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시에는 특별한 유적지가 있다.
오산화성궐리사(烏山華城 闕里祠).
절이 아니라 사당이다. 불교의 예배당이 아니라 유교의 예배당이다. 그것도 유교의 교조인 공자의 사당이다. 또한 이곳에는 국내 유일의 2층 누각의 행단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2곳에 공자의 사당인 궐리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오산시의 화성 궐리사이며, 또 하나는 논산시의 노성궐리사이다.
궐리사 ㅡ 민족문화백과사전에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식 맞배지붕의 건물. 경기도 기념물 제147호. 공서린(孔瑞麟)의 사당이다. 이 곳은 원래 조선 중종 때의 문신으로 경기도관찰사 등을 지낸 공서린이 서재를 세우고 후학들에게 강의를 하였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당시 뜰안 은행나무에 북을 달아놓고 문하 제자들에게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깨우치며 교수하였는데, 그가 죽은 뒤 그 나무가 자연 고사하였다고 한다. 그 뒤 정조가 화산(花山)에서 남쪽 멀리 바라보니 많은 새들이 슬피 울며 모여들므로 괴이하게 여겨 그곳에 행차해 보니, 죽었던 늙은 은행나무에 싹이 트고 있었다.
그리하여 1792년(정조 16) 이 곳에 사당을 짓게 하고, 이곳의 지명을 궐리로 고치게 하였으며, 공자의 영정을 봉안하게 하고 ‘闕里祠’라는 사액을 내렸다. 궐리는 노나라의 곡부(曲阜)에 공자가 살던 곳을 본떠 지은 이름이다.
현재 솟을삼문 주위로 사고석담[四塊石墻 : 돌담]이 둘러 있고, 사당이 있으며, 입구에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삼문에는 ‘聖廟(성묘)’라는 현판이 있다. 이 곳에는 1904년에 제작된 「궐리사성적도 闕里祠聖蹟圖」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2호로 지정, 보관되어 있으며, 지방의 유림들이 해마다 봄·가을에 엄격한 제례로 제향을 드리고 있다.
공자성상
 이 성상은 1993년 7월에 중국 산동성 곡부현에서 기증하였다 한다.

공자상 좌우에 자사자, 안자, 맹자 증자상이 있다.

궐리사 외삼문

외삼문을 들어가..

내삼문은 바라보며..

왼쪽에 은행나무가 있다. 행단의 상징수이다.

오른쪽에는 행단이 보인다.

내삼문

내삼문에 들어가면 사당, 聖廟가 있다.

성묘 안, 공자 위패

공자상 왼편에 안자상ᆞ자사자상

공자상 오른편의 아성, 맹자상.

증자상 뒷모습

자사자상 뒷모습

성묘와 향나무

공자상 좌대 사면에는 공자생애가 부조되어있다.

공자성상전 내삼문을 내려나오면서 오른편에 '공부자문화전시관'이 있다.

행단ㅡ공자는 은행나무 아래에 단을 세우고 제자를 가르쳤다. 이후 모든 행단은 공자의 학당을 가리킨다.

공자가 거문고를 켜며 제자들과 가르치는 <행단예악>도를 보면, 뒤의 나무는 살구나무 같이 보인다. 행단의 杏은 살구나무 杏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공자의 행단은 과연, 은행나무인가?
참고로 중국 곡부의 공묘(孔廟) 안에 있는 행단(杏壇)에는 살구나무가 심어져있다.
참고>행단의 나무는 은행나무일까 살구나무일까?ᆞᆞᆞᆞ
조선 후기 정약용(1762~1836)도 이 문제를 제기했다. 다산은 <아언각비>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잘 못 알아 공자의 사당 뒤에 은행나무를 심어 행단(杏壇)을 상징하게 되었다.’ 고 하여 은행나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혔다고 한다.
그런데 왜 살구나무일까?
행단의 그림은 궐리사 소장 성적도 일부이다.
궐리사에 소장된 공자의 성적도(聖蹟圖)
는 목판의 새김이 비교적 섬세한 편이며,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공자의 성적도이므로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

궐리사 행단을 지나 뒤로 돌아가면 궐리사 인성학당이 있다.

氣高太山 平生淸高
문헌공 공서린 생가터에 선 인성학당

이곳에서 우리는 위대한 사상가, 공자만 읽을 것이 아니라,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롭고 잘사는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던 개혁군주 정조의 교육입국 이상을 읽어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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