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연주(2023.9.1/호너 썬더버드 low D)
봄은 노래하게 하고 가을은 시인이 되게 한다. 봄은 희망으로 나를 가게 하고 가을은 돌아와 추억에 잠기게 한다. 문득 옛 추억의 그대에게 편지를 쓰게 한다. 부치지 못할 편지를. 바람에 실려 가는 낙엽에 전해본다.
오랜만에 가을편지(김민기)를 다시 불어본다. 가수 이동원이 낙엽따라 가버린 사람처럼 떠났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그를 추모하고 저무는 가을을 감상한다.
그대는 누구일까? 나, 너, 그.
분명 그는 3인칭인데, 그대는 어찌 3인칭이 아닌 듯 하다. 지금은 내 곁에 없는 님, 님이 되는 너를 부를 때 '그대'라 부른다.
이동원이 부르는 '그대'는 나의 '그대'와 다르지 않다. 우리 모두에게는 사랑하는 그대가 있다.
그대를 불러보며, 그대에게 가을 편지를 보낸다. 붙이지 못하여 그냥 그리고 그냥 부르고 마냥 바라본다.
'이별노래'는 내가 좋아하는 정호승 시인의 시이다. 가지말라고 붙잡지도 못하고, 발병난다며 억지부리지 않는다. 슬퍼도 눈물 흘리지 않고, 조금만 더 늦게 떠나기만 바랄 뿐이다. 그래도 그대는 떠나야 할 이유가 있고, 나는 보내야 할 까닭이 있다. 그래서 그냥 빌 뿐이다. 나는 노을이 되어 그대를 축복하고, 나는 별이 되어 그대 가는 길에 동반자가 되어 마냥 함께 있게 되기를.
이별노래 ㅡ 정호승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나는 그대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하모니카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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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뉴스 앱으로 보기ㅡ 오광수 시인 ·대중음악평론가
2021.11.22 03:00 입력/이동원 ‘이별노래’
1984년 봄 무명가수 이동원이 시인 정호승이 일하는 잡지사로 찾아왔다. 정 시인이 모 회사 사보에 발표한 시 ‘이별 노래’를 읽고 노래로 만들어 부르고 싶다고 했다. 흔쾌히 허락했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가을쯤 워크맨에 노래를 녹음해서 왔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시가 가진 원형의 리듬을 그대로 살리면서 부드러우면서도 사색적인 음색을 담은 울림이 큰 노래가 탄생했다.
그 당시 이동원은 서른셋이었고, 정호승은 한 살 위였다. 서정적인 감성이 맞아떨어지면서 탄생한 노래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동원은 KBS 10대 가수로 뽑혔고, 앨범은 100만장 이상 판매됐다. <서울의 예수> <새벽 편지> 등 베스트셀러 시집을 발표한 정호승은 많은 시가 노래로 만들어졌지만 ‘이별 노래’가 가장 애착이 간다고 밝힌 바 있다. 안치환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나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도 정호승의 시다. 이동원도 정 시인의 다른 시에 곡을 붙인 ‘또 기다리는 편지’ ‘봄길’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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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편지]
가을 편지를 따라부르며 추모한다. 고은의 시에다 김민기씨가 작곡하여 불렀다. 잔잔한 기타반주에 시를 낭송하듯 부르는 김민기의 노래도 좋지만, 이동원의 가을 편지는 반주가 아름답고 그의 목소리는 가을 분위기에 무척 어울린다. 그와 함께 나도 '가을편지'를 부쳐본다.
하모니카 연주 (호너, 다이아토닉 썬더버드 low C key)
이 노래가 만들어진 사연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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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애초에 노래를 위해 만들어졌다. 1960년대 말쯤의 일이다. 서울대학교가 있던 동숭동 어느 허름한 막걸리 집이다. 그 자리에는 고은 시인, 대중음악 평론가 최경식, 그의 누이동생인 최양숙과 친구 김광희가 있었다. 최양숙과 김광희는 서울대학교 성악과와 작곡과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술에 취하자 최경식은 고은에게 시 한 편을 읊어달라고 한다. 그때 고은 시인이 흥얼거리며 읊은 시가 바로 <세노야>였다. 타령조의 시에 김광희가 즉석에서 곡을 붙이고 최양숙이 노래로 불렀다. 훗날 양희은이 불러서 유명해졌다.
