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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7

어린이로 살아가기. 어릴 때는 어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춥고 배고팠기 때문이다. 커서 어른이 되면 돈을 벌거고, 그러면 배고프지도 춥지도 않을거라 여겼다. 이제 어른이 되니 어린이가 되고 싶다. 돈이 있으니 이제 춥거나 배고프지는 않다. 그렇지만 늘 어깨가 무겁다. 내일을 걱정하며 내 일을 어깨에 달고 산다. 걱정없이 '지금'을 살아가는 어린 아이가 부럽다. 그 아이들에게는 '내일은 없다.' 어릴 때는 동화책을 읽지 않았다. 읽을 책도 없었고, 읽을 시간도 없었다. 이제 어른이 되어 동화책을 찾아 읽는다. 시간은 없지만 억지로 짬을 만들어낸다. 어른으로 할 일을 일단 내일로 미룬다. 눈물도 흘리고 웃기도 한다. 어린이로 돌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엄마놀이'를 즐기는 아내 덕분에 나도 점점 어린이가 된다. '새 엄마.. 2018. 8. 10.
도처에서 추사를 기념하다. 예산의 추사기념관, 제주 추사관, 과천의 추사박물관에서 얻은 자료를 정리해본다. 추후, 서울 봉은사, 중앙박물관, 영남대 박물관, 영천 은해사, 예산 수덕사, 해남 대흥사를 다시 찾을 것이다. 1. 예산 추사기념관에서 예산 추사기념관 오른편의 추사묘와 추사고택 2.제주 추사관에서 제주 추사관 뒤의 추사유배지 3. 과천 추사박물관에서 마천십연 조각 해설사는 겨울 눈내린 다음날, 눈을 이고 있는 '불이선란도' 병풍석벽을 구경오라고 권한다. 추사박물관 앞 과지초당 2018. 8. 8.
운(韻)의 맛이 즐겁다. 소네트에서 꼬리를 물다가 운(韻)을 잡았다. 운을 음미하며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면 그 맛과 즐거움이 배가된다. 소네트? [이하 스크랩] 소네트(Sonnet)는 유럽의 정형시의 한 가지이다. 단어 자체의 의미는 '작은 노래'라는 뜻으로, Occitan(남부 프랑스어 방언)의 단어 sonet 와 이탈리아어 sonetto 에서 유래했다. 13세기경까지 엄격한 형태와 특정 구조를 갖춘 14줄로 구성된 시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소네트와 관련된 형식적 규율들은 시대에 따라 진화했다. 소네트는 엄격히 각운이 맞추어지는 형식이며, 르네상스 시기에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졌으나, 잉글랜드로 전해져, 영국 시를 대표하는 시 형식의 한 가지가 되었다. 가장 잘 알려진 소네트 작가는 셰익스피어(Shakespeare)로, 154.. 2018. 8. 8.
추사의 불이선란도와 소네트(sonnet) 예술의 전당 가는 길. 비발디의 '가을'을 들으면서 과천의 추사박물관과 과지초당(瓜之艸堂)을 찾았다.추사박물관에서 특별히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가 눈에 들어왔고 그림 속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스크랩ㆍ편집 추사는 난초를 그리고 연유를 발문(跋文)하였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자 빈칸을 찾아 작은 글씨로 채웠다. 그렇게 네 개의 발문으로 그림이 완성되었다. 첫 발문은 상단 왼쪽에서부터 ‘부작란화 이십년(不作蘭畵二十年)'으로 시작하며 오른쪽으로 채우고 '만향쓰다'로 끝나고, '추사'로 인장하였다. "난초 그리지 않은 지 20년, 우연히 그렸더니 하늘의 본성이 드러났네/ 문 닫고 찾으며 또 찾은 곳/ 이것이 유마의 불이선일세/ 만약 누군가 억지로 (그림) 설명을 요구한다면, 마땅히 유마거사의 '말 없.. 2018. 8. 7.
추사를 찾아ㅡ추사고택 추사고택 추사고택 완쪽에는 추사의 출생 설화가 전해지는 우물이 있다. 추사가 태어나기 전에 비가오지 않아 산천초목이 시들고 우물이 말랐다. 추사가 이십개월 만에 태어나자 비가 오기 시작하여 초목이 살아나고 샘이 쏟아 우물을 채웠다한다. 추사묘 탁본체험실 2018. 8. 5.
추사고택ㅡ증조부모 김한신과 화순옹주 묘 추사고택을 찾아들어가다 초입에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묘가 있다. 추사의 증조부모이다. 화순옹주는 영조의 딸이며 증조부 김한신은 영조의 사위다. 그러고보면 봉사손 김정희는 조선왕실의 외손인 셈이다. 증조부모님은 같은 해에 태어나 서른 여덟 같은 해에 돌아가셨다. 조선 왕실에 이렇게 애절한 사랑이 또 있을까? 조선왕조 실록에 기록되어있다. 조선왕조실록ᆞ영조실록 91권, 영조 34년 1월 17일 갑진 1번째기사 1758년 청 건륭(乾隆) 23년 국역ㅡ 화순 옹주가 졸(卒)하였다. 옹주는 바로 임금의 첫째 딸인데 효장 세자(孝章世子)의 동복 누이동생[同母妹]이다.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에게 시집가서 비로소 궐문을 나갔는데, 심히 부도(婦道)를 가졌고 정숙(貞淑)하고 유순함을 겸비(兼備)하였다. 평소에.. 2018. 8. 5.
추사를 찾아서, 예산 백송 추사의 삶을 찾아 가다. 추사고택~추사의 탄생지ᆞ추사의 묘 충청도 예산 예산백송(고조부묘)ᆞ백송공원ᆞ화순옹주 정려문ᆞ김한신과 화순옹주(증조부모묘)ᆞ추사고택ᆞ우물ᆞ탁본체험관ᆞ추사기념관ᆞ화암사 예산 용궁리 백송 추사가 25세때 청나라 연행때 가져왔다는 백송의 그의 고조부 김흥경의 묘 앞에 심었다. 백송공원 추사의 글씨 기념조각공원 명선 정좌처다반향초ᆞ묘용시수류화개 2018. 8. 4.
춘풍추수ᆞ春風秋水 화암사 요사채 누각에 걸린 '추수루'를 보니, 추사의 '춘풍ᆞ추수' 대련이 그려진다. 춘풍대아능용물 春風大雅能容物 추수문장불염진 秋水文章不染塵 "봄 바람의 대아는(큰 부드러움은) 만물을 다 받아들일 수 있고, 가을 물의 문장은(물 무늬는) 티끌 먼지가 더럽힐 수 없다." 이 글씨는 추사(秋史)가 만년에 서울 봉은사에 머물 때 휘호(揮毫)하였다. 이 구절은 중국 북송시대를 대표하는 유학자 정명도(程明道)·정이천(程伊川) 형제의 인품과 학덕을 칭송하는 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정명도에 대해 春風大雅能容物이라고 했고, 정이천에 대해서는 秋水文章不染塵이라 했다는 것이다. 따뜻한 봄 바람에 나근하게 졸던 뭇 생명들이 크게 기지개켜며 싹을 돋우고, 명징한 가을에 찬 물 한사발 들이키면 시름이 다 달아나듯 속 시원.. 2018. 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