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1916~1956)은 통영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이중섭 생애에 통영은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곳이고, 이중섭은 통영에서 결코 빠트릴 수 없는 인물이다.
6.25전쟁 중에 일본인 아내와 아들 둘을 데리고 신혼 살림집이었던 원산을 떠나 부산, 제주 서귀포, 통영으로 피난생활을 하였다. 이곳 통영에서는 1953년 전쟁이 끝날 무렵부터 1954년 6월까지 한 해를 살았지만,
그의 ‘황소’ 시리즈 ‘부부’ ‘가족’ ‘달과 까마귀’ ‘도원’같은 대표작들도 모두 통영 시절의 작품이다.
일본에 둔 아내와 두아들을 그리워하며 행복했던 추억을 반추하며 울부짖는 자신의 모습을 황혼에 물든 황소로 그렸다.
이중섭 부부의 진하고 격렬한 사랑을 볼 수 있다. 1952년 7월 경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외로운 시절이었지만, 참 행복했던 시절을 추억하면서 간절한 그리움을 그렸다.
겨울이 지나자 통영 일원 나들이를 즐기며 풍경화 제작에 몰두하여 ‘푸른 언덕’ ‘남망산 오르는 길이 보이는 풍경’ ‘충렬사 풍경’ ‘복사꽃이 핀 마을’ '욕지도 풍경' 등을 남겼다.
<욕지도 풍경> 1953, 종이에 유채, 39.6 27.6cm, 개인소장
통영에서 바닷길로 30킬로 떨어진 곳에 있는 욕지도. "도를 알려거든 석가모니의 도를 보라."에서 유래하였다. 천황산의 깎아지른 해안절벽과 햇살이 눈부시게 반사되는 바다 바윗돌, 맑고 푸른 바다, 꿋꿋하게 자란 나무가 생명력으로 넘쳐나고 있다.
화가의 시점과 일치하지 않지만 동피랑에서 내려본 통영 서호만 새터 풍광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 남망산 오르는 길이다.
학창시절 뵙던 그 모습이시다. 대학 1학년 문학시간, 내가 뭔가를 붙잡고 질문을 했을 때이다. 아마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에 대한 시를 갖고 물고 늘어진 것 같다. 선생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답변하시며 손도 살짝 떨고 계셨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내 나이 쯤이다. 선생님을 힘들게 하나보다 싶어서 토론을 그만 둔 기억이 난다. 그랬던 것처럼, 선생님의 풍모는 그의 꽃과 감성과 같이 여리다.
이중섭(李仲燮) 5 ㅡ김춘수
충무시(忠武市) 동호동(東湖洞)
눈이 내린다.
옛날에 옛날에 하고 아내는 마냥
입술이 젖는다.
키 작은 아내의 넋은
키 작은 사철나무 어깨 위에 내린다.
밤에도 운다.
한려수도(閑麗水道) 남망산(南望山),
소리 내어 아침마다 아내는 가고
충무시(忠武市) 동호동(東湖洞)
눈이 내린다.
<까치가 있는 풍경>, 1953, 41.7×29.1cm, 개인소장.
통영에서 바라본 한려해상의 푸른 물결에 까치는 자유롭다. 바다너머 보이는 섬은 한산도 인듯.
통영 ㅡ 김춘수 유물전시관
그러나 이중섭 생애에 통영은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곳이고, 이중섭은 통영에서 결코 빠트릴 수 없는 인물이다.
6.25전쟁 중에 일본인 아내와 아들 둘을 데리고 신혼 살림집이었던 원산을 떠나 부산, 제주 서귀포, 통영으로 피난생활을 하였다. 이곳 통영에서는 1953년 전쟁이 끝날 무렵부터 1954년 6월까지 한 해를 살았지만,
그의 ‘황소’ 시리즈 ‘부부’ ‘가족’ ‘달과 까마귀’ ‘도원’같은 대표작들도 모두 통영 시절의 작품이다.
통영 첫날, 호텔에 행장을 풀고 저녁나들이 하며, 뚱보할매김밥집에서 충무김밥으로 간소한 만찬을 가졌다.
<황소>,1953-4, 종이에 유채, 32.3 49.5cm, 개인소장
일본에 둔 아내와 두아들을 그리워하며 행복했던 추억을 반추하며 울부짖는 자신의 모습을 황혼에 물든 황소로 그렸다.
