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거실 성모상 옆에는 그림 두장이 액자에 놓여있다. 장욱진의 <가족>와 <가로수>그림이다. 함께 간 아내가 특별히 맘에 들어 기념으로 싼 값으로 구입해왔다. 가격은 싸지만 감동은 볼 때마다 변함없이 이어진다.
지난 10월, 덕수궁에서 장욱진의 회고전을 보고와서 장욱진 화백에 관한 글을 읽었다. 다시 그의 천진난만하고 따뜻한 그림들이 보고 싶어진다. 화보책이라도 사들고 올 걸 그랬다. 다시 덕수궁으로 갈까보다.
아래> 최순우의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책(학고재) 중에서 장욱진의 아내에 관해 쓴 글의 일부
ㅡㅡㅡㅡㅡ
몇 해 전 가을 동아일보에 예술가의 아내로서 취재된 그 부인의 말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금 장 화백은 정말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과 부럽구나 하는 생각을 번갈아 했었다. 부인의 말 중에는이러한 구절이 있었다.
“장 선생은 도와드릴 건 아무것도 없어요. 혼자 하시고 싶어 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둔 것뿐이에요. 그분이 남이 안 하거나 못 하는일을 멋대로 하실 수 있도록 바라볼 뿐이에요. 무엇보다 괴로울 때는 그분이 작품이 안 되고 내부의 갈등이 심해지면 스무 날이고 꼬박 술만 드실 때입니다. 그때는 소금조차도 한번 안 찍어 잡수시지요. 술로 생사의기로에서 헤맬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숫돌에 몸을 가는 것 같은소모, 그 후에는 다시 캔버스에 밤낮없이 몰두하시지요. 옆에서 보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렇게 뼈를 깎고 살을 저며내는 시련 속에서 장욱진은 투철하게 그의 예술과 인생을 가늠해온 것을 나 자신도 늘 먼발치로 바라보고는 했다. 찾아가보고 싶을 때가 있어도 참아야 할 때가 있었고, 아는 체를 안해야 된다고 판단했을 때는 짐짓 무관심한 척하기도 했다. 부인이나 따님들이 장 화백을 아끼는 간절한 소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는 장욱진이 지금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었고 마음이 느긋할 수도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또 사람이 사람을 진정 아낀다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가를 나는 장 화백 부인에게서 지금도 절절하게 교시받고 있다고, 혼자 맘 속으로 다시금 뇌까려보고 있다.
ㆍㆍㆍㆍ
하고많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유달리 나에게 감명을 준 작품은 소박한 보살상으로 표현된 <진진묘眞眞妙>와 옹기종기 그의 한 가족이 모여 선 <가족> 그리고 벼가 누렇게 익은 들길 위에 그 독특한 팔자걸음으로 휘청거리며 나선 <자화상自畵像> 등이다.
그 부인의 얼굴을 어진 보살부처님으로 본 그 착하고도 올바른 마음의 눈 그리고 굽이굽이 먼 들길에 나선 스스로의 메마른 모습에 대한 되새김에서 나는 오히려 홀로 희희낙락하는 소신의 작가 장욱진의 독왕고예(獨往孤詣)하는 참모습을 보는 듯싶기 때문이다.
~1979.9/[분명한 신심과 맑은 시심, 장욱진], 화집 장욱진 에서 발췌.
* 진진묘(眞眞妙). '부처의 참된 이치를 재현하는 사람'으로 장욱진 화백의 아내, 이순경씨의 불교 법명이다. 장욱진은 '참으로 놀랍고 아름답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1920년 역사학자 이병도의 장녀로 태어난 그는 1941년 일본 도쿄 제국미술학교에서 유학 중이던 장욱진과 만나 결혼했다. 2022년 8월 102세 나이로 별세했다.
이어서 읽기>
화가와 보살 - https://sansaro.tistory.com/m/99
'음악과 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BPO 브람스와 생상스 (1) | 2023.11.11 |
---|---|
화가 장욱진과 藝술 (1) | 2023.11.08 |
마지막 낭만주의자, 라흐마니노프 (0) | 2023.10.25 |
가족사랑, 장욱진 그림 (0) | 2023.10.24 |
나날이 좋은 날, 일일시호일 (1) | 2023.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