그런 인연으로 가끔 술자리를 하게 된 최경식이 어느 날 술 취한 고은 시인에게 음반을 내기로 한 누이동생 최양숙을 위해 노랫말을 써줄 것을 부탁한다. 이에 고은 시인이 즉석에서 써준 시가 <가을 편지>다. 이 가을편지는 김광희의 1년 후배인 김민기가 서울대학교 미대에 재학 중 작곡해 <세노야>와 함께 최양숙의 데뷔 앨범에 수록되게 된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
낙엽이 쌓이는 날 /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
낙엽이 흩어진 날 /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
낙엽이 사라진 날 /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누구라도 좋으니 '그대'가 돼 달라고 애원하는 고은 시인은 한때 승려였다. <가을 편지>는 '종교의 길'에서 '문학의 길'로 환속한 젊은 파계승의 가슴에서 우러나온 '구원을 염원하는 간절한 기도'가 아니었을까.
최양숙이 최초로 부른 <가을 편지>는 아픔이 있었다. 운동권 노래의 상징, <아침 이슬>을 작곡했던 김민기가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앨범은 압수당하고 금지곡이 됐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나 마찬가지다.
1980년대에 들어서 최양숙이 다시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서 녹음했고, 그 뒤 구수한 중저음의 이동원이 리바이벌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93년에는 작곡자인 김민기가 막걸리처럼 텁텁한 목소리로 직접 불러서 젊은 층에서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여러 버전 중에서 샹송 스타일로 부른 최양숙의 가을 편지가 으뜸이다. <가을 편지>가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아름다운 시를 바탕으로 노래를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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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더하기>
중국 당(唐) 희종(禧宗) 때 궁녀 한씨가 추흥(秋興)에 겨워 단풍잎에 시를 써서 물에 띄워 보냈다.
“흐르는 물 어찌 이리도 급히 가는가?
이 깊은 궁궐은 종일토록 한가로운데
남 몰래 넌지시 붉은 잎에 부치노니
인간 세상으로 잘 흘러 가거라”
流水何太急 유수하태급
深宮盡日閒 심궁진일한
慇懃付紅葉 은근부홍엽
好去到人間 호거도인간
우우(于祐)라는 남자가 그걸 건져 읽고 상류로 올라가 화답하는 시를 단풍잎에 써서 띄워 보냈다.
“꽃 떨어질 때의 서글픈 심정 홍엽에 쓴다는 말 들어/홍엽에 시를 썼으나 그 누구에게 부칠꼬”
曾聞葉上題紅怨
葉上題詩寄阿誰
우우는 그 뒤 한씨를 신부로 맞게 됐다. 오랜 가뭄 등 나라에 재앙이 있으면 여자의 한 때문이라고 믿어 궁중의 여자들을 민가로 돌려보냈는데, 이때 한씨도 끼어 있었다. 우우는 혹시나 싶어 첫날 밤에 붉은 잎을 내보였다. 한씨도 붉은 잎을 내보이며 아래와 같이 시를 지었다. 둘의 합작이라는 설도 있다.
“한 구절 아름다운 글귀 물 따라 흘러가니/10년의 깊은 시름 가슴에 가득했네/오늘 이렇게 봉황의 짝 이룬 것은/붉은 잎이 좋은 중매한 것임을 이제 알겠구나”
一聯佳句隨流水
十載幽愁滿素懷
今日已成鸞鳳侶
方知紅葉是良媒
‘태평광기(太平廣記)’에 홍엽지매(紅葉之媒), 붉은 단풍이 중매를 섰다는 뜻으로 실려 있다. 시에 나오는 대로 홍엽양매(紅葉良媒)라고도 한다.
시인들이 이 낭만적인 이야기를 놓칠 리 없다. 고려 문인 이인로(李仁老· 1152~1220)는 ‘초서 족자를 두고 짓다’[題草書簇子]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단풍잎에 시를 지어 써서 궁성 밖으로 내보내니/눈물 자국 먹에 아롱져 더욱 분명하네/궁전 도랑에 흐르는 물 도무지 믿을 게 못 돼/궁녀의 한 조각 정을 밖으로 흘려 보냈구나”
紅葉題詩出鳳城
淚痕和墨尙分明
御溝流水渾無賴
漏洩宮娥一片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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