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울렸습니다.자동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는 아내의 전화입니다. 이런 기가 찬 일이 어디있습니까? 열흘 전, 지난 설날 고향에 다녀오는 고속도로에서 그런 일이 있어 정비를 받고 부품을 교체했는데 이게 또 무슨 일입니까?
설날 그 날 밤의 기억이 다시 떠 오릅니다. 새로 개통한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잘 달려 와서 영동고속도로 여주 휴게소에 잠시 들렀습니다. 그리고 길 막힌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제2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서울로 올라가기를 작정했습니다. 가는 도중 라디오가 꺼졌습니다. 처음 겪는 일이지만 차는 잘 달리고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잠시 후 이젠 실내의 계기판 불 빛이 희미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좌우측 방향지시등도 깜박이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앞서 달리고있는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급히 휴게소를 찾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행히 중부고속도로 이천휴게소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자동차는휴게소에 막 들어가자 마자내 뜻과는관계없이 속력을 급히 늦추더니 시동이 꺼지면서 정지하였습니다. 마치자동차가 마지막 숨을 내몰고죽어가는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천만다행이지 뭡니까? 휴우~. 만에 하나 고속도로 위에서 멈추었다면, 아찔합니다.
그렇게 해서 보험회사를 통해 자동차는 견인되어 서울 상일동까지 가서 정비를 받았습니다. 보험회사의 무료서비스 초과 견인비용과 제너레이터, 밧데리 교체비. 생돈이 나간 걸 생각하면 분통이 터질 일입니다. 고향가기 전에 자주 들리던 반석 카센터에 가서 장거리 주행전 예비점검까지받았는데대체 뭘 본거냐며 아내와 함께 우리동네 반석 카센터 주인장을 원망도 했습니다. 상일동 카센터에서 물어보았습니다. 그건 미리 정비할수 없는 일이라며 그리고 10년이넘었으면 이미 교체할 때도 지났다고햇습니다. 그래도 그 날 밤 우리 축구가 쿠웨이트를 이기는 중계를 보고 기뻐하며 '스릴넘친 신년 액땜'으로 마음을 달랬습니다.
그런데 열흘도 안돼 시동조차걸리지 않는다니 이게말입니까?'자동변속기어가 주차위치에 있지 않고 잘못 놓여 있겠지,그것도 모르고 덜렁되긴' 이렇게 마음속으로 아내에게 핀잔을 늘어놓으며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보았습니다.
'아니네. 진짜 시동이 안걸리네.실내등조차 켜지지 않네. 아니 상일동 카센터 그친구, 사기 친거 아니야. 제너레이터가 정품이 없어 B품으로 갈았다더니, 이건 아예 고물로 사기친거 아니야? 아니 게다가 그 날 술도 한 잔 걸쳤더구먼. 음주정비에 축구중계에 정신없이 고친 거 아냐?'
아내에게 전화걸어 그 때 그 상일동 카센터 전화번호를 찾도록 부탁했습니다. 카드로 결제했으니 카드회사에 문의하면 찾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 다음에 내가 할 일은 환불을 받도록 해야겠다고 머리속으로 정리하며 동네 반석 카센터를 찾아갔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반석카센터 주인장은 찬송가를 흥얼거리며 차량을 정비하고 있습니다. 그 신앙심이 존경스럽고 특별히 믿음이 가는 사람입니다.자동차 고장 사실을 알리고 상일동 카센터를 원망하는 푸념도 늘어놓았습니다. '그 양반 말야. 날 속인 셈이지 뭔가?' 나의 푸념에 맞장구 치지도 않고 그냥 웃으며 정비도구와 밧데리 하나를 챙기더니 '보고나서 얘기합시다'며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가게를 비워놓고 가서 어떡합니까?' 미안한 마음으로 인사치레를 했더니 '하느님이 지켜주지 않습니까?'라며웃으십니다.
고장은 어이없이 아주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밧데리에 연결된선의 나사가 느슨하여 빠져 있었습니다. 상일동 카센터그 양반 술기운에 밧데리 교체후 나사 조으는 일을 소홀히 한 모양입니다.돈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아 좋고, 전화해서 환불조치 받을 귀찮을 일을 하지 않아 좋고,금새 차를 몰 수 있어다행이었습니다.한 편 상일동 카센터 주인장을 의심하며 푸념을 늘어놓은 일이 부끄러웠습니다. 설날 늦게까지 차량정비센터 문을 열고 기다려준그 양반 덕분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대신 우리 반석 카센터주인장에게 민망하게 되었다며사과를 전했습니다.
"그러니까,'보고 난 후에 얘기하자' 했잖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쉽게 죄를 짓게 됩니다."
오늘도 반석카센터 주인장을 통해내 마음의 때를 닦아냅니다. 마음으로 원망하고 쉽게 말이 앞서는 것도 죄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깁니다.
그래서 명심보감에서 이렇게 말했나 봅니다.
"喜怒在心(희노재심)하고 言出於口(언출어구)하나니 不可不愼也(불가불신야)이니라" (기쁨과 성냄은 마음에 있고, 말은 입에서 나오나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리라.")
- 2005. 2. 18 쇼니 졸업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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