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정조대왕과 함께 사도세자ㅡ융릉에 제향하고 왔다. 지난 달 '길 위의 인문학 - 조선왕릉 융건릉 탐방기'의 글을 썼다. 그때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바로 왕릉의 제향 모습이었다. 오늘 마침,  "화성! 정조의 효가 꽃 피다." [2015 정조 효 문화제]에서 정조대왕의 융릉 제향이 재현된다기에 찾아 나섰다. 

[참조 >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 사도세자와 정조의 뜰(융건릉) 탐방 글 pdf파일 다운받아 보셔요.)

http://munchon.tistory.com/614 > 조선왕릉 이해

http://munchon.tistory.com/615 > 융건릉

 

굳이 '내가 정조대왕과 함께 융릉에 제향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자유롭게 가까이에서 전 과정을 살펴보았으며,

예필 후의 그 중요한 음복례를 정조대왕은 못 했지만 나는 했기 때문이다.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이 주신 복일거다.
호두 안주에 음복주까지 한잔 마셨더니 왕가의 기운을 받은 셈이다. 감사한 일이다.

[내가 미리 알고 있던 제향의식에서의 절차와 헌관인 왕(王 : 정조)의 동선과 제주(祭主)인 선왕(先王 : 사도세자)의 동선에서 다소 차이를 보인다. 먼저, 2007 문화재청에서 소개된 동선도를 참고한다. 동선도를 보면, 왕은 일주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옆으로 들어와 배위에 선다.

그리고 축함을 든 향관은 신도를 걷고 임금은 오른쪽 좀 더 낮은 어도를 걷는다. 향관은 운계(구름문양의 난간석이 있는 계단)로 오르고, 임금은 그 오른쪽 어계로 정자각에 오른다. 임금은 정자각 동문으로 정전으로 들어가 제향하고 서문으로 나와 서계로 정자각에서 내려온다. 분축하는 망료위(예감)이 이쪽에 있기 때문이다.]

 

이창환, 신의 정원 조선왕릉, 도서출판 한숲, 2014, p39에서

 

[10월 3일 융릉 제향의 절차] : 위의 동선도와 절차가 좀 다르다.

 1>제관들의 축함이 먼저 들어오고, 이후 풍악을 울리며 어가행렬이 금천교를 지나 홍살문 안으로 들어온다.

 

 

 

2> [전향례] 아들 정조는 홍살문 앞에서 어가에서 내려 배위에 올라 제향드리러 왔음을 아뢴다.

(배위에서 헌관 뿐 아니라 모든 제관들이 4배를 올리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었는데, 생략했는지? 내가 잘못 알고 있는지?) 그리고 축함을 축관에게 건낸다. 축함에는 아버지께 올릴 향과 축문이 들어 있다. 축함을 든 축관은 서쪽의 신도로 걷고, 임금은 동쪽의 낮은 길 어도로 걸어 정자각으로 들어간다.

 

 

 

 

 

 

 

 

 

3> 여러 제관 집사자들이 세수하고 제단인 정자각으로 오른다. 오르는 계단은 동계의 어계이다. 구름모양의 난간석이 있는 계단은 운계(향계, 신계)라 한다. 모든 집사들은 제각기 봉무할 곳에 자리 잡는다.

 

 

 

4> 이후, 면과 탕이 전사관과 능사에 의해 서계를 오른다. 통상 제례의식에서 메와 갱은 따뜻하게 제상에 올려져야 하기 때문에 늦게 제단에 오른다. 메와 갱일지도 모른다. 나중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고...메는 밥이고, 갱은 국이다.

 

 

 

5> [초헌례] 이제 초헌관인 정조대왕이 제단인 정자각을 오를 차례이다. 초헌관은 첫번째 제주를 드리고 배향하는 제례 진행의 주인이다. 정조대왕이 집사자의 안내를 받으며 어계를 오른다. 서향하고 서서 제단에 올릴 술잔에 이작수주-두개의 술잔에 술을 따른다. 왕이 초헌관이 되는 경우를 친향례라 하며, 정승이 초헌관이 될 경우는 섭향례라 한다.

 

6> 수주한 이작은 두고 임금은 집사자의 안내에 따라 제향공간의 동문으로 들어가 북향하고 선다. 북향은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능침 영역이다. 북향의 제단 문은 활짝 열려 있어 어버이의 능이 훤히 보인다. ㅡ 사도세자의 능은 다른 능에 비해 강(사초지의 언덕)이 낮아서 정자각안에서도 능침 봉분이 훤히 보인다. 어버이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했던 아들의 마음이 이런 능상을 조성하였을게다.

