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전형필. 그의 문화보국에 무한 감사하다. 나라는 빼앗겨도 우리의 문화재를 지켜내고 되찾았다가 광복한 조국과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전해주었다. 간송의 문화재를 수장해온 성북동의 간송미술관 재개관전 '보화각 1938'을 찾았다.
간송이라는 호를 지어준 사람은 오세창이다. 간송은 산골물 ‘澗’자와 소나무 ‘松’자로 한겨울에도 얼지 않고 흐르는 물과 그곳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나무란 뜻이다. 아마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뜻으로 지어준 까닭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박물관인 보화각(葆華閣)의 이름도 오세창이 지어줬다. '빛나는 보배를 모아두는 집'이란 뜻이다.
■간송미술관 재개관전 안내문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1962) 선생의 고미술품에 관한 관심은 1928년으로 거술러 올라갑니다. 당시 23세의 나이로 일본 와세다 대학 학부에 재학 중이던 그는 휘문고보 시절 지도교사였던 고회동(高義東,1886-1965)의 소개로 65세의 오세창(吳世昌,1864-1953) 만나게 됩니다. 당대 저명한 서예가이자 탁월한 서화 감식안을 지닌 오세창의 문하에 드나들면서 한국 미술에 대한 지식과 고미슬품 감식안을 키워나가던 전형필은 25세가 되던 1930년부터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을 수호하고 보존하려는 뜻을 품고 고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간송이 수집한 다양한 석물石物들은 북단장 전역에 안치되었고 여러 고서와 서화 유물들은 보화장에 수장되었습니다.
2중 건신실에서는 1930년대 간송이 문화보국(文化保圆)의 정신 아래 수집했던 서화작& 생번하여 진열했습니다., 1936년부터 1938년까지 간송이 직접 쓴 <일기대장日記臺帳> 등 어러 자료 수 기록으로만 남아있던 미공개 간송 컬렉선이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입니다. 하나하나 마주하시면서 작품에 서려 있는 간송의 문화보국에 대한 높은 뜻과 깊은 마음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ㅡKBS 영상
https://youtu.be/_5qBSu9YqvA?si=eD4lhsHFng7sbxPB
ㅡ한겨레 신문
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1141051.html#cb
더읽기> 간송미술관 재개관
ㅡ중앙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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