<황소>,1953,종이에 유채,35.5×52cm, 서울미술관 소장
<부부>, 1953, 종이에 유채, 40×28cm,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 부부의 진하고 격렬한 사랑을 볼 수 있다. 1952년 7월 경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외로운 시절이었지만, 참 행복했던 시절을 추억하면서 간절한 그리움을 그렸다.
살림살이가 어려워지자 일본인 처를 친정으로 보낸 이중섭은 틈틈이 편지를 보낸다. 두 아들과 아내에 대한 사랑이 절절하여 읽는 이의 눈시울을 적신다. 그의 편지는 가족에 대한 진한 사랑이 그려져 있다.
겨울이 지나자 통영 일원 나들이를 즐기며 풍경화 제작에 몰두하여 ‘푸른 언덕’ ‘남망산 오르는 길이 보이는 풍경’ ‘충렬사 풍경’ ‘복사꽃이 핀 마을’ '욕지도 풍경' 등을 남겼다.
<욕지도 풍경> 1953, 종이에 유채, 39.6 27.6cm, 개인소장
통영에서 바닷길로 30킬로 떨어진 곳에 있는 욕지도. "도를 알려거든 석가모니의 도를 보라."에서 유래하였다. 천황산의 깎아지른 해안절벽과 햇살이 눈부시게 반사되는 바다 바윗돌, 맑고 푸른 바다, 꿋꿋하게 자란 나무가 생명력으로 넘쳐나고 있다.
<선착장을 내려다 본 풍경>, 1953, 종이에 유채. 40.9 × 28.2 cm, 이중섭미술관 소장
짐작컨데, 서포루에서 내려다본 풍경이지 않을까? 왼쪽의 길은 오늘날의 중앙시장 입구인 문화마당이며 강구만 건너 가운데 길 왼쪽 언덕은 초록이 물들고 봄꽃이 화사한 남망산인듯 하다.
화가의 시점과 일치하지 않지만 동피랑에서 내려본 통영 서호만 새터 풍광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길>, 1953, 종이에 유채, 40×27.5cm, 서울미술관 소장
~ 남망산 오르는 길이다.
오늘날 남망산에는 조각공원으로 조성되어있다. 남망산 너머로 이곳 출신인 유치환의 청마문학관이 있다.
남망산 오르는 삼거리 길에 통영출신으로 나의 대학 일학년 시절의 문학 교수였던 김춘수 시인의 '꽃' 시비가 있다.
동피랑 마을을 내려 중앙시장을 지나 오면서 만난 시인 김춘수 선생님의 동상.
학창시절 뵙던 그 모습이시다. 대학 1학년 문학시간, 내가 뭔가를 붙잡고 질문을 했을 때이다. 아마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에 대한 시를 갖고 물고 늘어진 것 같다. 선생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답변하시며 손도 살짝 떨고 계셨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내 나이 쯤이다. 선생님을 힘들게 하나보다 싶어서 토론을 그만 둔 기억이 난다. 그랬던 것처럼, 선생님의 풍모는 그의 꽃과 감성과 같이 여리다.
다음에 통영을 찾게되면, 선생님의 유지, 유물전시관을 찾아 뵈야겠다. 시인은 이중섭을 노래하였다.
이중섭(李仲燮) 5 ㅡ김춘수
충무시(忠武市) 동호동(東湖洞)
눈이 내린다.
옛날에 옛날에 하고 아내는 마냥
입술이 젖는다.
키 작은 아내의 넋은
키 작은 사철나무 어깨 위에 내린다.
밤에도 운다.
한려수도(閑麗水道) 남망산(南望山),
소리 내어 아침마다 아내는 가고
충무시(忠武市) 동호동(東湖洞)
눈이 내린다.
<까치가 있는 풍경>, 1953, 41.7×29.1cm, 개인소장.
통영에서 바라본 한려해상의 푸른 물결에 까치는 자유롭다. 바다너머 보이는 섬은 한산도 인듯.
<충렬사 풍경>,1953-54, 종이에 유채, 41×29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세병관 풍경>, 1954, 종이에 유채, 28.6×17cm, 개인소장
통영과 이중섭의 소 그림
통영 ㅡ 김춘수 유물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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