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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이야기

삶은 계란(1)

by 문촌수기 2013. 1. 2.

삶은 계란(1)

20년 교단 생활만에 처음이다. 중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당황스럽고도 기대된다. '어린 것들.......귀엽겠다.....'
걱정도 된다. '말귀를 알아들을까?.....야단치면 울진 않을까?'

중1도덕 첫째단원 수업이다.
[삶의 의미와 도덕]
칠판에 이렇게 써주고 답하길 요구하였다.
'삶은 ________이다.
"삶은 무엇일까? 책에다 써보자. 아,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라. 그냥 번떡이는 생각을 적는 거야 . 옳지 잘하는 구나.
그럼, 이 줄 학생들 읽어보자. "

"삶은?"
"생각중인데요." 여기서 그냥 넘어갈 내가 아니다. 그냥 넘어가면 다음엔 시작부터 '몰라요'다.
"야하, 대단하구나. '삶은 생각중이다.' '삶은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낄낄대며 여러아이들이 농성이다.
그래도 못 들은 척
"아냐, 친구의 말은 의미가 있어. 삶은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란다. 어때, 멋있지.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우리 친구들, 정말 잘하는구나."

계속 물어본다.
"삶은?"
여러 답이 나온다. '지겹다. 짜증난다. 전쟁이다. 죽음이다.'
어린 놈들에게 삶이 왜이리 고통스러운 걸까? 대체로 남자아이들이다. 장난기도 섞였고.

"삶은?"
"파랑새이다." '왜?" "희망을 주니깐요."
"삶은 종이와 볼펜이다."
뭔가를 건졌다. "이게 무슨 말일까?'"
"자기의 종이에다 그림을 그려가는 거와 같아요."
대체로 여자아이들 대답은 생각에서 나온다. 예쁘게 꾸미기도 하였고.
이만하면 아이들은 지금 철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뒤편의 아이들이 낄낄거리며 시끄럽다.
"왜 그러지?"
"얘는 삶은 계란이래요." 모두 깔깔대며 뒤집어 진다. '삶은 계란'.....야단났다

"왜?" 웃으면서 반갑게 물었다.

"그냥요",
"배고픈가봐요."
제 한테 묻지 않았지만 나서서 대답한다. 특히 남자아이들이 흥분하였다.

"그래, 계란도 껍질을 깨고 나와야 병아리가 되듯이
우리도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껍대기를 깨고 나와야 삶의 의미를 얻는다. 너희들은 대단하구나. "

"아이 참, 그게 아니라니깐요."
어떤 아이는 급해서 언성을 높인다.

"아냐, 너희들은 대단한 철학자들이야. 지금 우리는 철학하는 것이란다.
그것봐, 번떡이는 생각에서도 이렇게 위대한 진리가 나올 수 있지 않나?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은 어미닭이 깨주는 것이 아니란다. 스스로 깨고 나올려고 노력할때 어미닭이 쪼아서 도와준단다. 이제 여러분들도 어린이가 아니야. 이제 청소년이고 자기를 알아야 하는 시기란다. 새롭게 태어나야하는 거지. 내가 누구인지? 왜 사는지? 내 삶의 목적은 뭔지?를 깨달아야 하는 때이지. "

조용해진다. 귀담아 듣고 있는 아이들이 참 기특하다.
예쁘다. 햐아, 중학생들과도 철학을 하는 구나. 아니 아니지, 호기심 많은 너댓살 어린아이도 철학을 한다. '엄마, 왜 빨간 불에는 멈춰야 해?, 그러니깐 왜 그러냐구?????'
암튼 내가 많이 배운다. 내가 여길 오길 잘했다.

 

소현 at 04/23/2008 04:09 pm comment

ㅋㅋ 저 그얘기 들었어요 ㅋ 선생님이 우리반도 들어오시는데 ㅋㅋ 오늘도 5교시에 도덕 수업했으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