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길을 나서서 왔기에 호젓하게 길상사 경내를 산책할 수 있었다. 푸른 나뭇잎들에게 포근히 안기고 산새소리와 시원한 그늘, 개울에 흐르는 물소리에 온전히 젖어서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늘 그러했듯이 성모마리아를 닮은 보살님께 인사드리고 칠층 석탑을 돌아, 송월각 앞을 지나 길상선원으로 조용히 올라갔다. 항상 닫혀있는 송월각의 아치문은 오늘도 이방인의 가슴을 설래게 한다.
진영각에서 법정스님을 뵙고, 눈 마주 앉아 생각을 잊었다. 길상화 사당을 찾아 내려가는 길 벤치에 앉아서 적묵당을 올려다보며 이 고요와 한적함에 감사했다. 고개를 돌려 계곡에 앉아 있는 관세음보살 반가사유상을 바라보며 글을 읽었다.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나니
오직 분별하는 것을 꺼릴 뿐이라.
사랑하고 미워하지 않으면
툭트여 명백하리라.
至道無難이요 唯嫌揀擇이니
但莫愛憎하면 洞然明白이라.
(지도무난 유혐간택,
단막애증 통연명백)
물확 위 돌에 걸터앉아 물 떨어지는 소리, 극락전 지장전의 목탁과 염불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때마침 點心 공양시간이라 오랫만에, 아니 길상사에서는 처음으로 절밥을 얻어 먹었다.
'不作不食이라 했는데,
내가 밥값을 제대로 했는가?' 돌아본다. 오관게를 읊으면서 밥값으로 치룬다.
오관게(五觀偈)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에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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