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남산을 목멱산(木覓山)이라 불렀단다. "왜 목멱산이라 했을까?" 특히나 '찾을, 멱(覓)'이 낯설다.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는 들었어도 나무를 찾는다, 나무가 찾는다는 말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궁금하다. 왜 쉬운 남산을 두고 어렵게 목멱산이라 불렀을까? 그 어원과 출처가 궁금해서 찾아 보았다.
'백악(白岳)을 진국백(鎭國伯)으로 삼고, 남산(南山)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삼아 남산 정상에 국사당에 모셨기에 목멱산이라 한다'는 글을 읽었다. 그 답에 말꼬리를 또 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깐 왜, 목멱대왕이라 불렀냐고요?"
그렇게 꼬리를 물다보니 드디어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이제야 조금은 의문이 풀렸다. '마뫼'에서 목멱이 왔던 것이다. 순우리말로 남쪽을 '마'라고 부른다. 그래서 남풍을 마파람이라한다. '마'는 '마주보다'는 뜻이다. 남면하여 집을 짓고 사니 북쪽은 등지고 남쪽은 마주보며 산다.
'뫼'는 산의 우리말이다. 그러니 '마뫼'는 남산, 마주보는 산, 앞산이 되는 것이다. 그 '마뫼'를 이두문자로 써서 '목멱(木覓)'이라 했단다. 그 뜻은 그냥 남산이다. 이렇게 '남산 > 마뫼 > 목멱' 이라는 연결고리가 완성된다.
(* 이두> 한자 원래의 의미를 버리고 음과 새김의 발음만을 차용하여 표음문자인 우리말을 기록하는 방식이 있었다.
설총이 창작했다고 하는데, 개인이 창작했다기보다는 그때까지 발달해 온 차자표기법을 설총이 정리하여 경서를 우리말로 주해하고 새겼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남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8개로 읊은
남산팔영(南山八詠)이 있다. 여말선초의 문인, 정이오(鄭以五)가 썼다.
운횡북궐(雲橫北闕)
: 구름은 경복궁을 가로 지르고
수창남강(水漲南江)
: 남쪽 한강수는 넘쳐흐르고
암저유화(岩底幽花)
: 바위 아래 그윽한 꽃은 피고
영상장송(嶺上長松)
: 고갯마루에는 큰 소나무
삼춘답청(三春踏靑)
: 봄 세 달에 야외 나들이
구일등고(九日登高)
: 중양절에 높은 곳 오르고
척헌관등(陟巘觀燈)
: 언덕에 올라 연등 구경하고
연계탁영(沿溪濯纓)
: 계곡에서 갓끈 빨고
이를 제목으로 8편의 시(詩)를 읊었다. 나도 언제 한 번, 목멱팔영을 읊어 보리라 기대해본다.
마침 지난 9월 말경, 경북 현직의 선생님 몇 분과 남산을 다녀왔다.
<목멱산에서 읽는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거창한 제목은 내걸지 않았지만 '망사망국(忘史亡國)'의 뜻을 강조하였다. 다녀와 내 나름의 가을 남산 '목멱상풍 십경'을 정해봤다.
<木覓賞楓 十景>
하나, 한성결초(漢城結草)
회현동의 남산공원 입구에서 백범광장으로 올라가는 진입로에는 새로 복원된 한양도성 성벽이 있다. 그 진입로 좌우에는 가을의 전령과 같은 수크령은 나그네를 반기고 있다. 결초보은(結草報恩) 고사의 주인공이 되는 풀이다. 눈 앞에 펼쳐진 옛 이야기, 도성의 성벽 그리고 남산타워의 전망은 나들이의 기대를 부풀게 한다.
둘, 안의사관(安義士館) ~ 백범광장을 지나 바로 만나는 안중근의사의 유묵비림과 안중근의사기념관, 동상이 있는 광장을 만난다.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고 옥중에서 쓰신 유묵은 그의 삶을 그대로 대변한다. 그 글씨가 돌에 새겨져 영원히 변치 않은 기개를 후손들에게 전하고 있다. 그 유묵 글씨들을 읽으며 비림을 걷다보면 그의 의거에 절로 고개 숙여진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은 밖에서보면 정면4칸 측면3칸의 12개의 큐브모양이 서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의 3층 건물이다. 이는 12명의 동의단지회(同意斷指會)를 상징하고 있다. 잠두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셋. 잠두관서(蠶頭觀西)~ 잠두봉 전망대에서 서쪽을 내려다 보는 풍경. 아래로는 남산공원의 백범광장과 안중근 의사기념관, 저 멀리로 인천의 계양산, 오른쪽에는 무악산과 인왕산이 보인다. 인왕산 능선을 따라 도성의 성벽이 사직동으로 흘러내린다.
