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3 제 노릇도 못해서야?

논어와 놀기 2020. 12. 1. 18:27 Posted by 문촌수기

공자님께서는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政者正也, 논12-17]'라 말씀하시고 '군군신신 부부자자'라며 정명(正名)을 가르치셨다. 정의를 구현하는 정치를 한답시고 부정을 저지르면 그것은 정치도 아니요, 정의도 아니다. 늦더라도 어렵더라도 설령 뜻을 이루지 못할지라도 끝까지 공명정대해야 할 것이다.
"政不正, 政哉(정부정 정재?) ~ 정치가 바르지 못한데, 정치라 할 수 있겠는가?"

그 '이름(名)을 바르게(正)'하려면 어떠해야할까? '나다움'을 물어본다. 무엇이 '나다움'일까? 내가 나답다라고 하는 것이 과연 나다움이 맞을까? 아닐 것이다. 그럼 남들이 "이런게 너 다운 거야"라고 말해 주는게 과연 나다움일까? 그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아는 나다움'과 '남이 알아주는 나다움'의 교집합 범위가 나다움일까? 글쎄, 과연 그럴까?
나다움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정녕 행복할텐데...
분명 나에게 주어진 직분과 책임이 내 삶의 즐거움이 된다면 참 행복이라 할 것이다.

06‧23 子曰: “觚不觚, 觚哉! 觚哉!”
(고불고, 고재! 고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모난 술그릇인 고(觚)가 모나지 않으면, 모난 술그릇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The Master said, "A cornered vessel without corners-a strange cornered vessel! A strange cornered vessel!"

고불고 고재

 

亞자형, 네모술잔(方觚)

 

술잔, 고ㆍ작ㆍ가(왼쪽부터)

*고(觚):옛날, 몸통이 4각 또는 8각으로 된 술잔.
*작(爵):청동으로 만든 다리가 세 개 달린 고대 술잔.
*가(斝):고대의 주둥이가 둥글고 다리가 세 개인 술잔

고ㆍ작ㆍ가는 모두 술그릇으로 상(商)대의 무덤에서 한 조가 되어 부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에는 상당히 중요시되었던 예기였다.
모난 술잔인 고와 다리가 셋인 청동술잔 작과 주둥이가 크고 넓은 술잔 가 등, 무덤에 부장되는 술잔의 수량은 귀족의 신분 등급을 표시한다.

@ '政者正也'와 같이 동음어로 뜻풀이 한 글이 <중용>에서도 찾아 읽는다.
'仁者人也,...義者宜也'(인자인야...의자의야)
'사랑은 사람이요, 정의란 마땅함이다.'
ㅡ 사랑하지 않으면 사람답지 않으며,
속임수와 반칙은 결코 의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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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팔일편-0303 사람이 사랑이 없어서야?

논어와 놀기 2020. 4. 20. 15:57 Posted by 문촌수기

<論語>는 '말씀을 논하는' 책이다. 무슨 말씀을 논하는걸까? 스승 공자의 가르침과 제자들과 주고 받은 말씀을 논한다. 많은 가르침 중에서도 인(仁)이 으뜸이다. 그래서 "<논어>는 仁을 논하는, 論仁이다." 仁은 人에 二를 붙인 글자이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그러니 仁은 人間 관계에 가장 기본적인 덕목(virtues proper to humanity)이며,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사랑의 마음이다.
정이천이 말하였다. "仁은 천하의 바른 이치이니, 仁을 잃으면 질서[禮의 所用]가 없고 和[樂의 所用]하지 못한다."
나는 말한다.
"仁은 人이며, 사람은 사랑이다. 不仁이면 非人이라. 사랑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03‧03 子曰: “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인이불인 여례하?, 인이불인 여악하?)

"사람이 仁하지 못하면, 예를 어떻게 하며,
사람이 어질지 못하면, 樂(음악)을 어떻게 할 것인가? "


The Master said, "If a man be without the virtues proper to humanity, what has he to do with the rites of propriety?
If a man be without the virtues proper to humanity, what has he to do with music?"

"사랑은 사람이다." ㅡ 仁의 그림~人+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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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사랑은 사람입니다.
- 인자인야(仁者人也)ㆍ인자애인(仁者愛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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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공부를 이제 마무리하면서 가장 핵심적인 덕목인 인(仁)을 한 번 더 정리해본다. 시작부터 말하였지만, ‘논어(論語)’를 ‘논인(論仁)’이라 할 정도로 인(仁)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왔다. 또한 ‘논어(論語)’를 ‘논인(論人)’이라 할 정도로 ‘사람됨과 사람다움을 진술’하고 밝혀 왔다. 결국 ‘인(仁)은 사람[人]이요, 사랑(愛人)이요, 삶[誠ㆍ忠]이다’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 이야기를 풀어 정리해본다.

▣ 인(仁) : “삶 · 사람 · 사랑은 하나이다.”

인(仁)을 인수분해 하듯 파자(破子)하면, 사람 ‘인(人)’에 두 ‘이(二)’가 된다. 두 사람의 모습이 바로 인(仁)의 생김새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 사이에 미움과 다툼만이 있다면 결국 둘 사이는 깨지고 만다. 한 사람 곁에 또 한 사람, 이렇게 두 사람이 나란히 서기 위해서는 그 사이에 사랑이 있어야 한다. 그 모습이 바로 인(仁)의 모습이다. 결국 ‘불인(不仁)이면 비인(非人)이라’, 사랑할 줄 모르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인(仁)의 모습 : 사람[人]과 사람[人] 사이에 사랑이 있다, 사랑이 사람이다.]

