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5월 11일(토요일) 두번째 서울 한양도성 성곽걷기

09:00 경복궁역(3번 출구, 던킨도너츠 앞) 집합-도보로 창의문!

(늦으면>경복궁역(3번 출구, 버스 022, 1020, 7022 -자하문(창의문)하차 -윤동주문학관)

 

○ 탐방코스

1차> 인왕제색도 바라보기

경복궁역~경복궁 영추문~청와대 입구~육상궁[인왕제색]~경복고등~창의문 (2.4km/40분)

※ 청와대앞 무궁화동산과 육상궁(사적 제149호, 영조생모 숙빈묘)앞에서 인왕제색 바라보기

 

2차> 인왕산과 일제강압기와 건국 초기의 역사 바라보기

* 창의문(북소문)~윤동주 문학관 탐방~윤동주시인의 언덕~인왕산(치마바위,기차바위,정상)~선바위~국사당~종로문화체육센터~홍난파가옥~월암근린공원~서울시교육청앞~경교장(강북삼성병원)~돈의문(서대문)터~경희궁~서울역사박물관 (약 4km / 3시간)

 

3차> 근처에서 점심 식사(13:00~) 

* 연장 걷기> 무너진 성곽 속 구한말, 일제 강점기 역사 현장과 복구된 숭례문을 만난다.

돈의문터~경향신문사~옛 러시아공사관 터(아관파천)~정동교회~서울시립미술관~덕수궁/(해산 또는 러시아대사관 ~ 배재학당 터 ~ 평안교회 ~ 중앙일보 ~ 서소문(소의문터) ~ 남지터 ~ 숭례문(1.4km/50분)

 

 

이야기 하나 -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너무나 유명한 이 그림은 정선의 인왕제색도이다. 제색(霽色)이란 ‘소낙비 온 뒤에 맑게 갠 모습’이란 뜻이다. 이 그림에는 아름다운 우정의 이야기가 서려 있다. 화가인 겸재 정선과 시인인 사천 이병연은 인왕산 부근에서 평생의 우정을 나누며 살았다. 세월이 흘러 사천이 쇠약하여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겸재는 변치 않는 우정을 기약하듯 굳센 바위산을 그렸으며, 친구의 건강과 부활을 기도하듯 생명력 넘치는 송림(松林)에 둘러싸인 친구의 집을 그렸다. <승정원 일기>의 기록에 의하면 사천이 죽기 나흘 전인, 1751년 윤달 5월 25일[辛未 閏月 下浣)]에 이 그림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정선이 비갠 인왕산을 바라본 지점은 지금의 청와대 앞 무궁화동산이나 청와대의 육상궁 쯤 될 것 같다. 이 그림을 흔히들 진경산수화라고 하는데, 어찌 보면 진경(眞景)이 아니라 할 수도 있다. 저 우람하게 높은 인왕산 봉우리는 밑에서 올려 보고, 송림에 둘러싸인 친구의 집은 위에서 내려 본 모습이다. 하나의 화폭에 상하의 시점(視點)에 달리하여 그렸으니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진경일까?’ 싶다. 그러나 보라. 높일 것은 높이고 드러낼 것은 드러내며 또한 운무로 감출 것은 감추어서 진경보다 더 실제적이며 감동을 주는 걸작이 되었다.

 

 

 

 

 

 

 

 

 

 

 

 

 

 

이야기 둘 - 윤동주 문학관, 시인의 언덕

 

시인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문과 재학시절, 종로구 누상동에 있는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문우 정병욱과 함께 하숙생활을 했다. 당시 시인은 종종 부암동의 인왕산 언덕에 올라 시정(詩情)에 잠기어 사색을 즐겼다. <별 헤는 밤>, <자화상>, <쉽게 쓰어진 시> 등 그의 대표작들을 바로 이 시기에 썼다. 그런 인연으로 종로구는 2012년, 이 곳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하여 윤동주 문학관을 만들었다. 가압장이란 느려지는 물살에 압력을 더해 더 힘차게 흘러가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폐물이 걸작이 되었다. 쓸모없는 콘크리트 물탱크를 되살려서 시들어가는 영혼을 일으키는 가압장으로 살려 준 것이다. 닫힌 물탱크 속에서 만나게 되는 윤동주의 민족애와 예술혼은 현세에 찌달리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슴 진한 감동을 줄 것이다.

 

 

 

 

 

 

 

윤동주시인의 언덕에서의 시비 - 서시

 

 

이야기 셋 - 인왕(仁王), 금강역사(金剛力士)

좌우의 조각상을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조형미라 해도 과언이 아닌 석굴암의 금강역사상이다. 금강역사(金剛力士)란 석가모니불의 수호신으로 인왕(仁王)으로 불린다.

인왕산(338m)은 본시 서산(西山)으로 불렸지만, 세종의 내불당(內佛堂)과 인왕사와 금강굴이 있어 인왕산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산 전체에 화강암으로 된 암반이 노출되어 있으며, ‘선(禪)바위’와 같은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곳곳에 솟아 있어 조선시대부터 명산으로 알려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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