여기에서 아들은 향을 사르고 술잔을 올려 어버이를 제단(제상)으로 모시게 된다. 상징적이지만 정자각 바로 뒤에는 능침영역에서 내려와 제향공간인 정자각으로 건너 들어오게 되는 다리가 있다. 이를 신교라 부른다. 정자각 안에는 초대받은 부모와 찾아온 아들이 상면하는 거룩하고 애틋한 공간이다.

 

7>[봉축례] 아들(임금)이작수주한 제주가 들어간다.  이후 초헌관 정조의 제향 속에 축문을 올리는 예식이 있다.

[아헌례-종헌례] 이후 아헌관ㅡ종헌관의 헌주 사배예식이 따른다. 아헌관 - 종헌관은 두번째 세번째로 제향을 올리는 분들이다. 통상 종친에서 드리겠지만, 나라의 높은 분들이 드리기도 한다.

 

 

 

8> 정자각 제단 아래에서도 참여한 모든 종친이나 신하들이 제향의식을 따르게 된다.  

 

 

 

[국궁사배]

 

9> [망료례] 초헌관인 임금은 제단인 정자각 동계로 내려와서 거꾸로 ㄷ자 모양으로 걸으며 정자각 앞을 지나 서쪽에 있는 망료위 앞으로 가서 북향하여 서있는다. 그때, 축관이 제향했던 축문을 들고 서계로 내려와서 서향하며 선다.

(위의 문화재청 동선도에서는 초헌관인 왕은 정자각 위에서 서계로 내려오는 동선을 보이고 있는데....어느 것이 맞는지 좀 더 알아볼 일이다. 또한 예감에까지 가서, 분축-가료(可燎)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에서 축문을 태우는데...형식적으로 태우는 시늉만 하였다. 아쉬웠다. 하늘을 오르는 축문의 향과 재와 연기를 봐야 더 실감나는 건데... 하기사 나는 가까이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지만 저 멀리 시민들에게는 실감이고 뭐고 알지 못할 일이다.

 

 

 

 

 

 

10>축문을 태운 대야그릇(?)을 들고 축관과 집사자가 사초지 안에 있는 예감 안에다 그 물과 재를 붓는다.
하늘과 땅에 올리는 아들의 기도이다. 융릉의 예감은 다른 능의 예감과 달리 능침 공간 안에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도 능침공간 안에 예감이 있다.) 그래서인지 축문을 태우는 대야가 정자각 서계 옆에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여기에서 분축한 후에 사초지 안으로 들어가 예감에다가 분축한 물과 재를 비우는가 보다. (별도 가료 대야 설치 없이 예감까지 들어가서 분축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제사의 예법이 '가가례'라더니, 왕릉의 봉향제도 능능례인가? 농담이다.) 

 

 

11> 아들, 임금은 축관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이제 다시 정자각 앞을 돌아 원래의 동계 앞으로 돌아간다.

 

 

12> 예감 위로 사도세자의 능침 공간이 보인다. 석등, 석마, 무인석, 문인석, 망주석

그리고 곡장, 주인의 잠자리인 봉분이 보인다.

곡장 뒤에 다시 볼록한 언덕을 잉(孕)이라 한다. 아이를 밴 엄마의 볼록한 배꼴 모양이다.

산의 정기가 여기에 모여 마치 태아를 잉태할 자궁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있다.

그 아래가 바로 새로운 삶과 탄생을 위한 명당이다.

나에게는 잉은 잉태를 위한 자궁의 자리이고, 강(岡)은 만삭의 엄마 배꼴 모양으로 보인다. 

그래서 왕릉의 능침 영역은 거룩한 모성의 자리이며 만삭의 엄마 모습이다.

 

 

13> [음복례] 모든 헌관, 제관, 참례자들이 사배로 제향의식이 끝난다. 알자(謁者)는 '예필(禮畢)아룁니다. 예필아룁니다.' 하며 행사가 끝났음을 선언한다. 실은 이후에도 매우 중요한 예식이 남았다.바로 음복례이다.
제향드리고 선조영령이 흠향하고 맛있게 드신 다음에 남겨 주신 제사음식을 나눠 먹어야한다.