수많은 우리말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아름다운 말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삶, 사람, 사랑'을 말할 것이다. 연이어 말해보자. ‘삶, 사람, 사랑, 삶, 사람, 사랑, 삶, 사람, 사랑’. 모든 소리가 비슷하게 들린다. 그렇게 사랑은 사람이고, 사람은 사랑이다. 삶은 사랑이며 사람이 되었다. 예부터 ‘불사르다’를 가리키는 'ᄉᆞᆯ다[燒, 아래 아 '살'자]'와 ‘살아가다’의 뜻을 가진 '살다[生]'는 같은 말의 뿌리에서 나왔다. ‘사ᄅᆞᆷ’(아래 아, 람자)'도 바로 ‘ᄉᆞᆯ다’와 ‘살다’에서 갈라져 나왔다한다. 결국 사람은 타오르는 불과 같이 열정적으로 생(生)의 의지를 사르면서 살아가는 뜨거운 존재인 것이다. 단순히 살아져 가는 존재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며 활동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람과 삶은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노랗다에서 ‘노랑’, 파랗다에서 ‘파랑’처럼 우리말에는 용언의 어간에 '~앙/~엉'이 붙어 명사를 이루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 바로 '사랑'은 ‘불사르다’의 ‘ᄉᆞᆯ다[燒]’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즉 ‘사랑’이란 ‘불사르는 것’이라는 본래의 의미에서 ‘애틋이 여기어 위하는 마음’으로 승화된 것이다. 나를 불태움으로써 세상을 밝히고 따뜻하게 데우는 희생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야말로 참으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이요 삶을 의미 깊게 하는 것이다. 불사름은 육체적 생명의 본질이며, 사랑은 삶의 가장 큰 명제이다. 결국 삶과 사람과 사랑은 하나이다. 그것이 《논어》에서 말하는 인(仁)이며 인(人)이다. 예수님의 ‘사랑타령’도 다를 바 없다.

황금률 : “나를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하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주엽역 로비의 벽에서 《논어》의 명문장을 찾을 수 있었다. '己所不欲, 勿施於人(기소불욕 물시어인)'은 공자님의 인(仁) 사상을 가르칠 적에 힘주어 강조하였던 바로 그 명문이다. “자기가 바라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 는 뜻으로 《논어》 안연편에 나온다. 이 말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같다. 곧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마태 7:12).” 세상 사람들은 이 말씀을 예수님의 황금률(黃金律, Golden Rule)이라고 한다.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고, 사랑 받고 싶거든 먼저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진리는 간단하고 하나로 통한다. 사랑이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렇게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나를 사랑하는 길에서 시작하여 남에게 미치는 것이다. 공자의 인(仁)과 도(道)는 한마디로 충(忠)과 서(恕)로 정리할 수 있다. 충(忠)은 자기 중심(中心)을 바로 잡아 흔들리지 않으니 삶에 충실하고 사람 된 도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며[盡己ㆍ진기], 서(恕)는 나의 마음을 [心]을 미루어 타인을 나와 같이[如] 헤아려 배려하고 사랑하는 것이다[推己ㆍ추기]. 아래의 [읽기]에서 처음의 두 말씀이 충(忠)에 해당된다면, 다음의 두 말씀은 서(恕)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다.


▣ [읽기] 인(仁)은 곧 충(忠, 자기 최선)이며, 서(恕,사람 사랑)이다.
○ 子曰, “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 사람이 인(仁)하지 못한데, 예(禮)를 어떻게 하며, 사람이 인(仁)하지 못한데 악(樂)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팔일0303]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고 어질지 못한데 그 몸가짐에 예의를 갖추고 음악적인 재주가 있다고 해서 진실로 사람다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내면적인 성실성을 갖추지 못하고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겉치레와 아름다운 음악 따위는 모두 거짓이라는 것이다.

○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중략)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 번지가 인을 물었다. 공자 말하길,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仁)이다. (중략) 안연이 그 조목을 물으니, “예가 아니면 보지를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를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를 말며,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도 말라.” [안연1201] [극기복례 ~ 비례물시ㆍ비례물청ㆍ비례물언ㆍ비례물동]
○ 仲弓問仁. 子曰,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 勿施於人. : 중궁이 인을 묻자, 말씀하시길, “문을 열고 나가면 큰 손님 뵙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에는 큰 제사를 받들듯이 하며, 자신이 바라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한다.” [안연1202]
○ 樊遲問仁. 子曰, “愛人”, 問知 子曰, “知人” 樊遲未達. 子曰,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 번지가 인을 물었다. 공자 말하기,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지를 물었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번지가 무슨 말인지 잘 알지 못하자, “정직한 사람을 들어 쓰고 모든 부정한 사람을 버리면[智], 부정한 자로 하여금 곧게 할 수 있는 것[仁]이다.” [안연1222]

▣ [쓰기]  

자기 ()

()

아닐 ()

바랄 ()

()

베풀 ()

어조사()

사람 ()

▣ [생각하기] 사람됨의 기준 -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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