아방가르드재즈가 발달된 것이 특징이고, 함부르크는 모던메인스트림의 본산지로 통한다. 하노버는 한때 애시드재즈의 중심지로 명성을 날렸고, 바이에른 주의 바일하임은 포스트록과 아방가르드재즈가 복합된 형태의 음악으로 유명하며, 부퍼탈은 프리재즈의 대명사가 되었다. 베를린과 쾰른은 다양한 재즈스타일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들은 사실 대략적 개요를 파악하기 위한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베를린의 경우, 최근 몇 년 사이 다양한 음악 스타일과 장르 그리고 세대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국제적 재즈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서브컬처만이 지니는 매력을 전달함과 동시에 코스모폴리탄적인 요소까지 갖게 되면서 재즈계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였고, 이로써 이제는 뉴욕이나 런던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 없는 국제적 재즈의 중심지로 발달된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재즈, 메이드 인 저머니’는 단순히 한 개의 브랜드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다시 말해 이미 오래 전부터 하나의 옵션이자 기회 그리고 하나의 전망으로서의 가치를 제시해 온 것이다.

재즈 중심지들 간의 네트워크

율리아 휠스만 율리아 휠스만: 본(Bonn)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2013년 말까지 새로이 개편된 독일재즈뮤지션연합(UDJ)의 이사로 재직하면서 해당 단체에 다양한 활력소를 제시함. | 사진: Ralf Dombrowski 하지만 재정 지원을 따내기가 만만치 않고 모두가 바라는 미디어 노출 기회도 턱없이 부족한 형편인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독일 재즈계는 광고와 자기홍보, 문화정책적 참여의 중요성을 깊이 인지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관련 업종 종사자들이 매년 브레멘에서 개최되는 재즈어헤드(jazzahead)! 박람회에 참가하여 의견을 나누고 있고, 2002년에 조직된 연방 재즈 컨퍼런스(BK Jazz)에도 각종 음반 회사, 페스티벌 주최측, 클럽 소유주, 재즈 관련 이니셔티브들이 함께 모여 정치계와 문화계 기관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히 전달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 오고 있다.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던 독일재즈뮤지션연합(UDJ)도 2012/2013년 성공적으로 활동을 재개한 이후 예술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로서의 입지를 굳혀 나가고 있다. 이 모든 상황들은 결국 독일 재즈계가 젊어지려고 노력하고 있고 새로운 방향을 설정해 나가고 있으며 조직을 개편해 나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술가적 개성

이제 독일 재즈계는 장르 간 경계가 무너지고 다문화적 특징이 강조되며 해외 뮤지션들에 대해 보다 열린 자세를 지닌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대에 있어서도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가적 개성이다. 즉 자기만의 음악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을 만큼의 재능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고유성에 대한 요구는 점점 높아지고 있고, 몇몇 장르에서는 지난 몇 십 년 동안 이미 걸출한 밴드와 예술가가 배출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피아노 트리오의 인기가 독일에도 상륙하여 급성장세를 보여 주고 있기도 하다. 함부르크의 팅발 트리오(Tingvall Trio), 미하엘 볼니(Machael Wollny)가 이끄는 베를린의 에엠(em), 쾰른의 파블로 헬트 트리오(Pablo Held Trio) 등은 소통이나 구조, 콘셉트와 관련된 실험들을 통해 팬들에게 확신을 심어 주는 동시에 재즈계의 신대륙을 탐구하고 있다.

파블로 헬트 트리오 파블로 헬트 트리오 | 사진: Ralf Dombrowski 해체적 음악을 추구하는 안드로메다 메가 익스프레스 오케스트라(Andromeda Mega Express Orchestra)나 겹겹이 중첩되는 복잡한 사운드들 속에서도 스윙 음악을 만들어 내는 말테 실러의 레드벌룬(RedBalloon), 풍부하면서도 반짝거리는 음색을 구현해 낸 크리스티안 엘재서 오케스트라(Christian Elsässer Orchestra) 등 대규모 앙상블이나 챔버오케스트라 역시 자기만의 음악을 추구하는 개척자들이다. 샤를로테 그레베, 베네딕트 야넬, 닐스 클라인, 앙겔리카 니시에, 마티아스 슈리플, 헤닝 지베르츠처럼 퍼포먼스의 고유성과 국제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한 무리의 신세대 작곡가들이 대두된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결론적으로 독일 재즈라는 이름의 트럼프는 편향 없이 매우 고르게 잘 섞여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 전 세계를 무대로 삼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조커 카드 몇 장 정도는 제시해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