음복ㅡ내려주신 '복을 먹는다'는 의미 지만, 같은 음식을 통하여 돌아가신 영령과 살아있는 후손이 하나로 만나고 연결되는 것이다. 또한 모든 후손들이 같은 음식을 먹음으로써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한 울 안에서 한 음식을 먹으니, 우리가 되고 식구가 되는 것이다.
이 중요한 의식에 참여하지 않고 모든 헌관이 시키는대로 돌아서 내려 가버린 것이다.

 

 

 

 

 

14>나는 궁금했다. 제상의 음식배열과 정자각 안에서 흠향하고 다시 능침으로 돌아가시는 사도세자와 혜경궁의 뒷 모습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얼른 정자각 위로 읍을 한 후에 올라 제단 안으로 들어갔다. 복 받았다.

뒷정리 하시는 집사자가 음복잔을 건내 주었다.

아! 정조대왕이 어버이께 올린 제주이지 않은가?!

 비록 술이 약하지만 이 술잔 만큼은 임금의 하사주이니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셨다.

아직도 술기운이 뺨과 콧바람에 남아있다.

(음주운전 하고 돌아왔단 말인가???!!)

 

15> 어버이는 흡족히 흠향하시고 정자각의 뒤로 열린 문(신문)을 나가 신교를 건너 사초지의 볼록한 강(능침영역의 언덕)으로 들어가신다. 사도세자(장조)와 혜경궁 홍씨가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 올라가는 모습은 상상에 맡긴다. 애틋하게 그리워하면 그림이 보인다.

 

 

 

 

16> 다시 왕릉에는 고요함만 남을 것이다. 아니...바람소리, 새소리가 왕릉을 벗 삼을 것이다.

 

 

* 어가 행렬에 참여 봉사한 화성반월고 학생들에게 감사하다. 기특한 아이들이다. 역사와 전통과 문화를 사랑하는 대한국인이 되길 바란다. (아침 8시 반까지 오라고 했단다. 행사는 두시부터 였는데...그리고 네시까지. - 봉사시간 6시간 인정한다고 했다. 남학생들보다 여학생들이 많았다. 바람부는 날, 펄럭이는 어기를 들고 다니느라 고생많았다.)

오늘! 하늘이 열리는 개천절 이었구나.

 

인정샷 ! 팜플렛과 임금님이 내려주신 복된 음식 - 호두 :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아쉬운 점이 많다. 좀 더시민들을 위한 배려, 교육적 의미 부여가 있었으면 했다. 제향의식 순서에 대한 안내지 한장이라도 배포되었으면 했다. 좀 더 욕심 난다면 정자각 안에서 이루어지는 제향의식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도록 영상중계라도 했으면 정말 좋았겠다. 먼 발치에서 무슨 일이 이루어지는지 감감하기만 했을 것이다. 공식 지정 사진사들 조차 정자각 안에 들어가 촬영하지 못하니 (아니, 정자각 위에 조차도 못 올라가니...) 후세에 무엇을 전할 수 있을까? 더욱이 어린아이들에게는 먼 세상 딴 나라 이야기와 다름없이 여기고 행여 지겹고 따분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걱정된다. 단순히 종친이나 문화계 그들만을 위한 재현행사인가? 라는 의문이 남는다. 오늘 제향의식을 참관하러 모이신 모든 시민들에게 음복례로 한조각이나 밤 한 톨, 초코파이 한봉지라도 나누었다면, 백성들과 여민락(與民樂)하고 백성과 임금이 함께 어우러지며 하나되는 대동(大同)사회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재현되었을텐데,,, 아이들이 또 가보고 싶다 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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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영옥 2015.10.04 0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석님, 대단하십니다. 사진촬영 솜씨도 수준급이고 글 또한 영화를 보듯 이해가 잘 되었습니다. 덕분에 좋은 것을 뱌웠습니다.

  2. 문촌수기 2015.10.04 15: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royaltombs-office.cha.go.kr/cha/idx/SubIndex.do?mn=KP

  3. 다늬 2015.10.05 1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같은 장소에서 지켜보았답니다.
    맨 아래 짚어주신 글에 백배 공감하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왜 저 지루한 행사를 위해 학생들을 동원했는지...
    그저 답답한 마음으로 지켜보다가 어가의 행렬이 돌아가는 장면을 찍는 것으로 만족했거든요.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