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찰에 가면 전각의 뒤로 즐겨 돌아간다. 좌우벽과 뒤벽에 그려진 벽화를 보기 위해서이다. 벽화 속에 감동과 깨달음이 있다.
왕릉을 즐겨 찾는다. 조용한 숲속 길을 즐겨 걷는다. 산 이와 죽은 이가 만나는 정자각을 찾아가서도 그 뒤를 꼭 살피려 간다. 능침에 누워있던 혼령이 내려와 정자각으로 들어오기 위해 건너오는 신교를 보기 위해서이다. 아무렇지도 않을 돌판 다리지만 저승에서 이승으로 이어주며 어버이와 자녀를 만나게 해준다는 상상을 하니 가슴 저미는 감동이 일어난다. 

(사진 위 : 화성시에 있는 정조대왕의 건릉, 신교)

특히 장경왕후의 희릉에서 보는 신교의 모습은 더욱 실감난다. 다리가 능침영역인 사초지 속으로도 이어져 있다. 왕후의 신령이 아들 딸을 만나고자 정자각으로 내려오면서 사초지에서부터 신교를 밟고 왔다가 다시 돌아가면서 사초지 속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하기에 아주 자연스런 모습이다.
장경왕후는 중종의 계비로서, 인종의 생모이다. 1507년 7일의 왕비인 단경왕후가 폐위되자 반정공신의 딸로서 정비에 책봉되었다. 당시 조정은 외숙부인 박원종이 장악하였는데 중전이 되는데에는 외숙부 박원종의 도움이 컸다. 월산대군의 처조카라는 신분이 장점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1515년 적통 대군인 원자(인종)을 낳고 산후병(產後病)으로 엿새 만에 25세의 나이로 승하하고 말았다. 죽어서도 중종과 함께 묻히지 못하였으며, 중종(서울 강남 선릉)도 혼자서 묻혀있다.   
(사진 위 : 고양 서삼릉, 희릉-장경왕후 릉의 신교)

왕릉에서 다리는 이것 말고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너게 되는 금천교도 있다. 성역으로 들어가며 속진을 씻어내는 상징성을 갖는다.


화성 - 정조대왕 건릉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금천교

(화성 - 사도세자 융릉으로 들어가는 금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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