넷, 백악북궐(白岳北궐) ~ 목멱산 정상 서울의 중심점에서 북쪽으로 서울을 바라본다. 가을하늘 아래로 높은 산들이 병풍같이 펼쳐져 있고 그 아래로 백악산 아래의 경복궁ㆍ청와대ㆍ창덕궁ㆍ종묘가 보인다. 서울의 빌딩 사이로 녹지를 찾으면 눈에 보인다.
왼쪽에서부터 인왕산 - 북한산 비봉 - 백악산 - 북한산 보현봉 - 삼각산(백운대,인수봉,만경대) - 도봉산 -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수락산 - 불암산이 뒤에 있고, 오른쪽 가까이로는 낙산에 앉은 이화마을이 보인다. 높은 두산타워를 찾으면 쉽게 확인이 된다.
다섯, 수창한강(水漲漢江) ~ 서울N타워에서 남쪽을 내려본다. 저 멀리 한양의 외사산인 관악산이 조배(朝拜)하듯 한양을 수호하고 있다. 가운데로 빛나는 한강이 넘실거리며 동서를 가로질러 흐르고, 왼편에서부터 롯데월드타워, 남산의 동봉, 가운데에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전쟁기념관이 있는 푸른 공원 등이 환히 보인다. 운이 좋아 날이 무척 맑다.
여섯, 남산타워(南山大廈) ~ 국제적인 관광도시가 된 서울의 랜드마크는 아직까지 남산의 N서울타워이다. 타워가 있는 남산 정상에 세계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을 볼 수 있다. 연인들이 사랑을 약속하는 열쇠를 걸어놓고 영원을 기약한 모습도 볼거리다. 이 무거운 것들을 머리에 이고 있는 남산을 괜히 걱정한다. 이 열쇠들을 녹여 '사랑과 종'을 만들어 남산에 올려다 놓으면 남산의 풍광과 의미가 더 가치로울 것 같겠다. 실없는 상상인가? 하하하.
일곱. 목멱계천(木覓溪川), 북측순환로의 실개천 ~ 연계탁영(沿溪濯纓)했다는 계곡물이 어딨던가 했더니, 북측 순환로 좌우를 흐르는 실개천이 있었다. 이 길을 따라 물소리를 들으며 목멱산방에서 비빔밥을 먹고, 와룡묘와 옛 통감관저터를 찾아보는 것도 의미있다.
여덟. 성저유화 (城底幽花) ~ 남산의 한양도성 성벽은 태조 때에 조성된 산성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남산서울타워버스정류장에서 국립극장 쪽으로 내려오는 한양도성 순성길은 숲 속의 위안이 된다. 자동차가 다니는 남측순환로와 도보의 나무계단길이 만나는 즈음의 성벽아래에 솔숲아래 풀섶위로 고개를 든 붉은 꽃무릇은 육백년 전 도성을 쌓기위해 차출되어 온 지방 백성들의 피땀 같기도 하고 웃음꽃 같기도 하다.
아홉, 한양도성(漢陽都城)과 각자성석(刻字城石)
~ 한양도성을 축성하며 남산 방면은 경상도 사람들이 차출되어 쌓았다한다. 발걸음 옮기며 군데 군데서 글자가 새겨진 성돌을 보는 것은 조선시대 사람과 교감하게 되는 별미가 된다. 각자성석은 일종의 공사실명제와 같은 성격으로, 성벽이 무너지면 이 지역의 사람들을 다시 불러 책임을 묻고 다시 쌓게 했단다.
열, 장충단원(奬忠壇園)
~ 남산을 다 내려와 다산동 성벽을 돌아 장충체육관, 신라호텔 입구로 내려오면 장충단 공원을 만난다.
이곳에는 사연 많은 수표교도 있고,
을미사변, 장충단, 이등박문, 박문사..등 아픈 역사도 많다. 이야기하자면 길다. 오늘은 그냥 아름답게만 보고 쉬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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