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 (6) 심우도 이야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있다'는 로고의 TV선전을 보았습니다. 세상사 마음대로만 된다면 정말 살 맛나는 세상일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마음이란 놈은 대체 어디에 있고 어떤 놈인지 찾아봅니다.
산에 가면 절이 있고 절에 가면 부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절은 산의 마음이고 산은 절의 뜰이다.' 라고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만을 뵈러 절에 가진 않습니다. 저는 절에 가면 법당의 좌우후면을 돌아 벽화를 보는 재미도 갖고 절에 갑니다. 벽화 속에서 부처를 만나고 화상을 만나고 고승들을 만납니다. 불교 벽화는 매우 다양하지만 그 중 많은 사찰이 심우도의 벽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마음이야기하면서 빠트릴 수 없는 이야기가 심우도 이야기입니다.
'심우도(尋牛圖)' 는 선(禪)의 수행 단계를 소와 동자에 비유하여 도해한 그림으로서, 자기의 참마음을 찾고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렸습니다. 10단계로 나누어 그렸다하여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합니다. 중국 송나라 때 만들어진 보명(普明)의 심우도와 확암(廓庵)의 심우도가 우리나라에 전해지는데, 대부분 확암의 심우도가 많습니다. 올 봄에 제가 한국사상의 순례를 나서면서 찾아간 의성의 고운사에 있었고 포항의 오어사에도 심우도가 그려져 있었고 대승선종 승보종찰인 송광사의 승보전에도 심우도 벽화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심우도는 어린 동자가 고삐를 들고 잃어 버린 소를 찾아서 숲으로 들어가는 그림부터 시작합니다. 숲에서 소의 발자국을 찾아 따라가다 소를 발견하게 되고 소를 붙잡아 고삐를 매게 됩니다. 소는 길들여지지 않아 거칩니다. 이제 동자는 이 거친 소를 길들이게 됩니다. 그림에는 거친 소를 까만 색으로 나타내고 길들여져가는 소는 하얀 색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제 완전히 길들여진 하얀 소를 타고 동자는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소에 대한 생각은 잊고 자기만을 생각하며 나아가서는 소도 자기존재도 잊게 되는 상태가 됩니다. 이제 주관도 객관도 없는 텅빈 세계에 모든 세상이 있는 그대로 비쳐지는 상태를 얻게 됩니다. 그 사이 동자는 많이 자랐습니다. 이제 보살이 되어 중생들의 저자거리로 들어가 중생들을 제도합니다. 이상의 10단계 그림을 송광사 승보전 벽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다시 설명해봅니다.
첫째 그림은 소를 찾아나서는 '尋牛(심우)'입니다.
심우(尋牛)는 소를 찾는 동자가 망과 고삐를 들고 산 속을 헤매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이것은 처음 수행을 하려고 발심(發心)한 수행자가 아직은 선(禪)이 무엇인지 참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찾겠다는 열의로 공부에 임하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바로 자기를 찾는 결심의 단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 그림은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見跡(견적)'입니다.
견적(見跡)은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것'을 묘사한 것으로서, 참마음과 자기를 찾으려는 일념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다가 보면 본성의 자취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는 것을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는 것으로 상징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셋째 그림은 소를 발견한 '見牛(견우)'입니다.
견우(見牛)는 동자가 멀리 있는 소를 발견한 것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이는 오랜 노력과 공부 끝에 자기를 찾고 본성을 깨달음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넷째 그림은 소를 잡은 '得牛(득우)'입니다.
득우(得牛)는 동자가 소를 붙잡아서 막 고삐를 낀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이 경지를 선종(禪宗)에서는 견성(見性)이라고 하는데, 마치 땅 속에서 아직 제련(製鍊)되지 않는 금광석을 막 찾아낸 것과 상태라고 합니다. 이때의 소의 모습은 검은색으로 표현하는데, 아직 탐진치 삼독(三毒)에 물들어 있는 거친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에서 검게 표현합니다. 아직 삼독에 물들어서 거칠고 일순간의 탐욕을 다스릴 길이 없습니다. 더욱 정진하고 공부에 힘써야 하는 상태입니다.
다섯째 그림은 '牧牛(목우)'입니다.
목우(牧牛)는 거친 소를 길들이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이 때의 소의 모습은 검은 색에서 흰색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삼독의 때를 지우고 자신을 다스려 자기 마음을 유순하게 길들이는 단계입니다. 선(禪)에서는 이 목우의 단계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보조국사 지눌스님은 자신의 호를 목우자(牧牛子)라 하였답니다. 깨달음이란 외부의 경(境)에 의해서 오직 자신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므로 소의 고삐를 더욱 단단히 잡아서 늦추지 말고 머뭇거리는 생각이 싹트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섯째 그림은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騎牛歸家(기우귀가)'입니다.
기우귀가(騎牛歸家)는 동자가 구멍 없는 피리를 불며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때의 소는 완전히 흰색으로서 동자와 일체가 되어서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때 구멍 없는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가히 육안으로 살필 수 없는 본성의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내 마음을 타고 본래의 세계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일곱째 그림은 소는 잊고 자기만 있는 '忘牛存人(망우존인)'입니다.
망우존인(忘牛存人)은 집에 돌아와서는 그동안 애쓰며 찾던 소는 잊어버리고 자기만 남아 있다는 내용입니다. 본래의 자기마음을 찾아 이제 나와 하나가 되었으니 굳이 본성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여덟째 그림은 소도 사람도 모두 잊은 '人牛具忘(인우구망)'입니다.
