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빈 배가 떠내려와서 부딪치면 비록 속좁은 사람일지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배 위에 사람이 있으면 비키라며 소리친다. 소리쳐도 듣지 않으면, 다시 부르고 또 듣지 않으면,세 번 소리친다. 그런즉 욕설이 나오기 마련이다. 아까는 화내지 않고 지금은 화를 내는 까닭은, 아까는 빈배였고 지금은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를 비우고 세상을 살아간다면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는가?"
- <장자>, 산목편
方舟而濟於河, 有虛船來觸舟, 雖有惼心之人不怒., 有一人在其上, 則呼張歙之., 一呼而不聞, 再呼而不聞, 於是三呼邪, 則必以惡聲隨之. 向也不怒而今也怒, 向也虛而今也實. 人能虛己以遊世, 其孰能害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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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오면서 남과 부딪치기를 두려워했다. 부딪치면 내가 상할까 두려워서였다. 싸울 줄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그 가르침을 명심하고 복종했기 보다 그 가르침을 핑계와 위안으로 삼아 시비꺼리를 피하며 살려 했다. 그러나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내가 강을 건너려 할 때 나의 흐름을 가로막는 배가 있으면 속이 상하고, 참다못해 그냥 콱 부딪쳐버리고 싶었다. 얕은 자존심으로 나중에 후회할 말은 내뱉어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도 했다. 돌아서서는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자책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내 자신이 빈 배(虛船)가 된다는 것. 자기를 비운다는 것(虛己). 그것은 무엇일까? 마음에 걱정도 없고 격정도 없고 미움도 없고 욕망도 없는 ‘아파테이아(apatheia)’의 상태를 말하는 건가? 아님, 자존과 아집을 비운다는 건가? 나를 비울 때 이웃을 담을 수 있고 나그네를 실어 나를 수 있는 포용과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터인데 어느 만큼 수양되어야 그렇게 될까? 적어도 나의 얕은 자존심으로 먼저 남을 상하게 하지 말아야겠다. 그저 바라는 것이 있다면 허물이 적고자 할 따름이다.
몇 해전 수업시간이다. 동양윤리사상 ‘장자(莊子)’를 학습하는 시간에 ‘제물론’과 ‘물아일체’를 학습하고 나아가 ‘호접지몽(호랑나비 꿈)’이며, ‘무용지용(無用之用)’을 덧붙이고 ‘빈배가 되라’는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평소 밥 많이 먹는 예쁜 꽃분이는 수업 중에 잠들어 있었다. 깨워서 물었다.
“꽃분아. 아까 선생님이 ‘빈 배가 되라’했는데 이게 무슨 뜻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쑥스러운 듯 잠이 덜 깬 듯 작은 목소리로 답한다.
“밥, 적게 먹어라?........”
순간 교실 안은 폭소가 터졌다. 겸연쩍은 듯 꽃분이도 미소를 띠다가 얼굴이 밝아졌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제자다. 지금은 멋진 아가씨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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