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 어느날, 일산 풍경

이런저런 이야기 2013. 1. 4. 13:14 Posted by 문촌수기

2002년 5월 어느날, 일산 풍경

Category: 이런 저런 이야기, Tag: 여가,여가생활
05/15/2005 03:31 pm

오랫만에 서울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입니다.
전철 일산 주엽역에 내려 계단을 오르면 벽에 새겨진 명문을 만날 수 있습니다.


己所不欲 勿施於人
衣不厭新 人不厭故


처음말 '기소불욕 물시어인'은 제가 수업시간에 공자님의 인(仁)사상을 가르칠 적에 힘주어 강조하였던 바로 그 명문입니다. '자기가 바라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뜻으로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글입니다. 이말은 예수님의 황금률과 같은 가르침입니다. 곧 '너희가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 이렇게 진리는 하나로 통하고 있습니다.

 

나중글 '의불염신 인불염고'는 중국 고문서에 나오는 글로써, '옷은 새것을 싫어하지 않고, 사람은 옛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물론 '옷은 새 것이 좋고, 사람은 오래 사귄 사람일수록 좋다(衣以新爲好, 人以舊爲好)'는 뜻입니다.  

읽으면서 새삼 '눈은 새 것을 찾고, 귀는 옛 것을 찾는다'라는 말을 떠올려 싱겁게 되뇌여봅니다. 한편, 이렇게도 시비 걸어 봅니다.
"새옷이 아니어도 부끄러워 하지말고, 옛사람 아니어도 싫어하지 말라."

둘다 마음에 새기면 참으로 좋은 말인데, 관심을 두지 않으니 보아도 본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쳐 갑니다. 아니 어쩜 모두 알고 있기에 마음을 두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높은 계단이 벅차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올라 왔습니다.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비껴서 한줄로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길바쁜 사람이 왼쪽으로 걸어서 오를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일부러 왼쪽으로 바쁜 듯 타고 걸었습니다. 일산신도시 시민들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죠. 서울 을지로 3가 전철역에서도 그러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이젠 이정도는 문화시민의 기본이구나 싶었습니다. '다음에 올 적엔 꼭 디지털카메라를 챙겨들고 와서 [기소불욕 물시어인]도 찍어 보여주고, 에스컬레이트를 한줄로 서서 타고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어린 손녀와 함께 나들이에서 돌아오시는 길인가 봅니다. 공원로를 따라 다시 문촌초등학교 뒷 담길을 걸어가시는데 연신 꼬맹이아가씨는 꼬닥거리며 할머니께 놀이를 건넵니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혼자서 노래부르고 춤추며 깡총깡총 따라가다 멈추어도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갈 길이 바쁘신가 봅니다. 들은채 만채 그냥 걸어가십니다. 나랑 같이 놀아주고도 싶건만 오늘은 그냥 이것 저것 구경만 하면서 걸을렵니다. 문촌초등학교앞의 신호등이 바뀌어 횡단보도를 건너서도 할아버지는 계속 앞으로 걸어가시고 할머니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할머니가 뭐라고 부르면서 잔소릴 하셔도 할아버진 못들으신채 앞으로만 걷습니다. 꼬맹이 아가씨는 쫄래쫄래 꼬대면서 할머닐 따라가고.

문촌어린이 놀이터를 지나자 할아버지께서는 방향을 오른쪽으로 돌려 걸어 가십니다. 2단지쯤에 사시는가 봅니다. 이리가나 저리가나 어차피 한 집에서 만날 수 있는가봅니다. 그래도 같이 걸어가시면 좋으련만 오늘은 나들이 기분이 상하셨나 봅니다.

문촌어린이놀이터에서는 엄마 아빠랑 함께 놀이나온 병아리들이 많습니다. 한가한 엄마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아이들을 지켜봅니다. 어린아이들은 모래밭에서 놀고 좀 큰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신나게 내달립니다. 먹다버린 과자 봉지도 함께 뛰어다닙니다.

정말 꼬부랑 할머니께서 지팡이에 의지한 채 공원로(路) 잔디밭에서 뭔가를 줍고 계십니다. '실성하셨나, 뭘하실까?' 우리 할매 돌아가시기 전에 노망드시어 쓰레기 주어 오시든 아련한 고통의 그리움이 밀려옵니다. 우리 할매 보는 듯 할머니 뒤를 따라가며 유심히 지켜봅니다. 할머니는 뭔가를 줍는 것이 아니고 뭔가를 버리고 계십니다. 잔디밭에 잡풀을 뿌리 채 뽑아 버리고 계십니다. 텃밭 매던 아낙시절의 추억을 솎아내듯 그렇게 힘드신 몸을 지팡이 의지하며 공원로 잔디밭을 가꾸고 계십니다.

우리집 6단지가 다 왔습니다. 경비아저씨들 모여 한담을 나누시다가 인사를 건네십니다.

"어디 다녀오시는가 봅니다."
"예, 오랜만에 서울 다녀왔습니다."


나른한 오후의 신도시 풍경. 구경한번 잘했습니다.


2002년 05월 11일

(월드컵을 준비하며 온 국민이 부풀어 있었던 한창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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