인우구망(人牛具忘)은 소를 잊은 다음 자기 자신도 잊어버리는 상태를 묘사한 것으로서 텅 빈 원상(圓象)만을 그리게 됩니다. 객관적인 소를 잊었으면 이번에는 주관적인 자신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는 원리를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본성에도 집착하지 않고 나를 모두 비웠으니 자타가 다르지 않고 내외가 다르지 않습니다. 전부가 오직 공(空)입니다.
아홉째 그림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返本還源(반본환원)'입니다.
반본환원(返本還源)은 이제 주객이 텅 빈 원상 속에 자신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침을 묘사합니다. '산은 산이오. 물은 물이라.' 만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참된 지혜를 상징한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모두 하나같이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열번째 그림은 저자거리에서 중생을 제도하는 '入廛垂手(입전수수)'입니다.
입전수수(入廛垂手)는 지팡이에 큰 포대를 메고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때 큰 포대는 중생들에게 베풀어 줄 복과 덕을 담은 포대로서, 불교의 궁극적인 뜻이 중생의 제도에 있음을 상징한 것입니다. 표주박 차고 거리에 나가 지팡이를 짚고 집집마다 다니며 스스로 부처가 되게 하고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불국(佛國)을 건설한다는 내용입니다.
심우도는 볼 때의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이는 그림입니다. 때론 소가 본성으로 나타나고 때론 소가 실존으로 나타납니다. 아직도 '소와 동자의 관계가 나와 무슨 소용 있는가' 묻기도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나의 소를 잡지 못했습니다. 내 마음을 나는 아직도 모릅니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찾아 다녔던가? 대체 찾은 것은 그 무엇이고 잃은 것은 또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책꽂이에 키큰 책들사이에 묻혀 잊혀졌던 삼중당 문고판 [한용님의 '님의 침묵'] 시집을 펼쳐 뒤적거리다 화두(話頭)같이 마음에 파장을 던지는 한 수의 시를 찾아 읽게 됩니다.
심우장(尋牛莊) 1 - 만해선사
잃을 소 없건만은 찾을 손 우습도다
만일 잃은 씨 분명타 하면 찾은들 지닐쏘냐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심우장(尋牛莊) 2 - 만해선사
소 찾기 몇 해던가 풀길이 어지럽구야
북악산(北岳山) 기슭 안고 해와 달로 감돈다네
이 마음 가시잖으매 정녕코 만나오리.
심우장(尋牛莊) 3 - 만해선사
찾는 마음 숨는 마음 서로 숨박꼭질할 제
곧 아래 흐르는 물 돌길을 뚫고 넘네
말없이 웃어내거든 소잡을 줄 아옵서라.
〈심우장 1〉은 초장 “잃은 소 없건만은 찾을 손 우습도다”는 우리의 본래 자성은 불생불멸이고 불구부정이다. 따라서 잃어버릴 것도 찾을 것도 없는 자리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소를 타고 소의 등 위에서 소를 찾듯이 마음을 가지고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찾는다.
중장은 설사 마음을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실체가 없는 마음을 찾아서 지닐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종장의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는 중국 선종의 6조 혜능의 자성게(自性偈)의 뜻을 용사(用事)한 것이다. 혜능의 “본래무일물 하처염진애(本來無一物 何處染塵埃: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가 물들겠는가)”는 마음(一物)은 실체가 없어서 번뇌망상의 진애가 낄 수가 없으므로 닦을 것도 없다는 것이다. 찾을 것도 잃을 것도 없
는 마음의 본래자리를 읊은 것이다.
〈심우장 2〉의 초장은, 마음을 찾아 참선 수행하느라 여러 해를 보내면서 그 동안 번뇌와 갈등 속에 시름한 것을 ‘소 찾기 몇 해던가 풀길이 어지럽구야’로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중장은 북악산에 해와 달이 감도니 멀지않아 종장에서 결구했듯이 소(마음)를 찾아 만나리라고 읊은 것이다.
〈심우장 3〉 초장은 소(마음)를 찾아 고심하는 노력을 표현한 것이고, 중장은 돌길을 뚫고 흐르는 물처럼 어지러운 풀길 속을 뚫고 소를 찾아 가깝게 다가가고 있음을 멋지게 묘사한 것이다. 종장 “말 없이 웃어내거든 소 잡은 줄 아옵서라” 역시 선사의 침묵과 무언의 시어를 통해 소(마음)을 잡아 깨달음을 완성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깨달음의 환희를 “말없이 웃어내거든”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실제(失題)〉에서도 마음을 소에 비유하여 읊고 있다.
비낀 볕 소 등 위에 피리 부는 저 아이야
너의 소 짐 없거든 나의 시름 실어주렴
싣기는 어렵잖아도 부릴 곳이 없어라
― 만해 선사, 〈실제(失題)〉
‘비낀 볕 소 등 위에 피리 부는 저 아이야’는 《십우도》의 ‘6단계 소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기우귀가(騎牛歸家)〉’를 용사한 것이다.
구산(九山) 선사가 〈소 찾는 노래(尋牛頌)〉을 상당법문(上堂法門, 1972년 음력 11월 15일)으로 설한 노래는 다음과 같다.
산 높고 물 깊으며 풀숲조차 울창한데
아무리 애를 써도 찾을 길이 막연하네.
애달픈 정 달래려고 두견새를 듣노라.
11월 29일 (09:47)
참고 : 심우도 벽화보기 - http://www.korearoot.net/sansa/source/me6/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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